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3:10-13 (유일한 구원자)
사 43:10-13 (유일한 구원자)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이사야 43장 10-13절
제목: 유일한 구원자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이사야-2005/116강-사43장,10-13,(유일한,구원자)-isa071128.hwp
이근호
07-11-28 20:48
유일한 구원자
2007년 11월 28일 본문 말씀: 이사야 43:10-13
(사 43: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 43:12)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43:13)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나님께서 “나는 구원자다”라고 나오실 때, 이 말은, 누구든지 구원받지 못한다면 낭패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해서,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구원되었느냐 아니되었냐 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구원 안되었다면 그 사람 인생 헛 살은 것입니다. 소용없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서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이는 곧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행운을 얻은 자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몽땅 잃는다 할지라도 손해볼 것이 없을 정도로 다행스러운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구원자”라 나선 이상, 분명 이 세상에는 구원되어야 될 세상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구원된 자들의 세상을 위해 미리 구원될 자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차로 비유하자면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차 10량을 전세 내어 구원될 자를 미리 실어나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기차는 천국으로 직행하면서 열차 내에 방송을 합니다. 그 방송 내용은 이러합니다.
앞으로 이 기차가 가야 될 나라의 모습과, 어떤 식으로 인간들이 구원받아서 여기 이 기차에 실렸는가에 대해서 알려주게 됩니다. 그럴 때, 이 구원의 방송을 듣고 지겨워 할 자는 없습니다. 바깥 풍경 속에서 그냥 지내고 있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비교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영원토록 흘려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열차 내 방송으로 나올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다”는 내용 말입니다. 참으로 구원 열차에 올라타 있는 사람들이 이 말씀에 대해서 곡해할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은 구원받은 즐거움과 고마움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짜로 주의 종이나 주의 증인 행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에 대해서 분명히 곡해하게 되고 오독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일반책을 보는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무슨 사실을 대하든지 간에 자신의 이익으로 소유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읽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소유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오늘 본문 같은 것은 이해하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주인은 종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종은 결코 주인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우기면서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가질려고 합니다.
주인이라는 존재는 종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인 노릇 제대로 하려면 우리 인간이 철저히 종이 되는 겸손 덕분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종이 된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더 쉽게 말해서 종이 실컷 고생하는 것을 주인된 입장에서 방치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고린도후서 6:4-5과 9절에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사도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을 때, 하나님의 증인노릇, 하나님의 종노릇 안하겠다고 반발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온다”고 했습니다. 복음 전파하는 직분 자체가 자신에게는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것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더 이상 아무런 것도 더 이상 원치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증인과 종이 되었다는 이 구원받은 자의 직분은 이 세상 그 어떤 세력으로도 훼방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28-29에 보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인간이 자기 행함으로 출발한 논리로서는 도저히 이 내용을 해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내가 잘나서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었다”라는 소리를 못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주신 분이 일단 영생을 주었으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이 주신 영생을 도로 없앨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의 대단함을 증거하기 위해서 성도는 인간적인 면에서 차마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환경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성도는 그 어느 순간에서도 구원받았다는 고마움과 감사가 내부적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에 시련마저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증인은 반드시 이런 자세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12제자들을 모두 자신의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요한복음 21:24에 보면,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증인이란 목격자입니다. 목격자는 자신이 새삼스럽게 일을 추진하고 완성시키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사고 목격자 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이 교통사고를 내든지 당해든지 해야합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엄연히 벌써 일어난 일에 대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는 뜻에서 생생하게 일어난 일, 그대로를 증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증거를 못하는 것은 자꾸만 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혼자 살면 소유 쪽에 관심을 갖습니다. 뭐로 자꾸만 채워서 자신의 허전함을 달래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격자나 증인은 이미 구원자와 더불어 구원의 세계로 질주하는 열차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외로울 것도 없고 더 채워야 할 것도 없습니다. 그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돌리면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구원받은 기쁨을 세상의 즐거움에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