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표시
영역표시
이름 : 최혁(IP:99.251.114.104)
가끔 National Geographic Channel에서 방영되는 다양한 동물들의 살아가는 습성들을 신기하게 본 적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성들을 가지고 자기 삶의 영역을 구축하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무심코 보기에는 말도 못하고 인간만큼의 뛰어난 지능이 없기에 동물의 세계가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꽤나 질서있고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어쩌면 우리 인간들이 사는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놀랍도록 신비한 동물의 세계 속에서도 우연일 수 없는 분명히 필연적인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동물들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삶의 터전에 분명한 영역표시를 해둔다는 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영역표시를 할 때 소변을 보게 됩니다.
이곳은 내 영역이니까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꼭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 소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항문 안쪽에 있는 항문낭 안의 고약한 액체도 같이 배출합니다.
숫놈일 경우 다리를 들고 소변을 보고 나서는 다음 동작을 꼭 합니다.
엉덩이를 목표물에 갖다대고 꼬리를 들곤 액체 발사~~
암놈일 경우는 잠시 앉았다 일어나면서 거의 동시에 소변과 항문낭액체를 배출합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애완견도 오줌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합니다.
하마는 똥으로 자신이 사는 곳을 알립니다.
이렇게 영역이 표시되면 대부분 동물들은 자기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서 다른 동물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생존해나갑니다.
그런데 서로 종이 다를 경우에는 먹이를 얻기 위해서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 경우는 있지만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같은 종끼리의 영역 다툼은 매우 빈번합니다.
예를 들면 숫사자의 경우 다른 맹수는 논외로 치더라도 같은 숫사자끼리의 싸움이 잦습니다.
무리를 지키는 놈은 지키는대로 싸우고, 도전자는 도전자대로 또 싸우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맹수와의 싸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잠시 동물의 세계를 감상해 보았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역시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을 표시해두고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 인간들은 생각이 있고 똑똑하기 때문에(?) 동물들처럼 노골적으로 길에 소변을 본다든지 똥을 싸서 영역을 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자존심,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역 표시 방법입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있다면 우리 생존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자영업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하는 가게가 Convenience store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가게가 세탁소라고 한다면 서로가 경쟁을 하겠습니까?
가끔 만나더라도 웃으면서 “요즘 가게 잘 되십니까? 힘내십시오.” 서로 격려해주고 잘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사실 특별한 경쟁심도 없습니다.
만약 어느 한 가게가 잘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커다란 심적부담이 없습니다. 자기 영역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가게의 업종과 같은 업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영역에 대한 표시가 더욱 더 확실해지기를 원합니다. 다른 곳이 잘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되는지 모릅니다.
동물의 세계에 있는 양육강식의 논리가 인간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사실은 동물답게 사는 것이지만)-결국 내가 정해놓은 영역을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이 영역은 절대로 하나님도 침범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죄인인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온 죄의 본능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우리가 어릴 때는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부모나 목사의 신앙의 지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불편한지 모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절제해야하고 남들 놀 때에 나는 꿋꿋하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결혼을 하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 조금씩 구축해왔던 자기 영역을 더 확고히 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성장해서 부모라는 영역은 벗어났지만 교회에 가면 목사라는 존재가 자기 영역을 여전히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역을 관여하지 말라고 함부로 대들 수 없는 것이 천국가기위해서는 목사의 말에 고분고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싫어도 이를 악물고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믿고 열심히 목사가 정해준대로 잘 하는데 마음에서는 과연 내가 천국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왜?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의 진실함이 없음을 본인 자신이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목사의 눈을 피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해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목사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부모님 체면, 내 체면 생각해서 하는 시늉이라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진짜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은 목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헨델의 메시야가 귓가에 울려퍼집니다.)
지금까지 비밀로 간직해왔던 나의 영역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숨을 쉬며 살 수 있게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맞습니다. 복음입니다.!! 전에는 교회와 목사의 눈치를 보고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이제는 교회와 목사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여! 당신은 당신 자신을 너무도 모릅니다.
당신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오히려 죄의 죄됨이 더욱 드러난 것 뿐입니다.
다만 숨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목사의 안에서는 벗어났지만 “예수 안”에도 들어올 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어떻게해서 구축해놓은 내 영역인데 그 영역을 포기하고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갑니까?
복음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교회라는 조직과 목사의 영역이 아니라 “예수 안에” 들어옴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목사도 똑같은 짐승이라 자기 영역표시하기에 바쁘기 때문에 남의 영역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여 그를 관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겠다는 심보입니다.
우리의 영역을 간섭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분이 내 영역을 침범한다고 불쾌하게 생각하거나 내 영역을 지키기위해 더욱더 오줌 질질깔기는 냄새나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