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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71002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성령 녹취자유게시판요한복음

20071002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성령 녹취

이름 : 한윤범(IP:59.6.189.149)

20071002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성령

(강의:이근호 목사)

이번 시간에 요한복음, 요한사상 다 떼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이런 이야기했어요. 참, 중요한 말했는데 공관복음에서의 믿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적어 볼게요. 뭘 믿느냐? 믿음. 무엇을 믿는다. 무엇을, 무엇을 말이야. 공관복음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이 역사 속에 침투한 걸 믿는다. 이 용어가 더 적당하지요. 침투한 걸 믿는다.

뭔 뜻이에요? 세상 나라가 그대로 있어요. 우발적으로 우발성 있게 뭔가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듯이 뭔가 금이 갈라져요. 균열, 들뢰즈 철학에 나옵니다. 균열, 금, 크랙크. 이 금이라는 이 개념이 들뢰즈 철학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차지하는데, 금이 갈라진 것. 참고로 이야기해 볼까요? 유기물하고 무기물하고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답변에 보세요. 무기물, 유기물? 유기물에 있지요. 들뢰즈는 그래 보지 않고, 무기물이 갈라질 때 무기물이 금이 갈 때 금이 갈라지게 하는 그게 생명이다. 갈라지게 하는 그 힘.

그래서 사실은 무기물이라 하는 것은 뭐와 동일하다? 한시적으로 유기물이지 사실은 무기물인데 생명은 어디 있는가? 금 가게 만드는 그 힘, 그게 생명이다. 말 되잖아요. 그래서 교회는 무슨 체다? 유기체다. 말 안돼. 거짓말이에요. 잘못 된 거예요. 교회의 생명은 유기체에 있는 게 아니고, 교회의 생명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있어요. 왜냐하면 교회는 일곱 개의 촛대를 옮길 수 있는 그 능력이 있어야 그게 생명이에요.

그렇지 않고 교회가 유기체다 하면, 교회 자체에 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까? 생명이 보존 돼 있는 것처럼 느끼잖아요. 보존되어 있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라는 거죠. 보존된 것을 떠나게 만들 때 떠나게 만드는 그 주체가 바로 생명이라는.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는다. 하여튼 그런 게 있어요. 마찬가지로 그래 하는데.

이 세상이 지금 공관복음에서 뭘 믿습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이 침투한 걸 믿는다 하지요.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 세상이 그대로 있습니다. 없어진 그대로 있어요.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침투하지요. 침투하게 되면 여기서 뭐가 일어나느냐 하면, 반발이 일어나지요. 기존에 마귀가 가만있지 않지요.

그래서 공관복음에서 예수님이 뭘 물리치게 한다? 사탄의 일을 또는 귀신을 축출한다. 사탄의 일을 멸하고 마귀를 쫓아낸다. 그럴 때 그걸 믿는 것이 믿음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믿음이 뭐냐 하면, 겨자씨 하나 믿음이 있으면 나무가 뽑혀서 바다 빠지고 또 산이 들려서 하지요. 이게 뭐 자체냐 하면, 균열 아닙니까? 이 세상 자체가 균열이잖아요. 흔들리고.

그런데 그거 믿으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지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이 뭘 믿느냐? 예수님 자체를 믿는 걸 믿음이라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이 믿기 더 힘들어요? 예수님이 더 믿기 힘들지요. 왜? 예수님이 지금 무슨 영광입니까? 무슨 영광이다? 초라한 영광. 하나님의 영이 침투할 때는 무슨 영광입니까? 놀라운 기적이죠. 어느 게 더 믿기 쉽습니까? 기적을 믿기 쉽죠.

하지만 믿기 쉽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거지만 예수님이 지금 초라하잖아요. 초라한 놈을 어느 놈이 믿습니까? 초라한 사람인데. 거지를 누가 믿어요. 권정생을 누가 믿습니까? 아무도 안 믿지요. 초라한 사람을 누가 믿습니까?

그래서 결국 공관복음의 믿음이라 하는 것은 맛보기 믿음. 천지를 금이 갈라지게 해도 세상은 결국은 완전히 쪼개지지 않고, 그 금이 갈라진 금은 그 기적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다시 원상복귀 되서 헤헤거리면서 누구한테 달려듭니까? 예수한테 달려들죠.

그래서 복음을 아는 부교역자들이 교회 당회장하고 싸울 때 흔히 아는 시나리오가 뭐냐 하면, 이렇게 복음 전하면 충돌이 생겨서 교회가 개혁 될 건데, 하잖아요. 천만에 말씀. 큰 바다에 돌멩이 하나 해보세요. 그 순간은 뭔가 퐁당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다시 5초만 지나면 조용~. 미얀마 데모 일어났지요. 죽인다 하면, 조용~.

결국은 사람들이 뇌리에 기억에서 잊어버리죠. 권사님, 집사님 와서 참, 목사님 훌륭하십니다. 개척교회하면 따라갈게요, 따라갈게요. 따라온 사람은 20명 예상했는데 따라와 보면 한 명도 안 왔어.

그게 바로 공관복음이 보여주는 겁니다. 만만치 않아요. 방금하신 말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갈수록 초라해져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베드로 뭐라 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 죽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 살아나야 돼. 하다가 예수님 잡혀가도 아무 변화 없거든요. 에이씨, 잘못 짚었구나. 하고 나, 저 사람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잖아요.

그러니까 공관복음, 요한복음 둘 다를 합쳐보세요. 딱 세상이에요. 세상 돌아가는 게 이래 세상입니다. 제가 십자가마을 글 쓸려다 참은 게 있는데 뭐냐 하면, 이단을 너무 가까이 본다는 게 소름끼치는 일이다. 이단을 너무 멀리 있는 걸로 알고 순복음교회가 저쪽에 있는 줄 알았더니 너무 가까운 곳에서 이단을 발견할 때 소름끼친다. 그거 썼다간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쓰다가 지워버렸는데. 너무 감정적이다 이래 생각하는데.

딱 세상이 뭐냐? 백날 좋은 소리하고 백날 복음 해도 다시 5초, 일주일만 지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요. 다시 원상태로.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은 더욱더 초라해지고 행색이 초라해지고 멀쑥하게 돼버리고 쪼다 돼버리고, 정치적인 보복 들어오고 나중에 할 때 그 길이 뭐냐? 우리의 마음을 낮추는 주님의 방식, 십자가의 길, 주님 가신 그 길이에요.

특히 저자가 뭘 잘 봤느냐 하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를 믿으라 하잖아요. 요한복음은 예수 믿는 거니까 예수 믿으라 할 때 지금 그 사람들이 믿었다는 말을 하지 않아요. 이게 요한복음에 없다는 겁니다. 요한복음에 누가 믿었다는 말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있긴 있어요. 38년 된 병자, 날 믿는 자 믿습니다. 믿나이다. 있는데. 그 믿었다는 게 되게 수상해. 어디까지 믿는지 몰라요. 뭔가 덮어주니까 그냥 형식적인 말로 믿을 수가 있지요.

아까 안 하고 지나갔는데 표적 중에서 왕의 아들이 죽지요. 참,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잖아요. 요새 지금 개판입니다. 머리가. 죽을 때 믿는 시에 낫다 했잖아요. 그 믿는다는 것이 그것이 나중까지 주께서 인정하는 믿음이냐 하는 것은 분명치 않아요. 그래서 항상 주의할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주신 그 예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데

그러니까 제가 두 번째 시간에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있는 이 세계를 예수님 믿음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 믿어라. 믿습니다. 이런 방법은 아니다 이 말이죠. 그건 왜냐? 믿을 게 못 되니까. 그게 어디 있느냐 하면, 성령 대목입니다. 한번 봅시다. 성령, 21과.

21과 성령 대목에서 [헬레니즘 종교에서의 영]이란 제목 있지요. 그건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글입니다. 그거 참 잘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스토아철학에서 나오는 그러니까 헬라철학이죠. 헬라철학 속에 스토아철학이 있으니까. 스토아철학에서 영은 인간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이건 철학에 관한 거니까. 영과 혼과 육은 이건 철학용어입니다. 참, 사람들이 철학용어를 저한테 물어보는데, 성경에서 영과 혼과 육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경의 용어가 아니고 철학용어입니다. 아니 성경에 철학용어를 쓰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쓰고 있잖아요.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오잖아요. 사람이 영과 혼과 육을 쓰고 있으니까 그 쓰는 용어를 가지고 복음을 이야기한 거예요. 철학적 용어에요. 성경적 용어가 아니라니까요. 복음에 용어가 아니고 철학적 용업니다. 그걸 가지고 복음을 설명할 때 그걸 그냥 동원한 거뿐이에요.

어두움이라든지 어떤 빛 이런 용어와 달라요. 복음이란 이런 용어와 다릅니다. ‘의’ 이런 용어와 달라요. 영과 혼과 육이란 그 당시에 흔히 쓰던 용어에요. 그런데 여기서 영은 뭐라고요? 이거는 인간의 요소가 아니다. 아니고 혼과 육으로 되어있다. 육은 죽으면 이거는 이게 따라가서 없어지고, 혼은 남아 있다는 겁니다. 평소에는 혼과 육이 결합되어 있다가.

그러면 영은 뭐냐? 신기. 신기란 말을 써요.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라든지, 하나님의 특별한 아이디어라든지, 이건 하나님이 좀 다뤄야지 싶은 때 특별히 보너스로 가미되는 어떤 능력들. 그러면 본인 뭡니까? 야, 이건 평소에 공부한 게 아니고, 이거는 신의 기적이라든지, 하나님의 아이디어라든지 그럴 때 그게 영이라고 보는 겁니다.

영은 늘 있는 게 아니고 왔다가 갔다가. 우발적으로 왔다가갔다가. 그것이 헬라철학에 있어서의 영의 개념입니다. 이 책에서 잘, 철학용어를 이야기한 것은 결국 뭐는 아니다 이 말입니까? 이것이 결국은 성경에서 하나님 뜻하고는 이런 구조는 상관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방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부흥사들 하는 가운데 많이 나오고, 교회에서 이리 이야기하니까 그들은 그걸로 만족하고 실제로 이렇게 된 건 냥 그렇게 생각하는데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기껏 이런 것 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 혼과 영과 육 이렇게 해서 이렇게 생각해서 신기로 생각하는 것. 동양철학도 마찬가지고 서양철학도 이것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영은 뭐냐? 여기서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뭐냐 하면, 구약에서는 성령이, 구약에서 성령은 사람에게 오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다. 많이 지나서 나오는데 있는 그대로 읽어볼게요. [구약은 성령이 사람 속에 있는 것보다 사람에게 오는 것에 대해서 더 말하고 있다.] 하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해 놓고 그 이유를 말 안 하고 있어요.

성령이 어떻다고요? 사람에게 오는 것. 신약은 뭡니까? 구약이고, 신약은 사람에게 있는 것. 차이점이 뭡니까? 차이점이 뭐냐도 중요하지만 왜 차이가 나야만 하는가도 중요해요. 왜 차이가 나야만 하는가? 그냥 우선 틀린 답부터 할게요. 구약에서 온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어떤 능력, 일을 시키기 위해서 왔다. 신약에서는 아예 그 사람이 성령을 가지게 위해서 왔다. 이렇게 구분하시면 틀린 겁니다.

다른 대답은 뭐냐? 구약을 맞아요. 구약에서 성령 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일시키기 위해 옵니다. 신약에서는 그 사람을 빼앗아가기 위해서, 몽땅 들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성령을 갖는다 하잖아요. 아니에요. 주도권이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이 주도권이 있어서 나를 빼앗아버립니다. 말이 다르잖아요.

내 안에 성령 있데이. 이 말은 얼른 들어보면 뭡니까? 내 안에 성령이 차곡차곡 들어서 성령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하잖아요. 나라는 게 있어서 성령이 있잖아요. 그게 아니고, 신약에서는 성령이 있어서 그 안에 내가 있는 거예요. 성령이 없으면 나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이래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 없는 나와, 성령 없는 나를 구분해서 생각한다는 게 신약입니다.

니, 성령 받을래, 안 받을래가 아니라 니, 내 안에 있을래, 내 밖에 있을래. 그 이야기한다 말이죠. 다르잖아요. 그 이야기가. 안 다릅니까? 난 다르다고 보는데.

이제부터 다른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첫 번째 첫 시간 끝날 때 이야기해봅시다. 독생자로 오셔서 죽음, 그 다음에 뭡니까? 부활, 그 다음에 승천. 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에서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해서 자기한테 이끌었습니다. 이야기하시면서 부활, 승천도 다 이야기했습니다. 영광 중에 올 것이다.

자, 그런데 보통 선을 이렇게 독생자, 죽음, 부활, 승천을 같은 선상에 놓는데 이걸 밑에 놔버리자 말이죠. 독생자, 죽음, 여기다 놔버리고 부활과 승천 한 대목으로 놔버리고. 이렇게 놔버릴 때 독생자, 죽음에서 이미 죽임이잖아요. 예수님의 인생은 독생자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에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뒤에 나중에 부활, 승천된다고 분명히 예언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 승천될 예수님은 이 사이에서 이미 죽어버린 예수님한테 자기는, 여기 요한복음 14장 한번 봅시다.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 했지요.

14장에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돼있지요. 아버지께로 간다로 돼 있잖아요, 그죠? 그 아버지께로 간다고 할 때에 아버지 세계입니다. 부활, 승천 세계, 아버지 세곕니다. 처소니까. 아버지 세계에 감으로 말미암아 자리교체가 일어나요. 독생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이 역할을 누가 해야 되느냐 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게 되면 누가 오느냐 하면, 그 빈자리를 누군가 메우지요.

성령께서 메워서 성령을 뭐라고 하냐? 다른 보혜사, 다른 돕는 자가 오신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돼버리면 처음부터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아버지 안에 있었지요. 처음부터 아버지 안에 있었고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이게 아버지 있고 아들 있고 성령 계신데 예수님께서 아버지 바깥에 벗어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독생자 죽음 하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 안에 함께 있었던 이유가 성령과 함께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있는 걸로 되는 겁니다. 그게 요한복음 14장에 나옵니다. 그날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으리라.

함께 있는 이 자리는 이 바깥에 있는 제자들, 아버지 안에 없는 제자들 자리, 이 자리에 예수님이 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성령을 통해서 이 제자들을 아버지와 함께 있는 이 자리로 들어오게 하는 역할분담, 역할분담이 아니라 역할 교체를 자리를 교체를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그림을 이리 그리면 안 되고요. 그림을 혹 뿔로. 혹 뿔로 그려봅시다. 아버지가 아들 보냈지요. 그러면 예수님 제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여기서 죽습니다. 죽으면 아버지 안으로 가게 돼요. 이게 끊어지지 않는다. 이게 끊어지지 않는 증거로써 여기 혹 뿔이 나오지요. 혹 뿔이 뭡니까? 성령께서 오셔서 예수님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그걸 그대로 인수인계해서 집어던지는 겁니다.

이게 아메바 발생인데. 말로 하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게 훨씬 쉽다. 그림 그립니다. 이 그림 하나로 끝납니다. 아버지, 아버지 톡 튀어나온 게 누구라고요? 예수님. 처음에 예수님 아닙니까. 예수님이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예수님은 앞에 제자들 있지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제자들 사랑했잖아요. 사랑관계에 할 일, 끝까지 사랑하는 살아있지요. 혹 뿔, 예수님과 제자들과 하나 되게 해서 예수님이 하나 됐지요. 사랑이니까 하나 되잖아요. 예수님의 역할이 그거니까.

독생자가 되서 하나 되고 나면, 예수님은 본거로 돌아가시고 이 하나 된 위치에 누가 옵니까? 성령을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된 것처럼 성령 안에서 너희가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한다. 전에는 내 아버지지만 지금은 누구 아버지? 너희 아버지가 되게 한다. 이런 거예요.

그림을 다시 한번 그리면, 제자들 없어요. 아버지와 예수님. 그런데 혹 뿔이 아메바처럼 등장해서 죽기까지 침투했습니다. 침투하고 난 뒤에 제자들 걸려들었어요. 끝까지 사랑하시니까. 걸려들고 다시 예수님이 여기서 아버지께로 그냥 가게 되면 제자들이 설 자리, 갈 처소가 없어요. 처소가 없으니까 일단 예수님 가서 뭘 만들어놓고? 처소를 마련하게 되면 다시 성령을 보내서 다시 개미핥기가 와서 이걸 들어다가 내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는 거죠.

이것은 결국 뭐냐 하면, 믿음, 소망, 사랑이든지 요한복음에 모든 나온 일은 뭐냐 하면, 예수님의 하늘나라 확장입니다. 자기 빨판 넓히기, 문어발 넓히기. 쭈~욱 넓힌 거예요. 넓혀서 거기에 말려든 사람이 누구냐 하면, 우리 성도에요. 말려든 거예요. 빨아 당겨버립니다. 진공청소기에요. 쫙 빨아 당기면 거기서 안 빨릴 수가 없지요. 빨아 당길 때 그 빨아 당기는 그걸 뭐라 합니까? 성령의 세례로 빨아 당기는 거예요.

성령의 세례가 빨아 당기는 걸 만약에 성령을 바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바람을 믿어야 됩니까, 빨아 당기는 불을 믿어야 됩니까? 빨아 당기는 불을 믿어야죠. 그러니까 성령이 오면 성령을 믿으면 안 된다니까요. 성령이 오면 성령을 믿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이미 믿고 자시고 할 그런 주체가 없어져버려요.

왜 그러냐 하면, 이제부터 들어갑니다. 지금 여기에 예수님 육신으로 오셨잖아요. 그럼 예수님 자리입니다. 여기에 예수님 자리에 제자들 있습니다. 제자들은 철이 없어 아무것도 몰라요. 맨 날 예수님 부인하기 바쁘니까. 그러면 예수님과 제자들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죽었으니까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입니다. 기도할 바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이 대신해서 우리 대신해서 아버지와 모든 거래가 다 텄습니다. 거래가 성사됐었어요. 그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내가 빠지고 난 뒤에 성령 보내주옵소서. 하는 그 거래도 이미 계약서에 이미 계약서 내용이 들어있을 때에 내가 빠지고 성령 보내 달라. 그 빠지고 보내고가 있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결국은 이 제자들, 제자들이 주체적으로 할 게 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개뿔도 아무것도 없어요.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아무것도 없어요. 머리 속에 이 그림이 들어있어야 돼요. 강력한 빨판이라. 낚지 빨판보다 더해. 침투하면 놓질 않아. 강력한 빨판으로 쫙쫙 빨아 당기면 여기서 빠져나갈 놈이 없어. 그걸 가시고 뭐라 하느냐? 사랑하되 그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뭡니까? 뭐라고 돼있어요? 끝까지 사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배척되는 겁니다. 택함 해놓고 버림 받는 가룟 유다. 가룟 유다 같은 경우에는 끝까지 버려버리죠. 니는 니 갈 길 가야지. 니는 이 자리 아니야. 주님 우리 스승 아닙니까? 스승은 맞는데 니 스승은 아니거든. 끝까지 제거해 버리고 자기 사람만 빨판으로 쫘~악 잡아당겨오는데 그 잡아당기는 그걸 가지고 성령이라 합니다.

성령의 특징은 뭐냐? 예수님이 누구시냐, 예수님이 뭘 하셨느냐? 여기에 이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사회에 글을 쓰더라도 성령으로 글 쓴 것과 성령 아닌 글을 어떻게 분간하느냐? 딱 보면 예수님이 이걸 해줬습니다. 예수님은 이걸 해줬습니다. 이래 나오면 성령의 글이고, 우리가 뭘 해야 됩니다, 우리가 뭘 해야 됩니다. 하면 성령의 글이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새삼스럽게 우리가 뭘 가질 수 있고 뭘 할 수 있고 이건 성령의 글이 아니에요.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아무것도 하신 게 없는데 그리스도가 다 하신 거예요.

제가 이런 이야기했잖아요. 아니 목사님, 요새 예수만 알아도 그만 껌뻑 넘어갈 정도로 예수를 다 알다니. 라고 좋아하겠지만 사도 요한은 그래 보지 않습니다. 사도요한은 어떤 예수냐를 보는 겁니다. 하나님이 메시아 주신단다. 믿자. 메시아 오신 분이 예수다. 그런 예수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예수다. 하나님의 낚지 빨판으로 오신 분이 예수다. 할 때 그 예수는 어떤 예수냐 하면, 잡히면 못 빠져 나온다까지 함께 믿는 예수여야 예숩니다.

그분한테 결렸다하면 우린 이거는 평생, 평생이 뭡니까? 이제는 죽음 후까지라도 완전책임 보장된다. 하는 것을 믿는 예수에요. 따라서 진짜 그걸 누가 했단 말입니까? 그걸 예수님하고 아버지 사이에서 계약해서 다 한 거 아닙니까? 그걸 믿게 되면 더 이상 내 쪽에서 하자, 하자가 나올 수가 없는 거지요. 나올 수가 없지요.

내가 처음에 뭐라 했습니까? 말씀의 성취자로부터 우리는 뭘 해야 된다? 지적받아야 되고 공격받아야 돼요. 말씀의 성취자로부터. 그런데 새삼스럽게 말씀을 보면서 지키자, 지키자. 이래 나오면 그거는 지금 지적받는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자. 이것 밖에 안 된다 이 말이죠. 이거는 빨판이 아니잖아요.

청소기 되고 저나 여러분 선풍기 되든지 해서 여러분 이마에다 박아 볼까요? 얼마나 센지. 성령의 진공청소기가 얼마나 센지 이마에 박아서 머리 쭉 빨려 들어가는 그런 경험 해볼까요? 정말 해보고 싶어. 청소기 커다란 거 사서 교인들, 장로님부터 집사로부터 해서 전부다 해서 어떻습니까? 와, 댕기네. 이것보다 셉니다. 댕기면서 뭘 해요. 댕기는데. 뭘 한다 말이죠. 뭘 해요. 헌금이고 뭐고 봉사고 뭐고 뭘 하노. 댕기는데. 쫙 당기는데. 쫙쫙 댕기는데. 쭈뼛쭈뼛한데.

요한복음, 이 그림 하나로 끝났어요. 빨판이 와서 쫙쫙 잡아당기면 끝난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 12장, 13장, 14장, 15장 계속해서 그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가 여기 성령 .... 아~

여기는 글에 이런 게 잘 안 나타나요. 보혜사 이 부분 봐도 파라클레테, 본질 하면서 쭉 나오는데. 여기 그런 느낌이 안 들어요. 여기 나오긴 나오네. 여기 뒷부분에 보혜사의 본질해서. 보혜사의 본질로 돼있어요? 안 그러면 영어 그대로 돼있습니까? 파라클레테. 성격. 성격 돼있어요? 거기 보면 나와요. 성령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돼있지요.

여기 보면, 구원의 계시보다 더 큰 계시 속으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다. 진리의 영이 오게 되면. 성령이 오셔서 그들 속에 내재하게 되면 예수는 그들. 그래서 이제 내재 이야기해야 돼요. 이거 이야기하려다 이리 갔는데.

자, 성령께서 오신다 할 때 내재한다 할 때 그 말만 들으면 우리는 내재, 내복. 내복 뭡니까? 안에 입는 거잖아요. 내가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요. 내재, 내 안에 있는 것처럼. 그게 아니고 성령이 주도권을 쥐고 옛날에 예수님이 주도권 쥔 자리를 교체해서 들어와서 우리를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얼마나 위대한 분이며 그분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베풀었으며 우릴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셨는가? 이걸 뽑아내는 일을 하시는 거예요.

자, 독생자, 죽음, 부활, 승천 여기에서 이 독생자 죽음이란 예수님 가는 코스대로 그대로 우리를 잡아당기기 위해서 그냥 당기면 우리가 죄가 있어서 안 되잖아요. 다시 하겠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를 잡아당기면 우리는 처소에 못 갑니다. 베드로가 가려 해도 처소 안 되지요. 왜 안 못갑니까? 아직까지 뭐냐? 아직까지 내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못 가요.

예수님이 처소를 마련해야 가는데 그 처소는 우리의 죄 문제, 심판문제가 해결돼야 처소에 들어가지, 어디 건방지게 들어갑니까? 처소가 마련되면 다시 오겠다 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 달릴 때 뭐 했습니까? 다 이뤘다 했지요. 다 이뤘다 하는데 요한복음 여기는 안 나왔습니다만 사실은 다 이루었다 할 때 그게 약간 나와 있습니다.

뭐냐 하면, 다 이루었다가 어디서 외쳤습니까? 십자가에서. 십자가는 땅입니까, 하늘입니까? 땅이죠.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걸 하늘로 보자 이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생각입니까? 십자가가 분명히 다 이루었다. 분명히 땅에서 한 소리잖아요. 그런데 땅 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니고, 누구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다? 하늘나라 전체로 울려 퍼지는 소리에요. 다 이루었다다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처소가 마련됐다는 말 아닙니까? 다 이루었다. 이루었으니까 예수님이 있던 그걸 몽땅 다 들고 오는데 예수님만 있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다 이루었으니까 여기 누가 있습니까? 제자들이 있고 장차 구원받을 사람도 있지요. 여기에 몽땅 크레인에 의해서 이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다 이루었으니까. 아버지가 내게 보내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살리는 이것이라 했지요. 내 뜻은. 그죠?

그러니까 그걸 다 이루었잖아요. 다 이뤘으니까 그냥 혼자 오는 게 아니고 몽땅 이루어오는데 그걸 세분화시키면 먼저 예수님 가시고, 그 다음 뭐 보내고? 성령 보내고. 그걸 세분화시키면 그래 되고, 첫 번째 세분화 안 시키면 뭡니까? 혓바닥이 몽땅 다 이렇게 해서 온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성도의 삶이 뭐예요? 예수님의 삶이 육신이고 죽음이고 부활이고 승천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 안에 혓바닥 안에 있으니까 예수님 가신 길이 먼저 간 그 길이니까 우리도 이 땅에서 죽고 부활되고 그 다음에 아버지와 하나 된 것처럼 주님이 하나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 되어서 영광스런 나라에 여기에 영원히 사는 거예요. 이 코스 그대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볼 것은 뭐냐? 지금 주님이 어디 계시는가? 그거 보시면 그게 우리의 갈 자립니다. 지금 주님은 어디 계시지요? 그것이 우리 갈 자리인데 우리 보고 가라는 게 아니고, 청소기가 쭈뼛쭈뼛 올라가는 기라. 잡아 댕기면 우리는 안 가고 싶어. 안 가고 싶어도 소용없어요. 잡아당기는 힘을 누가 당합니까? 성령의 힘을 누가 당해요. 우리가 원치 않는 천국으로 가야 돼요. 원치 않는 천국으로 가야 되는 거예요. 당겨서 가야 되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두 자로 뭐냐? '사랑'이다. 그 사랑은 여기다 뭘 심어놨느냐? 이걸 사랑을 뭐로 심어놨다? 따라해 보세요. ‘계명’이에요. 이 계명은 누가 지키느냐? 주님 지키는 거예요. 그 사랑 안에 너희가 함께 있으면 비로소 같은 길을 가는 동기생인 줄 알리라. 그리고 가면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 것처럼 너희도 미움 받게 된다. 왜? 한 통속이니까. 그렇게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전도나 설교 이런 거 어떻게 합니까? 빨렸습니다. 뭐, 가만있어도 갑니다. 이래 할까요? 우에 하란 말이에요? 사랑이잖아요.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면 그걸로 세상이 너희가 세상이 그리스도 사람인 줄 알리라. 이게 전돕니다. 이 말이 엄청나게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세상에 형제가 서로 사랑한다 해서 집 살 때도 공동명의로 하자. 실제로 그래 나오고 그러면 그게 사랑입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집 살 때도 공동명의로 해야 된다고 해요. 안 그러면 우리교회 나오지 마라 해요. 그런 교회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왜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왜 실천에 안 옮기고 실현되도록 왜 안 하느냐? 우리가 한 형제 같으면 니 집만 있으면 안 된다. 공동의 집을 만들어야 된다. 돈 보태서 더 큰 집해서 그걸 교회하든지 이래 해야지 왜 니 혼자 허락도 없이 니 혼자 하느냐? 이래 된 거예요. 앞으로 그래 되면 결혼도 마음대로 못하고, 당회장 허락받고 해야 되고, 당회장이 초야권이 있어서 첫 날 밤 목사 먼저 치루고. 그렇게 나올 판도 될 수 있겠어요.

이 사랑만큼 크게 오해받는 게 없습니다. 그 사랑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 사랑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뒷조사를 캐보면 뭐냐 하면, 나 살리도. 이겁니다. 나는 죽이면 안 돼. 날 살리도. 난 이 땅에서 밥 먹고 살아야 돼. 그걸 사랑으로 나온 겁니다. 죄죠, 죄. 죄에서 나온 사랑이에요. 날 살려줘. 베드로 마찬가지고 요한도 마찬가지에요. 인간인 이상 아닌 인간이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수평선입니다. 수평선은 멀리 보면 구부려졌지만 가까이 보면 똑바로 된 수평선에. 여기 수평선에 1미터면 이것 밖에 안 보여요. 2미터, 한 이만큼 보일 겁니다. 10미터 더 많이 보이죠. 우리가 살아있다고 여기는 이상 우리의 시선은 기껏 해봐야 살아있는 이것 밖에 보이질 않아요. 점점 높이 올라가도 백날 사랑해 봐도 점점 살아야겠다는 이것 밖에 안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걸 반대로 해봅시다. 밑으로 파고 들어간다. 밑으로 파고 들어가게 되면, 이것은 죽음 위에서 사랑이 삐져나온다. 사랑이라는 게 죽음 위에서 나온다. 라고 할 때 점점 더 죽고 싶어 하겠죠. 왜? 사랑이 더 많이 나오니까. 나같이 이렇게 죽을 사람이 더 나오니까.

결국 사랑의 계명이라 하는 것은 그 제자들 보고 나를 위해서 죽으라. 이 말이에요. 나를 위해서 죽으라. 하는 사람이 열댓 명 모여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비로소 너희가 그리스도인인 줄을 알리라 이 말이에요. 사랑을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이 모이면.

그럼 사랑을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은 뭔 뜻이냐 하면, 어떤 재산이 있더라도 그것이 자기의 전부가 될 수가 없죠. 학식이 있다든지, 목사직이 있다든지, 집사 이게 전부가 아니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다. 라고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은 두 사람이 대화를 해도 A라는 사람, B라는 사람 대화를 해도 자기의 궁극적인 근거를 거쳐서 대화하게 돼있어요. 모든 게. 철학에 나옵니다. 사람이 대화를 해도 궁극적인 관심사를 통과해서 나옵니다.

만약에 돈을 이렇게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 이러면 우리 식당에 가서 맛있는 거 사먹자. 가을에는 가을 전어가 맛있지. 나중에는 가을 전어 같으면 여기 부산에 하는데. 어이, 거기 가지 말고 전라도 거기에 삼천포 가면, 삼천폽니까? 거기 가을 전어 유명하잖아요. 삼천포 거기 가자. 아이, 여기 가자. 와카는데. 거기 가면 차비 들거든.

결국은 부산에 있는 가을 전어 먹자는 말은 그만큼 뭐가 든다? 돈이 차비가 든다는 걸 통과해서 나온 거고, 그쪽에 삼천포에 있는 사람은 삼천포가 맛있다 하는 것은 뭐냐? 부산까지 오면 차비가 들잖아요. 같이 돈이라는 것을 걸러서 경과해서 최종적인 자기의 기준을 경과해서 말 타고 나오죠.

사랑이란 계명은 반드시 예수님이 우릴 위해서 죽었습니다. 라는 것을 경과해서 나올 때 그게 모든 게 사랑으로 나온다. 이래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주님께서 내 대신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주의 것입니다. 난 이제 사는 것은 날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날 위해 죽었다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함이라. 라는 것은 경과해서 그걸 통과해서 말이 나오면 그게 전부다 뭐가 돼요? 그게 사랑의 계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계명을 지켜 나가려면 뭐 해야 됩니까? 예수가 어떤 예수냐를 반드시 알아야죠. 예수가 어떤 예수냐? 당신 예수가 어떤 예수에요? 날 위해서 대신 죽으신 예숩니다. 그럼 당신은 뭐예요? 나는 지금 죽어도 괜찮지, 뭐. 이래 나오면 그 사람이 부동산투기를 하든, 펀드를 집어넣든, 목사를 하든, 백수가 되든, 식당을 운영하든 뭘 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날 때는 그 사람이 그걸 경과해서 나오기 때문에 사랑이 솔솔솔 나오지요.

교회에서 놀러 가는데 대구대학 캠퍼스로 갈까, 안 그러면 저 강가로 갈까? 강가로 갑시다. 대구대학교 갑시다. 에이씨, 집사님, 대구대학 갑시다. 강가로 갑시다. 싸운단 말이죠. 서로 미워하는 겁니까? 아니에요. 그것도 사랑하라 하니까. 왜? 뭘 경과하면? 나중에 목사님 와서 강가나 뭐하나 다수결로 해서 무조건 몰아주깁니다. 알겠습니다. 강가? 다섯 명. 대구대학교? 열 명. 아이씨, 대구대학 가야 되겠네. 라고 양보하죠.

그럼 왜 양보합니까? 놀러가는 게 뭐 중요합니까? 예수님이 죽으신 게 중요하지. 그 뭐, 난 대구대학 가는 게 더 좋은 것은 가깝고 필요해서 따져서 하는 거지. 꼭 그게 강가 가는 거 하고 내 구원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그러면 아까 싸웠던 게 뭐가 돼요? 전부다 뭐가 됩니까?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게 다 사랑이 되는 거예요.

-죄가 되기 때문에 주장한 그 자체가 죄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걸 알지요. 대구대 아니면 교회 안 나온다. 이러면 그거는 사랑이 아니지요. 아내가 옷을 입는데 아내는 원피스를 원하고 나는 투피스를 원한다. 투피스가 정장답다. 아내는 원피스 입는다. 싸울 때 싸울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결과가 원피스로 모아졌으면, 그래 원피스고 투피스든 쓰리피스든 그게 구원과 무슨 관계있느냐? 이래 돼버리면 그게 뭐가 됩니까? 그게 사랑이에요.

복음 아는 부교역자가 싸운다. 싸우는데 당회장이 잘했네, 부교역자가 잘했네. 싸워서 교회분란이 일어나서 나중에 경찰이 와서 보니까 다 잘리고, 목사까지 다 잘렸다. 할 때 아하, 참, 세상 더럽구나. 복음을 모르고. 이게 아니고 아이고, 목사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게 무슨 의미고? 주께서 구원했는데. 이러면 그 한 게 뭐가 돼요? 사랑이 되는 거예요.

문제는 나중에 고소까지 한다는 거예요. 사실은. 그러니까 이게 사랑이 아니었지요. 진리를 앞장세워 빙자한 복음을 빙자한 십자가 빙자해서 결국은 뭡니까? 아까 뭐라 했습니까? 나는 살아보겠다는 거. 이 땅에서 나는 밥 먹고 살아보겠다는 이거에요, 이거. 사랑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결국은 나 잘났으니까 나한테 오너라. 하는 자기 팬 관리, 팬으로 관리라니까.

이건 성령이 아니면 안 돼요. 성령이 오게 되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맨 날 이것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잖아요. 그래 십자가 졌는데 니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의미 없습니다. 죄 진 거 맞나? 맞습니다. 진작 그래야지.

주여, 열심히 심방했는데 그 심방한 사람, 다른 교회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니가 살았잖아. 니 이미 죽은 놈 아니가. 맞습니다. 그럼 간 것, 안 간 것 내가 주님이 알아서 하지. 내 분류작업 잘 한데이. 그게 사랑이란 말이죠. 그 사랑이 있다면 형제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죠.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인간은 위해서 못 죽습니다. 니가 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개콥니다. 알겠습니다.

결국 사랑이 있으면 니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이 나한테 있으면 그 사랑을 인하여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요한일서 3:16에 나오잖아요. 이게 전부다 뭐냐 하면, 혓바닥이에요. 낚지 혓바닥. 주님에서 나온 혓바닥에서 사랑의 계명으로 끌고 간 이상은 빠져나올 수 가 없습니다. 절대로 못 빠져나옵니다.

궁극적으로 뭘 지향하느냐? 십자가냐, 아니면 나냐? 진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예수라는 걸 안다면, 우리는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실제로 주님께서 오셨고 실제로 부활했고 승천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뭐가 더 필요한 겁니까? 우리가 무엇이 더 필요해서 우리는 주님 앞에 감사와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 중입니까? 이제는 마음을 바뀌어서 우리의 욕심을 알게 하시고 죄를 알게 하시고 말씀성취자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분의 덕분으로 구원되었음을 주님 앞에 끌려가고 있음을 감사하는 저희들 삼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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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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