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9장17-21절 제목:전 쟁
계 19:17-21 (전 쟁)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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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7-10-21 13:21
전쟁
2007년 10월 21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9:17-21
(계 19: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계 19: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계 19: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 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성경 말씀을 대하면 두 가지 안목이 상호 갈라서게 됩니다. 하나는 육적인 안목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육적인 안목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아무리 종교 생활을 곁들여봤자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입니다. 영으로 바꿀 생각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즉 교회 생활을 오래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영적인 사람으로 달라지는 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육적인 자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때부터 이 세상에는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이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섞여 살아도 각 사람들의 본질은 육이 아니면 영 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 말을 더 확대해 나가면, 영의 사람의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에게 찾아온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본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작업을 시도해봤자 전혀 영적으로 도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와야 비로소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미리 지정해 놓은 자에게만 성령께서 찾아가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에 의해 붙잡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아를 만들고자 하는 자들과의 구분이 이 세상 안에서 성립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벌리시는 잔치가 있는데 그 잔치의 전개 과정은 새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온갖 직업이나 신분에 구분없이 먹이감으로 쪼아먹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육적인 사람이란 새들의 먹이감이라는 의미밖에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인간의 인격이 아무리 고매해도 그의 똥은 일반적인 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의 내장은 인품하고 아무런 상관없이 동일합니다. 사람을 물질로 간주해서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영적인 안목이란 인위적으로 자신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요소임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란 육적인 인간에 대한 저주가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합당하다는 점을 밝혀주는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산상설교에 나오는 첫 마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입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에게 선택되었기에 이 땅에 등장해야 하는 영적인 자들은 이 말씀이 삽입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즉 육적인 인간들처럼 자신이 말씀을 성취해서 그래야 구원받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적용되어야 하는 자로서 구원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적인 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동원해서 자력으로 구원되고, 자력으로 새삼스럽게 교회 되기 위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교회 부흥시키기 위한 명분이요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그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자신들이 이루어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극히 육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과 세계를 보고 있는 겁니다.
교회됨이나 구원됨이란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이루어집니다. 그 증거가 19:13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실시하시는 그 총 대장 되시는 분의 옷에 이름이 쓰여져 있는데 그 이름은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로고스’ 즉 ‘창조주’께서는 두 개의 로고스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하늘의 창조 따로, 땅의 창조 따로를 용납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 전에 구원받기로 작정되어 있기에 이 땅에서 성령을 받게 된 자들은 이 세상에 이 땅의 지배자요 신으로 군림하는 ‘땅의 로고스’가 따로 존재함을 압니다.
고린도후서 4:3-4를 보게 되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세상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을 볼 눈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시력이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땅의 로고스’의 권한 밖으로 박차고 나갈 수 없습니다. 물론 구원받은 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력으로 ‘땅의 로고스’의 힘을 박차고 영적 세계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게 되니 비로소 이 땅에서 그동안 ‘땅의 로고스’가 신 노릇을 하면서 사람의 모든 면을 통치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도한 교회에서 이단으로 몰릴 정도였으니까요. 따라서 교회라고 해서 악마가 겁내고 기독교라고 해서 악마가 침투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와 기독교마저 마귀가 점령해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로고스만이 아니라 땅의 로고스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감행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예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속의 사람들은 악마의 통치력에 준해서 오직 자의식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자기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곧 육에 속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엄성과 품위와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 어떤 것에도 양보가 없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성취와 성취력을 무시합니다. 자신들의 실력만을 믿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자아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에 예속된 자아성을 거부합니다.
물론 성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도 육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자신이 기대하는 자아성을 다듬기 위해서 오늘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손 맛은 매섭습니다. 장계가 없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듯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친 자식에게는 징계를 주십니다.
그 징계를 받고 보면, 육적인 세계의 진면목이 보입니다. 그들은 짐승을 대장으로 삼고 군대를 조직하여 조직적으로 참 로고스에게 대항하려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우깁니다. 소위 하나님의 형성이라는 한데 모아 인구수대로 나누기 해서 나온 평균값을 가지고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들 중에 누구 하나의 형상이 전체 하나님의 형상을 대변해주는 걸까요?
모두가 잘못되었습니다. 참된 형상되시는 분은 지금 전쟁중이십니다. 이 땅에 화평을 주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일으키려 하십니다. 우리 성도는 이미 산 정상까지 다 가봐놓고서 그것이 지옥으로 통하는 코스임을 안 상태에서 여전히 산 밑에서 위로 향해 올라오는 자들에게 역풍을 맞아가면서 증거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새들이 고기를 뜯어먹는 중이다”고 말입니다.
육적인 인간이란 새의 먹이감 밖에 취급받지 못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을 더 이상 우리 것이라고 우기지 말고 하나님이 친히 다루시는 ‘그리스도의 것’임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