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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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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와의 대화 (KARL BARTH"S TALK TABLE) 3자유게시판[신학]

칼 바르트와의 대화 (KARL BARTH'S TALK TABLE) 3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0)

제2편.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제1권 "하나님의 말씀론"

제 1 회
제 1 부 및 제 2 부

학 생 : 교회가 세계 및 그것의 과학과 철학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왜 교의학은 생산적인 접촉과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까?

바르트 : 학생은 대화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요? 대화는 한 편이 다른 편에게 말할 새롭고 흥미 있는 것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 때에만 대화는 사건이 되지요. 우리는 참여적이고 본래적인 것, 신비적인 요소를 지닌 것을 말해야 합니다. 교회의 말은 세계에게 흐리멍텅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생소하게 들려요. 교회의 언어는 그 자체의 전제를 지니고 있지요. 복음은 기쁜 소식이고, 알려지지 않은 소식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복음과 충돌하는 때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항시 소식이 되며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지요. 세속주의적인 교회는 평화스럽지만, 세계에서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어요. 교회는 자기의 전제들을 해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의학이 필요한 것이지요. 철학자들도 자신이 반(反)철학자인 신학자가 양보하는 것에 경청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의 종을 울릴 때 철학자들은 경청할 거예요. 지난 2세기 동안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비겁했어요. 따라서 철학자들이 그들을 멸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지요. 신학자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우리는 철학자들의 전제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저서를 읽을 수 있어요. 또한 그래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존경심을 가지고 경청할 수 있어요. 나는 훌륭한 철학자에 대하여 최고의 존경을 표합니다. 우리는 철학과 과학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신학자로서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 겁니다.

학 생 : 교수님은 28페이지에서 카알 하임(Karl Heim)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셨습니다. "기독교 철학에게는 소극적인 과제만 주어진다. 그것은 인간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것은 인간이 순간마다 자기에게 새롭게 대면하는 영원의 문제에 직면하여 안전한 위치가 유보되어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취하는 모든 일이 불가능함을 솔직하게 폭로해야 한다." 이것이 철학과 과학에 대한 신학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 답이 될 수 없겠습니까?

바르트 : 카알 하임은 신학이 철학과 과학에게 그들의 한계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였어요. 신학자들은 세속주의자를 함께 끝까지 파고 들어가 그들에게 그들의 과오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신학자는 문제를 개방하는데 그쳐야 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이 아니라 소극적인 접근이지요. 나는 이러한 절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그것이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과학과 철학의 한계와 전선이 항시 유동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가 우리의 사고의 종국에서 항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전제는 진정한 것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 그것은 악마일지도 모르지요.

학 생 : 신학자는 철학을 심각하게 취급할 수 있습니까 ?

바르트 :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할 일은 아니에요. 그것은 논리의 체계로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형이상학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철학의 기능은 정직한 철학사를 제시하는 것, 즉 인간이 생각해온 바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 자신은 생각합니다. 철학은 항시 그것이 궁극적 문제에 답변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여러 시대를 걸친 다양한 인간의 사상을 폭 넓게 묘사해야 합니다.

학 생 : 교수님의 신학은 일종의 새로운 신비주의라는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교수님께서는 성서를 나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드는 것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이 일을 계속 하시리라고 신뢰할 수 있습니까?

바르트 : 만일 성령을 신뢰할 수 없다면, 성령의 개념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어요. 진정한 지속성 곧 하나님의 행위의 지속성이 있다는 말이지요.

제 2 회
제 2 부 제 1 절, pp . 51 - 67

학 생 : 사회악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바르트 : 만일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라는 것이 있다면, 따라서 설교가 선포에 가장 으뜸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죄가 사회질서에 혼합되어 있으므로 설교는 사회적 상황에 대하여 언급해야 합니다. 복음은 인간생활 속으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행동은 말씀의 선포와 분리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선포의 일부분이어야 해요. 사회활동은 교회의 사업으로 머물러야 하고 특수한 정당, 세계관 등과 혼합되거나 동일시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확실히 기독교인은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절(節)에서 교회의 선포에 관심을 쏟고 있어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동일한 사실이라는 겁니다.

학 생 : 교회는 예술, 문학, 연극 등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됩니까? 이것들은 선포로 간주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선전에 불과합니까?

바르트 : 우리는 성령께서 기이한 방법으로 역사할 수 있음을 의심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나 극장의 과제가 곧 교회의 교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교회더러 극장의 역할을 하라는 위임이 어디 있어요? 나는 훌륭한 기독교인 저술가들, 화가들, 연기자들 및 음악가들이 있다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나는 이 기독교인들이 매우 유능하며 그들의 활동으로써 그리스도의 훌륭한 증인이 된다고 믿어요. - 기독교 노조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과제를 완수하지 못합니다.

학 생 : 신약성서의 didache(교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didache와 kerygma(설교)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바르트 : didache는 "교시(敎示)"로서 합리적인 반성 및 인간의 당위적인 행위에 관한 조언을 받는 교육이라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어떤 기존 권위와 관계되지요. 예수 시대의 교사는 구약의 율법과 예언자들을 설명할 수 있었어요. 신약성서의 교사는 참회를 촉구합니다. 그는 반성을 요청하고 할 일을 일러주지요. 이러한 교훈은 설교는 아니지만, 성서 해설이 참회에 대한 요청을 제외할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kerygma는 didache 없이 존재할 수 없지요. 교회에서의 젊은이 교육은 특히 현대에 있어서 극히 필요합니다. 그들은 성서와 기독교 교리를 배워야 해요. 자기들의 교리적 입장을 모르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은 실로 가련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어린이들은 무엇을 배우고자 합니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 현대에서 절대로 위험스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교육을 엄격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로마 카톨릭 교인들은 자녀들에 대한교육 방법을 주지하고 있고 또한 그들은 모든 분야에서 앞서고 있지요. 앞으로 그들의 선전은 증대할 겁니다. 우리 개신교도들은 "신앙" 과 "사랑" 뿐만 아니라 우리의 "두뇌들"을 활용해야 할 거예요.

학 생 : 교수님께서는 주일마다 성만찬을 집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바르트 : 네, 그렇지요. 그것은 모든 예배의 극치이어야 합니다. 칼빈은 주일마다 성만찬을 베풀도록 제네바 정부에게 요청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어요. 이것이 개혁교회에 있어서 성만찬을 드물게 가지는 전통을 만들었어요.

학 생 : 그러나 만일 주일마다 성만찬을 베푼다면 설교는 20분 정도로 축소시켜야하지 않겠습니까 ?

바르트 : 그렇게 되면 지나치게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되겠지요. 우리는 설교의 시간을 줄여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돼야 할겁니다. 설교는 30분 이하이어서는 안되겠지요. 30분에서 45분 사이가 좋지 않을까 해요.

학 생 : 성례적 영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까 ?

바르트 : 우리가 설교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 신부가 "변질"(transubstantiation, 성만찬을 베풀 때 떡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뜻 - 역자주)을 축하하는 것과 꼭 같아요.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교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미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보다 더 큰 의무를 걸머지고 있어요. 로마 교회에서는 예전이 중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요. 그러나 개신교의 구체적인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요?

학 생 : 교수님께서는 일부 성공회 교인들이 날마다 예문만을 가지고 성만찬을 베푸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바르트 :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이지요. 성만찬의 의미는 우리가 아버지의 가족으로 함께 모인다는 것이에요. 개인적인 성만찬(self-communion)이라는 것은 없어요. 그러한 개념은 신비적이고 괴상하며 이교적인 것입니다. 어쩌면 제 2세기의 기독교로 돌아가는 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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