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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구 12월 3일 강의 지옥의 하나님 82p 예수님의 전쟁강의에스겔

대구 12월 3일 강의 지옥의 하나님 82p 예수님의 전쟁

이름 : 우리교회(IP:125.190.2.61)

071203 지옥의 하나님 82p 신약, 주의 전쟁

우리교회(IP:125.♡.2.61)

07-12-03 19:39

우리교회(IP:220.♡.176.141)

08-05-07 18:43

대구071203지옥의하나님p082

07 대구강의 17 - 지옥의 하나님 24 - 주님의 전쟁2
07,12,03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인자와 고난 !!

오늘은 '여호와 전쟁' 이라고 해서, 교재 82페이지를 하겠는데, 그것을 하기에 앞서서 구약의 핵심이 되는 것을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신약을 공부하겠는데, 먼저 에스겔 3장 17절과 18절을 보도록 하자. 지금 선지자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선지자가 사람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말이다.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 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에스겔이 이렇게 말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이렇게 구원이 되어야 해. 구원을 받지 않으면 죽어. 지금 너희들이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야"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것을 말하지 않게 되면, 그 책임을 선지자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의외로 어려운데, 왜 그런고 하니,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을 한번 보자.

* A : 선지자야?
* B : 예.
* A : 가서 전해라.
* B : 예. 아무튼 저는 괜찮지요?
* A : 그럼 괜찮지.
* B :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참 쉬운데, 즉 "이미 구원은 받은 것이고, 전하라고 하니 전하지 뭐. 아니면 말고" 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 A : 선지자야?
* B : 예.
* A : 가서 전해라.
* B : 예. 아무튼 저는 괜찮지요?
* A : 아니, 전하지 않으면 너도 당한다.
* B : ? ? ?

◈ 인자의 특징을 오해하지 말아야 !!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으로 성급하게 넘어가기 이전에 구약에서의 인자, 즉 구원받은 사람의 특성을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구원 위주로 잘못 이해하게 되면, "일단 구원은 받았으니, 주님의 일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지 뭐" 라는 식으로, 여전히 자기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에 선지자가 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면, "니가 죽어"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미리 이용해보겠다고 하는 사적인 의지가 전혀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단 구원을 받는데 하나님을 이용해서 받아야지. 구원받고 난 뒤에 좀 깽판을 치지 뭐. 그때는 하나님이라도 어떻게 하겠어" 라고 하는 것이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모를 리가 있는가? 그러니 우리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것을 몽땅 다 버리고, 아예 자기 것이 없음을 명심하고서 넘어가자는 것이다. 즉 "내 것은 없다" 라는 말이다. "이제 구원은 받았으니 슬슬 농띠나 좀 칠까" 라고 하는 생각이 또 떠오르겠지만, 하지만 그런 것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면서 일체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선지자를 군중 속에 집어넣어서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혼자 내버려두어서 산 속에서 도를 닦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그런 인간 군중들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군중들 속에 집어넣어 놓으면, 거기에서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시당하는 것인데, 특히 목사들이 자기가 무시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말이다.

물론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인데, 밤에 몰래 남의 자동차를 불태우고 하는 인간들도, 그렇게 자기의 실패를 사회적 불만으로 터트리는 것도, 그런 것이 모두 다, 자기가 이 사회에서 무시당했다는 것을 보복하는 차원에서 한다는 말이다. 이건 배웠던 못 배웠던 간에 모두가 똑 같은데, 심지어 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소위 구원받았다는 인자인 '에스겔'에게서 확인시킨다는 것이다. "너도 왕창 한번 무시당해봐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자기는 열심히 연구해서 이것은 정말이지 하자가 없는 진리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길 가던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왜 저러지? 미쳤구나" 라고 하면서 무시당할 때, 그렇게 모두에게 무시를 당할 때, 거지 나사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하나님은 왜 성도들이 무시당하도록 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성도들로 하여금 그렇게 무시를 당하도록 하는가? 성도라면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즉 진리를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당연한데 말이다. 그런데 존경은커녕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마구 무시를 당하게 하는, 그런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왜 주셨느냐는 것이다.

◈ 무시당하는 예수님 !!

그것이 바로 오늘부터 강의하게 될 내용인데, 즉 신약시대에 있어서 오실 메시야가 이 세상과 직접 마주쳐보니까, 의외로(?) 예수님이 무시를 당했는데, 물론 그렇게 예수님을 무시하는 자들 중에 우리 자신도 포함이 되고 말이다.

◈ 빌라도의 아내 경우에 !!

예수님이 얼마나 무시를 당했는지 신약성경을 찾아보겠는데, 요즘은 맛이 갔는지 성경구절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말이다. 지금 찾지를 못해서 아무튼 그냥 말로 하겠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빌라도의 부인 이야기인데 말이다. (마태복음 27장 19절인데, ㅋㅋ)

(마 27:17)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마 27:18)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마 27:19)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그 빌라도의 아내가 어릴 때 무슨 하면서 어떻게 자랐는지, 물론 성경에는 없는데 상상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녀가 어릴 때 어떻게 했으며, 학교는 어디 어디를 다녔고, 남편은 어떻게 만났는지 말이다. 그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상상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녀가 예수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는가?

그런데 그런 빌라도의 아내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언제 예수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로마 사람이지 유대 쪽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그 여자는 예수에 대해서 관심을 둔 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고 하니까, 불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첫 경험을 가질 때, 바로 이러한 빌라도의 아내와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좀더 쉽게 하기 위해서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여기 커다란 원이 이 세상이라면, 이 세상 안에 어린아이가 자라서 소녀가 되고 아가씨가 되어서, 결국은 빌라도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누구를 특별히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빌라도의 인물에 반했는지 권력에 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결혼을 해서 유대나라에 파견근무를 나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세계의 한 구석에 있는 빌라도의 아내가 이러한 전 세계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는데, 그냥 신랑에게 밥이나 잘해주고 잠자리나 같이 해주면 되지 말이다. 그런데 이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성과 언제 접촉이 되는고 하니까, 마태복음 27장 19절에 나오듯이, 밤에 꿈을 꾸는데 자기 남편이 체포한 예수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 그렇다고 빌라도의 아내가 구원을 받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 빌라도의 아내가 구원을 받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전 우주의 주인이시며, 전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예수님에 대해서, 이것은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평범한 아줌마가 접촉하는데 꿈으로도 역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줌마가 "제가 어제 저 양반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고생을 했는데, 그러니 그냥 보내주었으면 좋겠는데요" 라고 했더라도, 과연 이 빌라도의 아내가 구원을 받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님과 어떤 경우로든지 접촉이 된다고 해도, 예수님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왜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가? 사실상 믿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지금 자기에게는 듬직한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 뭐가 답답해서 그것을 포기하고서 예수를 믿겠느냐는 것이다.

◈ 세상 밖에서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아야 !!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변두리에 있던 그 인간이 우주 밖에서 다시 이 세상을 보아야 하는데, 그 정도가 되어야만 예수님이 믿어진다는 것이다. 자기 남편과 자기 자식만을 아는 한 변두리에 있는 소박한 아줌마가 말이다. 그런 아줌마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이 우주의 밖으로 나가서, 이 온 우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그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을 알 때, 비로소 다시 아줌마 생활을 하던 말던 간에, 그제야 예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이 어떻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가능하냐는 말이다. 성령이 오지 않고서야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설령 자기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났다고 해도, 그분 때문에 자기가 밤잠을 설쳤다고 해도,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나도 이젠 예수님을 따라서 순교할 거야" 라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는지, 그런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 그 불가능한 것을 공부해야 !!

이렇게 불가능한데, 그 불가능한 것을 오늘부터 공부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를, 성경이 문자로 되어있으니 읽어보고서 천당에 가면 된다고 하는데, 그러나 아까 구약 에스겔에서 뭐라고 했는가? "비록 니가 선지자지만 전하지 않으면 그 화가 네게 온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는 그 어떤 여지도 애초부터 결코 용납하지를 않겠다는 것인데, "아, 나는 천국에 가고 싶은데, 누구를 믿지? 옳지. 예수를 믿으면 되겠구나" 라고 하는 여지를 주님 쪽에서는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빌라도의 아내 경우에도, 비록 예수님 때문에 하룻밤을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꿈자리가 사나웠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구원받았다고, 즉 복음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짜 그 순간에 성령을 받아버리면 남편과 이혼을 해서라도 예수를 믿을 것인데, 왜냐하면 이 남편보다도 우주 밖이 더 크니까 말이다. 우주에 비하면 남편과 자식은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안다면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서도 예수님을 믿겠지만, 그러나 그럴 아줌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하는 말이, "여보, 꿈도 그렇고 하니 좀 조심해서 재판하세요" 라고 하는데, 그 소리를 듣고 빌라도가 겨우 한다는 것이 재판을 하면서 세숫대야에 손을 씻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빌라도가 구원을 받았는가? 그가 지금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가?

이렇게 인간은 뭔가 자기 신상에 찜찜한 게 있으면, 손을 씻는다든지 해서 그냥 자기 식대로 해결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엎어지고 자빠지는, 그런 오지랖(?) 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언약궤 앞에서 용기 백배하는 블레셋 !!

구약의 사사시대에, 이게 사무엘상에 보면 나오는데, 재미있는 것이 불레셋 군사가 더욱 더 용기 백배해서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마치 야구를 잘할 줄 모르는 필리핀이 이왕 지는 것 용기를 내자고 해서, 즉 마음을 비우고 야구강국인 일본을 상대로 경기를 해서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물론 실제로는 박살이 났지만 말이다.

(삼상 4:10)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아무튼 이 블레셋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나가니, 도발하는 저 이스라엘을 마구 박살내는데, 물론 그 뒤에 언약궤가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 블레셋을 모두 치게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보면, 이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그 언약궤를 모시는 방식이 어떠한고 하니까, 이스라엘의 모세언약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스타일대로 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한 모퉁이에 불과한 블레셋이 평소에 하는 자기들이 제사를 드리는 방식대로, 즉 "언약궤는 더 이상은 우리를 괴롭히지 마세요.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금독종 형상 등을 만들어서 정성을 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가? 일단 저주는 없어졌지만 말이다.

◈ 종교행위로는 예수님과 연결이 더 이상 불가능 !!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신약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족히 이 세상의 어떤 행위와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성령이 오셔야 믿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 세상에서 한 모퉁이에 불과한 그런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폼을 잡는다고 해서,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한번 연결을 시켜보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신약시대에서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이고, 그야말로 땡 잡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천사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데, 물론 신분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 예수 믿는 사람이 나타났다 !!

어제 아침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이 세상에 무서운 일들이 참 많은데, 북한이 쳐들어오는 것도 물론 무섭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로 무서운 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인데, 왜냐하면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했으니 말이다.

왜 제가 그런 말을 했는고 하니, 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자기 스스로 속아넘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임을 모르고, 교회에 좀 다닌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엄청난 일이라는 것이다.

어제 설교시간에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이인제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라고 하니까, 교인들은 갑자기 설교시간에 무슨 정치이야기이냐고 웅성거렸는데, "아차, 말을 잘못했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이인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이니 말이다.

◈ 신약성경은 한 마디로, '갇혔다' !!

그리고 난 뒤에 신약성경을 보게 되면, 이 신약성경은 한 마디로 말해서, '갇혔다' 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에 이 말씀이 나오는데, 구약성경을 쫙 이야기해놓고 신약성경에 와서 하는 말이, 그 어떤 인간도 빼도 박도 못하고 갇혀있는데, 그렇게 갇혀있는 주제에 제 아무리 교회를 백 날을 다니고 그 어떤 짓을 해도, 무슨 짓을 해도 갇혀있다는 것이다.

마치 빌라도의 아내처럼, "나는 저 사람 때문에 꿈자리가 시끄러웠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느냐고 하면, "미쳤나. 내가 예수를 믿게. 든든한 자식놈이 있고, 잘 나가는 남편이 있는데 말이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을 가지고 짧은 글을 써도 괜찮은데, '빌라도의 아내 입장에서 본 예수' 라고 말이다. '빌라도의 고백서' 라는 짧은 글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빌라도의 아내 입장에서 본 예수 !!

그런 글이 아주 재미있지 싶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생각할 때에 꼭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자기에게 약간은 유익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예수가 최우선 과제는 아니고, "저 사람이 없으면 재수가 없겠다" 라고 하는 정도이지, "예수만을 위해서 산다" 라고 하는 것은 없는, 빌라도의 아내입장에서 본 평범한 예수,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교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상' 이라는 것이다.

이제 교재를 보겠는데, 먼저 '광야에서의 주의 전쟁'을 살펴보겠는데, 이렇게 주님께서 전쟁을 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광야라는 것이다.

** [광야에서의 주의 전쟁] - '한 아기, 이사야 선지자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은(이사야 7:14, 9:6-7) 한 아기의 등장은 창세기 3장 15-16절에서 언급한 뱀과의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이끌어낼 아기이다(계12:1-17).

이것은 제가 쓴 이야기가 아니고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것인데, 제가 말을 만들어낸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한계시록을 믿지 않으려면 이것도 무시하면 되지만, 성경을 믿는다면 이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 요한계시록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해석 !!

"아니, 이 목사님은 성경을 너무 붕붕 뛰는데 무슨 창세기하고 요한계시록이 그렇게 연결이 됩니까?" 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마지막 성경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렇게 창세기의 말씀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측면에서 마지막인데, 이렇게 마지막이 되면 더욱 더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입장에서 앞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즉 요한계시록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알레고리가 아니지만, 그러나 신학교 교수들은 결코 이렇게 하지 않는데, 그렇게 해버리면 논문이 통과되지 않고 무식하다고 욕을 들으니 말이다. 그런 것은 부흥사들이나 하지 배우고 점잖은 자기들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약속은 한 아기와 관련 !!

창세기 3장의 약속은 요한계시록 12장의 한 아기와 관련이 되어있는데, 이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뱀은 이 아기의 발꿈치를 뜯어먹도록 되어있는데, 그렇게 하는 순간에 그 아기는 그 뱀의 정수리를 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창세기 3장 15절의 원통 속에 !!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의 운명인데, 즉 '갇힌 운명'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갇히도록 한 두꺼운 철판의 무지막지한 원통, 즉 모든 인류를 한 속에 갇히도록 만든 그 원통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란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누구도 뱀의 후손이 아니면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뱀의 후손이 뱀새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즉 뱀이 뱀을 낳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낳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을 뱀의 후손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바리새인들을 보고서 "너거 애비는 마귀다" 라고 했는데, 그러니 그들은 뱀의 새끼라는 말이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가? 한 아기의 관점에서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아기가 되어야 믿지 않는 인간들은 뱀이 되고 뱀의 새끼가 된다는 것이다. 논리상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철학에서는 이런 것이 결단코 용납이 되지 않는데, 이 세상에서 많은 인간들 중에서 그 어떤 한 인간이 표준으로 제시하는 것을 철학에선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철학에서는 인간의 공통점을 모아서 이야기하지 말이다.

◈ 철학은, 특정인간의 기준을 용납하지 않아 !!

통계학에서 말하는 진리는 그래프를 그려서 숫자가 적은 쪽은 아니고, 제일 중간에 있는 표준오차가 적은 덩어리를 진리로 본다는 것이다. 왜 수학시간에 이런 통계학이 나오지 않는가? 아무튼 그렇게 해서 평균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독창적인 인간이 기준이 된다는 것은 철학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믿자'가 아닌, 부처를 본받자 !!

왜 그런고 하니, 만약에 부처를 그 어떤 특정인간이라고 했을 때, 부처와 부처가 아닌 인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만약에 부처가 인간의 형상이라면 다른 사람도 인간의 형상인데, 그렇게 동일한데, 그러니 어떻게 부처가 모델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부처를 믿자"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를 본받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본받자는 것은 가까이 가면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인간중심이 아닌데, 그렇다면 무슨 중심인가? '약속' 중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중심으로 일을 하시지, 인간중심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창조주가 피조물 중심으로 일을 하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기 중심이지 말이다. 그것이 상식 아닌가?

예를 들어서, 사람이 시계를 만들었는데, 시계가 가지 않으면 시계를 버리면 되지, "시계야 미안하다. 가도록 해줄게" 라고 하는 인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누가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중심으로 일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자기 중심이지 말이다.

◈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약속중심 !!

이렇게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중심이라는 것이다. 약속 말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데, 그래서 약속의 하나님이란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약속중심인데, 그런데 인간이 그 약속에 들어가면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약속 속에서 죄인인데, 즉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 박형용 교수 - 인죄론(人罪論) !!

그래서 박형용 교수는 자기 조직신학에서 인간론이라고 하지 않고, '인죄론(人罪論)' 이라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자유주의 진영에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말이다. 왜 인간론이라고 하지 않는가? 박형용은 말하기를 "인간은 없고, 죄인만이 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근거를 물으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아무튼 인간은 죄인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를 대려면 약속중심으로 해야 하는데, 그 신 이름이 무엇인고 하니 '여호와' 인데,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구약에 신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누가 진짜 신인지를 알려고 하면, 약속을 끄집어낼 수가 있어야만 진짜 신이고, 이 약속이 없는 신은 가짜라는 것이다. 만약에 약속을 무시해버리면, 아무리 여호와라고 불러도 약속을 무시하면 우상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엘리야가 바알과 싸움을 할 때 뭐라고 했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엘리야가 약속과 언급된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그 물이 흥건한 제단에 불이 떨어져서 다 태워버렸다는 말이다. 즉 엘리야의 기도는 "주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되게 해주소서" 라는 것이다.

◈ 약속 속의 인간은 죄인으로 !!

그러니 약속이 우선이지 인간이 알고 있는 신이 우선이 아닌데, 물론 그 약속 속의 인간은 죄인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죄인으로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그 약속의 성취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는 것이다. 죄인이니 말이다.

◈ 철학은 인간 존재를 전제로, 그러나 복음은?

이런 것이 참 어려운데, 철학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인간이 존재하니 만물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존재란 무엇인가?", "그 존재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라고 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말이다. 그 철학에서 나온 것이 과학이고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인간의 사유를 다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런데 거기에 비해서 복음이란 것은, "나는 너희 인간들과는 이야기하지 않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복음은 자기를 배제하고서, 약속대로 실행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렇게 '약속의 가동' 인데, 말하고 보니 이 표현이 마음에 드는데 말이다.

◈ 약속대로, 약속대로, 약속대로 !!

마리아의 경우에 그녀가 임신을 했는데, 왜 임신을 했는가? 마리아가 하는 말이 "주의 약속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듣고 엘리사벳이 왔는데, 그녀도 입을 열어서 말하기를, 역시 "우리 조상에게 한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마리아가 듣고,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 약속을 이 아기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셨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심을 감사하고 말이다.

(눅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45)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눅 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그러니 이런 모든 것이 "나는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즉 인간중심이 아니라 전부가 다 약속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빌라도의 아내와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성령을 받아야 이런 생각이 들지 어떻게 다른 수가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성령을 받지 않으면 자기중심이고, 성령을 받으면 약속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바뀌는데, 그러니 신약성경을 해석할 때 약속중심으로 해야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신약성경 자체가 약속에 준해서 기록이 되었기에 말이다.

◈ 그들은 왜 약속이 아닌 역사중심인가?

하지만 신학교 교수들은 신약성경을 약속이 아닌 무슨 중심으로 보는고 하니, 역사중심으로 출발을 하는데, 즉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느냐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복음서의 주기도문들 중에서 어느 주기도문이 실제로 있었던 주기도문이냐는 것이다.

불트만이 여기에 대표적인 사람인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4복음서에 모두 나오는데, 이 4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실제에 가까우냐고 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기껏 생각하는 것이, "어느 것이 역사적으로 맞는가? 아닌가?"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불트만은 다른 것은 다 나름대로 역사적으로 해석이 되는데, 부활은 도저히 안 되니까, 부활은 믿음에 속한다고, 그렇게 부활은 따로 떼 내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활을 믿음의 영역으로 보면 재림도 역시 믿음의 영역이 되어버리는데, 그런데 신학자들은 이러한 자기들 논리의 허점을 모르는데, 하지만 철학자들은 이런 것은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예견(豫見)과 미래(未來) !!

그런 게 어떤 것인고 하니, 예견(豫見)과 미래(未來)는 서로 다른 것인데, 예견이란 것은, 현재를 고수하면서 지금 이 현재에서 자기가 이야기한 것이란 말이다. 즉 이 현재가 안테나가 늘어나듯이 그렇게 죽죽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예견하는 주인공은 현재에 있는 바로 '나' 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라고 하는 것은, 현재를 밀어내는 것인데, 이렇게 미래가 와서 현재를 밀어낼 때, 그때 그것이 바로 '소망'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은 예견을 인정하지 않고, 미래가 이미 현재 속에 침투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예를 들어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도 그렇게 침노를 당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갇혀있으니 말이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역사적으로 봐서 실제로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루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는 말인데, 즉 "기껏해야 너는 역사밖에는 모르지" 라고 하는 방식 말이다.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창세기 1장에서 진화론자들은 6일만에 창조된 것을 부인하는데, 지금 과학적 사실로 보면 도저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저 아름드리 고목을 봐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창조론이 엉터리고 진화론이 맞다고 하는 책들이 99%인데, 창조론은 1%에 못 미치고 말이다. 우리는 이 양쪽의 책들을 모두 봐야 하는데, 그렇게 보고 나면 무엇을 느끼는고 하니, 진화론을 주장하는 책들이나 창조론을 주장하는 책들이, 자기가 죄인임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인정해도(?), 창세기 1장이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수준이고 말이다.

◈ 창세기 - 창조도 진화도 아닌, 제3의 방식 !!

하지만 창세기가 창조론도 아니고 진화론도 아닌, 제3의 입장에서 쓰여졌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데, 성령을 받은 사도바울이, 그리고 사도요한이 창세기를 어떻게 보았는지, 그런데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전혀 약속중심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은 무슨 중심인가? 약속을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를 이야기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창세기 1장은 바로 '빛' 중심인데,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해와 달은 없어져도 빛은 남아있다고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성경을 한번 찾아보겠는데, 이사야 60장 19절을 보자.

(사 60: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 결국은 빛의 세계 !!

여기에 보면 여호와가 빛이 되는데, 그렇다면 마지막 세상인 새하늘과 새땅이 어떤 세계란 말인가? 여호와만이 유일한 빛이 되는 세계인데,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처음부터 사람들 속에 이미 빛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빛인데, 그렇게 처음부터 빛이 있었다면 그 빛은 무엇을 증거하기 위해서 만들었는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흔적이 이미 창세기 1장에 나와있는데, 빛을 먼저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 나머지는 빛을 증거하는 덩어리들인데, 해와 달과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말이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런 것들은 빛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데, "목사님, 그러면 인간도 빛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까?" 라고 하면, 인간도 역시 빛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요한복음 1장 4절에 나오는데, 그분은 우리의 빛이었는데, 그런데 그 빛이 왔는데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모든 우주는 빛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이 빛을 에너지로 만들어버렸는데, 그 빛의 인격을 물리학에서 찾아내지를 못하는데,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에 말이다. 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약속밖에 있다는 말인데, 죄인은 아무리 새 출발을 해도 예수님이 빛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분은 33살 먹은 아저씨가 아닌가?"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그분만이 오직 우리의 빛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 목사님, 논리적으로 ??

"그러면 이근호 목사 당신이 한 말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니, 요한계시록 12장과 창세기 3장과 15절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말한 한 아기가, 창세기 3장의 여자의 후손과 역사를 초월해서 연결시킬 때, 그것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고 증명이 되느냐는 것이다. 또 문법적으로 따진다고 해서 되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이 곧 계시인데, 즉 성경은 그리스도의 약속중심이기에 인간을 비켜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새언약에서 배제되는데, 인간은 새언약의 체결자가 되지를 못하고 탈락이라는 것이다. 약속의 주체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구원을 받으려면 약속의 주체에서 선물로 받아야 가능하지, 자기가 약속을 지켜서 구원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 에스겔의 입장에서는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니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니가 당한다" 라고 했을 때, 그것조차도 에스겔이 약속이 관여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이 새언약이 완성된 입장에서, 다시 말해서, 에스겔은 새언약의 저촉을 받는 입장에서 에스겔은 시키는 데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과 같이 말이다. 그러니 몽땅 자기 것이 없다는 말이다.

* 하나님 : 까라면 까지 왜 말이 많아?
* 에스겔 : 남들이 무시하던데요?
* 하나님 : 무시를 하던 말던, 시키는 데로 해.
* 에스겔 : 예. 그래도?
* 하나님 : 언제 니가 사람을 바라보고 살았나? 사람이 구원시켜 주더냐?
* 에스겔 : 아니요.
* 하나님 :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나만 바라보면서 시키는 데로 해.
* 에스겔 : 예.

그러니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좀 인기가 있고 남들이 알아주면 신이 나서 전하고, 인기가 시들해지면 기가 팍 죽든지, 삐쳐서 있고 말이다. 자기가 구원받은 기쁨이 있으면, 우리가 개가 아닌가? 그러면 주인이 짖으라고 하면 '멍멍' 하고 짖으면 되지, 개 주제에 알아주고 말고 할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 목사는 교회에 올 때마다 짜증을 낸다 !!

제가 '목사의 위기' 라는 들을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목사는 교회에 올 때마다 짜증을 낸다" 라고 말이다. 어떻게 천 목사님은 짜증이 나지 않던가요? 정말이지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말이다. "교인들이 내 말도 안 듣고, 자기들끼리만 수군거리며 놀고"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사람이 다음 주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아무튼 전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회가 내 것이지, 이것들이 내 말도 듣지 않고" 라고 나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설교시간에 짜증을 왕창 내는 것이 역력해보이는데, 복음에 감격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교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목사님, 오늘 왜 저렇게 열을 내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새언약에서는 약속이 인간을 철저히 배격 !!

제가 지금까지 강의해본 바에 의하면, 아무튼 이 약속은 전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데, 그리고 새언약에서는 약속이 인간을 철저하게 배격하기 때문에 약속을 수행할 수 없는데, 기껏해야 빌라도의 아내처럼, "여보, 세숫대야에 물 받아서 손이나 씻으소" 라는 정도로, 재수 없는 일이 생길 것 같으니 액땜이나 하는 정도이고 말이다. 그러니 온전히 "저는 죄인입니다. 개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약속을 따라 진행된다는 말이다.

이제 그림을 다시 그려보겠는데, 모든 것이 약속중심인데, 그런데 이 약속중심에 인간이 뛰어들었다면, 인간은 그냥 인간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뛰어드는데, 이 죄인을 더불어 함께 용서해주는 부류가 여자의 후손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니 말이다. 그래서 품어주지 않고서 내버려두면 죄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뱀의 후손이 된다는 것이다.

◈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나라를 !!

"내가 온 것은 의임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은 약속을 따라서 새언약의 주체자로서 일을 하시는데, 보니까 죄인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는 것은, 여자의 후손이느 예수님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고 하니,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붙어준 죄인을 자기가 대신 용서해줌으로 말미암아서, 예수님 중심의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란 말이다.

그러니 이쪽에 속한, 즉 예수님이 품어주지 않은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죄만 짓고 살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곱게 살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예수님이 품어주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엄청 역겨워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뱀의 후손의 특징이기에 말이다.

이렇게 마귀는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제일로 싫어하는데, 자기가 저주를 받은 것도 예수님 때문에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귀가 다음과 같이 매일같이 고소를 해도 그 고소가 먹히지 않는데, 예수님 때문에 말이다.

* 마 귀 : 여호수아는 옷이 더러운데요?
* 예수님 : 내가 깨끗하게 씻어주면 되겠네.
* 마 귀 : 욥이 그래도 지가 받아먹은 게 있으니 그렇지. 만약에 자기가 받은 재산과 자식을 없애버리면 그렇게 못할 건데요?
* 예수님 : 알았어. ㅋㅋ

◈ 마귀는 곧 철학자 !!

그러니 마귀는 철학자(?)인데, 왜 그런고 하니, 이 세상을 예수중심으로 보지 말고, 우리가 인간이니 인간중심으로 평균을 내서 그냥 그대로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마귀가 마귀중심을 주장하는 게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예수중심으로 나온다고 하면, 인정사정 없이 공격하는데, 점잖하게 그냥 지나갈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 현숙한 영부인 역시 뱀새끼 !!

조금 이야기한 그 빌라도의 아내도 평소에 얼마나 착하고 현숙한 여인이었겠는가? 자기 남편의 부하들의 경조사를 다 살펴서 도움을 주고, 김장도 모두 담아주고, 고아원과 양로원도 돌아보고 말이다. 대통령 영부인들이 그런 짓들을 많이 하는데, 남편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모두다 내숭이지만 말이다.

이 빌라도의 아내도 그런 여자인데, 심지어 예수님이 붙잡혀서 재판을 받는다고 하니, 남편이 걱정이 되어서 "여보, 내 꿈자리가 좀 별로 이었어. 그냥 저 사람을 좀 용서해주면 안 돼" 라고 할 정도 같으면, 그야말로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천당에 가고도 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뱀의 후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내려는 사람은, 특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런 책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동방박사들이 누구였는가? 실제로 별이 인도했는가? 그 별이 유성인가? 아니면 태양계에 떠 있던 별인가?" 라는 것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중심이고 약속중심인데, 그런 과학적 사실중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 약속밖에 난 몰라 !!

아무튼 아기 예수님과 동방박사들에 대해서 천사가 특별관리(?)에 들어가는데, 왜냐하면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약속의 힘인데, 그러니 아기 예수님도 하나님의 약속 권한밖에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 예수가 애굽으로 갔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와야 하는 그 코스마저도 구약 선지자의 "저 사람은 나사렛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것까지도, 약속에 맞추기 위해서 스케줄을 그렇게 짜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약속에 관한 한 아주 지독하게 그대로 진행시킨다는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무조건 '약속대로' 된다는 것이다. "목사님, 그러면 우리도 약속대로 하면 안 됩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약속 개념이 하나님의 약속과는 다르기 때문에, 즉 우리는 약속이라고 생각해도 그 약속이 약속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마음속으로 간음하지 않겠다" 라고 목표를 잡았다고 한다면, 자기 딴에는 간음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이 보시기에 그런 것 자체가 간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생각한 약속의 해석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그것이 바로 간음하지 않는 것인데, 자기가 먼저 간음하지 않음의 개념을 설정해놓고, 그것을 지키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친다는 말이다. 여름철에 여자들 미니스커트를 보지 않으려고 아예 눈을 감고 다닐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러면 전보대가 '쾅' 하면서 "너는 이미 간음했어" 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 싶은데, 제가 경대에 다닐 때 일년 365일을 하얀 저고리에 까만 주름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아마 어떤 종교단체에 속했던 것 같은데, 무슨 여전도사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생각한 목표점이 있는데, 그것이 맞다고 보는 것이다.

◈ 그냥 사시면, 그것이 약속으로 드러나 !!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냥 사시면 그것이 약속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복음을 전하는 것 같은데, 그냥 우리가 살다가 보면 그것이 좁은 길인 줄로 아는 것이지, "바로 이것이 좁은 길이다" 라고 정해놓고서, 자기가 알아서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넓은 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가신 길이 약속의 길이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약속의 길인데, 그런데도 자기가 약속의 길을 따로 정해서 갈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마귀가 당장 달려와서 "잘했군, 잘했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일 먼저 부딪친 것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 사람배후에 있는, 사람을 갇히게 만든 이 세상 산을 먼저 만났는데, 즉 광야에서 악마를 만났는데, 그것이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나서 바로 광야로 가서 시험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교재 83페이지에 보면 나오는데, 구약의 이스라엘은 인류전체의 대표인데, 그런데 이렇게 멸망을 당하게 되니, 이제는 인류전체가 사탄의 권세아래 놓여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면서 이들도 사탄의 권세아래 놓여있음이 드러났다.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인은 아들의 사명을 감당할 자격이 없게 되었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성령께서는 사탄을 정면으로 만나게 해주신다. 그것도 장소가 광야이다. 광야란 국가 이스라엘이 여물어져 간 공간이었다.

◈ 광야란, 국가 이스라엘이 여물어져 간 공간이었다 !!

그런데 세상에 이 광야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세상에, 그것이 바로 마귀라는 것이다. 여물어져 간 그 광야 이스라엘이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사탄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예수님과 마귀의 만남이지만, 실제이고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는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이었다는 것이다. 즉 바리새인들과의 만남이었다는 말이다.

흔히 사람들이 "마귀가 어디에 있노?" 라고 하는데, 물론 마귀는 원래 천사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지만 마귀에 속한 사람들은 매일같이 만나고 또 만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무시를 당하고 말이다. '매일 담배를 피우는 여자' 라는 책도 있지만 말이다.

◈ 우리는 매일 마귀와 미팅을 !!

아무튼 우리는 매일 마귀를 만난다는 것이다. 옆집에서 만나고, 아랫집에서 만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고, 길에서 만나고, 교회에서도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같이 마귀에 속한 사람들은 만나는데,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매일 매일 무시를 당하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마태복음 4장 1-11절과 누가복음 4장 1-13절에서 사탄은 나름대로 가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메시야 상에 예수님도 순순히 굴복해 들어오기를 요청했다.

◈ 광야의 시험 - 죽음, 종교, 권력 !!

광야의 시험은 이념적으로 3가지로 볼 수 있는데, 즉 '죽음'과 '종교'와 '권력'이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너, 배고프잖아. 그러니 밥을 먹어. 그렇지 않으면 죽어" 라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떡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즉 죽음에 관한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귀에게 복속이 될 수밖에 없는데, 천하의 신앙인이라고 해도 자기가 배고프면 복종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이쿠, 할배요. 밥 주소" 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느 집사님의 딸이 취직을 하지 못해서놀다가 드디어 일자리를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절에 가서 밥을 해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가 그 딸에게 그만두고 나오라고 하는 권리가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에 기사로 취직한 아들이 있다고 해서, 역시나 그만두고 나오라고 할 권리도 없고 말이다.

인간은 자기 자력으로 어떤 것을 기피하고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새언약의 주체자가 아니니 말이다. 새언약의 주체자는 예수님인데, 그 어떤 인간도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그렇게 기피했다는 이유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언약의 시대에는 말이다.

◈ 강도사 고시 문제 1번 !!

제가 이런 경우를 예상해서 미리 여러 번 이야기 한 것인데, 저는 가끔 혼자 장난 삼아 이런 생각을 해보는데, "만약에 신학교를 세운다면 강도사 고시에 어떤 시험문제를 낼까?" 라고 말이다. "당신이 있는 교회의 집사님이 여호와의 증인이 운영하는 왕국회관에 취직이 되었다면, 당신은 어떤 조언을 할 것입니까?" 라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성경과 다른 신학서적을 참고해도 좋다고 오픈북 테스트를 하면, 거기에서 그 사람의 조직신학이 모두 나오는데, 즉 사상이 다 나온다는 것이다. 복음이든, 자기 의이든, 아무튼 이런 것들이 모두 다 말이다.

아무튼 새언약의 주체자는 결코 인간이 아닌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매일같이 명심을 해야 하는데, 즉 자기의 피로 자기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항상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하는데, 그러나 우리의 완벽함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교재 84페이지를 보자.

** 1. 경제적 제안 -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5000명을 먹이니까 사람들이 줄기차게 예수님을 쫓아다닌다.

◈ 인간들이 원하는 왕은 역시 마귀밖에는 !!

배고파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떡을 줄 수 있는가? 아니면 말씀을 줄 수 있는가?" 라는 것인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 피해서 다녔는데, 그것은 예수님은 마귀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 찾아갈, 그런 왕으로 삼을 대상은 누구밖에 없는가? 마귀밖에 없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히 마귀를 좋아하는데, 즉 마귀에게 갇혀있는데, 거기애서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일부러 떡을 주고 도망쳐버렸는데, 즉 도망치는 왕인데, 그러니 도망치는 떡을 베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떡 때문에 진짜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모두를 다 불러놓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나를 찾는 까닭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라고 야단을 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줄 수 있는 떡은 이런 떡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라는 것이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 만나가 아니라, 피와 살을 주려고 !!

그러니 그들이 또 오해를 하기를, "야, 만나구나. 우리가 기다렸던 만나를 주시는 분이 오셨구나" 라고 말이다. 모세는 그렇게 만나를 주었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거기서 또 도망을 치는데, 예수님은 만나가 아니라, 자기의 살과 피를 준다는 것이다. 만나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인데, 그것은 그냥 시키는 데로 주워먹으면 되는데, 하지만 자기가 어떤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말이다.

(요 6: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요 6: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요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렇게 누군가가 주는 돈을 쓰고 떡을 먹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그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으로서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 어렵도다" 라고 하면서 가버리고는, 다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광야의 시험은 한 순간의 시험이 아니라, 신약성경 끝까지 이어지는 시험이라는 말이다.

이제 교재 84페이지를 보자.

** 여기에서 땅의 양식과 하늘의 양식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땅의 양식을 원했다. … 그런데 하나님은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박탈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다. 사람의 순수한 본심대로 움직였을 따름이다.

◈ 왜 나는 지금 생명이 없는가?

하나님이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간들이 생명이 없는 곳에서 쫓겨나서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즉 생명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지금 생명이 없는가?" 라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생명을 제대로 아는 모습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는 죽어도 당연하다는 것, 그것을 아는 사람이 진짜 생명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라고 하는 사람은, 생명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 광야라는 곳은 이렇게 생명을 박탈시키는 과정인데, 우리 인생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스데반 집사는 자기 육체가 옷에 불과 !!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에, 사람들이 제 아무리 돌을 던져봐야 스데반 집사의 육체라는 옷에 불과한데, 이 육체라는 옷에 돌을 던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 육체라는 옷은 언젠가 벗어버려야 하는데, 새옷을 입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가 기도하기를,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기에 용서해달라고 말이다. 전혀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니, 즉 그런 후패한 옷에 돌을 던지고 짓밟으니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돌을 던진 이유는,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를 보니 그 옷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도 자기처럼 그렇게 그 옷을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돌을 던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데반 집사에게는 그런 육체의 생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미 죽을 몸이라고 여기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돌을 던지면 약이 오르겠지. 화를 낼 거야" 라고 하면서 돌을 던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에 터키 사람이 저에게 욕을 한다고 해도 저는 기분이 전혀 나쁘지가 않는데, 물론 상대방인 터키 사람은 제가 기분이 나쁠 것이라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는 터키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까,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 역시 성도는 무서워 !!

그러니 그들이 스데반 집사를 너무 얕잡아보았는데, 바로 이런 사람을 신약성경에선 '성도' 라고 하는 것이다. 생명이란 스데반 집사처첨 정말로 자기가 죽어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데, 그러니 누가 이런 것을 알 리가 있느냐는 말이다. 심지어 베드로도 겁이 나서 3번이나 부인을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2. 만나의 의미'는 교재를 읽어보면 되는데, 구 목사님이 알아서 좀 적어놓으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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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나의 의미 (교재 87~90페이지)

만나를 먹은 것 자체가 곧 그들에게 구원이 아니라는 사실은 만나를 중심으로 몇 가지 규칙이 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간들의 자기 생존 중심적 인식에 말려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중심의 사고를 바라고 계시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투쟁들이 담겨있다.

만나의 규칙은, 첫째, 실제로 광야에서 있는 자나 할 것 없이 다 같은 양이 될 것, 둘째로, 절대로 저장하거나 축적하지 말 것, 셋째로, 안식일에는 절대 거두러 나가지 말 것, 이상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규칙이 앉고 있는 특징은 전부가 평소에 인간들이 자기 생존을 위하여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방식을 철저히 정죄하고 겨냥하면서 제시된 규칙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결코 하늘의 은사 중심이 아니라, 자신의 자질과 능력 중심에 의한 경쟁체제이다. 많이 가진 자와 모자라는 자가 구분되어 있으며 능력이 있는 자와 뒤 처지는 자가 있다. 많이 버는 자는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되고, 그 축적된 재력으로 인해서 타인의 노동가치를 임의로 조정하고 지배하는 위치에 있게 만든다.

즉 자기만을 위한 부의 대량축적 행위가 상대적으로 타인을 결핍 사태에까지 몰아넣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세계의 경제활동은 누구의 도움보다는 자력으로 자기 생명을 연장시켜 나가야하는 세계이다. 자기가 노동을 쉬게 되면 곧 자기 목숨이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배우고 익히고 적응하는 원리가 바로 '사람은 떡으로만 산다' 라는 대전제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인간들의 근본적인 속성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더불어 만나의 규칙을 내려주신 것이다. 즉 "사람은 떡으로만 산다는 원리를 준수하기 위하여 너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라는 말씀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만나가 등장했다. 그 세계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들어가야 할 약속의 땅이며, 하나님이 미리 마련해 놓은 안식의 땅이다. 그 땅에 들어가면 더 이상 만나는 내리지 않는다.(수 5:12)

(수 5: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더 이상 만나가 필요 없는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 만나가 끊어지는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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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