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0: 1- 3 (악마의 감옥)
계 20: 1- 3 (악마의 감옥)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요한계시록20장1-3절
제목: 악마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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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84강-계20장,1-3,(악마의,감옥)-rev071028.hwp
이근호
07-10-28 13:11
무저갱
2007년 10월 28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20:1-3
(계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계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 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성경은 영적 안목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대해서 육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들은 결국 예수님의 곁을 다 떠났고 두 번 다시 예수님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이러합니다. 피를 물 마시듯이 꿀꺽꿀꺽 마셔야 하고, 살점을 스테이크 잘아서 소스에 발라먹듯이 먹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는 것은 곧 ‘생명은 아예 없다’는 통고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 가고 난 뒤 제자들만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께서 보내지 아니하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평소에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다른 영적인 말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저갱’이 나오고, ‘용’이 나오고, ‘옛 뱀’이 나오고 ‘1000년’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육적인 안목만 있는 자들은 이런 말들이 역겨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네들이 납득 안되는 소리만 늘어놓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은 이 말씀은 우주의 원형에 대해서 언급한 말씀입니다. 이 대우주의 존재에는 사람은 배제되고 오직 하나님과 사단이라는 영적인 관계로 인해 구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은 사단을 이용했고. 사단은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이 인간 세계에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저갱이란 사단의 감옥으로서 ‘밑바닥 없는 감옥’입니다. 스스로 힘으로 못 빠져나오도록 만들어진 감옥이라는 겁니다. 이 감옥에 사단이 1000년이나 갇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단은 하나님의 의해서 확정된 저주를 담고 있는 신분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그런 신분이 더 이상 아니라는 말입니다. 1000년 이라는 숫자는 영원한 신분을 말해주는 시간적 용어입니다. 인간이 배제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사단만이 아는 영적 시간층이 따로 있습니다. 이 시간은 인간 의식에 맞추어 흘러가는 순서적 시간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익히 아는 상황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층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청년이 귀신이 들렸을 때, 마침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청년이 하는 말이, “아직 내가 멸망할 때도 아닌데 벌써 오셨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할 때 필요한 나귀새끼를 제자들이 구했을 때, 나귀새끼 주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러니 군말없이 나귀주인이 나귀를 내어주었습니다. 결코 사전에 예수님과 의논하지를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전세를 낼 때에. 어느 물고기 입 속에 성전세에 정확하게 일치되는 금액의 돈이 들어있는지를 이미 아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활동하실 때는, 인간들이 익히 아는 시간층이 아닌 다른 시간층을 몰고 이 땅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장래에 고난 받고, 다시 부활될 줄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간대에서는 모든 일들이 이미 주님 손에서 일어져야 하는 사건들로 손에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릴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가족이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사흘 뒤에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걱정을 하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왜 알지 못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시간층은 곧 예수님께서 우주의 원형과 관련된 하늘의 분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영원히 저주받을 사단을 잠시 풀어서 지상에 깔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곧 인간 세계의 운전대를 사단에게 맡긴 일이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악마가 무저갱에 갇힐 만한 죄목이 무엇인가를 까발리는 그런 지역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왜 사단은 영원토록 저주받아야 합니까? 이 질문은 이 우주의 바탕과 기초는 무엇으로 성립되어야 합니까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골로새서 1:16에 보면 당연히 예수님만이 우주의 원형적 형상이어야 합니다. 형상이라는 말은 기초에 동시에 존재의 목적이요 목표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단은 바로 이 ‘예수님만의 기초성’에 공격하는 속성을 지닌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단의 태도에 대해서 하나님의 대처는 ‘영원한 저주’로 나선 것입니다.
이제 이 윤곽이 지상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이 지상에서 사단은 힘차게 전도하게 됩니다. 뭐라고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는 말짱 ‘꽝’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뽑아 세운 12제자 가운데 제일 똑똑한 인간은 가룟 유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단을 제자로 뽑아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만이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예수님에게 대들어 스스로 승리자가 되려고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냥 패배자일 뿐입니다.
이 사단의 정신은 오늘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널리 전파되게 됩니다. 목사들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전파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아무 짝도 소용없는 무용지물이라고 말입니다. 교회가 되었던 뭐가 되었던 늘 돈이 있어야 성공한 단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돈과 기적만 주면 그 자를 메시야로 반기다고 말입니다. 이 사단의 말은 참으로 현실성이 있는 말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예수님의 공로와 십자가 피의 효과성은 농담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돈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복음이 과연 복음일까요?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하고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의심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어느 누구도 세상 신의 능력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따라 맥없이 실패자로 끝난 인생에 동조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님 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동조하는 자는 있었지만 그것으로 사단의 세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사단은 철저하게 승리자로 행세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불러내시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이들만이 영안이 열린 자입니다. 이들만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용서가 되고 구원의 능력이 됨을 압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그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수믿는 자를 잡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자신이 악마에게 속아 넘어간 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비복음만 널리 전파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즐기라’고 말입니다. 환란을 즐기고 고난마저 즐기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 일을 익히 다 아시는 그 분께서 직접 책임지고 우리를 구원해 내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처음부터 우리는 실패자였음을 알게 해주기고 구원을 성공케 하시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 만을 증거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