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3: 1 (너는 내 것이라)
사 43: 1 (너는 내 것이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이사야 43장 1절
제목: 너는 내 것이라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이사야-2005/114강-사43장,1,(너는,내것이라)-isa071114.hwp
이근호
07-11-14 20:49
너는 내 것이다
2007년 11월 14일 본문 말씀: 이사야 43:1-3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교회 안 다닌 자들도 상식선에서 익히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과연 천지 창조가 그것을 끝이 난 것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창조가 지속되는 겁니까?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창조 행위를 지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 만사는 자기네들 하기 나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내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심어놓으셨습니다. 이 안식일 계명은 곧 하나님의 창조가 여전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하나님의 노동으로 이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안식일마다 되새겨야 합니다. 안식일날 일절 노동을 쉬므로서 이 세상 유지와 새로움은 순전히 자기네들의 노동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근거해서 가능함을 압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안식일날 병자를 낫게 하니, 안식일에 대해서 곡해하고 있는 율법사들이 가차없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겁니다. 왜 안식일날 일하느냐 하면서 말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안식일날에도 일하시는 그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창조란 여전히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중입니다.
그 창조가 이스라엘 내에서는 구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피조물이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자임을 인정하는 고백이란 다름이 아니라 구원도 하나님의 창조행위로만 성사됨을 고백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자기 사람을 데려가는 식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인간들이 하나님께 찾아가는 식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방식으로 구원하십니다.
천국의 문은 그 분으로만 열립니다. 다른 어떤 사람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그 분이 친히 열어주셔야 열리는 것이 천국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이나 업적을 잔뜩 지고 천국 간다고 나서봤자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그런 것을 아무리 동원해도 천국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서 창조의 행위를 지속하시는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앞장 세워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혜택을 입은 사람의 특징은 그 사람들 안에 반드시 ‘주님의 이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주님의 이름은 자신의 거룩을 그 어떤 경우라도 모독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에스겔 20:9에 보면,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막 건너 직후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오로지 주님의 이름만 극구 찬양을 올렸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 이름에 관심을 갖는 자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금 혼이 나갈 정도로 큰 위기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죽으라고 쫓아오는 판국에 자신들로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던 지경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과 함께 하셨던 주님의 이름께서 그 뒤 따라오던 애굽의 군대를 바다 속에서 몰살시켜주셨습니다.
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 있었던 때는 그 어느 누구도 도와줄 분이 없었던 고아요 과부요 나그네들었습니다. 즉 천대받고 살았던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애굽 나라를 기적같이 탈출하니 어느 누구들 여호와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의 땅에 오래 기거하고 난 이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필요한 존재로 자처하며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여호와 이름을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나 속 알맹이는 이방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칭 더 이상 구질구질한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들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주는 은혜보다 이웃 나라의 세속적 나라 생활상이 더 구미에 당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종교의 풍습이 이스라엘에 범람했습니다. 계급이 생기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 재산을 수탈했습니다. 소위 법에 대해서 아는 자들이 법에 대해서 모르는 자를 등쳐먹어 자기 잇속을 채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6:22-23에 보면,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시편 135:4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따라서 택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주님에게 양도해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6:19-20에 보면,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자신의 거주지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몸이 우리 것인줄 압니다. 즉 우리 이름의 명예를 위한 몸이 내 몸인 줄 오해했습니다. 이 때부터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키려고 하니 매사가 결핍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몸의 원주인에게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 분의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구원자시고 천국문을 친히 열어주실 분입니다. 우리 안에 그 분의 이름이 박혀 있습니다. 이로서 내 몸이 내 것이 되는 시절은 지나겠습니다. 죽으나 사는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내 명예와 위신과 체면과 자존심을 위한 용도로 내 몸을 굴리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