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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죽음을 도둑질 하는 예수님자유게시판마태복음

죽음을 도둑질 하는 예수님

이름 : 김대식(IP:125.190.2.61)

죽음을 빼앗는 도둑으로 오신 창조주 예수님

글 43 : 불 속에서만 피어나는 사랑

지난 시간에 설명이 길어진다 싶어서 끊었는데 그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쉽게 말해서

나의 과거와 미래가 있으면 항상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로써 다가옵니다.
과거의 실수를 잊어야만 하는 것도 내 숙제이고
그것을 극복하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나의 숙제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숙제로써 남아있는 과거와 미래를 빼앗아 버리는 도둑놈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지 않으면, 아니 빼앗지 아니하면 늘 불안한 과거와 미래로써
내가 감당해야만 할 것입니다.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귀신들림 이라는 문제를 인간 숙제와 예수님의 숙제로써 아주 잘 대비되었다. 결국 인간의숙제는 딱 하나 자기가 귀신들린자 아님을 고정화 하기 위해 예수님을 귀신들린자로 만드는 일이다. 이게 모든 인간의 과거와 미래를 전부 장악한 사람의 일이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과거와 미래를 빼앗는 도둑이 찾아옴으로
또 빼앗김으로써 비로소 과거와 미래가 날라가버린 자가 바로 성도요
창조주의 피조물인 창조주의 목적성이 담겨진 자입니다.

그 자들이 바로 구약에서 이스라엘인데
이스라엘이란 과거와 미래를 예수님에게 다 빼앗기었다는 뜻에서
육이 끊어진 과거와 미래를 도둑 맞은 자들입니다.

그 의미를 할례라는 의미 속에서 담아서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기업(경제), 남편의 사랑(종교), 백성의 피난처인 섬기는 왕(정치)]문제를
완전히 도둑맞아서 전무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된 자들입니다.

분명 죽은자와 방불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안보이는 고엘이 그들의 아버지 남편 왕으로써 일하심을 똑똑히 보여지도록 내어난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스라엘 이라는 존재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들은 정작 눈에 보이는 형태이지만 그들의 배후의 보호자가 눈에 안 보이는 식으로 숨어서 은폐되어서 일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열심 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그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아 과부 나그네 라는 죽은자와 방불한 자로써 이 세상에 내던져진 모습이다는 겁니다.

그럼 반드시 이런 고아 과부 나그네를 보면 반드시 비방하는 자가 있는데 그 자들이 바로 선악을 아는 함의 자손들입니다. 뱀의 후손입니다.

바로 이 뱀의 후손의 주특기인 선악을 끄집어 낼려면
그들 보다 더 선하고 더 착하라는 말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이 공격하기 좋아하는 더러움 미련함 거지(고아), 저주받은 팔자(과부), 버림받은 떠돌이(나그네)의 모습으로써 그들의 비방거리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비방받는 구경거리가 될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우리 속에 이스라엘 내부에 자리 잡아서
고급스러운 종교를 꾸미고 싶어 하는 겁니다.

논리도 갖추고 이해력이 풍부한 지혜를 갖추고

그래서 샌드위치 작전을 계속 계속 반복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창조이고
창조란 역사 속의 과거에 있었던
과거로 끝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란 묵시로써 늘 매일 매일 나에게 창조를 하기 위해 부수로 부수고 쳐들어 오는
실제적인 상황으로써 다가오시는 겁니다.

그것을 저는 과거와 미래가 짤려서 날라가 버렸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고
또 아이성 전투를 통해서 샌드위치 작전이 바로 창조의 사건으로써 이스라엘이 그 대상에 놓인 겁니다.

좀 더 깊이 가면 아니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아는 사건이 바로
출애굽때에
10가지 재앙으로써 완전 초토화 된 애굽을
주님은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반드시 애굽 군사를 일으켜서 영광 받으시겠다고
뒤 쫏도록 하신 겁니다.
누가요? 파라오 왕이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뒤 쫏도록 힘과 능을 주신 겁니다.
죽기 살기로 달려 듭니다.

자 이제 문제는 이스라엘입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사가 바짝 다가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미래의 꿈도 날라가 버렸고
애굽의 재앙이라는 과거의 경험도 지워진채로 펄펄 살아서 바짝 다가오는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군사들입니다.

동서남북 길이 다 막혀버린 전무합니다.

미래도 의미 없고 과거의 잘남도 소용이 없는 겁니다.

오로지 창조주만이 하실 일만 남은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숙제는 안 보이고 그 속에서도 자기의 숙제가 없다고 원망을 하는 겁니다.

자 이 모습은 마치 다리를 짤라버려서 전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만 하는 자와 같은 원리입니다.

이게 할례입니다. 그리고 신발 벗음입니다.

내 걸음 내가 걷겠다는 것을 단절 시키는 거룩입니다.
거룩이 오면 내 다리는 짤려 버려서 방향성이 빼앗는 자에게 내 목적성이 빼앗김을 당해
질질질 끌려 당하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광야 속이라는 죽음 속에서
또는 우리가 원치 않는 불 속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예비 하신 겁니다.

우리를 불 속에 가면 죽지요 그러나 불 속에서만 산다고 외치시는 분이 예수님인데
불 속에 들어가 보니 그 불 속의 세계에서 바깥 과거에 우리가 있었던 그 세계가
죽음의 세계임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불 바깥이 생명의 세계라고 여겼던 것이
빼앗겨서 짤려 날라가 버린 겁니다.

그래서 미래도 과거도 그런식으로 날라감을 당한 자가
불 속에서 비로소 세계를 제대로 보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불이라고 인간이 지나개나 다 불 붙이면 불이 되는 게 아니라
(꼭 이것을 시비 거는 자들이 있어서 하는 말임, 그것도 성화론자라는 무지 똑똑한 놈들이 더 그런짓을 하고 있음)

여호와의 불, 여호와의 심판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나무 십자가 목걸리 만들어 한 10년 전의 필리핀의 십자가 행진 흉내나
또는 최근에 유행하는 전세계의 십자가에 달리기 페스티발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달릴수 있는 그 십자가 곧 불, 심판인데
그 심판은 정작 우리가 받아야 심판을 대신 감당하고 비로소 피 흘린 자리에서 생명의 꽃이 피어나 사랑의 결실을 맺은 자리인 겁니다.

이것은 재미있게도 기독교 종교꾼들이 잘 알지만 정작 그들이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행함에서 늘 빼버리는 행함입니다. 그 자리에는 죽어도 안 갑니다.

그럼 행함을 주장하지 말아야지요

주님이 우리를 그 속에서 기다리십니다. 생명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미움을 통해서 증거가 되듯이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증거가 됩니다.

그럼 우리는 생명을 어떻게 눈치 채나요?
내 때문에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눈치를 채는 겁니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빼앗아 버리는 자리인 겁니다.
그 나의 죽음을 빼앗는 도둑을 우리는 따라 가야하는 겁니다.
나의 죽음을 빼앗는 자만이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나에게 죽음을 덮치도록 한 마귀는 반대로 생명을 주겠다고 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생명을 준적이 없습니다.

내 죽음을 빼앗을려고 하지 않고

나의 저주와 나의 허물과 나의 고아 됨과 나의 과부 됨과 나의 나그네 됨을
빼앗지 않고 오히려

교회라는 조직 세력을 동원해서
놀려대고 비방하며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만큼 교회 조직이라는 조폭이 그들에게 든든하기에 그 빽만 믿고 까부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나 과거의 교회는 폭력뿐입니다.

겁이나서 폭력을 행사하는 겁니다.

빼앗겨도 상관 없는데 빼앗기기 싫어서 죽여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반대로 빼앗고 다니는 겁니다.

교회야 말로 강도의 소굴입니다.

불안해서 미칩니다. 그래서 무슨 토를 달든지 달아서 빼앗는 도둑질을 하고 있습니다.

단

나의 죽음은 절대로 빼앗지 않습니다.
나의 죄와 저주를 그들을 빼앗는 능력 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는 신앙의 대상이 원래 아니었듯이

제대로 빼앗는 자를 보고 기생 라합은 기다린 겁니다.
과거와 미래를 도둑 맞은 자처럼
오로지 그 여호와가 빨리 자기의 죽음을 빼앗아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겁니다.

향유를 부은 마리아는 제자들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예수님이 자신의 죄와 죽음을 빼앗고 시체될 것을 알고
기념 합니다.
시체에 뿌리는 향유를 지금 살아있는 예수님에게 뿌립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본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정의만을 외칠뿐이지 예수님의 죽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도리어 예수님이 이 여인을 대대로 기념케 하시는 겁니다.
죽음으로서만 만남을 가지겠다는 뜻입니다.

불 속에서만 만남을 가지겠다는 겁니다. 사랑이지요.
사랑 방이 십자가 라는 심판의 불 속에 차려 졌기에
사랑방에서만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는 겁니다.

왜냐 안 타죽거든요

그런데 사랑이 못 믿겨워서 못가고
또 성질부려서 자기 자랑으로 불질러서 거봐 예수님은 거짓말 했잖아 라고
자기의 경험을 퍼트리는 겁니다. 광야에서 늘 이짓만 골라 했습니다.

우리가 1년 동안 공부한 것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1년 동안 단 하나도 안 까먹고 알아도 소용없습니다.
지워버리시는 겁니다.
왜냐 지금 이 순간 사랑으로 오시는 충만한 관계인데
지금 오시는 사랑은 관심 없고
아 1년 동안 공부한 것 안 잊어버려야 할텐데 라고 또 자기 숙제로 남아버리는 자는
백날 공부해도 지금 사랑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을 못 만나는 겁니다.

잊어도 상관 없는 사랑인데
그 만큼 넉넉하게 지금 다가오시는데
우리는 늘 자기 숙제로써 사랑도 숙제로 남아버리는 그 버릇을 멈출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런 나를 미워하는 식으로 다가 오는 겁니다.
사랑하기에 매를 대시고 자녀이기에 때리시는 겁니다.

때린다는 지금 현재의 관심이 관계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맞으면서 눈물 흘리면서 울면서 그 매가 고맙고 감사하고 기쁘기 짝이 없는 겁니다.

그런 간섭이 사랑의 관계성으로 있는 자는
구지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챙기고자 안달 안해도
또 조직을 제대로 갖출려고 안해도

설사 성질에 못 이겨서 눈에 보이는 것을 챙겼다 하더라도
또 성깔상 조직 체제를 제대로 구비했다 손 치더라도 (그래 봤자 어설프지만)

이거 빼앗긴다는 기쁨이 우리 속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사랑만이 든든할 뿐이다 라고 소곤 소곤 귓말로
비밀 스럽게 아무에게도 안 알려주고
우리에게만 알려주신다는 것을

만방에 외치는 겁니다. ( 돌삐 맞아 죽을 일이겠지요 ㅋㅋㅋ )

이것이 우리가 늘 배우고 또 앞으로 배우는
매일 매일 같은 소리이지만 늘 새롭게 들리는

십자가의 사랑의 풍성한 승리입니다.

어떤 죄도
어떤 죽음도
어떤 법도

이 십자가의 사랑을
이길자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빼앗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 참 제대로 우리는 당첨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신이라는 돈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복원으로써 당첨되었다고 그렇게 기뻐하던 자도
다 후패해 집니다.

맞습니다. 진작 후패해 질 것을 우리에게는 미리 앞당겨 보여주시는 사랑의 매로써
다가와 주시고
날로 새로운 영의 세계인 불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주셨습니다.

저들이 생명의 길이다고 하는 길이
바로 지옥의 길이며

저들이 저주의 길이라고 하는 십자가의 길이
바로 생명의 길임을

우리는 십자가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불타는 생생한 지옥을 보게 됩니다.

그 생 지옥에서 이끌어내시고자 불속에 뛰어드신 그 끌어 당겨주신 사랑이 아니었다면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예수님을 돌삐 맞아도 감사하게 여기면서 외치도록 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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