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교회사 9강 - B
05 교회사 9강 - B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0)
교회사 9강 - B
05,12,10 강의 이근호
◈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에 대해서 !!
아브라함 카이퍼 당시에 자유주의에 의해서 이미 성경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에 있었는데, 사실상 분위기 자체가 거의 90%가 다 저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교회라면 사회에 대해서 이웃사랑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 단정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 모범적으로 사는 것, 빛과 소금이 되는 것,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다른 사람 구제하는 것 등, 이런 것들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사람이 테레사 수녀인데, 그런 일을 하면 칭송과 존경을 받고, 돈이 생기면 교회에 기부해서 착한 일을 계속하고, 그래서 후원금도 많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요즘 그녀가 살아있을 당시에 정작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괴로워했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교회가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이 사회에서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인류의 역사발전과 과학발전을 이루는데 있어서, 모든 기계가 발전하고, 모든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의 절대군주가 없는, 즉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밑에 인간 없다" 라는 민주주의 사회가 형성되고 발전된 상황에서, 거기에다 교회도 가치가 있는 기관으로 함께 넣어주겠다는 분위기였다는 말이다. (어휴, 쪽팔려!)
이러한 분위기에서, 교회주변에 있는 이런 사상에 대해서 교회가 받아들이면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받아들이면 교회가 재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만약 이것에 대해 거부하면 교회자체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아니 교회에 손님이 안 오면 장사를 말아먹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교회가 문 닫을 판이니, 이런 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미국에는 부흥운동이 있어서 그나마 명목을 유지했지만, 하지만 이 부흥운동의 여파로 인하여 성령운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말이 성령운동이지, 그것은 그야말로 자아도취라는 것이다. 도피주의, 염세주의, 허무주의, 내세주의 등등 말이다.
그렇게 되어서 "이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천년왕국 때 한몫 챙긴다" 라는 식의 자기들만의 집단주의를 이루게 되고, 사회적으로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 집단이라고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는, 그러한 위험스러운 집단으로, 소종파 그룹으로 다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교회가 말이다.)
그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 이렇게 과학이 발달되고 산업이 복잡화된 마당에, 일주일만에 천지가 다 생겼다는 것을 어느 병신 바보가 믿겠느냐?" 라는 것이다. 화석이 나오고, 신생대 고생대가 나오는데 말이다. 지구 연대가 46억 년인데, 먼지가 중력에 의해서 돌다가 뭉치가 되고 행성이 되는 과학이 있고, 그리고 로케트가 하늘로 올라가고 검증하고 확인되는 200억 년이나 된 우주의 역사가 과학적으로 모두 정리된 이 판국에, 여전히 창세기 1장에 나오는, "7일만에 '짠' 하고 우주가 창조되었다" 라는 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교회에서, "그래, 진화론도 맞다. 창세기 1장은 과학이 맞고, 창세기 2장과 3장은 우리가 맞다" 라고, 이렇게 부드럽게 타협하자고 나오니까, 듣는 쪽에서는 뭐라고 하겠는가? "야,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나님의 권위로 된 것이 아니래. 모두가 성령의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지고 말이다. 이것도 괜찮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아브라함 카이퍼는 후지카와 큐지 !!
이렇게 교회가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이 세상과 줄타기를 하는 판국에, 그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아브라함 카이퍼가 일반은총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상 줄에서 이미 떨어진 것이 아니던가? 아니면 카이퍼가 무슨 구원투수라도 되나?)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칼빈은 말하기를, 일반은총이 희미하고 그 기능이 떨어지는 계시이기 때문에,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받아들이는 전제적인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초등학교 교과를 미리 당겨 배우는 유치원생의 수준 정도로 보았는데, 일반계시를 말이다.
그러나 카이퍼는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카이퍼의 계획은 무엇인고 하니, 진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 이었는데, 그동안 주권은 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에베소서 5장인데, 즉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방면에 다 하나님의 주권이 있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주권답게 행사하려면 일반은총을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도, 땅을 일구고 가족을 구성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책인데, 이러한 보호책이 지금도 불신자들에게도, 즉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쫙' 깔려있다는 것이다.
◈ 카이퍼 - 그리스도인은 만능 엔터테이너 !!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칼빈 같으면, "일반은총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아, 오직 예수님을 믿어서 특별은총을 받아드려라" 라고 했을 텐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면,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말하기를,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이 모든 방법에서도 이렇게 뛰어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증명해주면 된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다 말이다.
지금 C.C.C.나 일반선교단체에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술까지도 동원하고 별의 별 이상한 쇼를 다한다고들 하는데, 그리고 약 30년 전만 해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발라드 풍의 노래, 즉 복음송을 유행가로 만들어서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축복송), 그야말로 유행가가 아닌가? 이렇게 "유행가 풍으로 가사를 바꾸어 불러도 되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찬송가만 불러야 된다고 하다가, 나중에 보니 이런 유행가 풍이 학생들에게 먹혀 들어가니까, "불러도 된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 하용조 - 쇼(SHOW)를 하라 !!
하용조 목사의 온누리 교회에서 전도란 이름으로 온갖 쇼를 다 벌였는데, 처음에는 이것을 다른 교회에서 엄청 욕했다가 지금은 따라한다고 서로 난리라는 것이다. 학생들을 다 데리고 가니 말이다. 불신자들을 끌고 오려면, 쇼를 벌이든, 무용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들이 오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혀 기독교 냄새가 안 나는 것으로 해놓고, 거기에 복음을 전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교회는 거룩하고, 밖은 거룩하지 않다" 라는 이분법에서, 이제는 교회가 모든 방면에서 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느 부분에서도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방면에 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황우석 교수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배아줄기세포 같은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찬송가를 부르던 유행가를 부르던 모든 것을 기차게 잘해서,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문화 자체를 하나님의 문화로 변혁시켜야 될 사명을 우리 기독교 신자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문화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칼빈의 소명론과도 좀 비슷한데?)
그 이전까지는 보수주의가 방어체제로 급급해하다가, 아브라함 카이퍼에 이르러서는 이젠 방어체제가 아니라, 그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에 말이다.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고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우리가 직접 달려들어서 그것마저 하나님의 은총으로 정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적극적으로 교회가 나서서 문화적 활동을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 머물지만 말고 말이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한 것이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 은총론' 이라는 긴 논문의 특징인데, 다시금 정리하자면, 그에 의하면 인류의 모든 역사는 일반은총의 역사라 보았고, 그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라는 것이다. 모든 방면에서 말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또 이런 이야기도 했는데,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기적을 베풀지 못한 것은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따라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데, 물위를 걷고, 5000명을 먹이고 말이다. 믿음이 없어서 문제이지 믿음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론을 답습해서 그대로(?) 받아들인 곳이 한국의 고신교단인데, (과거에 이근삼 교수를 비롯해서 가르쳤던 교수들이 그 학교 출신들이 많은데, 카이퍼가 몸담았던 네덜란드 화란자유대학교 말이다.)
◈ 과연 성경보다 계시가 넓은가?
그렇다면 아브라함 카이퍼가 주장한 소위 '문화철학'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 사람의 문제점은 바로 창세기 3장부터 나타나는데,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바로 죽지하지 않고 오래 산 이유를 설명하기를, 그 이전까지는, 즉 특별계시가 내려오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을 주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특별계시보다 일반은총이 더 오래 되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제자인 헤르만 바빙크의 계시론도 카이퍼의 계시론과 동일한데, "성경보다 계시가 더 넓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뭐라고 했는가? 성경자체가 곧 계시고, 계시가 곧 성경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바빙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창세기 3장으로 와서, 여기서 문제점이 무엇인가? 과연 아담이 바로 죽지하지 않고 오래 동안 산 것이, 그것이 아담이 계시를 받기 이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었을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담이 죽지 않고 산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배경이었다는 말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라는 의미는, 십자가에 가보아야 비로소 그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밝혀지는데, 목숨이 끊어지는 상태가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저주가 진짜 죽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즉 첫째 사망이 있고, 둘째 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 계시록 21장에 나오는데, 첫째 사망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반면에 또 무엇이 있는고 하니, 첫째 부활이 있고 둘째 부활이 있는데, 첫째 부활은 이 땅에서 비록 육체적 죽음을 맞더라고 예수를 믿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첫째 부활인데, 이렇게 부활로 본다는 것은 "이미 죽었는데 살았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예수님은 살았다고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죽었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울면서 답답해하셨는데, 그리고는 나사로를 죽음에서 끌어내셨는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부활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되고 믿어진다는 것이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하나님의 약속에 무지한 아브라함 카이퍼 !!
지금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께서 약속이라는 입장에서, 모든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서 인류역사를 이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그 관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역사가 역사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양반은 주장하는 것은, 단지 교회가 인기가 없으니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고 호감을 끌 수 있는, 즉 교회가 인기를 끌 수 있는 상품권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조직체로서 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세해서, 여전히 교회로서 존속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그 소관은 주님소관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초대교회 시절의 일곱교회가 역사에서 깡그리 다 사라져버려도, (실제로도 없어져버렸지만) 그러나 일곱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로마서에 나오는 가이오의 집에 과연 몇 명이나 모였겠는가? 그래도 그것을 교회라고 본다는 것이다.
(롬 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교회라는 것은 여러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말이다. 이렇게 교회를 여러 개로 볼 수가 없고, 그러니 구태여 하나로 만들기 위한 에규메니칼 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원래 하나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교회의 머리가 되는 주님이 한 분이기에 머리도 하나고 몸도 하나라는 것이다. 이렇게 몸이 살아있고 머리도 살아 있는데, 그런데 믿음 없는 인간들은 교회가 죽었다고 걱정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 워낙 자유주의가 거세니까, 평소 보수주의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어쩔 줄을 몰라서 헤매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온 대비책이 무엇인고 하니, 나름대로 신조를 만들어서 지적으로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자기편인줄 착각했다는 말이다.
조금 전에 근본주의자들이 5대교리를 만들고 '천년왕국'을 운운하다가 이단이 된 것을 이야기했는데, (순 엉터리 복음의 줄인 말인) 순복음도 삼위일체와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동의를 하는데, 이렇게 칼빈주의 5대교리, 근본주의 5대교리를 일단 동의를 해놓고는, 그 나머지는 대중들의 호감을 끌 수 있는 것으로 모조리 대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대체물들이, 기도하면 병이 낫고, 기도하면 부자가 되고, 기도하면 교회가 부흥되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또 천년왕국을 이야기하고, 목사를 잘 섬겨야 복을 받고, 등등 말이다. (사실상 5대교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5대교리 안에 전혀 들어있지도 않는데, 일단 이 5개만 피하면 이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데, 십일조를 강요하고, 주일성수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돈 되고, 주일성수는 사람들이 모이니 말이다.
◈ 워필드 - 그건 아니야, 정말 아니야 !!
이러한 근본주의에 반대하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B.B. 워필드' 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니다. 문자적 해석은 아니다. 세대주의는 아니다" 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저쪽 자유주의가 성경을 깬다고 해서, 그래서 성경을 방어하기 위해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 챨스 핫지 - 상식적으로 하자 !!
특히 유명한 (프린스턴 신학의 원조격인) '챨스 핫지' 라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서 상식철학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워낙 이 자유주의가 똑똑하니까 말이다. 이런 자유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상식적으로 성경을 보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식(?) 때문에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약속도 전혀 모르는) 그야말로 성경에 무지한 사람도 목사가 될 수 있고, 그러한 무식한 사람도 자신이 직접 성경을 해석하면, 그것이 영적 해석이라는 생각들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가 전 시간에 칼빈주의 5대교리를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은혜, 제한적 구속.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들의 인내 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 5가지를 제 아무리 강조해도 그 근거가 되는 성경자체가 의심되니, 이것도 왕창 주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적 타락도 아니고, 제한적 구속도 아니고, 이제는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것을 선별적으로 채택하면, 그것도 좋은 신앙적인 태도라고 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성경이 과연 과학책인가?
그리고 워필드는 또 주장하기를, 그는 진화론도 받아들였는데, "진화론 자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역사이다" 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을 꺾을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기에 말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보면서 "성경은 과학책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성경도 과학이다" 라는, 그런 워필드의 주장이 옳은가? 아니면 틀리는가? 이것이 보기보다는 조금 어려운 형태의 질문인데, 지금 제가 질문하는 의도를 알겠지요?
예를 들면, 여기 화이트보드가 있고 보드매직이 있는데, 이것은 모나미 회사가 만든 것으로 좋은 제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공장에서 엉터리를 만들어서, 백두산 보드가 최고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나미가 백두산 보드를 보고서,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라고 하면 될 것인데, "우리 모나미보드도 백두산 보드만큼 좋다 말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이야기한 비유(?)가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그렇게 상대방이 만든 것을 보고서 시기하고 질투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니들은 니들이 만든 것을 좋다고 해라. 우리는 우리가 만든 모나미 보드가 최고야" 라고 해버리면 그만인데, 그런데 쓸데없이 "우리가 만든 모나미 보드도 너희들의 백두산 보드만큼이나 좋다고 말해달란 말이야" 라고, 그야말로 간청을 한다는 것이다.
◈ 과학에게 한마디 - 나가 놀아라 !!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니 지구역사가 56억년이 되는데, 그렇게 되니 창세기 1장이 그만 와장창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도 인간이 만든 것으로) "과학자체가 진리가 아니다" 라고 해버리면 될 것인데 말이다. (그 얼마나 확실하고 간단명료한가?)
그런데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어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그 얼마나 과학적인데, 즉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데, 제발 이 과학적인 성경을 믿어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성경을 억지해석하기 시작하는데, 창세기 1장부터 과학적으로 해석하려고 말이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기를, "모든 성경은 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 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창세기 1장부터 요한 계시록 22장까지 모조리 다 예수님과 결부시켜서 해석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 전부를 다 말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런데 성경을 과학적으로 납득되도록 해석을 해버리면, 실컷 성경을 해석해도 거기서 복음이 전혀 안 나온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가?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라고 했는데, 이렇게 성경자체가 저주받게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과연 저주가 누구에게 떨어지는가?
이런 성경말씀을 읽어본 후에 "설마, 저게 나와는 상관이 없겠지" 라고, 자기는 저주에서 멀어질 줄로 착각하지만, 그러나 성경말씀을 복음적으로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성경을 천번 만번을 읽어도 바로 그 저주를 받는 당사자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반복하면, "내가 전한 복음 외에는 저주받는다" 라는 것이, 성경을 백 번 읽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물론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말도 아니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칼빈주의나 근본주의 5대교리를 믿지 않으면 저주받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워필드는 어떻게 했는고 하니, 물론 그 당시 교회가 다 그러했지만, 그 시대에서 살아 남기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고 설득이 되도록, 즉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입맞춤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카이퍼나 바빙크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총신의 차영배 교수는 이 바빙크에게 반해서 난리를 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저주받을 짓을 했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어느 교인이 "목사님, 기도해도 낫지를 않네요" 라고 하면, 목사는 "집사님, 초대교회의 믿음으로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카이퍼나 바빙크의 주장에는 맞겠지만 어디에 어긋나는가? 정작 성경말씀인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을 보면,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교회를 운영하든 목사들이나 그 당시 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을 좋게 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자꾸만 교회를 떠나고 그 비율이 10% 이하로 자꾸 떨어지니, 그래서 미국에서 급하게(?) 부흥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러니 이 부흥운동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런 부흥운동이 아니라, 옛날의 칼빈주의를 우려먹고, 옛날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우려먹고, 칼빈의 5대교리를 우려먹는, "아, 옛날로 돌아가자" 라는 것인데, (자유주의를 주장한다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바로 메이첸에 의해서 다시 세워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라는 것이다.
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가 바로 밴틸 박사인데, 이 밴틸 제자가 총신에서 제가 배웠던 박아론 교수 (박형용 교수의 아들) 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밴틸의 사상을 이렇게 소개했는데, 어떻게 소개했는고 하니? (별들에게 물어봐? 나중에 ...)
아무튼 그 당시 성경을 다 때려부수고, 성경을 옛날 만화책(?) 수준으로 여기는 자유주의에 대항해서 신정통주의가 나왔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칼바르트'와 '부루너' 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는 전부다 자유주의에 물들었는데, 칼바르트는 주장하기를 오직 성경으로만, 즉 복음중심의 오직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외쳤다는 것이다.
◈ 칼 바르트 - '노' 에서 '예스'로 나아가자 !!
이 바르트라는 양반의 주장은 '노' 에서 '예스'로 나아가자는 것인데,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저주했다는 것이 '노'가 되고, 그런데 그 십자가와 부활 위에서 모두에게 다 나오라고 하니까, 그것이 '예스'가 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다 용서해 주겠다" 라는 것이다. 그러한 말을 듣고서도 나오지 않고 남는 놈들은 다 저주받고, 반면에 나온 사람들은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칼 바르트 - 하나님은 예수님만 선택하셨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선택했는데, 그러니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만 나타나지, 다른 곳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 칼 바르트 - 참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절규한 것은, 물론 예수님이 버림받음으로 말미암아서인데,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혼자서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대표자로서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는 다 우상이고, 모든 신들은 다 거짓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결단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노' 이니까 말이다. 즉 모든 것이 다 거부되고 부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는데, 그런데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시키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대표자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용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류의 대표자가 버림을 받고 또한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구원되었다는 말은,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용납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 칼 바르트의 복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신다 !!
이것은 바로 "참된 하나님의 계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변증법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바르트를 변증법적 신학자라고 하는가?) 그래서 바르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새로운 '예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칼 바르트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했고 말이다.
그러므로 "모두 다 버리고, 모두 다 구원한다" 라는 것은, 그것은 인간의 착함과 같은 윤리와 도덕적인 행함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비로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고가르텐과 부루너가 이러한 바르트의 주장에 대해서 동의했는데, 고가르텐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순종할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역사가 일어난다" 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순종할 때 말이다.
여기 부루너라는 사람은 우리 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칼바르트와 함께 의견을 같이 해나가다가 나중에 갈라선 사람인데, 그들이 왜 갈라졌는고 하니까, 바르트는 신자와 불신자는 서로 접촉점이 전혀 없다고 보았는데, 왜냐하면 그 어떤 경우든 간에 모두 우상이기 때문에 말이다. (우상과 무슨 미팅이 가능한가?)
그러나 부루너는 이와 다르게 생각했는데, 자연계시가 있기 때문에 서로가 접촉점이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 카이퍼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부르너는 어디에 관심이 많았는고 하니, 콘스탄틴 노플에서 381년에 제정된 성령론에 대해서, 즉 성령의 활동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다는 것이다.
◈ 신정통주의와 신복음주의 - 성경 비평학의 수용여부 !!
조금 전에 이야기하려다가 말았는데, 이 코넬리우스 밴틸은 메이첸의 제자인데(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밴틸은 신복음주의를 공격했는데, 이것은 신정통주의와는 다르고 말이다. 그 차이점은, 신정통주의는 성경 비평학을 받아들이고, 신복음주의는 성경 비평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 헨리가 여기 신복음주의에 속하고 말이다.
그리고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차이점은, 신복음주의는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인간의 양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근본주의가 바로 이런 점에 대해서, 메이첸과 밴틸이 공격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특히 밴틸이 말이다.
박아론 교수에 의하면, 밴틸의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상대방에서 메이첸을 공격하기를, 메이첸이 "'저것이 장미꽃이다' 라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라고 메이첸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마이크가 있으면, 메이첸과 같은 사람들은 "이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누가 공격하는가? 칼 헨리와 신복음주의자들인데, 그들은 말하기를 "메이첸과 같은 근본주의자들은 마이크를 두고 마이크라고 말하면 거짓이다" 라고 하고,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고 하니, "삼위일체의 의한 마이크라고 해야지 진리라고 믿는다" 라고, 그런 식으로 근본주의자들을 (비꼬아서) 공격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밴틸이 반박하기를, "제 스승인 메이첸이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면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면 진리에 미흡하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기에 장미가 있다면, 그 장미를 장미라 하면 안 되고, 장미가 삼위일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장미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거 밴틸의 주장이 맞나?)
(예를 들어서) 수학에서 "3+5=8" 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수학적으로 맞는가? 분명히 맞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진리가 몇 개인가? 성경인 특별계시라는 진리와 수학의 진리, 이렇게 진리가 두 개가 되는데, 이런 두 개의 진리를 모두 다 인정하자는 것이 바로 신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3+5=8" 라고 아는 지식, 바로 그 지식이 저지른 범죄가 무엇인고 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3+5=8" 라는 것이 진리인지를 다 안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성경을 보느냐는 것이다. 과학이나 인문과학이 발달하면 모두 다 해결되는 것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다니는 중국 요리사가 요리할 때, 즉 간짜장을 만들 때 재료를 무엇으로 넣는가? 이것을 꼭 삼위일체에 집어넣어서 요리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경험상 요리를 하면 되는가? 요리사는 자기 경험으로 만들어도 맛있는 간짜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짜장을 만들 때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짜장도 기도하지 않고 자기 경험만으로 만들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본주의가 주장을 한다고, 그렇게 신복음주의자들이 마구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좀 복잡하나요?)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여기에 대해서 신복음주의들은 주장하기를, 물론 성경도 진리이지만 성경밖에도 진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이것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복음주의자들이 간짜장과 같은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간짜장을 만들라고 비꼬면서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불교신자가 만든 세탁기를 사용하면 안 되고, 여호와 증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면 안 되고, 박태선이 만든 시온표 간장을 먹으면 안 되고, 통일교에서 만든 천연 사이다를 먹으면 안 되고, 집을 계약할 때 몰몬교 교인의 집을 계약하면 안 되고 말이다.
과연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근본주의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팀이 '할렐루야' 축구팀인데, 신자들이 우리 팀에 들어와서만 축구를 하라고 말이다. 반대로 나온 팀이 성남 일화 축구단이고 말이다. 이 일화는 통일교 소유인데, 문선명의 통일교는 어디에 속하는고 하니, 놀랍게도 근본주의에 속한다는 것이다.
◈ 근본주의 특징 - 자기 집단의 절대성을 추구 !!
이러한 근본주의는 자기 집단의 절대성을 추구하는데, 왜냐하면 이 자기 집단의 절대성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일단 그렇게 자기가 그 집단이 되면 몸도 바치고 정성도 바치고, 물질도 바치고 다 바친다는 것이다. 자기 집단이 커지는 것이 곧 신의 계시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즉 "내가 구원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라는 것을 어디서 확인하는고 하면, (성경말씀인가?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흐뭇해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축복의 증거로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중반의 무디, 스펄전, 핫지 등의 인간들이 부흥운동을 하면서 다 써먹은 것인데, 누구를 욕할 문제가 아니라 전부가 다 그랬다는 말이다. 자기들이 교주가 되어서 그렇게 다 자기들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다. (문선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천년왕국적인 환상으로 인해서 이상적인 교회건설이 유행이 되었는데, 그런 세대주의와 근본주의가 그대로 한국에 몽땅 들어왔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이단들, 애천교회의 정명석, 안식교에서 갈라진 것, 권신찬에서 갈라진 박옥수, 이현래, 워치만니, 지방교회 등등, 그들의 특징들 다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자기 집단의 절대성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성교회의 박윤식목사를 욕했다고 이단 연구가인 탁명환을 해코지하고 말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근본주의 5대교리나 칼빈주의 5대교리는 그대로 지키는 척하면서(?), 그것만 살짝 피하고서는, 기도해서 뭐가 되고, 또 기도하면 어떻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의 무속신앙을 그대로 다 집어넣어도, 그래도 그것은 전통신앙이라고 주장하고 말이다. (교리가 무슨 위장막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사를 살피면서 이런 것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학교에서 가르쳐줄리 만무하지만, 자기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말이다.)
◈ 니버 - 왜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비도덕적 인간인가?
신정통주의에 속한 '라인홀드 니버' 라는 사람은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는 책을 쓰면서, "왜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비도덕적 인간인가?" 라고 말이다.
◈ 역사란 죄가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다 !!
그 이유는, 인간은 아가페라는 사랑을 전혀 실천할 수 없고, 오직 '정의'로만 이루어질 뿐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랑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이런 아가페 사랑의 대체물로 나온 것이 바로 '정의' 인데, 인간에게는 오직 정의로움만이 나올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란 죄가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배경에 불구하고 말이다.
니버는 본인이 직접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 목회를 하면서, 진짜 자유주의가 가르치는 대로 목회를 했는데, 그렇게 하면 이상적 공동체가 되는 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면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의 죄는 그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항상 튀어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정통주의의 특징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란 무엇인고 하니, 그들은 역사를 오로지 인간의 죄를 받아내는 하나의 발판 역할밖에 못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즉 아가페의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그래도 이상적인 교회가 된다고 하는 쪽이 어디인가? 그들이 바로 근본주의 쪽의 장로교이고, 감리교이고, 침례교라는 것이다. 이들은 근본주의 5대교리만이 있으면 충분하게 이상적인 교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는 말이다.
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고 하니,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자기 집단의 절대성 추구인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구미를 당겨서, 즉 욕망을 채워서 자기 집단만 채우게 되면, 그렇게 해서 목사가 제대로 밥이나 먹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들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옛날 천주교가 그런 짓을 했듯이 말이다.
다음 마지막 시간에는 쟈크엘룰의 책 '뒤틀려진 기독교'로 교회사의 대미를(?) 장식하겠는데, 통일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합동측, 기장측, 고신측 등, 전부가 다 그렇다는 것이다. 합동측이 스스로 자기들을 향해서 뭐라고 하는가? 소위 장자교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자 말고 장자가 만든 교단인가?)
이러한 인식 자체가 사도바울이 전한 참된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 특정 집단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통이며, 즉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만장일치제로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놓고서 하는 말이, 뭐 치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고? 그리고는 교회의 3대 표징으로 말씀선포와 성례와 치리가 어떠니 저떠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조직신학자인 A. A 핫지(챨스핫지의 아들)가 다 말했던 것이 아니던가?
오늘도 흥분했네.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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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그러면 그들은 성경해석을 교회의 존립을 위해서 한 것인가요?
* 답변 - 그렇지요. 교회사를 통해서 보면 무수한 실험들을 계속해서 해왔는데, 그 어떠한 경우에도 완전한 교회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복음을 가지고 모이게 되면 그것은 하나밖에 없는 모임이 되고, 그것이 그 어디에 있던지 말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몸으로서의 단 하나밖에 없는 교회라는 것이다.
----- 2007,11,04 오후 10시 20분에 마침 -- 아들자랑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