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름 : 신직수(IP:121.183.135.70)
이 글은 호주에서 교회 일을 하게 된 동생 이왕규와의 넷상 대화입니다.
이왕규의 글
바울처럼 '죄'에 대해서 리얼하게 설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 받은 자는, 죄에 대해 리얼한 지식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알게 하시기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성에 대해서, 날마다 죄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성령의 조명과 상관없는 자입니다. 바울이 심심해서이런 글을 썼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고 성도라면 누구나 신음하고 아파하고 힘든 영적 투쟁입니다. 그래서 중요해서 바울은 죄에 대해 매우 비중을 가지고 다루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뻔뻔하게 죄를 사랑하고 죄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자는, 진정한 쪼다'입니다. '등신'입니다. 그러면서 뭔 '하나님의 자녀' 네, '하나님의 사랑'이네 떠들고 감정몰입하며 무아지경에 빠집니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게, 그리고 제일 민감하게 생각하시는게 '죄'인데 말이죠.
그러니 쪼다고 등신이라는 겁니다.
죄는 현실이고삶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떻게 해도 인간이 죄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이 강력한 죄의 권능은 인간을 엄청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6장에서 제시한 것은 죄에 대한 강력한 해결책 보다는, 이 '죄'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제발 상황파악 좀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죄를 좀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죄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10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그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지만, 사역의 내용은 결국 죄에 대해 죽으신 것입니다. 실질적인 사역의 내용은 결국 '죄'에 대한 것입니다.
하두 인간들이 죄에 대해 개념없고, 죄를 사랑하니, 또 죄에 대한 횟수가 폭발적으로 삶속에서 증가하니, 어떻게 해야 이것을 막을 수 있냐 이거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간들이 죄책들을 다 어떻게 형벌로 댓가를 지불하냐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이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인간이 지었고 짓고 있고 지을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을 통해단 번에 완펀치로 끝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완판치 죽음이고, 다시 사심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생명이시기 때문에, 다시 사셔야지 하나님의 의도에 맞기 때문에 사신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될 수 있는 것은,죄에 대한 형벌에서의 죽음이지, 죄의 습성과 본질에 대한 죽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우리들의 죄책에 대한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셔도인간은 여전히 죄를 짓는 것입니다.
12절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육체라 할지라도 죄책을 다 없이 해주신 주님 생각해서 자꾸 죄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죄책을 없이해 주심과 인간의 신분을 바꿔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몸뚱아리 즐겁게 하면서 살던 거 다 때려 치우고 신분 바꿔주신대로 죄짓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13절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죄가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해서 죽은 것입니다. 인간이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죄에 종노릇하면 되겠습니까? 이제 예수님이 우리를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신분변화시켜 주셨으면, 의도적으로여태까지 신나게 죄 안에서 살았던 것같이 신나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육체를 쳐서 죄를 짓지 못하게 좀 생각도 하고 살고, 우리를 열심히 도우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라는 것입니다.
이게 죄인 줄 알면서도 죄짓던 행위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게 죄인지도 몰랐다면 이게 죄인줄 성령의 조명과 말씀의 조명아래 좀 알라는 것입니다.
14절 왜냐면, 이제는 우리는 은혜의 지배를 받고 살 수 있는종족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6장은 죄에 대해서 분위기 파악하고, 이제 죄를 없이 해주신 하나님의 새로운 시스템(예수그리스도의 속죄 시스템으로 인한 신분과 상황변화)에 대해 분위기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로마서 6장을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 6장을 모르면, 지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구원받았다고, 자기는 하나님 자녀라고 떠들면서도 지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짜가들은 나중에 다 태워집니다. 진짜들은 하나님께서 다 돌이키십니다. 벼락으로 돌이키시든, 피똥싸게 해서 돌이키시든,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다 돌이키십니다.
자기가 하나님 자녀라고 하면서도 죄에 대한 파괴력과 자신이 하나님보다 죄를 더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자기의 육체는 죄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안에 성령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죄를 증오하고 있는 이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날마다 전쟁하고 있지 않으면 성도가 아닙니다.
날마다 좋습니까? 예수님 믿어서 좋습니까? 평안합니까? 교회생활하니까 좋습니까? 사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데 교회오면 사람들이 다 좋은 것 같고,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까? 찬송하면 기분 좋습니까?
여러분의 감정과 기분에 만족을 줍니까? 죄를 배제하고 죄의 전쟁과 고통,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소망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고는 위와 같은 행위는 누가 뭐래도 '뻘짓'입니다. 백날 저래도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저런 걸 우리는 생명없는 '종교행위'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7장8장에서 소개하는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고 이로 인한 소망, 그럼에도 불구한 연약한 인간의 육체의 미묘함을 알지 못하면, 평생 뻘짓만 하다 말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소망이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만 붙들어야 된다는 것인데, 그래서 로마서 8장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강력한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것인데,
이모든 것은 죄를 알고 실질적으로 죄에 대한 리얼한 인식이 있어야 은혜에 대해 더욱 리얼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죄도 모르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아냐는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는데 예수님의 사역이 얼마나 강력한지 어떻게 아냐는 것입니다.
죄는 누가 뭐래도 죄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숨켜도 숨겨지지 않습니다. 죄로 신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구원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죄성에 죄를 즐기는육체에 대해 저항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성도의 삶은 죄로 힘들지만,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계시기 친밀하게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힘들어도 예수님 때문에 사는 인생, 이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아멘-
저의 덧글
먼가 이상한데, 바울이 롬7장에서 속 사람은 십자가의 법을 즐거웠지만 다른 법이 속 사람의 법과 싸워 자신을 죄의 법이 사로잡았다는 것을 보았다며 그래서 곤고한 사람이고 그래서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긴다. 여기서 바울도 애통탄식하며 죄와 싸우는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있고 그래서 성도는 이 노력이라는 것을 평생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결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최종 말하고 있는데 십자가 때문에 성도는 죄가 없는 존재인데, 자신이 곤고하고 탄식하는 이유는 성경(예수님)이 바울포함해 인간들을 죄 속에 가둬 탈출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즉 예수님 때문에 내가 탄식하고 있지만 해결책은 당연히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시작하셨기에 예수님이 끝내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노력 공로가 있기에 성도가 아니라 이런 건 개 돼지들도 하는 거고(쫌 차이가 있다. 개 돼지들은 율법행위적이고 성도는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 회개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예수 십자가에 대한 믿음으로만 사는 자가 성도다.
이왕규의 덧글
그게 그 소리 같고, 또,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성도는 현재를 살고 있고, 탈출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성도가 현재를 개념없이 막 사는게 맞는 건 아니잖아. 물론 성도답게 살려는게 자기를 드러내고 사람들한테 보이려는 짝퉁도 있지만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애통탄식하는데 애통탄식은 노력한다(노력된다)는 증거라고 생각함. 그리고 예수님이 인간들을 죄 속에 가둬 탈출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표현은 좀 쎄게 말하면 죄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허우적대게 밀어넣는다는 소린데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는 성경구절이 어디에 있는지 좀 찾아서 알려줘. 그건 근호형 신학의 극단이라고 생각함. 일부러 가둬놓고, 힘들게 하고, 결국 예수님 자신 의지하게 하고, 뭐하는겨 그게 장난해? 이 사실이 맞다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 아니라 죄의 근원이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게 아니라 사랑하시는게 되지. 감춰줘 있는 건 감춰진대로 열려있는 건 열려있는대로 아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함.
저의 답변 글.
예수님이 인간덜을 죄 안에 가두었다는 가장 강력한 말씀은 창3장이다. 2:17절에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는 말씀인데, 아담이 죄를 지은 후 하나님의 판결이 나온다.
먼저 3:15절에 보면,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하고, 아담에게 "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 한다.
18절 19절을 보면 "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 라 하고 22절부터 또 보면, "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담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 하니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 " 한다.
무슨 말인가 노동으로 땀을 흘려야 니가 먹을 것이란 말씀대로 인간들은 빼앗고 죽이는 전쟁을 하게 되고 선악을 알게 되므로 각종 욕망에 휩쓸려 각종 범죄를 짓게 되면서 기술이 발달되어 각종 별 짓을 다하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결정적으로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과 영생할까하여 아담을 에덴에서 내어 보내고 동편에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는 하나님 본인이 말씀. 이 정도면 하나님이 인간을 죄 속에 가둬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설득력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십자가 능력의 적용인데, 십자가에서 인간 모둘 죽이심이 적용되어 아담이 선악과 사건 땜시 정녕 죽게 된 것이다. 죽었다는 말이 무엇인가 인간들은 절대 영생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영생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그 죽음(죄 속)에서 어떻게 탈주 할 수 있겠는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죄만 짓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노력한다고 죄 안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노력이 가상하다. 오히려 죄 안지으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생각하며 그 노력하려는 본심 자체가 죄의 권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애통하고 탄식하는 맘은 성도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주신 마음이다. 예수님의 작품인 것이다. 이것을 성도 본인의 노력이라 한다면 아니되지.. 예수님의 비밀스런 지혜인데..
갈3:22절에 보면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하심이니라."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로마서는 어떠한가? 3:19절,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절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니라." 8:3절, "육신에 죄를 정하사" 20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모든 권을 받으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고 하시고자 하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는 분이다.
또한 예수님은 스스로 언약을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지시러 스스로 오셨으며 십자가에 스스로 올라가셔 스스로 죽으셨다. 또한 십자가에서 모든 만물을 아작내셔서 마귀에서부터 아담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의 모든 인간을 싸그리 죽이신 무서운 분이시다. 저주로 심판을 하시는 분이다. 선하신 분이신데 말이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는 분이시며 자신이 원하시는데로 우주 역사가 흘러가도록 하시는 분인 것이다. 그 분이 바로 만유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롬9:21절.
이근호(IP:117.♡.137.199)
07-11-01 08:16
인간은 '죽음' 안에 갇혀있습니다. 뭘 해도 죽음 안에서 움직이는 겁니다. 따라서 죽음을 반기는 사람 같으면, 평소에도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나, 혹은 어서 못 죽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나, 죽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같으면 이미 자력으로 그 죽음의 테두리를 못 벗어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러저런 핑계를 대면서 어쨌든지 더 살아남아려고 하는 자들은 (모든 인간 전부 다) 자기를 살리기 위한 거짓 예수, 거짓 하나님을 동원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즉 "나는 더 살아야 해. 왜냐하면 나는 제법 하나님과 진리와 성경과 예수님에 뜻에 대해서 잘 아는 자니까"라는 식으로 살아버티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도무지 '자기 부인'이 안되는 겁니다. '자기 부인'이라는 형식이 결국 '자기 긍정'을 위한 중간 절차로 작용할 뿐입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하루에서 수백번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압니다.
신직수(IP:121.♡.135.70)
07-11-02 07:22
죽이심이 평생 죄만 지어 죽음에 갇혀 있게 된다는 말씀이군요? 인간이 모두 죽기에 죄에 갇힌다는 말이 결국죽음에 갇힌다는 말로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