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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10:34-39 (전도자의 세상관)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10:34-39 (전도자의 세상관)

이름 : 이근호(IP:)

전도자의 세상관

200년 9월 7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34-39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하나님 믿다가 기진맥진 하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하나님 믿는 것도 짜증스럽지 않습니까? "다 소용없어, 다 필요없단 말이야"라고 하늘을 향해 고함이라도 치고 싶지 않습니까?

이사야 40:28-31에 보면,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조차 우리가 대하다보면, 짜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은 좋겠네 힘이 펄펄나니. 그러나 나는 그럴 자신 없소이다"라고 퉁명스럽게 외면하고 싶지요. 그러니까 힘내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조차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처럼 심적으로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힘 내기 위한 그 말씀조차 지키려면 또 우리는 얼마나 큰 힘을 부어주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거추장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 이럴 때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는 이점을 아셔야 합니다. 말씀이란 우리에게 힘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있는 힘도 빼기 위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힘이 빠지지 않는 상태에서 성경 말씀을 지키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자꾸만 위선의 껍데기만 더 두꺼워 질 뿐입니다. 오늘 본문 직전의 말씀인 3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에 비추어서 천국가려고 하는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예수님은 인정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 즉 34-35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인하고 믿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은 전혀 사람들의 원치 않는 일을 개시하십니다. 단란한 가족을 막무가내로 부수려 듭니다. 과연 이래도 끝까지 예수님을 시인하시렵니까?

사랑하는 가족들이 해체당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될 수 있는한 뭉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이처럼 뭉쳐진 자신들의 집단을 예수님께서 호응해주시는 좋은 예수님이라는 선입견 하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고자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모든 행위가 이것과 반대로 나가신다면 그래야 예수님을 시인하시렵니까? 사람들의 삶은 타인과의 결합력으로 판가름 난다고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행복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결속력에 비례한다고 알고들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조용히 오셔서 조용스레 하늘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친히 칼을 들고 모든 인간 조직에 대해서 절단하시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나와야 합니까?

우리들 생각 같으면, 같은 내용이라도 좋게 좋게 달래서 보다 많은 자들이 그 좋다는 천국에서 살게 되면 얼마나 바람직한 결과냐고 볼 것입니다. 사람을 좋게한다는 말은,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조립해 놓은 많은 조직과 가정을 그대로 긍정적으로 봐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런 식의 활동과 전적으로 반대가 되는 행동으로 나타나시는 걸까요? 그것은 인간의 모든 조직들이 다 '잘못된 만남'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조직들은 인간들의 서로의 호응도에 의해서 뭉쳐진 조직이기에 인간이 부정하는 예수님 입장에서는 파고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가 솔직히 이야기한다며, 저에게 넌지시 자신의 속 뜻을 펼쳐 보였습니다. "이 목사는 십자가에 의해 얻어진 영생을 믿기에 좋겠지만, 나로서는 영생이 별로 좋은 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미진한 기쁨을 보충하기 위해서도 돈을 채워야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목사의 고백이 오늘날 교인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말이라고 봐도 괜찮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 믿는 것이 짜증나고 싫증나는가요? 그것은 인간들이 원하고 있는 힘을 하나님이 제 때 제 때 제공해주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께서 힘을 채워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있는 힘을 톡톡 다 깨뜨려 버리려고 합니다. 가족의 힘은 인간의 생존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 힘마저 깨뜨리는 예수님의 저의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2:46-5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새로운 가족을 염두에 두십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가정은 모두들 예수님만 고대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예수님만 고대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이 파괴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인간을 깨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1장부터 7장까지 5 가지의 제사법이 나와 있습니다. 제사법 하나 하나는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사람을 상대하느냐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번제라는 것은 몽땅 바친다는 뜻이 강합니다.

소제라는 것은, 번제의 일종이지만 제물이 동물이 아니라 곡식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 다음이 속죄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속죄제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씻어주는 장치입니다. 그 다음에는 속건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제사는 이웃 간의 지은 죄를 씻어줍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화목제라는 겁니다. 화목제란, 그 앞서 드린 제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잘 받았다는 마음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 분위기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드릴 때는 속죄제부터 먼저 그리고 그 다음에 소제 드리고 마지막에 화목제를 드립니다. 즉 죄를 씻어낸 몸만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화목제까지 무성히 성사되었다는 말은, 더 이상 제사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사이가 좋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화목제란 마감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끝내기 제사입니다. 더 이상 추가시킬 제사는 없습니다. 화목제 드리면 다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께 기뻐 받으시는 '화목제물'이라고 지칭합니다.

로마서 3:25-28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공된 화목제물로 말미암아 생기고 얻어지는 현상은 곧, 율법의 행위 없이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간주해 주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화목제물이 이처럼 대단한 제사입니다. 즉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 이상 죄인이 못되고 의인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로마서 3:25절 앞에는 무슨 내용이 나오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9-20절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물을 이 땅에 보내시기 전에 율법을 먼저 주셔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의 입을 틀어막으신다는 겁니다. 그 누구도 율법 앞에서 의롭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으로 온 인류가 깨 부수어 지는 거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동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는 입장에서 그들이 그동안 의지해 왔던 모든 관계를 다 때려 부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37-38절에 보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행위는 율법적 행위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말씀을 던지면서 본인은 자꾸 십자가, 즉 화목제물의 제단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데는 인간의 힘이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놀고 계신다고요? 아닙니다! 오늘날 열심히 성도들과 함께 계셔, 성도들이 자력으로 만들고 의지하고자 하는 모든 관계를 부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 관계를 의지하려는 우리들의 태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밉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영생을 얻고자 시도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먼저 가져다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결국 깨어질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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