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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5 교회사 3강 - A자유게시판이사야

2005 교회사 3강 - A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3)

교회사 3강 - A
05,10,29 강의 이근호

◈ 313년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으로 교회는 황제중심으로 !!

초창기에 교회는 주님중심이 아니라 황제중심이었는데,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갑자기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주님께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황제에게 잘 보여야 된다는 것이다. 황제가 통치하는 세계이니 말이다. 그래서 황제가 인정하는 황제와 같은 종교를 가짐으로 말미암아서, 자기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마치 유행처럼 교회에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치 요즘 연예인들처럼 말이다. 우두머리에게 잘 보여야 한 자리라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로마제국 통치하기 위해서 백성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하나로 수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말이다. (그래서 황제는 적극적으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 지도에서 [스페인, 이태리, 마케도니아, 터어키, 소아시아,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칼타고, 아프리카, 영국, 갈리아, 서바나]가 나오는데, 로마제국이 북쪽 칼타고까지 다 점령해 있었다는 것이다. 북쪽의 게르만 민족은 그냥 그대로 있었고, 또 흑해가 이렇게 있고 말이다.

로마제국에 있어서,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에 그대로 있지 않고 터키의 이스탄불로 옮기는데, 그래서 그 지명이 '콘스탄틴노플'로 고치게 되는데, 그리고 맞은 편에 칼케톤이라는 지역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두 곳을 합쳐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로 부르지만 말이다. 나라 전체를 이렇게 동쪽으로 옮긴 것을 '비잔틴 동로마제국'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시작하면서 언급했지만, 313년 황제가 칙령으로 기독교를 승인하게 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황제의 관심사는 당연히 국가의 질서가 안정되는 원한다는 것이다. 교리가 어떻다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교회가 서로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황제가 공회의 주도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

교재 2페이지에 보면 이것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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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의회 시대
역사적으로 성경은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 이미 교회회의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회의 기원은 전통적으로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에 기록된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였다. 하지만 이후 약 300년 동안 교회는 공의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지난 2000년 동안 모두 21번의 공의회가 카톨릭 위주로 모였다.

1회 325년 니케아 회의: 아리우스 정죄
2회 381년 제 1회 콘스탄티노플 회의: 아폴리나리우스주의의 정죄
3회 431년 에베소 회의: 네스토리우스파의 정죄
4회 451년 칼케돈 회의: 유티케스주의의 정죄
5회 553년 2회 콘스탄티노플 회의: 단성론자 정죄
6회 680-681년 제 3회 콘스탄티노플 회의: 단의지설을 지지하는 교황을 파문시킴
7회 787년 제 2회 니케아 회의: 성상파괴 논쟁
8회 869-870년 제 4회 콘스탄니노플 회의: 포티우스 분리문제
9회 1123년 제 1회 라테란 회의: 성직자 서임권 논쟁
10회 1139년 제 2회 라테란 회의: 이중 교황의 분열 종식
11회 1179년 제 3회 라테란 회의: 교황 선거법
12회 1215년 제 4회 라테란 회의: 발도파와 십자군
13회 1245년 제 1회 리용 회의:프리드리히 2세의 파문
14회 1274년 제 2회 레용 회의: 동서 교회 연합
15회 1311-1312년 빈 회의: 템플 기사단 문제
16회 1414-1418년 콘스탄츠(현 스위스 지역) 회의: 교회의 개혁과 후스의 처형
17회 1438-1439년 펠라라/피렌체 회의: 동방 교회와의 통합 문제
18회 1512-1517년 제 5회 라테란 회의: 교회의 개혁
19회 1545-1563년 트렌트 회의: 신교문제와 교회 개혁
20회 1869-1870년 제 1회 바티칸 회의: 교황무오설
21회 1962-1965년 제 2회 바티칸 회의: 교회와 신앙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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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교리 - 교회의 주도권 다툼으로 발생 !!

제1회 공의회인 니케아 회의 때부터 초반기 칼케톤 회의 등등, 이렇게 계속해서 진행되면서 회의를 누가 주도하는고 하니, 교회가 아니라 황제가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회의를 황제가 주도하는 이유는, (교리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교리문제로 싸우면 나라꼴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제가 주도해서 하는 말이, "교회 너희들끼리 교리 싸움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그냥 서로 마음을 합쳐라" 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합칠 때에, 황제는 교리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회의에 참석한 자들이)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회의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황제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정치적인 공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삼위일체교리' 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 교회 안에는 여러 종류의 파(派)들이 있었는데, (시장에 내다 파는 대파 말고, 마치 서울에 강남파와 강북파가 있고, 대구에는 근호파가 있듯이 말이다. 실제로 그런 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교회 내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던 파가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로마파, 알렉산드리아파, 안디옥파, 콘스탄티노플파, 예루살렘파, 이렇게 5파가 상당히 서로 세력을 장악하면서 대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325년 니케아 공회 이전에 황제의 주도하에 말고도 교회에 회의들이 있었는데, 교회끼리 회의가 있었다 것이다. 그 하나가 "부활절을 언제로 정하는가?" 라는 것이었는데,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 당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다음날로 할 것인가?" 라고 문제였다는 것이다.

◈ 도나투스파 논쟁 - 변절자가 주관하는 성찬식은?

그리고 두 번째는 '도나투스파'와의 문제였는데, "박해를 받던 시절에 변절한 놈들이 박해가 끝나고 난 다음에 윗 선에 아부를 해서 주교가 되어서 주관한 성찬식은 무효인가, 아닌가?" 라는 것이다. 그러니 도나투스와 같은 사람은 화가 나서 주장하기를, 그런 변절자가 주관하는 성찬식은 무효이니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찬식이 무효라는 말은, 그냥 성찬식 문제가 아니라, 터툴리안의 주장에 따르면, 성찬식에서 천당가는 구원의 능력이 나오니 그러니 결국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나투스의 주장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성결에 기초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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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나투스 [Donatus] - 카르타고의 주교(?~355). 교의를 엄격히 준수하였으나, 박해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교회를 버린 자파(自派) 사람들에게 재세례(再洗禮)를 받게 하여 로마 교회에서 이단시되었다.

※ 도나투스파 [Donatus派] - 4세기 초기에 북아프리카 기독 교회에 출현한 교파. 교회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반대하고 철저히 종교적이어서 참회의 삶과 순교를 주장하였으며, 7세기까지 존속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쇠퇴하였다. (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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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서로 다투고 했을 때 황제의 입장은 무엇인고 하니, 그 회의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즉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왜 내 나라에서 시끄러운가, 같은 예수를 믿으면 그만이지 왜 서로 싸우는가?" 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 1차, 2차, 3차로 계속해서 진행되는 회의의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 "교회 지도자끼리 싸우지 말고 정치적으로 타협을 하라" 라는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공의회와 연관된 그 당시에 유명한 삼위일체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느 파가 정치적인 술수를 멋있게 사용했는가를, 바로 그러한 술책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써먹고 안 먹고는 여러분의 자유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나중에 황제가 국가내의 소란방지를 위해서 중재안을 내고 타협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주도권을 쥐게 된 주교급들, 즉 막강한 세력을 가진 로마 주교들이 도리어 황제를 압박하고 굴복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리적인 것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그러한데, 자기들 교구에서 주장하는 교리가 무조건 옳다고 인정해달라는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황제의 입장에서는 범을 키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 삼위일체논리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했는가?

이번 시간에는 "삼위일체논리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했는가?" 하는 그 과정을 지금부터 살펴보겠는데, 교재 23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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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위일체 논쟁의 시작 - 기원전 1세기부터 1세기 중엽에 걸쳐 필론(Philo)(B.C.20년경)이라는 자가 등장해서 헬라철학과 유대교라는 양대 사상을 연결하려 했다. 즉 헬라철학과 유대교 사상은 동일한 진리의 다른 표현들일 뿐이며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진리명제의 문자적 의미와 우화적 해석을 내세웠다. 여기서 그는 신은 인격적이면서도 동시에 절대적으로 초월하시기에, 제 2신에 해당하는 중재자 개념을 제시했다. 필론은 그런 중재자로서 '로고스'를 말하는데 이는 지성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신에 의해 창조된 것들 중에서는 로고스가 가장 고귀하고 서열상 최상이지만 여전히 신보다는 열등하게 위치되어진다. 이처럼 플라톤과 그의 후배들에 의해서 신론이 이런 식으로 흘러오는 상황에서 기독교의 성육신 교리가 철학적으로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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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논쟁의 시작은 기원전 1세기부터, 즉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유대교의 '필론' 이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예수님이 아닌 (태어나기 이전이니까) 유대교의 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신은 인격적이면서 절대적으로 초월하기에 제 2신에 해당하는 중재자 개념이 필요하다" 라고 말이다.

이 필론은 주장하기를, 유대교에서는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하니, 구약의 하나님은 인간이 감히 찾을 수가 없고 바라볼 수도 없는 초월적이신 존재이면서도, 또 구약의 하나님은 마치 인간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 - '로고스' 개념이 반드시 결부 !!

그러니 초월적 하나님과 인격적인 하나님이 지상에 오셔서 이 지상에 있는 인간들과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 연결하는 중재자로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바로 '로고스' 라는 것이다. 이 로고스라는 아이디어가 니케아, 콘스탄틴, 에베소 회의 등 계속되는 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성을 설명하는데는 이 '로고스' 라는 개념이 반드시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제 2회 콘스탄틴노플 회의(381년) 때에 '아폴리나리우스' 라는 사람을 정죄하게 되는데, 알렉산드리아 신학은 로고스로부터 시작하는데 아폴리나리우스는 이 로고스가 육이 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동방 신학인 콘스탄틴노플에서는 로고스가 육이 아닌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고스가 육이 되었나, 사람이 되었나?" 라는 것을 다룬 것이 바로 제 4차 칼케톤 회의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 3차 에베소 회의에서부터 계속해서 이어졌고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 "사람은 육과 영혼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로고스가 육이 되면서 영혼을 로고스가 대체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영혼이 없고 로고스가 그 자리를 대신해서 차지한다" 라는 것이다.

◈ 동방신학 - 로고스가 육이 되었다 !! 서방신학 - 로고스가 사람이 되었다 !!

그리고 제 4회 칼케돈 회의(451년)에선 유티케스주의를 정죄하는데, 이 유티케스주의가 무엇인고 하니, 아폴리나리우스가 주장한 것이 더 극단적으로 가서, 예수님의 신성이 인성을 점령해버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성(性), 즉 신성만 있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있지만, 두 개의 성이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성인 신성으로 귀결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티케스의 주장이고, 아폴리나리우스의 "로고스가 육이 되었다" 라는 사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알렉산드리아(서방) 신학에 반해서 동방신학에서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둘이 서로 혼합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고 신은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육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영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방신학은 로고스가 사람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서방신학은 로고스가 육이 되었다고 하고 말이다.

그러니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까, 로고스가 육이 되든 사람이 되든 항상 그 초점은 "로고스가 무엇인가?" 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 이야기에 로고스가 왜 자꾸 들어오는가? 요한복음 1장에서 나오기는 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로고스와 저들의 로고스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 하필이면 왜 '로고스' 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로고스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된 원인이, 그런 아이디어가 어디에 있는고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유대교 신학 속에 이미 '로고스' 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격적인 하나님이 인격적인 인간과 교제하려면 '로고스' 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인간적인 합의의 바탕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재 25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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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학파의 경우, 로고스 사상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서 신학 초기의 핵심적 주제였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사상을 뼈대를 제공하는 가교로 간주된다.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실재의 보편적 법칙'을 의미하던 로고스가 스토아 학파에서는 '만유에 내재하는 신적 힘'을 뜻하는 데까지 확장됨으로서 신관 구성의 핵심 개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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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필로의 로고스 사상이 최초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본 대로, 이보다 2,3백년 전에 이미 스토아 학파에 나온 것으로, 이 로고스 사상을 더욱더 증폭시킴으로서 신약초기의 회의주제였든 삼위일체와 기독론 사상의 뼈대를 제공하는 그러한 가교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스토아 철학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예수님 훨씬 전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 이미 B.C. 2,300년 전에 스토아 학파에서 '로고스' 이론이 등장 !!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토아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의 '실제 보편론'에 의하면,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 신이 어떻게 다양한 사물을 만들어내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이것을 로고스 이론으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영지주의를 하면서 했는데 기억이 좀 나십니까?)

이 스토아 학파에서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들은 로고스를 만유에 내재하는 신적인 힘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고 하면, 인간 하나 하나에 다 로고스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 하나 하나에 다 로고스가 들어 있다는 것인데, 은폐되어 있는 로고스가 비 은폐로 파생이 되면, 그것은 곧 인간 하나 하나의 로고스가 말이 되어, 즉 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각자각자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이죠. '말하기 말씀' 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은, 사람은 다른 짐승과 달리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신적이 요소가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그런 신적 요소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즉 은폐가 되어있는데, 그 은폐되어 있는 신적 요소가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나게 드러나는데 그것이 바로 '말' 이란 것이다. 그러니 로고스는 나타나면 말씀이 되고, 안 나타나면 로고스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아주의는 자기 속에 있는 신적인 요소에, 즉 자기 내부에 있는 신적 음성에 순종하고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마치 오늘날 성령에 이끌려 살아갈 것을 주장하는, 그런 것과도 인식틀이 똑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2,3백년 전에 이미 이런 인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 유스티누스 - 철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

그래서 유스티누스는 "철학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했는데, 그들은 다만 구체적으로 예수를 몰랐을 뿐이지 사실상 그리스도인이란 것이다. 지난 시간에 했는데 기억이 나세요? 오늘날 천주교가 주장하는 칼 라너의 '익명적 그리스도인' 과도 비슷하다고, 또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모든 인간에게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과,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다 부처가 있다는 불교사상과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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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편적 로고스에 의한 참여 사상에 신론을 통해서 주입이 되어버리면, 스토아주의의 만인평등사상은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은 신의 자녀라는 기독교의 인간관과 혼합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스토아 학파의 운명주의적 신의 섭리론은 나중에 예정론의 내용을 가득 채우게 되는 정신적 토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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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토아 학파의 만인평등주의가 모든 인간은 신의 자녀라는 기독교 인간관과 혼합이 되어버리고, 또 스토아 학파에서는 모든 것이 로고스에 의해서 발생되었는데, 그런데 문제는 나중에 이런 스토아 학파의 섭리론이 (교회에서 말하는) 예정론과 결합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교회 안의 걸림돌을 제거하라 !!

그렇다면 이러한 철학에서 나온 것들이 기독교의 교리와 만날 때에 어느 쪽이 걸림돌이 되겠는가? 즉 기존의 로고스 사상을 기독교가 받아들일 때 저쪽 철학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기독교 안에 있는 어떤 사상들이 걸림돌에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가 불교교리를 받아들이려할 때 기독교의 어떤 교리가 걸림돌이 되어있으면, 불교의 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쪽의 교리를 제거하면 불교인들이 '와' 하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걸림돌이 날아갔다는 말이다.

이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학자의 하는 일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하나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 그들이 납득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고,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목회자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는 짓들이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걸림돌 - 어떻게 '중재자'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걸림돌인가? 어떻게 '중재자'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예수님이 죽을 수가, 어떻게 신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신은 죽지 않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 서방신학 - 십자가를 도덕적인 죄의 문제로 해결 !!

이러한 십자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고 하니, 서방신학인 로마의 터툴리안 같은 경우에는, 도덕적인 죄의 문제로 이 십자가를 처리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기에 로고스인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고, 그래서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이다.

◈ 동방신학 - 중요한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 !!

그러나 여기에 비해서 동방신학, 즉 안디옥 신학의 이레니우스와 같은 신학자는 무엇이라 말했는고 하니, 십자가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고, 즉 이 십자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다시 한번 더 정리하면, 동방신학은 "로고스가 사람이 되었다" 라고 주장했고, 서방신학은 "로고스가 육이 되었다"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동방신학에서는 왜 로고스가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첫째 아담의 불신앙을 극복하기 위해서 둘째이자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그래서 극복을 하셨기에 그까지 것 인간의 죄나 십자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존재론적으로 인간 자체를 바꿔치기 하는 것이지, 사람들이 몰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실수였다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실수이듯이 말이다. 이것이 동방신학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방신학의 이레니우스나 오리겐 등은 인간회복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회복을 통한 세상회복인데, 마치 윗치만 니의 지방교회 계통이고, 통일교 계통처럼 말이다. 비록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성도는 부족하지만 그 성도 안에 로고스가 들어 있는 이상은 얼마든지 행복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터툴리안은 주장하기를, 인간들이 도덕적으로 잘못을 하고 그래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올바른 생활하도록, 즉 도덕적으로 깨끗한 생활을, 경건한 생활하도록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하는 사람을 성도라고 할 수 있지,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을 성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철학의 로고스 사상을 버리지 못하면 둘 다 꽝 !!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동방이나 서방이나 둘 다 십자가 근처에도 못 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로고스 사상 때문인데, 그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그 로고스 사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 헬라철학의 로고스 - 분여(分與)의 임무를 띠고 !!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로고스란 것이 무엇인가? "신은 한 분인데 어떻게 만물은 각양 각색인가?" 라는 것이다. 즉 어떻게 하나에서 다양한 게 나오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무엇인가 다양하게 분배해주는, 이것을 '분여(分與)' 라고 하는데, 뭔가를 집어넣는다는 말이다. 즉 하나로부터 충실하게 임무를 받으면서도,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집어넣을 수 있는, 위에서 내려오는 어떤 요소가 분명하게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로고스' 라는 것인데, 물론 고대 그리스(헬라) 철학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아직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이니 이러한 로고스 개념은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야 신의 하나임과 만물의 다양함이 합리적으로 납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겁나게 똑똑하지 않은가?)

◈ 다신론(多神論)도 결국에는 하나의 신(神) !!

이런 철학이 있기 전에는 다신론(多神論) 개념이었는데, 그때는 여러 종류의 신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러한 신의 대표가 제우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인간 이성으로 생각을 해보아서 다신론은 다 때려치우게 되었고, 아무튼 신은 하나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이 많다고 하는 것은 그 신을 누군가 낳던지 해서 만들었다는 것인데, 결국에는 그 신을 만든 것은 하나라는 것이다. 즉 여러 신이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하나라는 말이다. 하나에서 다수가 나왔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영지주의를 공부했는데, 그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신이 이 지상에 피조세계를 만들어놓고, 그 피조세계에다가 신에게 올라가는 에이온(계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점점 갈수록 마음의 깨달음이, 즉 인간의 지혜가 오면 해탈의 경지가 되는데, 그렇게 한 단계 두 단계 점점 올라가서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초대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이 로고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로고스를 이렇게 설명하니 문제가 무엇인고 하면, 여기서 교재 25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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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전능한 동시에 지선(至善)하다면 이 세계에 도무지 악이란 있을 수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신의 두 속성이 양립하는 것은 모순이므로 하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이 전능함에도 악을 허용할 만큼 지선하지 않거나 반대로 지고의 선이기는 하지만 악을 폐기할 만큼의 능력을 지니지 못하는, 그야말로 신의 권위가 결정적으로 도전 받는 상황을 상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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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전능한 동시에 최고의 선이라면 도대체 이 세상에 악이 없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에게 (선과 악의) 두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이므로 하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어거스틴 - 악은 선의 결핍 !!

여기서 어거스틴은 악을 포기하는데, 즉 악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악이 있다고, 즉 악과 선이 대립한다고 본 것은 어거스틴이 개종하기 이전에 몸담고 있었던 '마니교' 이고 말이다. 마니교는 선과 악의 대립이고, 어거스틴은 악이 없다고 보는데, 이 악은 선의 결핍이라는 것이다. 선이 잠시 빠져나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집어넣으면 언제든지 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악은 없고 선이 있음' 인데, 이렇게 '선이 있음' 인데, 그러다가 '어, 선이 빠져 있네' 라고 하면서, 여기에 선하신 예수님이 들어와 버리면 악도 선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 십자가도 무시하는 맞춤교리 !!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십자가의 의미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십자가의 의미는 초대교회가 시작하자마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사도바울 이야기 후에 곧바로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주위에 깔려있는 로고스 때문에 그렇고, 기존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는 맞춤신학을 하다가 보니 '십자가' 라는 걸림돌은 참으로 그들에게 걸림돌 그 자체라는 것이다. (물론 원래 십자가가 걸림돌이니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도 있고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서방교회는 십자가를 도덕적인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변질시키고, 동방교회는 "그까지 꺼 대충 대충 넘어가지 뭐, 십자가는 어차피 에피소드인데"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원한다" 라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들이 정녕 귀머거리인가?) 그게 아니라 몰려오는 사람들을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교리라고 하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데, 사람들의 입맛에 맞고 납득이 되는 쪽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재 22페이지를 보면, 거기 '공의회 순서' 중에서 "제6회 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680-681년): 단의지설을 지지하는 교황을 파문시킴" 이라고 되어있는데, 단(單)의지설, 즉 예수님은 의지가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교황이 그만 황제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 공의회의 주도권은 황제에게 !!

그러니 여전히 제1회 니케아 회의부터 중요한 것은 황제의 정치력 때문에 교회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에 전혀 상관없이,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마구 작살내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의에 참여하는 주교들도 교리보다는 황제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따라서 아부와 정치적 권모술수를 부리면 된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키릴'은 공의회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진짜로 웃기는(?) 이야기인데,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는 문제로 모인 제3회 에베소회의이지 싶은데, 반대파들이 오기 전에 먼저 회의를 열어서 결정을 다 내었다는 것이다. (이때 막대한 뇌물을 황제에게 바쳐서 그만 알렉산드리아 교회재정이 바닥나고 말았는데, 황제를 꼬드겨서 일부로 회의날짜를 촉박하게 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뇌물까지 주면서까지 승리를 하려고 하는가? 승리를 해야만 5개의 파벌 중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회 니케아 회의는 "주도권을 누가 쥐는가?" 라는, 즉 누가 선점을 하느냐는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도권을 쥐고 나면 무엇을 하는가? 제1회인 니케아 회의에서 로마교회가 주도권을 쥐고 난 후에 모든 공의회는 "니케아 회의는 무류(無謬)하다" 라고 하는, 즉 오류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나 에베소 회의, 그리고 칼케돈 회의 등등, 모든 회의들은 이 니케아 회의가 옳았다고 하는, 니케아 회의에 대해서 박수를 치고 그 내용을 다시 확정짓는 회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동방교회에서도 지지 않으려도 달려들었고 말이다.

그래서 (반대파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키릴이 꼼수를 쓴) 제3차 에베소회의를 '강도회의'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치 강도와 같은 짓을 해서라도 회의의 주도권을 강탈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자기들만의 회의였고, 그 반대인 네스토리우는 따로 모여서 서로를 정죄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 황제가 대통령, 교회가 여당, 야당은 동방교회 !!

하나의 통일된 로마제국 앞에서 하나의 통일된 교회가 있다 보니, 그 교회의 교권을 쥐는 것은 정신적인 로마의 황제가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도권을 가져야만, 이런 정신적 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야만, 즉 힘이 세야만 전세계에 마치 점 조직처럼 흩어진 교회에 주교급을 파견할 때 권력을, 즉 파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황제가 대통령이고, 교회가 여당이고, 여당 내의 야당은 동방교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6회 3차 콘스탄틴노플회의를 마치고 나면 '쫙' 분리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서로가 "잘먹고 잘 살아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아리우스 - 예수님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

여기에서 처음회의인 제1회 니케아 회의를 살펴보면, 이 니케아 회의는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 라는 사제의 주장 때문에 소집된 것인데, 그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흔히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물론 맞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어버리면 하나님이 둘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했듯이) 유대교에서 말하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완성이 바로 기독교인데, 구약에서 약속한 것의 완성이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여호와 한 분이었는데, 그런데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면 신약에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신약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두 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기존의 하나님과 예수님인 하나님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하나님과는 서로 차별을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라면, 신약에서의 하나님은 물론 하나님이지만 약간은 격이 떨어지는 그러한 하나님이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그러니 아버지만 있고 아들이 없었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버지와 동시에 태어날 수 없기 때문에, 즉 아들이란 아버지가 있고 난 뒤에 있는 것이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없었든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없었다고 하는 것은 무(無)인데, 그래서 예수님은 무(無)로부터 유(有)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없는데서 생겨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이 오셨는데, 그분은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을 낳은 분이라는 것이다.

이상이 아리우스의 주장인데, 그의 중요한 주장을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첫째로, 구약의 하나님이 한 분이듯이 하나님은 둘이 될 수 없다. 둘째로,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닌가?" 라는 문제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맞기는 맞는데, 구약의 하나님을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낮은 단계의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로,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아들인데, 여기 아들이란 말은 아버지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아들이란 말을 하겠는가? 이렇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낳으셨다고 하면, 낳기 이전 예수님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낳은 이후에는 예수님이 (계속해서) 계셨고 말이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주장에 대해서, 그가 옳지 않다고 코르도바의 '오씨우스'가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인기 있는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를 반대하는 주장을 계속해서 했고 말이다. (그래서 흔히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간의 논쟁으로 보는 것이다.)

◈ 니케아 회의 - 아리우스 Homoiousian : 아타나시우스 Homoousion !!

앞서도 말했지만, 이렇게 논쟁할 때 300여명이 모였는데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아리우스는 성부와 성자를 '유사본질(Homoiousian)' 이라고 이야기했고, 거기에 대해서 아타나시우스는 '동일본질(Homoousion)'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본질이 같다고 말이다. 이렇게 예수님과 하나님은 동일본질이라고 말함으로서,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본질적으로 한 분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로부터 그냥 나셨다고 공회의는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케아 회의 때 성자의 신성에 대해서 논쟁이 되었던 부분이라는 것이다.

◈ 황제의 관심 - 진리가 아닌 오로지 제국의 평안 !!

여기에 대해서 황제는 어느 편인고 하니, 누구 편이 아니라 아리우스든 오씨우스든 둘이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도권이 동방교회(아리우스)에서 서방교회(아타나시우스)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서방교회가 황제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서방교회 편을 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황제는 유사본질이나 동일본질의 뜻도 잘 모르고, 황제에게는 그러한 용어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쨌든 같은 제국 안에 있는 종교가 서로 싸우면 안되고 사이좋게 타협해서 잘 지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타협하는 동시에 주도권은 서방교회가 가져가게 되었고 말이다.

10분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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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

* 답변 - 그것이 바로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인데, 이런 주장이 왜 나오는가 하면, 그것은 다음 시간에 공부하겠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공의회가 개판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떻게 황제에게 잘 보이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지, 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가들이 그렇게 설쳤다는 말이다. 이 공의회를 주도하는 것은 교황이 아니고 황제인데, 이 황제의 관심은 오직 나라의 안정이지 말씀이나 교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 질문 - ???

* 답변 - 말씀이 곧 예수님인데, 동방에선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 라는 것이다. '육'이 아니라 말이다. 이것이 칼케톤 회의에서 나오는데, "예수님이 곧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즉 로고스가 곧 사람이라는 말이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로고스가 예수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 라고 하면 결합하는 의미가 되는데, 그게 아니라 "로고스가 곧 사람이다", "로고스가 곧 예수님이다" 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 이라고 할 때는 육이 아니란 말인데, 만약에 육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육(육체)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혼이 없어지고 로고스가 그 빈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방신학에서는 로고스와 사람이 결합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에 그대로 있고, 즉 신성은 그대로 있고 인성이 내려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인성은 영혼도 있고 육체도 다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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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우스주의(Arianism) - 야후 블로그에서
정확한 의미로는, 아리우스주의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였던 아리우스의 기독론을 말한다. 이 이론은 325년 제1차 니케아회의에서, 또한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정죄되었다. 이 견해와 이어지는 논의들은 반세기 이상 로마제국을 흔들었으며, 더욱 나쁜 것은 교회를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아리우스의 견해는 얼마 안 되는 그의 저작의 단편들과 그의 반대자들의 저서들을 통하여 재구성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논증을 요약해 보면, 유일하신 아버지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고, 태어나지 않으시고, 영원한 통일체(Monad)이시기 때문에, "독생하신 아들"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 통일체에서 나온 종속적이고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아들, 혹은 로고스의 이 열등함과 종속성은 "아들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아리안주의의 공식으로 잘 표현될 수 있다. 아리우스는 아들을 다른 피조물과 같은 무상한 한 피조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이 본질적으로 신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로고스는 완전히 하나님도 아니고 완전히 피조물도 아닌 일종의 중간적 존재로 간주되었다. 반아리안주의자는 이 이론은 구원을 반신, 반피조물에게로 돌린다고 믿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회의를 소집하였다. 대단히 긴, 그리고 때로는 다툼을 동반한 토론 끝에 다수가 동의하는 신조가 만들어졌다. 그 신조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 혹은 존재를 가지신(HOMOOUSION)" 분이시며,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된 하나님"이시라고 언명하였다. 엄격한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동일본질(HOMOOUSION)'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신조에는 "아들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거나 "영원하신 아들은 피조물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저주(anathema)가 붙어 있었다. 아리우스와 두 동료는 이 신조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므로 출교되었고, 황제에 의하여 추방당하였다. 몇 년 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아리안주의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336년에 이르러는 아리우스는 교회와 교회의 정통적인 지도자들과의 친교를 회복하였으며,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추방당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는 자기들의 기독론적 입장을 다음의 세 가지로 발전시켰다: (1) 아노모이안(Anomoean): "비유사"라는 뜻의 헬라어에서 온 말로서 아들이 아버지와 같지않다고 주장, (2) 호모이안(Homoean): "유사하다"는 뜻으로, 아들이 아버지와 유사하다고 주장, (3) 유사본질(Homoiousian): "본질에 있어서 같다"는 뜻으로, 아들이 그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같지만 존재에 있어서는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아리안주의 황제인 콘스탄티우스가 죽은 후 아타나시우스는 유사본질주의자(Homoiousian)와 동일본질(Homoousion)을 주장하는 정통주의자들을 화해시킬 수 있었고, 이는 니케아 신조를 재확인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아리우스주의"라는 말은 역사적 상황에서 생겨난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그 의미가 일반화되어 로고스를 성부에 종속시키는 제 기독론을 가리키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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