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대구강의 1 - 지옥의 하나님 1
05대구강의 1 - 지옥의 하나님 1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 지옥의 하나님 ]
이근호 | 시시울 | 2005년 06월 29일
책 소개
이 책은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들의 종교적 아이디어와 실천성에 관한 책이며 그릇된 종교행위가 가장 발달한 형식으로 유통되는 교회의 실상을 알린다. 회개하라면 죄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를 알아야한다. 그럴 때 용서해주신 주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와 그 충만함을 알게 된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대하면 대학수록 더욱 더 근원적인 죄에 대해서 알고 거기에서, 그 세력에서 건져주신 십자가의 피를 감사하라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예스24 제공]
목차
1부. 성경의 맥과 흐름
1. 불길한 분위기
2. 교회와 세상의 대립성
3. 인간의 이름과 운명
4. 법에 갇혀버린 인간의 신세
5. 여호와의 전쟁
6. 신약에서의 '주의 전쟁'
2부. 인간구원을 위한 신학의 등장
1. 성경 이해를 봉쇄하시는 하나님
2.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3부. 생명을 얻는 길
1. 멈출 수 없는 자기 의
2. 두 가지의 교회상
3. 멈출 수 없는 회개
글을 거두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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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하나님 1
05,11,0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결론은 교회자체가 지옥이다 !!
오늘부터 '지옥의 하나님'을 강의하겠는데, 이 책은 초반부가 상당히 난해한데, 그리고 뒷부분은 기존 교회가 얼마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를 표방하는지를, 물론 결론은 교회자체가 바로 지옥이란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될 수밖에는 없는지, 실제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물론 개신교가 목사 중심이니까, 그 목사를 중심으로 얼마나 그리스도가 없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교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납득이 되기에 이해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지 싶은데,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비판했는데, 이렇게 되면 여기에 대해서 교회가 반드시 여러 가지 반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점에 대해서 미리 예상을 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개혁을 목소리 높여서 부르짖는다든지,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매도해버린다면, 즉 어떤 어떤 점은 문제가 있지만 나머지는 괜찮다고, 그렇게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냥 일방적으로 모두 엉터리라고 밀어 부치면, 그렇게 되면 반드시 반발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비판함에 있어서, 반발세력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무시하지 말고 항상 귀담아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 교회의 역사성과 통일성 !!
이러한 교회의 비판에 대해서 반발하는 세력들이 하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먼저 들고 나오는 것이 '교회의 역사성' 인데,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즉 이 세상의 권력이나 비성경적이고 악한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그나마 존속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 속에서 특별히 주권적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이렇게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인해서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건방지게 교회를 비판하고 매도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과거 교회가 어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마치 교회를 인간들이 만든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교회의 통일성' 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인데, 먼저 하나는 공간적인 통일성이고, 그 다음은 교리적이고 사상적인 통일성이라는 것이다. (처음이 공간성이라면, 두 번째는 시간성이라는 것이다.)
공간적 통일성이라는 것은 초대교회에 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 이상하게 아프리카나 유럽이나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모두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봐서는, 주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을 요즘말로는 유비쿼터스(?) 라고 하는데, 즉 어디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사상의 통일성인데, 이것은 시간적인데, 과거에 있었던 신앙과 요즘 신앙이 어찌 그리 똑같으냐는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는데도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물론 과거의 이단이 오늘날도 그대로 이단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시공간을 초월해서 동일하게 하나로 묶는다고, 그들이 교회의 통일성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교회를 비판하느냐는 것이다.
◈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교회의 역사성과 통일성을 근거로 해서 그들이 세 번째로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성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 그 문제점을 너무 크게 확대해석해서 교회를 공격한다는 것은, 교회를 세우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물론 교회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어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그것을 집어서 제대로 지적하고, 그리고 장단점을 골고루 다 이야기하고 해서 교회가 앞으로 잘하고 증진할 수 있는, 그런 여지를 남기는 방향으로 비판을 해야지, 모조리 다 썩었다든지, 다 엉터리이고 교회가 아니라고 하면 안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교회의 비판에 대해서 그들이 이렇게 반발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들은 대다수의 건전하고 정통한 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들이 모여있기에 일부 문제성이 있는 교회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교회의 역사성과 통일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사실은 이것은 교회의 역사성과 통일성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소속된 교단을 여기에 집어넣으면 너무나도 꼭 맞다는 것이다. 일류 제단사가 만든 맞춤양복처럼 말이다. 교단의 역사성과 교단의 통일성이라고 말이다.
자기 교단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자기 교회를 집어넣으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내 교회의 절대성', '내 교단의 절대성'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개혁과 교회비판을 말하면, 마치 자기 교회를 치는 것으로 간주해서 적으로 여기고 강력하게 반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 맛있네요. 이게 무슨 주스입니까? … 그러면 칵테일이네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좀 허전한데,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주는데, 아무튼 공간의 통일성도 좋고 사상의 통일성도 좋은데,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이 빠져버리고 없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과연 성경에서는 교회를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 비판하는 놈이나, 받아치는 놈이나, 다 한통속 !!
그런데 교회를 비판함에 있어서, 어느 특정시대의 특정지역의 어느 특정교회를 모델로 삼아서 이야기하게 되면, 즉 그 교회를 모델로 삼아서 한국교회를 비판하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그 본보기가 되는 교회나 공격을 당하는 교회도 다 똑같다는 것이다. 모두 다 엉터리라는 말이다. ("대구의 우리교회는 어떠 어떠한데, 당신 교회는 왜 그 모양인가?" 라는 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서, 학교 선생님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런 것이 잘못이다. 저기 38번 학생 구미호를 봐라. 얼마나 모범생인가?" 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나머지 49명의 학생들도 더 노력하기만 하면 38번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당연히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선생님의 입장은, "이렇게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얌전한 38번 학생처럼, 나머지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그렇게 되기만 하면 우리 학급이 참으로 좋을 텐데" 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38번이 아이큐가 140이고 나머지는 다 70이라면 그런 소리를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개혁을 말함에 있어서, "저기 밥퍼주는 교회를 봐라. 그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교회재정을 다 쓴다더라. 80%는 구제하는데 쓰고, 그 나머지를 가지고 교회를 유지하고 목사 사례비에 쓴다고 하더라" 라고 하면, 그것은 다른 교회들도 노력하기만 하면 다 그런 밥퍼주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교회들도 받아드리기를, "우리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겠네" 라고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비록 비판을 받아도 말이다. 우리도 교회는 교회인데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지, 앞으로 노력하면 그렇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교회를 비판하고 개혁을 부르짖는다면, 그것을 교회비판이고 개혁이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건전한 교회가 있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비판받는 교회가 심부름 센터에 전화를 해서 뒷조사를 부탁하면, 아니 어디 털어서 먼지가 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쿠, 건전하다고 자랑하더니만 저거나 우리나 다 개판이기는 마찬가지이네" 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맞고소를 하든지 휴전상태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정치판의 모습인데, 한 쪽에서 공격을 받으면 다른 쪽을 찔러서, 이것을 물타기 작전이라고 하는데, (이런 거 요즘 TV에도 많이 나오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 쪽의 문제점을 그만 흐지부지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 정작 성경은 빼고 개혁을 말한다 ???
그런데 교회비판을 이렇게 하면 무엇이 빠졌다고 했지요? 조금 전에 이야기했는데, '성경'이 빠졌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젊은이들이나 시민단체 등이, 모두가 다 성경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개혁주의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찬 노릇인지 말이다. 아니, 언제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어디로 돌아가고 해야 하는가? 당연히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혁주의도 잘 모르면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렇게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공격을 받는 쪽에서 뭐라고 하겠는가? "니는 성경을 얼마나 아노? 나도 니만큼은 성경을 알아. 우리도 성경대로 해. 이게 어디서 개혁을 부르짖고 난리야. 물론 인간이기에 모두들 문제가 있지. 목사도 인간인데 바람을 좀 피울 수도 있고 말이지.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알아서 고치면 되고 말이야. 하지만 우리 교회만큼은 주님의 역사로 인해서 부흥되는 교회야. 그러니 쓸데없는 참견일랑 하지마"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책의 구조 - 1부, 성경에 대해서 !! 2부 ???
그래서 이 책의 구조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가 무엇인고 하니까, "당신이 무슨 성경을 알아. 성경대로 해야지. 이근호 당신 교회는 건전하냐? 어디 한번 뒤를 파볼까?" 라고 하는 '교회 대 교회' 라는 구조가 아니라, 개혁을 하자고 부르짖고 비판을 하는 교회조차도 성경 앞에서는 어떤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부에 성경의 핵심을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대쪽에서 하는 말이, "나도 총신을 졸업했는데, 같은 신학교 교수에게 배웠으면서도 저 인간들은 왜 저러나? 나도 공부는 꽤나 했는데, 내가 지금 하는 목회도 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비판을 하니, 그러면 과연 누가 성경대로 맞는지 한번 두고보자" 라고 성경을 가지고, 그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성경을 보는 사람 같으면 마음속으로라도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교회개혁을 이야기할 때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교회개혁을 외치는 그런 부르짖음이 과거에는 별로 없었는데 1990년도를 지나면서 많이 늘어났는데, 그렇게 많은 이유가 과거에는 교회가 너무나 빨리 확산이 되고 세워졌기 때문에 목회자 수급이 딸렸다는 것이다. 교회 수보다 말이다. 심지어 시골교회는 목회자를 몇 년을 기다려야했고 말이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목사가 아니고, 주로 인문학을 배우고 법을 공부한 장로들이 교회가 너무 상식 밖으로 한다고 비판을 했다는 것이다. 목사가 교회를 비판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말이 믿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목사가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십 수년에 지나지 않는데, 왜냐하면 목사가 남아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목사 수가 넘치게 되면, 자연히 자기 자리가 없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튼 빼앗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내는 것이 교인들의 필수라고 생각했을 때는 남아도는 돈을 가지고 열심히 교회당을 크게 지으면 되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마치 절이 커지게 되면 사람들 수가 늘어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십일조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아파트도 사야만 되고 자식교육도 시켜야하니, 드디어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잘 내던 노인들은 다 죽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들이 교회에 헌금을 적게 하니 자연히 교회당 짓는 것도 멈춰지게 되고,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는 것도 그만 주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교회개혁 - 결론은, 내 자리 내놔라 !!
그렇게 되니, 신학교에서는 이미 학교를 더 짓고 해서 많은 신학생들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들이 그만 갈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기존 교회의 약점을 파고들든지 해서 뭔가 톡톡 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기존 교회에서 교인들을 몇이라도 끌어내어서 개척교회라도 할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그들이 작은 교회를 비판하겠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뭐 나올 것이 있다고 말이다. 반드시 큰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비판을 받으면 교회가 문을 닫는가? 세상에 비판을 받아서 넘어진 교회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큰 교회는 어떤 하나의 특징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종교를 다 수용하면서 커진 것이기에, 즉 성찬식을 해서 떡과 포도주를 먹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큰 교회의 특징 - 형식화 !!
이렇게 큰 교회일수록 형식화되는데, 여기서 '형식화' 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편안하게 앉아서 자기 속살을 드러내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구원이 되는 대량생산체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형식화의 특징 때문에, 자기의 개인적인 사생활은 전혀 구애받지 않고 그냥 묻혀가기면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기존교회는 아무리 보아도 개판이고, 그래서 나름대로 의식이 있다고 해서 개척교회를 해도 따라나온 사람들은 기껏해야 송사리들이고, 제대로 된 직업도 없는 청년들인데, 그들하고 매일 같이 모여봐야 돈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돈을 번다고 바쁘면 그들이 그렇게 교회에 나오고, 성경을 들여다보고 교회를 비판하겠는가? 돈 때문에 바빠서 정신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교회에서 뭉칫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다 부정한 방법으로 번 사람들이 아닌가? 부동산 투기를 하든지 해서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하나의 영원한 생명보험만 되면 그만이지, 무슨 개척교회나 조그마한 교회에 가서 회개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과거를 다 들추어내고, 무슨 그런 쪽 팔리는 나체쇼(?)를 할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큰 교회로 모이고 또 모인다는 것이다. 장로가 되도 한 달이 두 번 정도만 나와도 되고, 물론 헌금만 많이 하면 말이다. 이런 큰 교회는 마치 큰 절이나 사찰과도 같아서, 이런 큰 절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큰 교회를 비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존 교회에서 흘러나온 잔챙이들이라도 좀 챙기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그리고 큰 교회는 어떤 사람을 당회장으로 청빙하는고 하니, 개척교회에서 고생하면서 목회한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큰 교회에서 별 탈이 없는 목회자 중에서 모신다는 것이다. 물론 유학이라도 갖다오면 더 좋은데, 그렇게 자리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유학은 돈만 있으면 되지 않는가? 그리고 목사의 자식 들 중에서, 자식이 아니면 사위라도 되어야, 그렇게 뭔가 연결이 되어야 큰 교회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기존의 장로들이 원하고 말이다. (개척교회 목사는 데리고 와봐야 사고만 치지...)
◈ 장로 - 어허, 시원하다 !!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가? 장로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기에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냥 자기가 큰 교회의 장로라고 하면서 사회에서 인센티브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업상 장로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로가 되면 큰 교회에는 위원회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위원회의 장이 되면 각 위원장들은 교회에 예산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돈도 아니지만 그것을 가지고 생색을 내고, 나아가서는 노후대책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큰 교회가 되면 각 위원장의 파워가 막강하다는 것이다. 헌금을 다루는 장로는 그 지역 은행장과 말을 터고 지낸다는 것이다.)
아니, 나이 70에 어디에서 그런 대우를 받겠는가? 사회에 나가봐야 기껏해야 아파트 경비원밖에 더 하겠는가? 그런데 교회에 가면 장로라고 대우받고, 부교역자들로부터 온갖 아첨을 다 받지, 선교 위원장이라도 되면 양 사방에서 돈을 좀 더 타내려고 얼마나 알랑방귀를 뀌겠는가?
그런데 이 장로직은 항존직이 되어서, 설령 나이 70세가 되어서 은퇴를 해도 같은 패거리가 생겨서 누가 장로가 될지를 결정해서 자기편을 만들어서 뒤를 밀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밀어주게 되면 다 나오는 것이 있고 말이다. (뭐 때가 밀려서 나온다고?)
예를 들어서, 큰 교회의 장례위원장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 위원장은 교회의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것인데, 묘지는 자동적으로 부동산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아니, 요즘 부동산 같이 돈 되는 것이 어디 있는가? 건축 위원장이 되면 공사업자에게 뇌물 받아먹고 말이다. 그러니 기존의 세상에서 사업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리나 성경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 아니, 개혁위원회까지 - 역시 교회는 크고 볼 일 !!
이런 큰 교회는 심지어 개혁위원회까지도 조직을 해서 바른 소리를 하는 목사들에게 장학금을 대주고 유학까지도 보내준다는 것이다. 하는 짓이 참 재미있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큰 교회가 졸지에 개혁적인 교회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단 신학교에 이사가 되어서는 그 자리에다 자기 교회 출신으로 교수를 집어넣고,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이권과 개입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개혁을 부르짖을 때는 성경말씀을 가지고서 가장 근원적인, 가장 밑바닥부터 드러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적당히 슬로건으로 "한국교회는 썩었다" 라고 제 아무리 외쳐도 큰 교회는 '씨익' 웃고 만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기 교회에 강사로 한번 초빙해서 돌아갈 때 두툼한 봉투나 하나 손에 쥐어주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태도가 달라지는데, "야, 나 같은 사람을 드디어 알아주다니. 강사로 초청도 하고 말이야" 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한 편이 되고 말이다.
이렇게 말씀이 아니라 자기 존재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서 외치는 사람은, 사실 개혁을 부르짖을 이유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주의 종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자기 밥그릇 하나 챙기려고 안달이 난 사람이지 말이다. 즉 정치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또 민중들이 원하고 말이다.
◈ 지옥의 하나님 - 1부, 성경의 핵심 !! 2부, 한국교회의 문제점 !!
그래서 '지옥의 하나님' 이라는 이 책에서, 처음에는 성경을 이야기하고, 둘째로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그와 동시에, 한국교회의 문제점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인간의 종교심에 대해서 까지도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약간 어렵겠지만 제1부를 살펴보는데, 성경전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먼저 성경 한 구절을 찾아보겠는데,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서 4절을 보자.
(고후 12: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여기 보면, 사도바울이 얼마나 황홀한지 자기 몸을 유지하는 유기체라는 기본적인 경계선마저도 허물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몸밖에 있는지 안에 있는지 모르니 말이다. 이런 경험을 한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소원이 무엇이겠는가? 이 세상에서의 교회개혁인가?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14년 전에 보았던 그 삼층천에 살고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도바울이 증거한 것은 무엇인가? 오직 '천국'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른교회되기' 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른교회를 강조하는 사람은 신자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한데, 자기 자리 하나 차지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일종의 사업적인 욕구이고, 참된 그리스도의 종은 그런 교회되기에 관심이 없고, 오직 천국만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 천국 - 반드시 지옥이 먼저 증거되어야 !!
이렇게 천국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그냥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옥을 (먼저) 증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방향인데, 그래서 책제목이 '지옥의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지금 자기가 어떤 교회소속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천국소속인지 지옥소속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창기에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라는 전도표어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맞으면 맞지, 지금 어느 교회가 이상적이고 모범적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 말씀 - 수용하면 천국, 거부하면 지옥 !!
이러한 천국과 지옥을 결판내는 것은 오직 말씀밖에 없는데, 말씀을 수용하면 천국이고 말씀을 거부하면 지옥이라는 것이다. 삼층천에 올라간 사도바울의 관점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관점도 사도바울과 같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볼 자격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도 마찬가지인데, 베드로 후서에서인가 "내가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았다" 라고 했다는 말이다. 이런 성령을 받은 자들과 동일한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바른교회만들기고 나발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사도요한도 마찬가지인데, 요한계시록에서 "내가 해같이 빛나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고 죽은 것 같이 그 앞에 엎드렸다. 그런데 주님의 손에 보니 일곱교회가 붙들려있더라" 라는 것이다. 물론 그 일곱교회는 완전한 교회이고 말이다. 이게 스가랴에서 예언된 것이고 말이다.
(계 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겔 21:2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겔 21: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라면 천국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옥이라는 것이다. 말씀이 중요한 것이고 말씀이 어떻게 천국과 지옥을 말하느냐는 것이다. 제가 이 책을 다 쓰고 나서 출판사 사장님과 다음 책에 대해서 의논하기를, 이번에 지옥의 하나님에 대해서 썼기 때문에 다음에는 천국의 하나님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말이다.
지옥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교회가 말씀이 아닌 교회자체를 붙들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에, 이 책의 1부에서는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2부에서는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에 대해서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지옥'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책의 통일성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 말씀이란 참으로 위험스럽다 !!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말씀이란 참으로 위험스럽다" 라는 것인데, 어제 낮에 설교시간에 도망치는 (못난) 제자들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위험한 인물인 것이다. 예수님하고 같이 놀았다 싶으면 결국에는 다 죽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 놀고 싶으면 목숨걸고 놀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서 자기 명(命)에 죽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물론 그것이 자기들의 제대로 된 수명인지 몰라도 말이다. 아, 밧모섬에 유배간 사도요한이 있네. 그나 좀 오래 살았을까, 유배간 덕분에 말이다. 제대로 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도 위험하고 예수님의 말씀도 위험한데,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다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고 말이다. 아이들이 폭탄을 가지고 놀면 얼마나 위험한가? 이와 같이 지금 우리도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말씀에 감히 접근하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의 종이 된다면, 그것은 "충성, 이제는 죽겠습니다" 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각오하라는 뜻으로 뭐라고 하셨는가? 어디를 가더라도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 말고, 또 이리 가운데 어린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했던 것이다. 얼마나 위험하면 말이다. 그리고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기를 보호하는 것밖에 안 되니 말이다. 성령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참으로 대인저러스(?) 하다는 것이다.
(눅 10: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눅 10: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제가 이 책을 쓰면서 그것을 구구절절이 느꼈는데,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이다. 그야말로 지뢰밭을 지나가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말씀을 보다가 폭발하면 우리가 터지는데, 그야말로 우리가 정죄받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책의 제일 첫 부분을 살펴보면, '저자' 라고 해놓고 글이 하나 있는데, 앞부분은 저의 글이고 그 다음 "본 글은..." 라고 하는 것은 출판사 사장님 글인데, 앞부분에 "능선 너머 참한 예배당, 뾰족탑도 아름답던 마을..."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도 조금 수정되었는데, 아무튼 이 글에서 말하려는 것은, 그렇게 아름답던 마을의 예배당에 지옥의 유황불이 떨어질 줄 누가 알았느냐는 것이다.
◈ 성도가 믿는 것은 교회생활과 경험과 추억이 아니다 !!
그리고 "성도가 믿는 것은 교회생활과 경험과 추억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왜 제가 이런 글을 썼는고 하니, 인간이 이 '추억'에 얼마나 많이 속아넘어가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가을에 바바리 깃대를 세우고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말이다.
◈ 십자가 앞에서도 과연 낭만을 !!
이렇게 교회에 다니는 추억에는, 자기의 욕망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어서 자기 낭만을 꿈꾸게 되어있는데, 이것이 말씀 앞에서는, 그리고 삼층천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하나의 취미생활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은 너무나도 차갑고 냉정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그야말로 뚝뚝 떨어지는 실제의 피이기에, 그래서 제자들도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 피 범벅이 된 십자가 앞에서는 말이다.
그 이전에 예수님이 아무리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말했지만, 그것이 머릿속에 들어있었지만, 그러나 막상 십자가 사건이 터지고 나니,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는 것이다. 자기를 보호하던 보호막이 사라지고 나니 말이다.
여기서 시작 부분인, 책 13페이지를 보자.
** 그저 착하게 살기만 하면, 이 생에서나 저 생에서나 별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나님이 있으나 없으나, 천국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저 곱게 살기만 하면 어떤 경우에도 겁먹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는 어떤 욕망이 생기는고 하니, 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착해지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인데, 그 5가지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5가지 !!
(1) 존재론적 증명 - 이것은 안셀무스가 먼저 한 것인데,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을 봐서, 이것을 존재의 유비라고 하는데, 즉 존재하는 것을 봐서 존재케 하는 (궁극적) 존재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와 존재자는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인간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존재를 본질과 속성으로 나누는데, 물론 형상과 질료로 나누기도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서, 이근호를 본질이라고 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이나 귀, 혈액형 등은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속성이 그 사람 고유의, 즉 개별자의 본질(실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실체는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까, 물론 머리카락도 가지고 있지만 존재함이란 속성도 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이러한 존재함의 속성이 있다면, 인간의 존재함을 나타내는 신에게는 피조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모두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면, 그것은 큰 신에게도 다 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이렇게 존재하니 신에게도 당연히 존재한다는 속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은 존재한다" 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증명방법인가? 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너는 있냐?" 라고 물으면 당연히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이렇게 있다고 하면서, 그렇게 존재하는 속성이 있는데, 어떻게 자기보다 큰 신에게는 그런 존재하는 속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너를 존재케 하는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라는 것이다.
(2) 최초의 원인 - 모든 것이 원인이 없는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다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초의 원인이 반드시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원인을 추적해 올라가면 최초의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신이고 말이다.
(3) 최초의 운동 - 무엇이든지 움직인다고 하면,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최초의 운동이 있다는 것이다. 최초의 원인과 조금 비슷하고 말이다. 매직이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데, 제가 글을 쓰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4) 궁극적 목적 - 이렇게 시계를 만들 때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듯이, 시간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말이다. 우주도 그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목적을 누가 주었는가? 그러한 목적의 궁극적 목적이 바로 신이라는 말이다.
(5) 궁극적 선함 - 인간은 선을 추구하려는 의식이 있는데, 이렇게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런 선을, 그런 착함을 바로 신이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도라도 해도 그 강도 짓이 나쁜 짓인 줄 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식에게 누가 그런 강도 짓을 물려주겠는가? 도대체 그런 마음을 누가 주었는가? 이것을 요즘 말로 고치자면, 인간은 자기가 아닌 항상 자기보다 더 나은 자아를 한시라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것을 증명해보라면, 이것을 증명하기란 상당히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지난 영화를 보면 재미가 있던가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앨범을 통해서 자기 과거를 돌아보면, 좋은 추억 나쁜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돌아가고 싶을 것 같지만, 그러나 정말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머뭇거린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시시하다는 말이다. 이미 다 경험했기에 말이다.
◈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 !!
이것을 두고 '발전'이라고 하는데, 중학생이 초등학생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어릴 때가 그립기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과거의 애인을 다시 만나도 그때의 짜릿함이 다시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다 고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몸이 무너지기 전에 받을 것은 다 받아내야 하는데, 짐승 같은 남자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먼저 동거해보고 나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말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가? 한번 지나갔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발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이러한 발전이라는 것은, 항상 '새로움'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제품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제품 아닌가?
예를 들어서, 여기 빨간 35인용 전기밥통이 있는데, 과거에는 까만 것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이런 빨간 것이 나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격이 같다면 말이다. 까만 것이 아니라 빨간 것을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빨간 것이 나오지 않았는가? 일단 까만 것을 내어서 반응을 보고 발전시키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고 하니, 일단 발전이 되어버리면, 그 발전된 것에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아이쿠, 이 정도면 되었다" 라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착함이라고 해도, 그것이 종교가 아니라고 해도, 인간은 점점 더 착해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 노후대책은 역시 천주교가 !!
결국 이것이 어디까지 나아가는고 하니까, 젊었을 때 종교를 가지지 않던 인간들이, 기독교 가정이던 아니던 말이다. 나이가 들게 되면 대부분이 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보다는 천주교에 많이 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 김 신부, 오늘 한 라운드 할까 !!
첫째가 제사문제인데, 자기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김대건 신부가 왜 죽었는가? 제사를 반대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천주교가 토착화를 내세우면서 제사허용이 아니라 아예 제사장려로 바뀌었는데, 손님을 끌기 위해서 말이다. 두 번째가 술 담배문제인데, 왜 술 담배를 허용했는가? 신부들이 골초이고 초빼이(?) 라는 것이다. 세 번째가 도박인데, 역시 신부들이 도박을 즐긴다는 것이다. 넷째로 사치와 골프 등인데, 이것도 역시 신부가 골프나 사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라고 해서 다 같은 그룹이 아니고 그 중에서 장로급들이 있는데, 신부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이 다 사회에서 사업을 하니, 그런 것들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하급신부들과 수녀들이 굉장히 반발이 심하다는 것이다. 신부들이 매일 같이 골프나 치고 술 처먹고 음란 비디오나 보고 명품이나 찾고 말이다. 가난한 신도들은 돌보지도 않고 잘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맛있는 음식이나 처먹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난한 신부들이나 수녀들이 여기에 대해서 반발하면, "니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라고 하면서 빈정거리는데, 왜냐하면, 천주교의 교회도 신부의 능력에 따라서 살림살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헌금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 월급도 제대로 안 나오고 말이다. 물론 교회건물을 지을 때는 지원해주지만 말이다.
◈ 천주교 - 형식만 챙기게 되면 구원이 된다 !!
이렇게 해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천주교를 찾아오지만,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즉 천주교의 가장 큰 매력은 "형식만 챙기게 되면 구원이 된다" 라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죽은 사람조차도 '연옥설' 이라고 해서, 이것은 일종의 패자부활전인데, 교회에 돈이나 땅만 더 바치게 되면 연옥에서 천국으로 빼내준다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기껏해야 공동묘지나 만들어서 시체나(?)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큰 교회에 나가서 세례도 받고 하는데, 그래야 돈이 없더라도 죽어서 묻힐 땅이라도 있다는 말이다. 그게 훨씬 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요즘 공동묘지 한 평이 얼마나 비싼데 말이다. 어찌 작은 교회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겠는가?
그런데 천주교는 이런 차원이 아니라, 죽은 자 조차도 구원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아무리 복음을 외쳐보지만 본인이 나름대로 아는 복음이 있는데, "죄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 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죄를 감당하지를 못하는데, 천주교는 이것을 형식화시켜서 죄를 용서해주는데, 개신교도 천주교를 닮아서 중보기도라는 것을 해주고 말이다. 소위 기도의 종이 대신해서 죄를 회개해달라고 기도를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성경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에서 나오는 스스로 하는 반성작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나오는데,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피히테나 셀링에 의하면 이것을 '이성의 본질'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짐승과 다른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형상론을 주장했는데,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이성을 말하는데, 이 이성은 반성하는 기능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짐승은 반성하는 기능이 없기에 말이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교회가 무엇이냐는 의구심이 들게 되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종교성과 철학을 긍정해주고 그런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모아놓은 것이 교회가 아니냐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교회란, 예수 귀신에 사로잡힌 무당들의 모임 !!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살고 죽는지, 전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교회는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들이고, 그야말로 예수님의 똘마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예수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는 말이다.
죽어서 좋은데 가고 싶다는 것은 귀신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이고, 자기 반성도 그렇고 말이다. 점잖은 사람도 얼마든지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짜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 즉 무당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가 임했다는 것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아무리 나쁜 몸이고 못 배웠다고 해도 양심은 다 있기에 반성은 하기 마련이고, 이런 반성은 형식적인 종교의 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의 중들은 뭐라고 하는가? 목사와 신부를 만나봐도 자기들과 너무나 똑같다는 것이다. 그것도 엉터리 말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빙그레에서 나오는 바나나 우유나 해태에서 나오는 바나나 우유나, 바나나 우유이기는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초코파이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절에서 성탄절을 축하하고, 교회에서는 석가탄신일을 축하해준다는 것이다. 서로 서로가 말이다.
◈ 교회는 포장공장 공장장인가, 간장공장 공장장인가 !!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는 싫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이야기해버리면 손님이 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는 빼버리고, 그냥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심성을 잘 포장을 해서, 즉 일종의 포장공장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즉 '형식화' 라는 틀을 만들어 대량으로 천당에 보내주면 교회는 이 땅에서 먹고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책 13페이지를 보자.
** 그러면서도 교회 안이 아무 문제없다는 투다. 너무 고요해서 수상하다. 모두들 천국에 안 가려나?
왜 이렇게 교회 안이 고요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가? 교회가 하나의 사업체가 되다보니까, 즉 (나이든) 사람들의 연약한 심리를 포장지로 잘 포장해서, 천국에 보내준다고 사기를 치는 사업체를 운영하다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체를 운영하려면 그 안에 질서가 제대로 잡혀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손님들이 안심을 하고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서라고 하는 것은, 교회 내의 위계질서도 질서이겠지만, 그러나 교회가 계속해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정치권력과도 일종의 평화적인 관계에 놓여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교회사 - 권력과의 동침이 적나라하게 !!
교회사를 한번 보라는 것이다. 초기 교회사는 엄청나게 시끄러웠다는 말이다. 물론 교회 안도 시끌벅적했지만, 특히 밖이 엄청 소란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대 황제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는데, 특히 콘스탄틴 대제가 얼마나 교회를 핍박을 했는지 말이다. 원래 콘스탄틴이 서로마의 황제가 아닌데, 넘버 2인데, 로마가 통치를 제대로 못해서 후임자를 미리 앞당겨서 지방의 토후(영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도록 했다는 것이다. 즉 부통령제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그가 나중에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기독교를 너무 핍박을 하다가 정이 들었는지 몰라도, 그렇게 쿠데타를 일으켜서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도망을 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독교를 믿는 부하에게 기도를 부탁해서, 그 유명한 'PX' 라는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이용해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그는 밀라노 칙령(313년)이라고 해서 기독교 재산을 보호해주게 되는데, 흔히 이것을 기독교의 공인이라 하는데, 그러나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것은 그 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326년에 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교회의 재산이 보호를 받으면서 토지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재산이 늘어나면서 교회는 하나의 권력체가 되었고, 더욱이 나중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출세를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 지역의 영주가 자기에게 유리한 주교나 신부들을 자기 영지에 있는 교회에다 집어넣으면, 교회는 드디어 평화체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과 손을 잡고 말이다. 기독교가 바로 이런 수작들을 하면서 지나왔다는 것이다. 소위 그것이 교회사이고 말이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되기 위해서 국가권력과 결탁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에 들어와서 '엑스폴로' 라는 것인데, 이때 박통이 이런 성령의 힘(?)으로 데모하는 놈들을 역풍을 일으켜 눌렀다는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C.C.C. 이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방송 앞에 있는 400억 짜리 부동산을 꿀꺽했다는 것이다. 이랜드나 최순영, 하용조 등이 다 이런 부류이고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교회가 드디어 안정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타협을 하게 되는데, 물론 이렇게 되어도 스스로 반성하면 되고 말이다.
◈ 간사들의 데모 - 권력에 대한 소외감 !!
CCC 간사들이 데모를 하는데, 이렇게 데모를 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독점하니 화가 난다는 것이다. 질투나 시기심이라고나 할까? 다같이 예수를 믿는데 누구는 저렇게 돈이 많아서 떵떵거리고 누구는 뒤치닥거리만 하고 말이다. 즉 권력이 자기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나 자존심에 상처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가진 자에 대한 내부적인 권력에 대한 다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도 큰 교회는 이런 현상들이 비일비재하고 말이다.
책 15페이지를 보자.
** 그래, 교회는 외형만 천국이었다. 그것으로 천국구경은 끝이다.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다.
그러니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처음에는 목사에게 순종하다가 6개월만 다니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마치 무엇과도 같은고 하니까, 과거에 순진한 여전도사들이 강대상에 올라가면 큰일난다고 했을 때 꼭 강대상 끝이라도 몰래 한번 잡고 싶듯이 말이다. 이렇게 뭔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금지된 것을 소망한다는 것이다.
◈ 나는 금지된 것을 소망한다 !!
이것이 라캉이 주장한 것인데, 새로운 금지가 주어지면, 즉 법이나 윤리로 금지하게 되면, 이 금지가 항상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로마서 7장에도 있듯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다는 말이다. 몰래 먹는 사과가 더 맛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신학교 다닐 때는 수련회를 가면 일부러 교회당 안에 강대상에 올라가서 자고 했는데, 그런 것을 보고 금기시하는 사람들을 약 올린다고 말이다.
교회에 나온지 6개월만 되면 다 아는데, 교회가 정치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마음이 어떻겠는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편한데, 교회도 별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나중에 반성하면 되고,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그래도 찜찜하면 헌금을 더 하면 되고 말이다.
책 15페이지를 보자.
** 인간은 실수로 지옥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옥 같은 세상 외에 달리 살 곳이 없었다.
여기에 누가복음 16장에 있는 '지옥에 간 부자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간은 실수로 지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옥 같은 세상 이외에는 달리 살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옥은 인간에게 운명적이고 필연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눅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눅 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 지옥에서 태어나서, 지옥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go !!
거지 나사로가 천국으로 간 것은 오직 아브라함 때문에 그러한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때문에 그러한데, 그러니 이런 약속을 모르는 자들은 당연히 지옥에서 태어나서 지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데, 사고 팔고 장가가고 시집가도 결국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약속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가 천국으로 간 것은 오로지 아브라함처럼 선택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아브라함 품에 안겼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선택된 자가 따로 있음을 알라는 것인데, 모세와 선지자의 율법을 통해서 선택이 무엇인지 알라는 것이다. 이렇게 굳이 선택을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으면 자동적으로 지옥이라는 것이다.
◈ 스토아 철학의 특징 - 자연스럽다 !!
여기서 '자연스럽다' 라는 것은,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런 자연스러운 것을 진리라고 하는데, 다음 시간에 이 스토아 철학을 공부하겠는데, "인간은 왜 행동하게 되는가?" 라는 교재를 가지고 말이다. 이 스토아 철학을 보게 되면, 성화론이 여기서 나왔음을 알게 되는데, 이 스토아 철학에는 예정론과 금욕주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자연스러움' 인데, 이것이 스토아 철학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 스토아 철학이 토마스 아퀴나스에 들어와서 활개를 치게 되는데, 그 전에 이미 교회에서 삼위일체론을 다룰 때 이 스토아 철학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삼위일체를 성경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스토아 철학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 교리의 출처가 스토아 철학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리를 만든 갑바도기아의 세 명의 학자들, 즉 가이샤라의 바질, 닛사의 그레고리, 그리고 나지안누스의 그레고리가 바로 철학자들이라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위(位)'나 '체(體)' 라는 개념이 성경에 없는 것인데, 예를 들면 성례식에서 황제가 질문하기를,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고 하니까 그러면 과연 그것이 십자가에서 찢기고 흘리신 그 살과 피와 같으냐고 말이다. 그때는 교리를 주로 황제가 주도해서 만들고 했는데, 그 대답은 "예스" 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체설인데, 그러면 떡이 아닌데, 그런데 여기 떡만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사제들이 답변을 못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찬식에서 이 떡이 만약에 예수님의 살이라고 하면, 그런데 그 떡을 먹으면 그것이 그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소화가 되면 똥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이 몸 속에 들어가서 똥이 되어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똥이 예수님의 살이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모독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스콜라철학인데,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것을 극복하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동원해서 인간을 본질과 형상으로 구분했다는 것이다. 형상은 그대로 있지만 본질은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묘수가 다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과 형상이 바로 스토아 철학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자연스럽다 = 지옥스럽다 !!
앞에서 말한 '자연스럽다' 라는 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지옥스럽다' 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언약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아주 특수한 경우라는 것이다. 이 아브라함의 언약은 로마서 4장에 의하면, 경건치 못한 자를 의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롬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아마 스토아 철학자들이 이런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을 거라는 말이다. 목사들도 동참할 것이고 말이다. 어떻게 나쁜 짓을 했는데 의인이 되냐고 말이다. 현재 교회는 고요한데, 그러나 그 고요한 것이 도리어 수상하다는 말이다.
책 제일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보자.
** 능선 너머 참한 예배당, 뾰족탑도 아름답던 마을....
여기 이렇게 "능선 너머 참한 예배당, 뾰족탑도 아름답던 마을...." 이라고 되어있는데, 너무나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도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이인데,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인데, 이런 교회당 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앉아있는데, 천당에 가려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지옥에서 태어나서 지옥으로 꺼져 간다는 것이다. (교회당이 아니고 경로당인가?)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언약'이 와야 하는데, 그것도 아브라함과 나사로가 가졌던 언약인 새언약이 말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간 것은, 자기가 예수님 안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 성도가 미쳐야할 단 하나의 이유는, 오직 예수 !!
그러니 예수 귀신에 뒤집어 씌어져야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즉 오직 성령을 받아야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만에 그렇지 않으면 교회도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바깥을 두고서 지옥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지옥의 하나님" 이라는 책의 주제이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에게 미쳐버리지 않으면 나머지는 모두가 다 지옥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저에게 "이근호 목사, 이것이 당신 경험이요, 아니면 성경말씀이요?" 라고 묻는다면, 저는 분명히 "성경말씀입니다" 라고 목에 힘주어 대답하겠다는 것이다. (아니, 성경말씀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참 위험스러운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경말씀도 너무나도 위험스럽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기 위해서 이것을 보아야 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행동하시고 일하시는지를 놓치지 않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7,11,10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