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교회사 6강 - B
05 교회사 6강 - B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5)
교회사 6강 - B
05,11,19 강의 이근호
◈ 이단이 없고, 성도가 없던 시대는 없었다 !!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천주교도 다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것을 오늘 시작부분에서 이야기했는데, 이게 정치적 문제라는 것이다. 옳은 소리를 한다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옳은 말을 하던 하지 않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돈에 대해서 시비를 걸면 무조건 이단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이던 이단이 아닌 시대가 없었고, 어느 시대이던 성도가 없던 시대는 없다는 것이다. 성도가 되는 것을 다음 시대에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문제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성도라고 아들을 성도로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워서 복음을 알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거짓말인데, 교회사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교회가 복음적이라고 교회사에서는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주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 강의하겠지만, 한국에 있는 여러 이단들에 대해서 말이다. 여호와 증인, 안식교, 오순절 이단 등, 그들의 공통점은 선배들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후배들이 장사를 해먹는다는 것이다.
좀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가 복음을 안다고 하니까, 그 부교역자들도 따라서 자기들도 복음을 안다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근호 목사를 따라는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별들에게 물어봐?) 이근호 목사가 복음을 안다고 하지만 모를 수가 있고, 오히려 김 집사님이 혼자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목사가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데,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목사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각자에게 일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루터가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영주들은 루터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루터를 숨겨놓고는 루터 사상을 온 독일전역에 퍼뜨려 버리는데, "교황반대!" 라는 구호와 함께 말이다. 물론 루터가 교황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영주들은 교황에게 세금을 내기 싫어서 루터를 지지했던 것이다. (同床異夢이라고나 할까?)
◈ 어느 시대에도 경건한 교회는 없다 !!
이제는 황제 대신에 영주가 교회의 사제를 임명하는데, 교회가 투표해서 목사를 뽑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영주가 자기 친인척들을 교회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사제 위에 주교가 있는데, (주교는 교황의 간섭을 받고 말이다.) 그러니 영주는 루터의 이름을 이용해서 "교황은 물러가라" 라고 했고, 그래서 교황의 간섭철폐 이후에 모든 십일조는 교황이 아니라 영주에게 바쳐야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다 자기편이니 말이다.
◈ 종교개혁에 대한 환상을 깨자 !!
그러니 종교개혁이라고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자꾸만 오해하기를 교회가 건전하고 경건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순간에도 경건한 교회는 없다는 것이다. 첫째 시간에 말했는데, "복음으로 구원받지, 어떻게 교회로 구원을 받는가?" 라고 말이다.
제대로 된 교회라면 루터와 칼빈을 자꾸만 울겨먹으면 안 되는데, 성경을 제대로 설교하고 예수님을 바르게 증거하면 되는데, 새삼스럽게 왜 칼빈과 루터를 들먹이고 어거스틴을 들먹이느냐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하면, 어거스틴이 너무나 권위가 있기 때문인데, 그가 니케아 회의 때 삼위일체를 정립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을 언급하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니케아의 삼위일체를 자기들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고, 이렇게 어거스틴과 맞으면 이단이 아니고 틀리면 천주교처럼 이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는 것은 이미 어거스틴이 주장했는데, 이것은 또한 성경에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어거스틴의 말은 인정할지 몰라도, 성경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천주교에서 하는 말이, "우리도 성경을 안다" 라고 할 것이니 말이다.
◈ 어거스틴, 루터와 칼빈은 이용의 대상일 뿐 !!
아무튼 어거스틴을 이용해먹는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왜 어거스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루터와 칼빈을 이용하는데, 사실 이것은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닌데, 그 시대 상황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루터와 칼빈이 대박을 터트리니, 이들을 이용해먹으려는 토지를 가진 지방 영주들이 많았는데, 그리고 도시의 신흥 자본가들이 칼빈의 이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기를 완전히 살려주니 말이다.) 더 이상 교황에게 세금을 낼 필요도 없고 말이다.
◈ 칼빈의 우상화 경향까지 !!
그리고 칼빈의 이론에 동의하는 자라면,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래서 칼빈이 죽은 이후에 칼빈의 이름으로 새로운 집단과 국가가 등장하고, 그렇게 되면 그 집단 밑에 있는 사람들은, 칼빈이 주장한 것을 벗어나면 이단이 된다는 의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그 당시 주인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 당시 종교개혁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주나 자본가들의 잇속을 채우는데 필요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주나 자본가들이 종교개혁을 악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칼빈과 루터도 좀 그런 경향이 있었다는 말이다.)
◈ 칼빈, 루터, 쯔빙글리의 차이점에 대해서 !!
지금부터 칼빈과 루터와 쯔빙글리, 이 세 사람들이 어떤 신학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먼저 루터부터 한번 살펴보자.
루터는 십자가 중심의 신학인데, 십자가 신학이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계시는 오직 십자가로만 제대로 드러난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십자가로 드러나는 이유는, 십자가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죄인이 되기 때문인데, 이렇게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을 요청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루터는 말하기를, "그런데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구원하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요한복음 6장을 두고서 서로 주장하는 대목이 다르다는 것이다. 루터는 46절에 나오는,"예수님이 아니면 아무도 아버지를 알 자가 없다" 라는 것을 강조했고, 칼빈은 65절에, "누구든지 내 아버지께서 오시게 하지 않으면 내게로 올 수 없다" 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요 6: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 칼빈 - 겸손하게 기다리자 !!
◈ 루터 - 기다리기는 뭘 기다려 !!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칼빈은 구원론에 관심이 있는데, "여러분, 구원받고 싶죠. 그런데 인간은 연약해서 스스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오게 하시면 예수님에게로 올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고 거기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데, 사실상 이 갭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도저히 인간이 아버지에게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이론이고, 십자가는 바로 그 갭(폭)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것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주장하기를,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구원해주시면 그때 비로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안 해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억울해할 자격도 전혀 없고 말이다.) 이해가 되는가?
다시 정리하자면, 칼빈은 하나님의 구원중심이고, 루터는 어떻게 구원받는지가 중심인데, (이거 뒤바뀐 것은 아닌지???) 즉 칼빈은 "여러분의 힘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예수님 덕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는 것인데, 즉 "여러분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것이다. 칼빈은 여기에 강조점을 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루터는 무엇인고 하니,"우리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물론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면 구원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루터는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했고, 칼빈은 겸손하게 은혜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구원을 엄청나게 받고 싶지만 우리 힘으로 안 되니 말이다. (겸손하게 기다리면 혹시 누가 아는가 구원해줄지 말이다.)
◈ 쯔빙글리 - 사회봉사를 통해서 !!
어느 것이 더 납득이 되겠는가? 역시 칼빈이란 말이다. "우리는 부족해. 그러니 우리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만 자랑하자" 라는 것이다. 쯔빙글리는 "예수님을 믿었으면 이웃에게 봉사를 해야지" 라는 쪽이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봉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를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 천주교 - 어디서 감히, 까불지마 !!
그러면 천주교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성경을 어느 누가 함부로 해석하는가? 교회에서 지금까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서 연구하고 해석한 것인데, 그래서 성경교리가 확정되었으면 되지. 그 성경해석을 근거로 해서 성만찬, 세례, 형상(아이콘)숭배, 연옥설 등이 나왔는데, 이것이 모두 인간구원을 위해서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데, 이것은 천주교가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지금까지 천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모여서 회의하고 기도하고 연구한 결과로 성경을 해석해서 교리가 만들어졌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루터 같은 인간이 나타나서 "믿으면 구원받느니, 혹은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주교의 교리는 그런 어떤 특정한 인간의 교리에 흔들리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쯔빙글리도 칼빈과 마찬가지인데, 천주교의 연옥설이나 마리아 숭배 등을 다 거부하고, 오직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성경에 나오는 것은, 인간은 부족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함으로서 구원을 받고 말이다.
◈ 칼빈, 루터, 쯔빙글리의 예정론에 대해서 !!
그런데 예정론은 좀 다르다는 것이다.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다음 시간에 신조를 다룰 때 이 예정론을 논의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미리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타락 전 예정' 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칼빈의 후손들은 '타락 후 예정론'을 주장하게 되는데,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좀 믿도록 해보자는 욕심(?)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쯔빙글리는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예정하시면 누구든지 다 구원받는다"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예정에 관해서는 인간의 그 어떤 것도 관여하지 못하고, 심지어 이방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더라도 예정된 자라면 (믿어지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좀 심한데?)
앞서 말한바와 같이 칼빈은, "하나님의 예정된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라고 했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된 자는 그 예정됨의 증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과 '성찬식' 이라는 것이다. 참된 성찬식에 참석한다면 그것이 바로 예정된 것의 증거라는 말이다. 루터도 이와 같고 말이다.
그러나 쯔빙글리는 여기에 대해서 반대하는데, 그렇게 말씀과 성찬식으로 예정되었다고 주장해버리면, 말씀과 성찬식이 하나님의 예정을 결정하기 때문에, 교회의 성직자가 그런 기준을 만드는 것이기에, 그것은 또다시 카톨릭으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쯔빙글리의 주장이 말이 되지요?)
실제로 칼빈은 나중에 제네바에서 활동할 때 사람들의 행동일 일일이 심사를 했는데, 도박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한 자들은 성찬식에 참석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신 같은 인간은 구원되기로 예정된 자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되기로 예정된 것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실증적인 현상을 가지고 교회에서 측정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천주교처럼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쯔빙글리의 주장인데, 물론 이때는 아직 칼빈이 등장하기 이전이기에, 루터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예정했으면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루터와 칼빈의 예정론 - 누구 중심인가?
루터와 칼빈의 예정론이 어떻게 다른고 하니, 루터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예정하신다" 라는 것이고,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했기 때문에, 예정된 자는 구원받는다" 라고 하는 것이다. 말이 봄 이해가 되는가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미장원에서 파마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당신, 파마가 참으로 잘 나왔다" 라고 했을 때, 파마를 하러간 사람이 자기가 잘나서, 즉 자기가 머리를 이러이러하게 해달라고 말을 잘해서 그렇다는 것이 칼빈이 주장이고, 반면에 그 어떤 미장원에 갔더니만 파마가 잘나왔다는 것이, (즉 미장원에 초점이 있는 것이) 루터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확정짓기 위한 예정론은 칼빈이 주장한 예정론이고, 그것보다는 누가 예정을 하고, 무엇을 통해서 예정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루터의 예정론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가 어떻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차이점이 미묘하지만, 분명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성례식에 있어서는 분명히 구별이 되는데, 쯔빙글리의 경우는 간단한데, 떡과 잔을 떼고 나누는 것을 일종의 폼(Form)을 잡는 것으로 보았는데, 즉 인간들이 놀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이 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성찬식이 없어도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세례식이 없어도 말이다. 성경이 있는 대로 오직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루터는 주장하기를, 그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신앙으로 보면 주께서 임재하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성례식을 할 때 주님께서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공부한 라트람누스와 비슷하고 말이다.
◈ 칼빈과 루터와 쯔빙글리의 성찬식 개념 !!
* 칼빈 - 성찬식을 하면 성령 안에서 임재하는데, 즉 성찬식을 해도 성령이 오지 않으면 임재하지 않는다. 성찬식이 성령님이 임재하는 요소인지 아닌지는 성령님이 자유롭게 결정하신다.
* 루터 - 성찬식을 할 때마다 영적으로 임한다.
* 쯔빙글리 - 성찬식은 폼이고, 성령님은 임하지 않는다.
(좀 이상한데?) (루터는 카톨릭처럼 몸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재설(consubstantion)이라고 해서, 그래도 떡과 포도주에 임재한다는 것이고, 칼빈이 영적으로 임하는 것이고, 그리고 쯔빙글리가 성찬식을 상징으로 본 것이 아닌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약간 짜증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진짜 십자가의 의미는, 주님의 십자가의 피가 성령을 우리에게 십자가의 능력이 임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찬식이 능력이 있어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닌데, 그런데 칼빈과 루터는 그 어떤 능력이 작용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루터는 인간이 믿음으로 드리는 성찬식에 성령이 임한다고 보았고, 칼빈은 성령이 함께 있는 성찬식은 주님이 임한다고 보았고 말이다. 쯔빙글리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쯔빙글리는 칼빈 이전이기에 루터의 성찬식 개념에 반대한 것인데, 이것 때문에 서로 헤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쯔빙글리는 성찬식을 하나의 상징으로만 보았는데, 그냥 폼을 잡는 것인데,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을 기념하고 회상하는 것뿐이지, 즉 개인의 순전히 심리적인 것인데, 그러니 실제로 성령이 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왜 그 당시 성찬식 논쟁이 중요했는가?
그렇다면 왜 이러한 성찬식 논쟁이 그 당시에 그렇게 중요했는가? 그 당시 민중들이 교회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파문을 당한다고 배웠기 때문인데, 즉 죄 있는 자는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의 총두목 격인 교황으로부터 "저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악마에 속한 자이다" 라로 인정되고, 그렇게 되면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게 되는데, 즉 누군가가 재산을 빼앗고 목숨을 해쳐도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 교회가 베푸는 성찬식 참여는 곧 구원의 증표 !!
그러니 그 당시 민중들에게는 교회 교리보다도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정식 사제가 집행하는 성만찬에 참석하게 되면, 이것은 미사이고, 이 미사는 일종의 제사인데, 제사의 현장에 예수님이 실제로 오시니, (왜 우리나라에도 제사를 드리면 자기 조상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떡과 잔을 떼고 마시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 의하면, 그렇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 성도이고, 그렇게 되면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국가의 보호와 여러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쟈크엘룰이 말한 바와 같이, 기독교가 국교가 된 후에는 사실상 기독교는 이미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살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교회의 미사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쯔빙글리처럼 주장해버리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자들이 생기게 될 것이고, 성만찬에 참석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데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이방인들과 같이 개돼지로 취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은 기존의 민중들로 하여금,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다. 당신은 성도가 맞습니다" 라고 하려면, (눈에 보이는) 보다 확실한 증거물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성만찬을 계속해서 붙들어 놓아야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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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찬논쟁 ※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혈육이 될 수 있는가, 된다면 어떤 상태로 그 안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은, 9세기에 파스카시우스 대 라트람누스의 논쟁에서 비롯되어, 11세기에는 에우제비우스 브루노 대 투르의 베렌가리우스가 이 문제로 논쟁하였다. 라트람누스와 베렌가리우스는 성찬의식(새크러먼트)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와 역사상의 그리스도는 그 신체상의 동일성이 없다고 하였는데, 양쪽 모두 상징적 다이너미즘에 젖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엄격히 말하면 라트람누스는 영적 임재설(靈的臨在說)이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제4회 라테란공의회(1215)에서 이들 성체에 관한 여러 주장을 총합하여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각각 전질변화(全質變化)할 수 있으므로 빵과 포도주는 가견적 형색(可見的形色:偶有性)의 견지에서 볼 때 성체(聖體)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후 중세 말기에는 J.위클리프와 J.후스가 다시 베렌가리우스의 상징론을 제창하고 나섰다. 그러나 가장 치열했던 논쟁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인 M.루터와 H.츠빙글리 사이에 있었던 것이 유명하다. 츠빙글리는 성체의 상징적·유심론적(唯心論的) 입장을 취하여 그리스도의 신체가 편재(遍在)한다는, 말하자면 성찬에 있어서의 현재성을 부정하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사(犧牲死)를 기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J.칼뱅도 신체의 편재성(遍在性)을 부정하고, 선별된 자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루터와 P.멜란히톤은 이들의 주장에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신체의 편재성을 주장하였으나,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전질변화'에는 반대하고 '실체공존설'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실체와 빵은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신체는 지금도 역시 빵의 실체 안에 현존하고 있어 빵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도 받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근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성찬은 단순한 감사 또는 신앙고백의 의식(儀式)으로 되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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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세례 - 니들이 부모 마음을 알어 !!
그리고 유아세례의 문제는, 루터와 칼빈과 쯔빙글리가 모두 한 목소리를 냈는데, 모두다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재세례파는 반대를 했는데, "아니, 유아가 무엇을 아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도대체 그런 어린아이가 무엇을 아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세례는 무효이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세례파가 이렇게 나오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그 당시에는 유아는 부모의 소유인데, 물론 요즘도 그렇지만, 만약에 이렇게 재세례파처럼 유아세례를 거부해버리면, 그 당시는 페스트 같은 것이 유행하면 감당을 못했는데, 실제로 1500년대에 유행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세례도 받지 못하고 어릴 때 유아가 죽으면 부모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이것도 죄로 인해 죽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유아들의 연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림부스(limbus)' 라고 유아들이 죽어서 모여있는 연옥이라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러니 천주교를 반대하려면 연옥설을 반대해야 되고, 다른 것들도 다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대해야만 종교개혁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천주교의 교리를 두고 "이것은 맞고, 저것은 모르겠고(?), 요것은 틀리고" 라는 식으로 하면 자기편으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다시 천주교에 사람들을 많이 빼앗기에 되는데, 독일은 70% 정도가 개신교이고, 프랑스는 거의 반반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빼앗겼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혁주의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죽었을 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아세례를 인정했는데, 부모의 믿음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즉 부모를 잘 만나서 아이들이 천국에 간다는 교리를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아이들을 생각해서 말이다.
지금도 개신교에서도 유아세례를 주는데, 이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보면 다 나오는데, 분명히 유아세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십일조는 없고 말이다. 자기들이 (과거 교황에게) 이 십일조 때문에 혼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기에 말이다. 안식교에도 유아세례가 있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유아세례가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가? 분명히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유아세례를 베풀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그런 이야기는 결혼을 하지 않은 철없는 처녀총각들이 하는 것이고, 막상 결혼을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는지 말이다.
"목사님, 성경대로 합시다" 라고 막상 말은 하겠지만,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았는데 유아세례를 받지 못하고 아이가 죽었다면, 부모는 그 아이를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마저도 없다면 그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정하냐는 것이다. 그래놓고도 부모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쉽게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어린아이들을 위한 연옥이라도 만들어놓아야만, "야야, 좋은데 가라. 내가 교회에 땅이라도 좀 내놓을 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비정한 부모라는 소리를 듣겠는가? (그러니 성경에 없다고 해서 함부로 없애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초점 - 민중들이 어떤 종교를 원하는가?
개혁주의가 성경대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주장을 해놓고는, 그러나 실제로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 아무리 개혁주의라고 해도, 나중에는 결국 "민중들이 어떤 종교를 원하는가?" 라는 쪽으로 '획' 하고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억눌린 사람들이 원하는 종교 쪽으로 말이다.
루터는 십자가 신학을 주장하면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는데, 특히 그가 강조한 것은, "구원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율법으로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우리에게 준 이유는, 우리 인간들의 죄를 더욱더 더하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여기에서 믿음이란 것이,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믿음이고, 그것이 방편이 되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만인 제사장설' 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결정적인데, 하지만 칼빈은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이 천주교에서 사람을 빼낼 때 (비겁하게) 이것을 써먹었는데, 특히 교황 밑에 있는 사제들을 데리고 나올 때는 말이다. 물론 세 사람이 교황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반대했는데, 적그리스도 취급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은 이렇게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목사 밑에 두어버리는데, 그래서 "목사→장로→일반교인" 라고, 교회를 이런 구조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장로들은 예배에 불참석한 자들을 색출하러 집집마다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찾아서 징벌하려고 말이다. (어떤 신학교에서는 경건회에 참석하지 않는 놈들을 교수가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서 이상적인 교회가 되고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신정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렇게 자기가 아는 목사들을 데려다가 이렇게 신정정치를 펼쳤는데, 물론 처음엔 호응을 받았지만, 결국 쫓겨난다는 것이다.
◈ 칼빈 - 교회 없는 구원은 없다 !!
이런 것을 보면, 칼빈 쪽의 경우에는 "예정되었습니다" 라고 말은 해놓고는, 사실상 그 심사를 교회의 목사가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인 제사장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목사가 다 알아서 하니 말이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 없는 구원은 없다" 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렇게 주장함으로 말미암아서, 국가질서를 교회를 중심으로 다시 되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죄의 영토' 라고 했는데, 칼빈이 왜 그렇게 했는고 하니, 그 시대 자체가 막 풀어놓으면 개망나니가 다 되어버리는 그런 때였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한동안 누군가에 지시와 명령을 받다가 그것이 풀려버리면, 개인의 야망과 욕심과 욕망과 육체적인 쾌락이 마구 정당화되어서 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이것을 얼른 수습을 해서 묶어놓아야 하는데, 이렇게 묶어놓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곧 '신조' 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와는 다른 개혁주의 신조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물론 둘 다 묶어놓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고 말이다.
◈ 루터 -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 !!
그러나 루터는 이렇게 묶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만인 제사장입니다" 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루터의 사상은 이렇게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했는데, 인간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얽매이는 노예의 자유인데, 인간은 하나님에게 매이든지 악마에게 매이든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유라는 것은, 하나님은 실제로 일하신다는 의미인데, 이 하나님의 자유, 즉 일하심이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죄인이 되게 만들고, 무조건 그분의 사랑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을 교회라고 보았고, 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 밑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만인 제사장이란 것이다.
◈ 칼빈 - 어거스틴에 의존 !!
여기에 대해서 루터와 쯔빙글리는 생각이 같지만, 그러나 칼빈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칼빈은 오히려 어거스틴으로 되돌아가는데, 물론 어거스틴이 주장한 마리아 숭배사상과 연옥설 등은 부정했지만, 나머지는 다 어거스틴에게로 다 돌아갔다는 것이다.
제가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하는데, 어거스틴은 주장하기를,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미약하고 부족해서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으로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을 받았으면 그 열매가 맺혀야 하는데, 교회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움이 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칼빈이 그대로 베껴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종교개혁 때 공전의 히트를 친) 칼빈의 소명론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으로 연결되고, 즉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라도 예정된 성도라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쯔빙글리는 도덕적이 아니라 사회 개혁적으로 나오는데, 사회적 공의를 실천해야, 즉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말이다. 이에 비해서, 칼빈은 개인적인 도덕적 성향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을 '성화론' 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펼치자는 것이다.
◈ 30년 전쟁 - 카톨릭이 개신교를 인정 !!
이러한 개혁주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사실 이런 세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무튼 이렇게 나오니까, 기존 천주교에서 군사를 동원해서라도 개혁주의를 공격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독일에서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년) 이란 것이다. 소위 말하는 '종교전쟁' 말이다.
이 전쟁은 3:1로, 개신교가 세 번을 지고 한 번을 이겼는데, 중요한 마지막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힘이 딸렸지만 이기게 된 이유가,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이 개입했기 때문인데, 이때부터 천주교에서 개신교를 정식종교로 인정해주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싸움은 이기고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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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쟁 - 네이버에서
기독교 세계의 최대이자 최후의 종교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는 30년 전쟁(1618 ~48)은 4기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구교 측 입장에서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제 1기 - 전쟁의 발단은 독일의 남부 뵈멘(보헤미아)에서 신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1618) 황제군에 의해서 진압되고 반란의 주동자들은 철저히 보복을 당했다(1620)
제 2기 - 이에 불안을 느낀 루터파의 신교국가인 덴마크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의 지원을 약속 받고 독일에 출정했으나(1625) 독일 황제군의 총사령관 발렌슈타인에게 밀려 뤼벡 조약을 맺고 소득 없이 전쟁에서 손을 뗐다(1629)
제 3기 - 발트해의 패권을 노리고 있었던 스웨덴의 국왕이 신교국가의 연합세력을 구축하고 독일에 침입(1630),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다가 스웨덴 국왕이 전사하고, 신교연합이 무너지면서 구교의 승리로 끝났다(1635)
제 4기 - 구교국가이면서도 이해관계 때문에 배후에서 독일 신교를 원조하고 있었던 프랑스가 스웨덴과 연합, 독일을 침입하자(1635) 독일은 스페인의 지원을 받고 전쟁을 수행, 일진일퇴를 반복하다가, 결국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네덜란드 등과 독일 내의 제후들이 참가하여 지루한 협상 끝에 휴전에 조인, 베스트팔렌 조약(1648)으로 독일이 불리한 가운데 전쟁은 종결되었다.
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독일,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국토는 황폐화되었으며, 황제 권은 더욱 약하여 이 후 독일의 분열은 더욱 촉진되었다. 반면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독립을 국제적으로 승인 받았고, 칼뱅 파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프랑스와 스웨덴은 영토를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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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교가 되면? 재산을 보호받는다 !!
요즘 들어보면 참 이상한데, 종교는 본인들이 인정하면 그만인데 무슨 전쟁까지 하고 말이다. 이렇게 루터교와 칼빈교와 천주교만 정식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게 무슨 뜻인고 하니, 이들 종교의 교회재산을 인정해주겠다는 것인데, 즉 법으로 보호해주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십일조를 교회에 바쳐도 국가가 세금을 매기거나 빼앗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칼빈이나 루터교 말고 다른 개신교가 교회를 세운다면 국가가 전혀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와서 교회 피아노를 가져가고 다른 기물들을 부수어도 어디 항의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국가가 강도짓을 하겠다는 말과도 통하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로부터 교회의 재산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 신흥종교에 소속된 개인의 사적인 재산까지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가의 보호를 받으려면 국가가 인정해주는 종교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정을 받는고 하니까, 이런 전쟁을 통해서 회담해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좀 이상하지요?
특히 영국국교에 있어서, 이 '영국국교' 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요즘은 '성공회' 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개신교가 아니라 일종의 천주교인데, 영국국왕이 교황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국교를 정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국국왕이 영국 내의 교황이다" 라는 것이 영국국교라는 것이다.
◈ 영국국교와 청교도 - 서로 죽여라 !!
이렇게 되면, 영국 안에서는 자기 국교인 영국교회만 인정하게 되니, 영국국교가 아닌 비국교인 다른 카톨릭이나 개신교의 재산은 다 몰수해버려도 상관이 없는데, 실제로 바람둥이라고 알려진 영국 왕인 헨리 8세의 경우에는, 천주교나 칼빈교에 소속된 교인들의 재산을 다 빼앗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평민이고 귀족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말이다.
거기에 반발해서 일어난 것이 소위 '청교도 혁명' 인데,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칼빈파(장로교)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서, 이제부터는 영국국교나 천주교가 다시금 역으로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동네북인가? 이리저리 터지기만 하고) 그래서 만약에 칼빈주의자가 되지 않는다면 공무원 시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다.
나중에 크롬웰 전쟁이 끝나고 나서 청교도들이 도망가다시피 해서 미국에 이민을 가는데, 거기서도 역시 만찬가지라는 것이다. 자기들의 종교를 수용하지 않는 자들은 제대로 생활도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재산보호도 받지 못하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주일날에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놀다가 잡히면 벌을 받아야 하고 말이다. 그래도 안 되면 결국은 쫓겨나야 하는데, 자기가 개간한 농토를 다 그대로 두고 거지꼴이 되어서 말이다.
◈ 프랑스 혁명 - 이제 국교는 물러가라 !!
이것이 뒤집어진 것이 바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인데, 천주교이든 개신교이든 모든 교회의 재산을 모두 다 국가에다 귀속시켰다는 것이다. 모든 교회의 재산을 다 말이다. 그것이 바로 '박애', '평등', '자유' 라는 3대 정신의 기치 아래에서 일어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민중 혁명의 성격을 지닌 프랑스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 혁명의 결과로, 국가에서 목사에게 월급을 주는 등 일체의 혜택을 주는 것을 다 없애버렸다는 말이다.
지금도 독일에서는 신부나 목사가 다 공무원인데,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0.1%의 종교세를 받아서 월급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임무가 너무 과도해서 똑똑한 사람들이 목사나 신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수 천명을 감당해야 하고, 공부도 너무 힘들고 말이다. 정식 목사가 있고 그 밑에 보조 목사도 있는데, 보조 목사는 월급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그들도 공무원이니 말이다.
◈ 예수를 믿는데 왜 국가가 나서는가?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참으로 이상하다는 것이다. 아니, 성경에는 분명히 개인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데, (단체로 구원받는 것이 없는데) 그런데 왜 국가가 등장하게 되느냐는 것이다. 국가가 말이다. (개인이 믿지 왜 국가가 믿으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원래 국가라는 것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먼저 국가를 원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국가의 종교가 옆집 사람까지도 지배할 때 사람들은 어떤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기와 같은 동일한 종교를 믿을 때 느끼는 그런 쾌감을 말이다.
◈ 이근호 목사는 능력 있는 목사 !!
만약에 지묘동에 있는 보성1차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다 우리교회에 등록해서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교회 당회장인 이근호 목사는 그야말로 대통령이 전혀 부럽지를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을 지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지배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요즘도 대통령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예를 들어서, 아파트 주민 중에 한 사람인, 어떤 교인이 이근호 목사에 와서 자식들의 취직을 부탁하던지 결혼문제를 상의해도, 이 목사는 "가만 있어봐라. 음음, 그렇지. 102동에 김 사장의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다고 했지. 105동에 좋은 총각이 있지"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이 목사님의 꿈은 과연 실현될까?)
◈ 교회가 부흥하면 교회는 반드시 망한다 !!
이렇게 되면 모든 통로가 다 교회를 통해서 움직이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목사도 원하고 교인들도 역시 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가 오히려 십자가의 복음을 다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부흥을 좋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교회가 부흥하면 교회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흥하면 교인들이 교회를 믿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회를 믿는다는 말은, 자기가 소속된 집단을 우상시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교회사가 그야말로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 종교개혁과 소시니안주의 !!
그리고 종교개혁을 할 때 영국에서는 '유니테리안' 이라고 해서, 일종의 '소시니안주의' 인데, "예수는 하급신이고 인간인데, 착해서 하나님 아들이 되었지 원래는 우리와 똑같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러니 삼위일체를 부인) 여호와 증인과도 비슷하고 말이다. 그 당시 이런 종교가 유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종교가 무엇인고 하니까, '퀘이크 교도' 라고 있었는데, 이들이 국가로부터 핍박을 많이 받아서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 비국교도이니 재산도 모두 빼앗기고 목숨도 위협을 받고 말이다. 이들은 목사도 없는데, 그때마다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설교하고 싶은 사람이 설교하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기도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의 모임 중에 은사가 임한 것, 그것이 곧 계시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이런 종류의 종교들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기존 교회를 모두 다 부정하고, 모든 교회제도도 다 싫어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도 자기 자신이 알아서 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부나 목사도 모두 필요 없으니 다 나가라는 말이다. 이것을 '소시니안주의' 라고 한다는 것이다.
◈ 결국 종교개혁은 하나의 성공한 이벤트 !!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났는가? 그동안 자기들을 '꽉' 쪼였던 하나의 틀에서 해방이 되니, 개인주의가 마구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 나오는데, 문예부흥과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교회고 무엇이고 다 필요가 없고, 이제는 과학만이 진리라는 것이다. 더 이상 벌벌 떨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성경이 없어도 과학만으로 얼마든지 학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종교개혁은 그 시대의 하나의 성공한 이벤트였고, 썩어질 때로 썩어진 카톨릭과 교황에 대한 반발심이 폭발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온 그들의 신조가 무엇인지, 그들의 신조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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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강의가 교재 없이 진행되었음
2007,10,29 새벽 1시 15분에 마침 --- 아들자랑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