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2: 5- 9 (하나님의 창조)
사 42: 5- 9 (하나님의 창조)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이사야 42장 5- 9절
제목: 하나님의 창조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이사야-2005/111강-사42장,5-9,(하나님의,창조)-isa071024.hwp
이근호
07-10-24 21:04
하나님의 창조
2007년 10월 24일 본문 말씀: 이사야 42:5-9
(사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 42: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 42: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에 추가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 내에서 따로 인간의 자기 자국이나 자기 흔적이나 자기 성과를 따로 장만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음을 한 순간이라도 가릴 수 있는 권한이 인간에게 허용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 창조성을 잠시 유보시키고 인간 창조력으로 대체할 만한 그 어떤 자리로 허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함에 그 어떤 모자람이라든지 문제성 있는 것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성에 흠집을 내고 반(反)-창조적으로 덤벼든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인간들입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창조는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됩니다. 처음 인간 아담부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대들었습니다. 우리는 차후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의도적으로 인간의 식욕을 돋우어서 따먹게 했다는 말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선악과를 동산 한 가운데 심어놓았던 한 모퉁이 심어 놓았던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조된 그 자체는 새삼스럽게 인간의 평가를 필요로 하지를 않습니다.
그 어떤 식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데 있어 하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욕심이 내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창조하심에 대해서 반대하는 반-창조 행위로 실시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욕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것도 하나님의 연속적인 창조행위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은 여전하십니다. 당연히 인간이 따로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왜 인간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관여하면 안되나요? 그것은 인간들이 소경이며 흑암에 속한 자들로서 이 피조세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에 인간의 욕심인 하나님의 창조를 파괴하는데 목적을 두고 움직입니다. 어떤 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무효화 시키는 것일까요?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바로 이 원칙에 도전장에 내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영광받고 하나님의 이름만 드높여야 될 창조 세계 안에, 건방지게도 자신의 이름과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자기만의 공간을 인간은 구상했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이 평소에 자기답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아 실수했다, 혹은 아 실패했다”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발언 자체가 자신을 대단히 우대하는 심경을 털어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조그만 정신 차렸으면 그런 실수 안할 것인데, 약간의 방심이 그런 사고를 유발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라는 인간은 본디 그런 실수할 위인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을 소경이요 흑암에 갇힌 자로 보지 않겠다는 심보입니다. 지속적인 하나님이 창조행위가 없어도 이 대자연 속에서 존재할 가치가 있는 자라고 우기는 셈이 됩니다.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면서 행하는 모든 행동들이 다 이런 식입니다. 자기의 장점만이 고이 모아져 있는 자아 절대적 방을 따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오로지 자신이 영광받고 자신의 이름이 빛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비난이나 모욕이나 정죄를 받지 않고 영원히 자신의 의로움이 빛을 내는 그 방을 은밀하게 감추어놓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여 실수해서 자기 완벽에 오점이 생기면 무진장 후회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큰 잔치를 벌리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만 반면에 갑자기 어느 누가 죽었다고 한다면 대놓고 하나님에게 따지고 들려합니다. 이것은 곧 자기가 최종 관심갖고 신경쓰고 있는 ‘나만의 비밀 요새’의 명예를 하나님이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훼손당했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지속적입니다. 성도에게 수치스럽게 민망한 일을 유발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그 인간이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 비밀의 방의 가치를 뭉개버리십니다. 폭파버리십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책임지겠다고 나서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으로서 책임조차 질 수 없을 지경으로 인간은 무능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죽음이란 인간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조종을 받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죽음은 인간들이 따로 챙겨놓은 비밀을 방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그의 전부를 회수해 가 버립니다. 마치 새벽녁에 창소차가 오게 되면 골목에 내놓은 쓰레기가 사정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들은 실은 회수당하므로서 하나님의 창조에 기여하는 바가 될 처지에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하고 거래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따로 어떤 분을 불러내십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불러냄을 당하신 분입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의 언약의 중앙에 계신 분입니다.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분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그 분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 분을 빼놓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만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면 흑암에 있는 자들이 다시 나오게 됩니다. 죽음 안에 갇힌 자들도 부활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다른 자들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 분에 비하면 다른 이들은 다 죄인들이며 소경들이며 언약의 중심에 계신 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은 이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만이 절대적으로 영광 받고 환영을 받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분은 자기 백성 속까지 찾아와서 그동안 인간들이 건립해 온 자기만을 신봉하는 우상적인 성전을 다 때려 부수시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이 창조세계에서 우리 것이라든지, 나만을 위한 영역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없다는 행복,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대자연의 진리를 외면하지 말고 도리어 그 진리에 의해서 나의 것이 강탈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