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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5 교회사 5강 - A자유게시판이사야

2005 교회사 5강 - A

이름 : 구득영(IP:203.223.97.148)

교회사 5강 - A
05,11,12 강의 이근호

◈ 잃어버린 암흑시대를 찾아서 !!

지난 시간에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논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이 논쟁을 통해서 어거스틴의 은총론이 등장했다고 말이다. 또 이것이 나중 종교개혁시대에 칼빈과 알미니우스 사이의 논쟁으로 그대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알미니안주의와의 대결에서 '도르트 신조(1619년)' 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소위 칼빈주의 5대교리(TULIP)가 정립되었다는 것이다.

칼빈과 루터가 이러한 어거스틴의 권위를 존중했다고 보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어거스틴-루터, 칼빈]으로 연결이 되는데, 즉 어거스틴에서 바로 루터와 칼빈으로 몇 백년을 '붕' 하고 마구 뛰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사이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유럽지도를 그려보면, [영국-노르망디-스페인-이태리-안디옥-예루살렘-칼타고-덴마크-스칸디나비아반도] 이렇게 되는데, 800년경에 게르만족이 독일침범해서 갈리아 지역에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동고트족과 서고트족들도 들어오고, 게르만족들이 집단적으로 이주를 했다는 말이다. 이때 '클로비스' 라는 영웅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이미 아리우스파의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나중에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난 뒤에, 교황이 있는 로마교회와 정치적 타협을 하기 위해서 아리우스파에서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물론 서로마에 교황이 있었고 말이다.

그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메로빙거 왕조인데, 그 뒤에 '샤를마뉴' 라는 자칭(?) 출중한 인물이, 그래서 흔히들 '대제' 라고 하는데, 그가 그 주변 전체를 게르만족 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의 교황은 이 샤를마뉴에게 로마의 황제를 세우듯이 그렇게 황제의 면류관을 씌워주었다는 것이다(800년). 그 이후에 프랑크 왕국이 형제간에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넓은 지역(프랑크)과 좁은 지역(서프랑크)으로 말이다. 서프랑크 왕국은 처음에는 두개였다가 나중에 하나로 되었고 말이다.

이러한 샤르만 제국 이후에 계속해서 번창한 게르만족 왕조시대, 즉 게르만족의 세속황제가 로마교회 황제를 누른 시대를 두고서 '카롤링거 왕조시대' 라고 하는데, 여기서 유명한 오토 1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시기를 '신성로마제국' 이라고 해서, 즉 새롭게 뜨는 로마제국이라고 해서, 옛 로마의 영광을 재현시켰다는 것이다.

바로 이 카롤링 왕조시대 때, 즉 어거스틴이 활동한 이후 800년부터, 즉 9세기부터 14, 15세기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많은 신학적인 논쟁들과 십자군 전쟁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 때도 뭔가 신학적인 발전이 분명히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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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비스 [Clovis, 465 ?~511] - 프랑크왕국의 초대 국왕(재위 481∼510)으로 메로빙거 왕조의 창시자이다. 전 프랑크족을 통합하여 프랑크 왕국을 수립하였고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로마 교황과의 우호관계를 보증하게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창시자. 481년 아버지 힐데리히 1세의 뒤를 이어, 살리 프랑크계(系)의 한 지파의 장(長)이 되었으며, 486년경 로마 총독 시아그리우스의 나라를 멸하고 솜강(江)에서 루아르강(江)에 이르는 지역에 진출하였으며, 496년 알라마니족과 싸워 이를 지배하에 두었다. 507년 서(西)고트의 알라리크 2세를 푸아티에 부근에서 격파하고 가론강(江)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이 살리프랑크족뿐 아니라, 전 프랑크족을 통합하여 통일 프랑크 왕국을 수립하였다. 그가 알라마니족을 정복한 직후에는 3,000명의 부하와 함께 랭스의 주교(主敎) 레미기우스의 세례를 받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는 다른 게르만계 부족국가가 아리우스파(派)의 신앙을 신봉하던 것과는 달리 로마 교황과의 우호관계를 보증하는 일이어서 장래 프랑크 왕국 발전의 중요한 포석이 되었다. 511년 파리에서 죽었는데, 사후에 왕국은 4개로 분할 상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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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마뉴 (Charlemagne, 742~814) - 카롤링거 왕조의 제2대 프랑크 국왕(재위 768~814). 몇 차례의 원정으로 영토 정복의 업적을 이루고 서유럽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했다. 중앙집권적 지배를 가능하게 하면서 지방봉건제도를 활용했고 로마 교황권과 결탁하여 서유럽의 종교적인 통일을 이룩하고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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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사도바울의 사상을 어거스틴이 이어받았고, 이 어거스틴의 사상을 칼빈과 루터가 이어받았다고 보기에, 그야말로 몇 세기를 '붕' 날아서 뛰어넘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신교 신학자들은 어거스틴과 칼빈 사이를 암흑시대(?) 라고 해서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쓸데없는 논쟁들만 가득히 있었다고 하면서 천박스럽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암흑시대 중에서 13세기에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 라는 신학자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사람조차도 캄캄한 스콜라 철학자라고 해서 같이 매도해버린다는 것이다. 원래 이 '스콜라(schola)' 라는 말은, 중세수도원에서 학교를 시작했는데 그 학교를 두고서 '스콜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요즘 대학이 바로 이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한 하나님, 한 교회(감독)' 라는 교황의 권위가 세속 왕들의 권세에 그만 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회복하려고 노력은 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영주의 영토 안에 사설교회(?)가 등장하게 되고, 이런 교회에서 신부와 같은 중요 직책도 교황이 아닌 세속 황제가 임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 밑에 있는 영주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골라서 추천하니, 그야말로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지배하였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교회가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구약의 사사시대처럼 말이다.)

이렇게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니, 소위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수도원으로 들어갔지만, 그러나 수도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도원도 일종의 지배계층으로 등장하니 말이다. 즉 사람들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 최초의 자본주의 - 수도원에서 !!

10세기에 이르러 '클뤼니 수도원' 에서 일종의 종교개혁을 일으키는데, 즉 무소유주의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이 여기 출신인가?) 즉 참된 성도는 재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도원 재정이 당연히 어렵게 되는데, 그래서 수도원에서 황무지를 개간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농산물이 나오는 토지가 제한되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수도원이 무소유의 개혁운동을 일으켜서 자기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노동으로 토지를 넓히고 농산물을 수확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농사기술도 개발되고 농산물이 많아져서 재산이 축적되었고, 그래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자본주의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 클로니 수도원에서 '쉬토 수도원'이 나오고, 여기서 나온 것이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시스코 수도회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크 수도원 출신이고 말이다. 모든 학문은 이렇게 수도원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9세기부터 15세기의 신학적인 논쟁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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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뤼니수도원 [L'Abbaye de Cluny] - 중세의 교회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베네딕토회의 수도원.
클뤼니는 프랑스 부르고뉴주(州)에 있는 지명이다. 910년 아키텐공(公) 기욤이 로마교황 이외의 권위로부터 독립한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자기의 별장을 제공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클뤼니의 개혁’인데, 본래 이 수도원은 개혁을 위해 세워진 것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수도원장들이 부임하여 로마교황이나 봉건제후의 신뢰를 얻어 옛 수도원의 개혁에 성공하여, 그 정신에 근간을 두고 각지에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그 개혁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레고리오 7세를 비롯하여 개혁적인 교황이나 주교들 가운데는 이 곳 출신이 많다. 그러나 학문적 연구를 통한 신앙심을 강화에는 부정적이었고, 기도와 예배를 강조한 나머지 화려한 종교의식을 중시하여 형식적인 면에 치우치게 되었다. 또, 봉건적 토지소유는 금지하였으나 수도원에 기증한 토지는 거부하지 않았으므로 점점 토지를 많이 소유하게 되면서 13세기에는 클뤼니수도원 역시 개혁정신을 잃게 된다.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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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에선 이 시대를 두고 비판하기를 암흑시대라고 했는데, 루터와 칼빈은 말하기를, "어거스틴을 제외하면 별로 중요한 신학자가 없었고, 캄캄하고 보잘것없는 논쟁만 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 시대에는 중요한 내용이 없었는가? 그것이 과연 그런가 하여, 오늘 두 시간 동안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포함해서 말이다.

학문적으로는 이 시기를 카롤링거 왕조의 '문예부흥시대' 라고 하는데, 학문적으로 많은 토론이 있었고 발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나라가 평온한 시기였는데, 즉 외세의 침입이 적었고 적들이 많이 평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10세기쯤에 다다르면 '노르망디' 라고 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금은 노르웨이와 핀란드) 쪽에서 바이킹들이 쳐들어오는데, 그래서 나라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영국을 삼키게 되고, 그리고 영국은 프랑스를 삼키게 되고 말이다.

◈ 왕 - 영주 가운데서 좀 뛰어난 영주 !!

사실 그 당시에 나라는 황제중심이었지만, 영국은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서로 돌아가면서 황제(왕)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샤를마뉴'와 같은 확실한 황제가 있는 경우에는 그를 중심으로 뭉쳤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봉건제도 아래에서 명목상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약간 토지가 많은 정도였고, 즉 영주 가운데서 좀 뛰어난 영주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왕이 영주를 자기 밑에 두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분권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권력이 서로 분산이 되어있다는 것이고, 즉 일종의 동맹체제를 이루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중에 14, 15세기가 되면 네덜란드에서는 '한자동맹(Hansa)' 이라고 해서 영주들끼리 뭉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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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동맹 [Hanseatic League] - 중세 중기 북해와 발트해 연안의 독일 여러 도시가 뤼베크를 중심으로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 12, 13세기경 유럽에는 한자(Hansa)라고 불리는 편력상인(遍歷商人)들의 단체가 많았는데, 14세기 중반 그들 사이에서 ‘독일한자(한자동맹)’이라는 도시동맹이 성장하여, 중세 상업의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독일 본국의 도시 사이에는 자치와 치안유지 등의 필요성에서 도시 상호간의 동맹을 결성하는 기운이 높아졌다. 14세기에 플랑드르에서 압박을 받은 독일상인이 본국 도시에 연합적인 지원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자동맹이 성립되었다. 또, 1358년 플랑드르에 대한 상업봉쇄 선언을 할 때 라인강부터 북해 ·발트해에 면한 많은 도시가 ‘독일한자’라는 도시동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366년부터 외지에서의 한자 무역의 특권은 동맹에 가입한 도시 시민에 한하게 하여 그 기초가 더욱 견고해졌다.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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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도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즉 영주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영주들과 결탁해서 종교개혁에 성공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개혁가라고 할 수 있는 쯔빙글리는 영주들이 아닌 도시민들을 공론화해서, 즉 토론회를 개최해서 그들의 의식을 환기시켜서 종교개혁을 하려했지만, 그러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 칼빈 - 이 땅에서 돈을 버는 것을 축복으로 간주 !!

그리고 칼빈의 경우에는, 시민단체와 도시중산층과 결탁해서 종교개혁을 했는데, 물론 스위스에서는 성공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실패했고 말이다. 그런데 실패는 했지만, 나중에 이러한 칼빈의 사고방식은 도시인들의 금융과 자본에 대해서, 그들의 생산활동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시 루터보다는 칼빈의 사상이 지금 이 땅에서 돈을 버는 것을 축복으로 간주해주기에, 멋진 신학적 이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칼빈의 사상이 (종교개혁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온 나라로 확산되었는데, 17세기에는 이 영향을 받아서 크롬웰이 청교도 혁명을 일으키는데, 물론 얼마 못 가서 실패를 하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핍박을 받아서, 소위 '필그림' 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기들의 독립국가를 세웠다는 것이다.

◈ 신학적 논쟁 - 이 세상이 희망이 있어 보일 때 !!

이런 것을 볼 때 우리가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논쟁을 하거나 신학적인 논쟁과 거기에 관심이 있다고 할 때는, 어떤 의미에서는 뭔가 국가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득권 층이 어느 정도는 안정된 권력을 누리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혼란스러울 때는 신학적 논쟁이 아니라 묵시적인 사고방식이 등장하는데, "이 세상을 떠나자, 이제 그만 죽자"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 않고 신학적인 논쟁을 할 때는 뭔가 나름대로 자기들의 배가 부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바로 천년왕국이고,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보는 '천년왕국론'이 등장하고 말이다.

이렇게 이 세상에 대해서 희망적인 견해를 가질 때는 신학적인 논쟁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세에서도 묵시적 운동이 있기도 했지만,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유럽 전체가 '한 하나님 밑에 한 교황, 한 하나님 밑에 한 감독' 이란 체제로 있었는데, 바로 이것은 신앙이 권력화가 되는 모습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로마제국이 정치화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이렇게 신앙이 정치적 유형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즉 논쟁의 결과가 언제나 정치적인 권력다툼으로 귀착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살필 신학적 논쟁의 결과가 정치적 권력다툼의 방향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예정론(豫定論), 예지론(豫知論) 논쟁

여기에서 제일 먼저 살펴볼 것은, '예정론(豫定論) 논쟁' 이라는 것인데, 그 주인공들은 '고트샬크'와 '라트람누스' 라는 것이다. (사실 이름도 생소하고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으니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먼저 고트샬크는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예정론은 너무나도 엄격해서 하나님은 천사와 선택된 자만을 구원으로 예정하셨고, 마귀와 버림받은 자들은 멸망으로 예정하셨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의지가 너무나도 파괴되어서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선택받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고트샬크의 이야기가 맞는 내용이 아닌가? 그러나 그 당시 주류사회는 이 고트샬크를 극도로 미워했는데, 왜냐하면 지옥으로 갈 놈들은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지옥으로 가기로 예정이 되었기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에 반해서 라트람누스는 하나님의 예정(豫定)을 예지(豫知)로 격하시켰는데, 고트샬크가 주장한대로 성경에 예정은 나오지만, 그렇지만 지옥으로 가기로 예정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론을 상당히 역겨워했다는 것이다.

또 고트샬크의 주장에 대해서 '힝크마' 이라는 권력자가 반박하기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일에 대해, 즉 구원에 대해서도 인간은 감사와 찬양하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당신의 주장이 주는 느낌은, 지옥으로 갈 사람이 지옥에 간 것에 대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마음됨됨이가 많이 수상하다. 어떻게 남들이 지옥가는 것을 보고 춤추고, 악한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병적으로 기뻐하는가?" 라고 말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트샬크의 예정론을 들은 후에 이구동성으로 말이, "사람은 누가 예정되었는지 알기는 한데, 그래서 저놈은 때려죽여도 구원을 못 받으니 무시해버리자. 또 그렇게 하는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저놈이 지옥으로 갈 때까지 기다리자" 라는 고트샬크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분개했다는 것이다.

과연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 이 땅에서 사람을 구원하기로 한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가? 과연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예수님의 심정과 같으냐는 것이다. 그러니 고트샬크의 성질이 얼마나 고약하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심정을 안다면, 그렇다면 당연히 불쌍히 여기고 격려할 생각을 해야지, 전혀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지옥에 갈 놈이라고 해서 더 짓밟으려고 하는 자가, 그런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참된 진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고트샬크는 자비로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지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트샬크가 주장하는 예정론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라트람누스 - 하나님은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예지하셨다 !!

그래서 이런 예정론을 대신해서 나온 이론이 무엇인고 하니, 라트람누스가 들고 나온 '예지론' 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예지하셨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벌써 루터와 칼빈 이전에 이렇게 예정론 논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고트샬크나 라트람누스가 주목을 받지 못하는가? 그들은 비주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진리로 인정을 받으려면 인기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인터넷 조회수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역사라는 것은 비진리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사람에게 높임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미움을 받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사람에게 인기를 얻고 유명세를 타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유명해지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눅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예지(豫知)란 무엇인고 하니, 말 그대로 "미리 안다" 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누가 구원받을 것인지, 누가 거부할 것인지 미리 아신다" 라는 것인데, 오늘날 감리교회에서 이것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을 교인들이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말이다.

'예지' 라고 하니 여자아이 이름 같은데, 다시 이야기하는데, 예지란 "누가 구원받을지 미리 알고, 누가 멸망 받을지 미리 아신다" 라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는가? 교인들도 듣고 이것이 예정인 줄로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정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예지론에서 무엇이 빠졌는고 하니, "미리 정해놓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본인이 원해도 절대로 구원될 수 없다" 라는 것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 어떤 짓을 해도, 예수를 백 번을 믿는다고 해도, 지옥에 갈 것이 미리 정해졌기 때문에, 그러한 운명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빠지지 않은 것이 예정이라는 말이다.

◈ 예지 - 미리 알지만 관여하지 않겠다 !!
◈ 예정 -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 !!

두 가지의 차이점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예지라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 "나는 알지, 니는 아나?" 라는 것이고, 즉 미리 알지만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예정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트샬크가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라트람누스는 말하기를, "전 인류는 저주의 무리이다. 죄를 통해서 사람은 악과 타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기에,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상태에서 자기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이렇게 저주의 무리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하나님은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많은 무리가 아닌 적은 무리를 구원하기로 선택하시고, 인간이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은총을 수여했다.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멸망하기로 예정하셨다" 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고트샬크와 비슷하지만, 그 뒤에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 "그렇지만 이렇게 멸망을 예정하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를 짓도록 예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항상 죄를 짓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인간을 정죄하기로 예정하셨다" 라는 것인데, 사실 이 뉘앙스가 상당히 묘하다는 것이다.

고트샬크는 "멸망을 당할 자도 미리 예정하셨다" 라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반면에, 라트람누스는 말하기를,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멸망당할 사람은 하나님이 그렇게 예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부터 죄로부터 태어난 멸망의 자식인데, 그래서 그냥 자기 갈 길을 가야한다" 라고 하면서, 죄의 책임을 인간에게 은근슬쩍 넘긴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 당시 유명한 철학자인 '에리게나'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 이후에 등장한 사람이 그 유명한 '안셀무스' 인데, 안셀무스는 좀 있다가 설명을 하고, 이 에리게나는 사실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도 못했다는 것이다.

◈ 마리아 동정녀론 - 마리아에게 죄가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이 '라트람누스'가 '마리아 동정녀론(童貞女論)' 논쟁을 유발시키는데, 이것이 어렵고 재미있는 내용인데, 분명히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인가, 아닌가?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면서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이야기하기를,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셨다고 하지를 않았는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어떠한가? 마리아는 과연 죄가 있는가, 없는가?

마리아가 죄가 없다면 로마서 5장의 말씀에 어긋나기에, 즉 아담의 죄가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 외에 전 인류에게 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죄 있는 어머니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면, 예수님도 죄가 있는 분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닌가? 만약에 마리아에게도 아담의 죄가 퍼졌다면, 이런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면 예수님은 죄 있는 인간이 되신다는 말이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트람누스가 이런 논쟁을 하기 이전까지는 어떠했는고 하니, "마리아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잉태할 때만 죄가 잠시 중지되었고, 예수님을 낳은 후에는 다시 죄가 흘렀다" 라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무염(無染) 동정녀론' 이라고 하는데, 즉 예수님은 죄로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예수님의 인생에 죄가 끼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말이다.

여기에 대해 라트람누스는 말하기를, "죄가 잠시동안 중지된 것이 아니라, 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죄인이었고, 다만 예수님이 죄 없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된 것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단으로 몰리게 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권력자인 힝크마는, 예수는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고 말이다.

◈ 성체성사(聖體聖事)논쟁 - 화체설이 맞는가?

라트람누스의 또 한가지 논쟁이 무엇인고 하니, 본인이 논쟁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대머리 찰스 황제가 자꾸 질문을 해서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성체성사(聖體聖事)논쟁' 이란 것이다. (거룩한 몸(성체)을 받는 거룩한 일(성사), 즉 성찬식을 말함)

다음은 챨스황제의 질문인데, (옛날 남의 동네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1) 신앙의 눈으로 볼 때,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 떡과 잔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인가?
2) 성찬식에서 사용한 떡과 잔이,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살과 피와 동일한가?

황제가 이렇게 물었을 때 라트람누스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을 해서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떡과 잔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주장을 했는데, 즉 화체설로서, 본체가 바뀐다고 했다는 것이다.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여기에 싱크만 등이 반박하기를, 성찬식을 인도하는 신부의 기도와 말씀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파스카시우스는 신앙의 눈으로만 보인다고 했고 말이다.)

◈ 이런 미신 짓거리를 왜 계속해서 붙드는가?

그러자 라트람누스가 반박하기를, "성만찬 이후에 남아있는 떡과 포도주는 어떠한가? 역시 바뀌는가? 그리고 이미 우리 몸 속에 들어온 피가 예수님의 피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피인가?"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들은 성찬식 이후에 남은 포도주를 자신들이 다 먹었는데, 그래서 하루종일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취해있고 말이다. (개신교에서도 남은 것을 땅에 묻었고 말이다.)

제가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이런 짓거리는 그야말로 완전히 미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야기하기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을 사용해서, 즉 형상(속성)과 실체로 나누었는데, 떡과 잔이 성찬식 이전이나 이후에 똑같은 속성이지만, 그러나 실체는 성찬식 이후에 바뀌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여기 노무현 대통령이 있는데, 이 노무현이라는 것은 속성이고, 그의 피부색깔이나 키, 신장, 위 등은 모두 다 실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 실체는 늙어가지만, 그러나 노무현이라는 속성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에 있어서 물질적인 부분은 형상(속성)인데, 이 속성은 성찬식 이전이나 이후에나 그대로 있지만, 그러나 실체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살과 피는 달라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체는 말이다.

◈ 성찬식만큼 구원에 확신을 주는 게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미신적인 인상을 주면서도 강하게 주장을 하는고 하면, 교인들에게 있어서 미사의 참여 여부가 구원의 결정적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즉 인간이 구원받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먹고 마시는 것으로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보다 더 분명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해서 라트람누스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 만찬 때 이야기하는 것은 상징이라는 것이다. 나중 종교개혁 때는 쯔빙글리가 그렇게 주장했고 말이다. 이 부분은 라트람누스가 종교개혁자들보다 더 과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파인 파스카시우스는 말하기를, "성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반복하는 것으로, 성찬을 베풀 때마다 구세주는 고난 당하시고, 또 다시 희생당하여서 죽는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예수님은 얼마나 바쁘겠는가? 여기서 죽고 저기서 또 죽고 말이다.

◈ 라트람누스 - 예수님은 상징적으로 임하신다 !!

여기에 대해서 라트람누스는 말하기를, 예수님은 사실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임하시는데, 그렇다고 예수님이 성찬에 임재하심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오직 신앙의 눈으로만 인지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말은 실제로 임재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상징적으로 임한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임하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예를 들어서, 태극기를 한번 이야기해보자. 이 태극기가 곧 우리나라인가? 당연히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펄럭이는 깃발이란 말이다. 그러나 태극기를 짓밟으면 대한민국을 모독하는 것이 되니, 이것이 바로 상징이란 것이다. 태극기는 그냥 일반적인 천으로 되어 있지만, 그러나 국가의 아이콘이 들어있기에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천이 대한민국으로 변하는가? 그 천 안에 수 천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그 많은 집들이 다 들어있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태극기는 상징과 상관 없이도 여전히 펄럭이는 천이란 말이다.

◈ 역시 결론은 제국의 질서와 안녕 !!

그런데 이렇게 라트람누스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만찬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셨다" 라고 교회에서 이야기해버린다면, 그 당시 교회가 어떤 곤란에 빠지겠는가? 교인들은 여기기를, 이제는 교회가 아닌 집에 와서 예수님을 생각만 해도 되니까, 즉 "성찬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구원받는데는 상관없다" 라고 하는 인식이 팽배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 미사의 권위가 추락하고, 신부의 권위가 추락하고,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고, 결국은 교황이 안수해서 세운 황제의 권위가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의 입장에서는 교황이 아닌 하나님께서 황제를 세웠다고 보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에는 온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신학적 논쟁은 언제 일어난다고 했지요? 배가 부를 때, 안정권에 있을 때 여당과 야당으로 갈려서 논쟁을 하고 서로 다툰다는 것이다. 그러니 라트람누스와 같은 주장을 당연히 싫어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들은 안정기에 있었기에 말이다.

◈ 영혼 - 그대 이름은 딜레마 !!

이제는 영혼에 관한 문제인데, 이것이 나중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나오는데, 사실 이것이 어려운 문제인데, 토마스 아퀴나스도 해결하지 못했고 말이다. 여기서 먼저 영혼에 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

"영혼이 자립적 실체라면 육체가 필요하지 않게 되고, 이에 반해 비자립적이라면 영혼이라는 특수한 하나님의 지성적인 것이 육체의 지시를 받게 되기 때문에, 즉 육체와 결합되기 때문에 영혼이 불멸하지 않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면 영혼이 소멸한다고 봄)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영혼 자체가 주체가 되면 천사와 같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굳이 육체를 만드신 이유가 모호해진다. 그러니 영혼은 독립적 주체이긴 하지만 개별적 주체자는 아니다. 즉 영혼은 독자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육체 없이 존재할 수 없기에, 영혼은 다시 육체를 그리워한다."

언뜻 들어보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이렇게 되어버리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고 하니, "죄 문제가 어떻게 성립이 되는가?"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기 전에, "인간에게 어떻게 영혼이 생겼는가?" 라는 질문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이 유전되었는가, 아니면 분배받았는가, 아니면 창조되었는가?" 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 어거스틴 - 아담의 영혼이 우리에게 전이(轉移) !!

어거스틴은 조상(아담)의 영혼이 우리에게 전이(轉移), 즉 유전되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창조되었다고 보았는데, 왜냐하면 영혼은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영혼이 전이가 되면 이런 개별성이 떨어져서 다른 사람과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똑같은 영혼이 되어버리면 그 사람의 벌이 똑같이 자기에게도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되니, 영혼은 각자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혼은 따로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 !!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이 죄도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되니, 이것도 역시 딜레마라는 것이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5분 휴식 !!

교재가 있었으면 같이 하나씩 살펴보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주께서 그냥 하라고 하면 할 수 없고 ...

(사실은 교재 없이 하는 것이 이해하기 더 좋음 - 녹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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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