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5 교회사 2강 - A자유게시판이사야

2005 교회사 2강 - A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3)

교회사 2강 - A
05,10,22 강의 이근호

◈ 달라진 교회관, 그 이유는?

시작합시다. 지난 시간에 교회사 자체는 교회가 있음으로써, 즉 교회가 있다는 자체가 기존의 국가가 이미 있으니, 이렇게 기존국가가 있는 상태에서 여기에 교회가 등장했다는 것은, 그 교회가 국가로부터 의식이 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즉 견제할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국가에게 복종할래, 아니면 나(교회)한테 죽어 볼래" 라는 식으로, 교회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서 교회의 견제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견제세력이 되었다면, 그렇다면 그 당시 국가관과 견제대상이 되었던 교회관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해야될 텐데, (그래서 당연히 충동현상들이 발생해야 하는데) 그런데 요즘은 이슬람국가 외에는 기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교회와 국가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바로 그 이유가, 교회관과 국가관 두 가지가 모두 다 그 당시의 관점과는 달랐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의 예를 들자면, 성경은 영적세계에 관한 것인데 이런 영적세계에 속한 사람이 이 세상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영적인 것에서 육적인 것으로 번역 내지 전환할 때에만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포착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이 영적으로 그냥 있을 때에는 역사일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영적이란 십자가로 고발하는 예수님의 영적인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묵시적이라는 것이다. 이 묵시라고 하는 것이 하늘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를 끊임없이 심판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교회가 정말 영적인 세상으로서의 교회라면 묵시적으로만 그냥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교회가 역사적으로 인정받겠다고 나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로 교회가 영적인 것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역사를 선택해서, 즉 역사라는 몸체를 만들어 그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이 사회에 나서보자는 의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러한 역사를 운운하는 교회관은 기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관과는 분명히 다르고 이미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역사를 말하는 자체부터가 이미 예수님이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운다고 할 때, 그 교회는 예수님의 몸을 두고서 말씀하신 것이지, 예수님의 몸이 따로 있고 교회가 따로 있는 식의 교회상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그런 방식의 교회를 이야기한 적이 없고, 또 그렇게 예수님은 자기 몸과 따로 있는 교회를 두고서 교회라고 간주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 교회가 역사를 말하는 자체가 주님의 몸임을 포기하는 현상 !!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안에 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가 지금도 묵시적 존재로서 하늘에 계시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도 묵시적 몸이라는 것이다. 묵시적 몸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묵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포기했다는 뉘앙스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궁금한 것이 무엇인고 하면, 교회가 역사적인 정당성을 부여받고자 시도하고 노력한 작자들, 즉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이 어떤 묘수를 썼기에 그리스도의 복음 대신에 교회라고 하는 국가사회단체로서 자리를 잡는, 즉 오늘날 교회가 사회단체로서 자리잡게 되었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 수법을 눈치채야 되고 제대로 빼내어야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교회사를 공부해버리면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겠는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지금 교회의 뿌리가 되는 그런 멋진 것들만 골라잡아서, "교회는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교회는 참으로 정당하다" 라는 식의, 즉 자기 역사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교회가 역사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역사라는 도구를 취한 그 발상자체가 성경해석을 얼마나 엉터리로 했으면 그러한 발상이 나오겠느냐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교회역사가 50년이다" 라고 해서, 그런 '50년 교회사' 라는 식의 역사집이 나온다는 발상자체가, 즉 "주님이 50년 동안 우리교회와 함께 하셨다" 라는 것인데, 그 얼마나 성경에 대해서 무식하고 그 해석이 엉터리였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런 엉터리 성경해석이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어 왔는데, 그 옛날에 소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작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그 시대 속에서 얼마나 잘못되게 해석했는가를 추적하면,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교회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사가 쉽지요?

다시 말해서, 옛날 그 당시에 그랜드마스터들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도가, 즉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과 얼마나 틀려먹게 알고 있었으면 그들이 교회라는 것에 대해서 집착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하는, 바로 그러한 고리를 찾아내면 그게 바로 교회사가 된다는 것이다. 교회사가 이렇게 정리되어야 교회사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 1세기 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1세기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 때가 언젠가 하면 사도바울이 죽은 후 50년 사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도바울은 살아있고 요한계시록이 유포되던 시기, 그 이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예수님을 믿었느냐는 것이다.

그 당시 소위 문자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즉 교회 지도자들이 나름대로 "나는 예수를 이렇게 믿는다, 예수를 이렇게 알고 있다" 라고 전파했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바로 그들이 전파한 예수에 대해서 알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교재 5페이지에 나오는데,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금 사용하는 교재의 틀은, 이상봉 목사님이 쓴 '교회사' 라는 참 잘된 책인데, 그것을 기본적인 틀로 해서 나름대로 첨삭을 가한 것이다.

--------------------------
(3) 교부들의 신앙 세계 - 기독론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논쟁다운 논쟁은 없었다. 대체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었으나 신성을 더 강조한 편이었다.
클레멘스 (Clemens of Rome)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엄한 홀(笏)이다.
이그나티우스 (Ignatius) : 그리스도는 신이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헤르마스 (Hermas) : 그리스도의 선재설(先在說)을 믿었다.
--------------------------------------

※ 홀(笏) - 조선 시대에, 벼슬아치가 임금을 만날 때에 손에 쥐던 물건

------------------
기독론 - 그리스도 인격에 대해 논쟁다운 논쟁이 없었다. 대체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었으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강조할 때이다
-----------------

위의 부분은 기독론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로마의 클레멘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
클레멘스 (Clemens of Rome)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엄한 홀(笏)이다.

①로마의 클레멘스(90년대) -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어지러운 교회에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직분 계승에 의한 장로에게 복종하기를 요청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다 장군도, 영관도, 위관도 아니라 각자 성실하게 자신의 위치와 사역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순결과 순종, 그리고 신앙적 겸손을 강조했다. 그는 바울 신앙에서 떠나 윤리적 관심과 율법적 질서를 강조하는 기독교로 기울어졌다.
-----------------------

로마의 클레멘스, 이 사람은 교회가 자기가 생각한 안정된 교회, 즉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 당시에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성령 안에서 서로 나눠주는 순수한 모습을 지닌 그런 교회가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강압적으로 교회의 계급을 형성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신성이냐 인성이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즉 예수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냥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된 관심은, 교회가 군대처럼 계급화 될 때에 비로소 교회가 안정을 취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당시 국가가 교회를 노려보고 있으니, 즉 국가가 교회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쏘아보고 있을 때, 국가와 제대로 한번 붙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질서체제를 공고히 할 때 국가 체제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외부에 국가 권력이 있을 때, 그것을 계기로 내부 결속을 강화하여 자기 조직을 강화시키면, 그렇게 하면 소위 참된 교회로 유지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혀 아니라, 오히려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강력한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가운데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이런 강력한 국가가 있기에, 이 국가를 교회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데 그 국가를 의식하는 동시에 그것이 적이 아니고 나중에 동지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1세기 당시의 지도를 살펴보면, [갈리아(프랑스) - 서바나(스페인) - 이태리 - 마케도니야 - 터어키 - 안디옥 - 알렉산드리아 - 이집트 - 카르타고(튀니지)] 인데, 그러면 어디에 성도들이 많이 살았는가?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마케도니아(빌립보, 에베소, 고린도, 아덴) 쪽에, 그리고 서바나(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서바나 교회가 있던 곳으로 상당히 신학적으로 융성했던 곳), 물론 로마에도 있었고 말이다.

이런 곳에 있던 사람들이 유대회당에 들어가서 전도를 했고, 그곳에서 유대인들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유대교의 변종으로, 혹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서 인식이 퍼지면서, "메시아가 이미 오셨데. 그리고 다시 오신데" 라는 사도바울이 전한, 즉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이 전체에 퍼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사도바울과 같은 하나의 유명한 사람이 뜬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동네에 많은 신자들이, 즉 많은 교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의 집회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전체지역이 로마나라인데, 그 당시 로마는 의회제도가 있는 공화정이었는데, (주로 전쟁을 통해서 얻은) 많은 노예를 통해서 농사를 짓고 귀족들은 흥청망청 노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이런 노예를 통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라티푼디움'(?) 경제제도가 있었는데, 나중에 로마가 멸망한 이유도 이런 노예가 줄어서, 즉 생산 노동력이 감소해서, (요즘 말로 하자면 회사들이 다 부도가 나서) 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예가 적으니 소작농으로 바뀌고, 또 지주가 농노라고 해서 팔아먹기도 하는 장원제도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세까지 이어지고 말이다.

---------------------------------------------
※ 중세의 장원제도 ※ - 네이버 지식에서
장원을 군사적, 경제적 기본단위로 하는 사회체제를 말합니다. 즉, 영주의 장원을 중심으로 농노가 영주의 직영지와 자신을 땅을 번갈아 경작하고, 영주는 대신에 영주민들을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체제입니다. 영주는 국왕과는 별개로 자신의 장원내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는 지방분권적 지배체계도 봉건사회의 특징입니다. 장원제도 (혹은 봉건제도)의 성립은 6~7세기 무렵 메로빙거 왕조가 약화되자, 각지의 농민들이 무력을 지닌 자유민 휘하에 보호를 요청하고 무력을 지닌 자유민은 다시 강력한 영주의 휘하에서 보호를 받으려 한 것이 시초입니다. 영주는 이렇게 무력을 지닌 자유민을 다수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점차 세력을 길러나갔고 더 이상 자신의 재산만으로는 다수의 군대를 유지할 수 없어 일부 자유민에게 일정양의 땅(재산)을 띄어주고 그 보답으로 영주가 필요할 때 군사적 의무(대게 기병으로 참전)를 지게 했습니다. 이 군사적 의무를 진 자유민들이 후에 기사계층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

(지도를 보며) 여기는 게르만들이 사는 산림지역으로 개간이 안 되었는데, 이렇게 우랄산맥에서 강이 흐르는데 이러한 강을 따라 만들어진 비옥한 땅에서만 농사를 짓는 인구가 많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이쪽 아프리카 북쪽지역은 무역을 많이 한 동네로서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많이 퍼졌던 곳이란 말이다. 즉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동네에서 집회가 많이 열리고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면 로마 정부가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정부 데모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귀족체제를 뒤엎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런 단체들이 많이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그 당시 로마의 경제제도란 노예가 땅을 경작하는 체제이기에, 그런데 이러한 노예가 모자라기에 각각 자기 민족들대로 총독을 두어서, 그 나라 경제는 그 나라에 맡겨두고 로마는 세금을 거두는 방식으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다시 교재를 살펴보자.

---------------------------------
②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70-107) - 직분의 삼중직 방식을 최초로 제시했는데, 주님의 교회는 감독들과 장도들과 집사들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없으면 교회도 없고, 세례도 없고, 애찬과 성찬도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성만찬을 불멸에 이르는 의식이라고 여겼다. 성만찬을 수단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얻는다고 보았다. 그는 신비주의적 노선으로 나아간다.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이와 같이 주장했는데, "감독이 없으면 교회도 없고, 세례도 없고, 애찬과 성찬도 불가능하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서바나의 폴리갑은 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
③서머나의 감독 폴리갑(79-165) -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이그나티우스의 친구요, 이레네우스의 스승이다. 그는 ‘신앙의 주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라고 했다. 십자가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과 의의 보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 부동하게 붙잡아야 된다고 했다.
------------------------------

이 폴리갑을 최초의 조직신학자라고도 하는데, "신앙의 주체는 오직 그리스도다" 라고 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확고부동하게 붙잡아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질서를 유지하고 갑자기 늘어나는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잡는데는 정치적 질서로서 붙잡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나 서머나(마케도니아와 터어키사이)의 감독인 폴리갑은 교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갈 테면 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시 교재 5페이지를 살펴보자.

--------------------
* 삼일신(3 1 神) 교리 -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명백한 교리는 이 시대에 아직 확립되지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삼위일체 교리를 믿은 듯 하다.

* 속죄론 -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열고자 피를 흘리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 사함 받게 하는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으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건한 마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의)를 주신 것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이신득의의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속죄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별로 철저하지 못했고 이신칭의의 근거에 대해서도 구약 말씀들에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천년설 - 그리스도의 재림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도께서 천년간 이 세상에서 왕 노릇하신다고 가르쳤으며 파피아스는 상상력을 크게 활용하여 천년 시대의 상태를 묘사하기까지 했다. 전반적으로 주님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

교회사를 보면 참으로 그 당시나 지금이나 너무나 똑같은데, 파피아스처럼 천년설을 주장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물론 너무나 정치적이란 이야기이다.) 앞으로 천주교의 공의회 역사를 공부할 텐데, 그것을 공부하면 그야말로 교회사의 맥을 뚫는 것인데,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총회의 회의록을 보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누가 어떤 관심이 있었으며, 과연 몇 명이나 모였으며, 여기에 대해서 기존의 교회에서 관심이 많았는지 적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특징이,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런 교리에 대해서 별로 관심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만 교회사를 기록하는 자들이 그렇게 만들어서 떠든다는 것이다.

◈ 교회사 - 선후배가 함께 한 교회 정치꾼들의 역사 !!

오늘날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으면 끝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무슨 진리에 관심이 있는가? 옛날도 마찬가지였는데, 무슨 무슨 공의회로 그렇게 모이라고 해도 실망할 정도로 사람들이 적게 온다는 것이다. 소위 전세계교회가 다 모여도 정족수 미달이 허다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면, 교회사라는 것이 소위 교회 정치꾼들이 만들어 가는 정치적 입지의 역사라는 것이다.

제가 이쯤 이야기를 하면, 아마 여러분들은 "그럼 목사님, 교회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네요" 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정답인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유명인사의 몇몇 자기 정치적 구호나 선동, 그리고 정치적 입지, 그리고 정치꾼의 후발주자들이 선배의 정치적 구호를 써먹어서, 교회라는 권력단체를 인수 인계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취한 것, 그것이 바로 교회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민중들은 과연 이러한 교회의 교부들의 가르침과 그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는가? 그들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육적인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먹고사는데 말이다.

역사란 항상 경제구조가 하부구조가 되어서 위의 상부구조를 형성하는데, 이 하부구조인 경제구조를 '내용' 이라고 한다면, 위의 상부구조는 정치와 문화인데 이것을 하나의 '표현' 이라고, 엘름 슬로우나 들뢰즈 같은 철학자는 주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 살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서 경제가 보장을 해주면, 살고자 하는 욕망의 발산이 종교나 정치적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육적인 욕망을 어떻게 교리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 대신 배출시키느냐를 파헤치게 되면, 오늘날의 교인들이, 즉 오늘날 경제구조내의 교인들이, 즉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사회 때에는 어떤 교리들을 호응하고, 어떤 교리들을 배척하는가가 좀더 뚜렷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세 때에는 '라티푼디움'(?) 이라는 노예노동 집약적 농업체제이기에 말이다.

로마 당시의 군대라는 것도, 전쟁이 나면 구약에 나오는 아람군대처럼 수십만이나 동원되고 하는데, 그러나 그런 자들은 요즘처럼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농사를 짓다가 불려나온 자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도 역시 만찬가지였고 말이다. 왜냐하면 근대의 자본주의 국가체제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군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어디까지나 농업체제였다는 말이다.

◈ 인간의 몸과 예수님의 몸의 대결 !!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무엇을 공부하려는고 하니, 과거 그 당시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의 신체, 즉 자기 몸을 가지고서 먹고사는 것에 그 얼마나 노력을 하면서, 또한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를 공부하자는 것이다.

교재 5페이지를 계속해서 살펴보자.

-----------------------
이 시대에는 윤리주의와 율법주의가 교회 내에 만연하였다. 따라서 바울이 크게 강조한 이신칭의의 복음 진리가 별로 잘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고 행함에 대해 강조한 야고보의 사상만 강조되고 있었다. 이것은 지도자 자신들이 바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주의가 교회 안에서 만연되게 된 데는 당시 크게 세력을 떨치던 이방 철학 사상 특히 스토아주의의 영향이 컸다.
-------------------------

이 시대에는 윤리주의와 율법주의가 만연했고, 바울이 강조한 이신칭의 교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는데,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바울의 복음은 오직 성령이 임해야 알 수 있지 육적인 사람은 거부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이 '이신칭의' 교리라는 것은, 사실 지금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믿는 자들이 적은데, 루터나 칼빈의 종교개혁시대에도 적었고, 사실 어느 시대이든지 간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적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든 인간들은 영적이 아니라 육적이기 때문에 말이다.

◈ 영적 - 역사란 있을 수 없고, 묵시밖에 없다 !!

늦게 오신 분을 위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제가 영적이란 것을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역사란 있을 수 없고 묵시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사가 있을 수 없다" 라는 말은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남길 이유가 없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오직 묵시만 있으니 말이다. 그리스도 자체가 묵시적 존재로 계시니, 그리스도 몸에 속했다는 것은 그 사람도 묵시적 존재라는 것이다. 즉 묵시적 존재가 되어야만 영적인 사람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이라면 과연 행함에 대해서 기대를 걸까요? 행함에 대해서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함에 기대를 걸지 않으면 역사를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함을 모은 것이 역사이니 말이다.) 즉 "과거에 이렇게 잘 잘했는데, 뭐 복이라도 좀 안 주시나" 라는 방식으로, 그런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말은 이미 육적이 되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육적인 흔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사상에 대한 강조는 있었지만, (물론 말씀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 윤리주의가 성행했고, 특히 스토아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이 '스토아주의' 라고 했을 때는 하나만 생각하면 되는데, "참아야 하느니라", 즉 금욕주의라는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인데, 인간에게 나오는 욕심을 끊어버리는 것이 참된 행복에 이른다는 것이다. 욕심이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니, 이 욕심을 참으면 자기에게 행복이 되고, 그것이 바로 선이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착함이 된다는 말이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이란 노랫말에 보면,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낸다" 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1세기 때의 신앙이 어떠한지 알겠지요? (막연히 그들이 믿음이 좋았을 것이란 착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
-- 여자의 일생 --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에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인생
-------------------

그렇다면 왜 이렇게 그 당시의 내용들이 풍부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그 당시에 나온 문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변증가들을 보면 내용들이 풍부하게 있는데, 그래서 그것을 참고로 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시대적인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6페이지에 나오는 변증가들을 살펴보자.

---------------------------
3. 변증가들 - 로마제국이 정치적 군사적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과 보조를 같이하여 문서적 사상적으로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이 등장하자 기독교 지도자들 역시 기독교의 참 진리됨을 변호하고 변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들을 변증가(apologist)라고 부른다.
--------------------------

이 로마제국이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박해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 군사적으로 박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교회는 군사적인 힘이 없기에, 그래서 사상적으로 변증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
변증의 정신과 내용 - 세상에서 신자의 존재는 몸에 있어서 영혼(마음)과 같다. 영혼이 온 육체에 충만한 것 같이 신자는 온 세상에 널리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머물지만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 육은 영을 미워하여 항상 대적한다. 이것은 영이 육에게 무슨 해를 입혔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영이 육신을 그 정욕대로 쾌락을 추구하고 범죄를 저지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아무런 해를 입은 일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함께 세상 쾌락으로 치닫지 않고 그들의 거룩한 삶으로 세상에게 부끄러움을 주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다.
----------------------------

변증가들은 이와 같이 보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이런 지적이 옳은가? 아니면 잘못되었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존재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은 점점 더 훌륭해지고 멋있어지고, 적들은 점점 더 나쁜 놈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는고 하니, 이런 변증을 할 때 이웃사랑과 진리에 대한 수호태도가 서로 잘 결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결합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내용 - 변증서의 내용들은 기독교인이라고 까닭 없이 박해는 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공평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옹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당시에는 기독교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박해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변증의 내용을 보면, 교인이기에 당하는 이유 없는 박해에 대해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옹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즉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라는 것이다.

-----------------------
신자의 목적은 세상 나라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엎으려는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데 있다. 진리와 믿음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순교하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세상에 나라를 세우려는데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여기에 보면, "신자의 목적은 세상나라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서, 요한 계시록과 다니엘을 결부시켜보면, 이 세상나라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가 있을 수 있는가? 다니엘의 예언에 의하면, 로마나라가 그 자체가 짐승의 나라이고 로마 그 이후의 모든 새끼나라가 다 짐승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니엘서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모두 다 성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사람들인가? 물론 예수님을 믿고 오시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변증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나라의 말이 맞기에 말이다. "너희들은 세상의 나라(마귀의 나라)를 공격한다" 라는 말이 오히려 맞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믿는 성경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최근 일각에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대적하기 위해서 모이자고 했는데,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말이다.
모일 때 다른 종교에서는 "너희들이 우리를 짐승 취급을 하고, 도그마(교리)만 언급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막상 모였을 때는 "어, 우리를 짐승취급하지 않고 사람취급을 해주네. 기분 좋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 지도자가 소감을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이 TV에 중계되기도 했고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짐승이라고 알아듣도록 전하는 그 자체가 바로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인데, 그런데 굳이 이것을 완화시키고 다독거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사실 전도와 변증은 서로 혼합이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라고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은 심판입니다" 라고 하든지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둘 다 어설프게 이야기해놓으면 변증이라는 아부가 나온다는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의 도덕적 가르침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탁월함을 설명했다.
-----------------------

그런데도 어설프게도 두 가지를 모두 조화시키려고 해서 나온 것이 무엇인고 하니, 교재에도 있듯이 예수님의 도덕적인 가르침을 인용해서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탁월함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도덕적 탁월함' 말이다. 아니 언제 다니엘이 도덕적인 탁월함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했는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에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이야기해두지만, 어느 시대이든 간에 그것이 1세기든 2세기든 간에, 성도가 성도된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임했을 때만 그 사람이 성도라는 것이다. 결코 도덕적 탁월함으로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도덕적 탁월함을 주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인간들은 이 도덕적 탁월함을 흉내낸다는 것이다. (무슨 원숭이도 아니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영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도덕적 흉내를 내어서 유사 신자로 행세해서 얼른 뚱땅 천국에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침을 튀기면서 해도, 아마 여러분들은 제대로 믿지 못하지 싶은데, 아직도 변증가들이 변증한 내용이 안 나왔기에 말이다. 도대체 변증가들이 어떻게 변증했는지를 것을 알고 나면 수긍이 갈 것이다.

이제 변증가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는데, 여기서 교재를 한번 보자.

-------------------------------
대표적 변증가 (1)유스티누스 (100-165) - 철학은 매우 커다란 재산이며, 신에 의해 최고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성스럽다. 철학과 올바른 이해 없이는 어떤 자도 통찰에 이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철학을 하여야 하며, 철학함을 매우 훌륭하고 존중할 만한 작업이다. 철학에도 진리의 흔적이 있다. 그것은 철학자에게도 '로고스의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 소크라테스. 헤라클레이토스, 스토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

◈ 변증 - 철학을 기독교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

'유스티누스' 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변증하는가? 철학은 매우 커다란 재산이며, 존중되어야할 것이고,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성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깜짝 놀랄 소리를 하는가? 즉 이렇게 변증을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에 로마를 지배한 사상은 바로 철학사상인데, 그러니 이런 철학을 좋게 말한다는 것은 기독교가 그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하는 것이, 그 철학에서 나온 것이 바로 '다신교' 라는 것이다. 어느 세상이든지 간에 종교가 없었던 그런 사회와 시대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철학이란 게 무엇을 위한 철학인고 하니까, 그런 여러 다신을, 즉 "우상을 섬겨도 그것은 가장 인간다운 고상함입니다" 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뭐라고 했는가? 우상과 사귀는 것은 귀신하고 사귀는 것이고, 우상은 다 헛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증거하는 예수 믿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유스티누스의 것과 말이다. 사도바울이라면 결코 이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전 10: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 유스티누스 -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도 그리스도인이다 !!

그런데 유스티누스는 말하기를, 교회가 자꾸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은 오해가 아닌데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철학을 하는 사람은 성스럽다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방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란 말이다. 즉 동화사 주지스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철학자들에게도 로고스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고 했는데, 즉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도 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살펴보자.

-------------------------
하지만 전체적인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확실하고 유용한 철학이다. 그것은 기독교는 예언의 성취에 따른 증명이기에 철학보다 더 힘있고, 더 신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이 모든 인간적인 철학보다 뛰어나다.
---------------------------

여기서는 유스티누스는 기독교만이 확실하고 유용한 철학이라고 하는데, (언뜻 들으면 기독교를 제대로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니까, 불신자와 신자는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라, 지식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누가 더 똑똑하냐 덜 똑똑하냐 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와서 더 배운 사람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고, 철학을 하는 사람도 이미 그리스도인인데 제대로 좀 더 공부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철학이 무엇과 연결이 되어 있는가? 다신교 사상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신앙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단지 스스로 몇 라지 특별한 통찰을 가질 뿐 결정적인 통찰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결정적인 통찰은 이미 지나간 철학에서 되풀이되어 말해 왔던 것이다.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신앙이라고 해서 전부가 아니고 또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단지 처음 믿을 때에만 신앙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변증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이것은 유스티누스 뿐만이 아니라, 터툴리안, 오리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드 등, 이들도 한결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신앙이란 처음 믿을 때 필요하고, 그 다음은 점점 높은데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위대한 곳으로 말이다. 사실 이것은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과 이런 타협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로고스에 관한 것인데,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로고스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에 의하면, '소리내어지는 것'이다. 그 소리는 인간의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로 이해된다. '영혼적'이라는 말은, 영혼이 자신 안에 갖는 것, 즉 생명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로고스란 어떠한 생명체가 자신이 지닌 본질을 내뱉는 소리로서 표현과 표현된 것의 종합적 진술을 뜻한다. 만일 로고스가 드러내지 않는다면 고유한 생명의 활동을 실행하지 못한다. 따라서 로고스는 스스로 은폐해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탈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고, 헤라클레이토스(B.C 540년경 철학자)는 주장한다. 그는 만물의 변화무쌍함을 묘사하면서도 그런 변화를 변화로 겪어내고 읽어낼 기준으로서 '일자(一者)'를 설정했다. 보편이성 또는 만물에 내재하는 보편법칙을 뜻하는 '로고스'라는 일자는, 이전 단계의 우주론에서 근원 탐구가 삼라만상의 다양성을 포괄하기에는 다소 한계를 지녔던 데 비해, 변화의 상극적임 다양성과 안정을 아우르는 풍부한 단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뒤 스토아학파(B.C 4세기)에 속한 학자들은, 우주의 질서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지각이 되는 것은 로고스 덕분으로 보았다.
------------------------

◈ 로고스 - 신은 하나지만 로고스가 다양하게 퍼져있다 !!

로고스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로고스는 소리내어지는 것이고, 그 소리는 인간 영혼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고스는 생명체 안에 숨어있는 무엇인데, 이 생명체를 활동하게 만드는 어떤 원리라는 것이다. 그 특징은 은폐되어 있으면서도 가끔 탈 은폐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로고스 이론이 나오는가? 모든 것이 일자(一者)인데 다양(多樣)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양한데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무엇인고 하니, "신은 하나지만 로고스가 다양하게 퍼져있다" 라고 해서, 서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10분 쉬고 하겠습니다.

----------------------------------------

초기 교회사는 상당히 설명하기 힘드는데, 그 이유는 먼저 문헌이 적고, 그리고 교부들의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비복음적이냐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것을 공부해야하는지 의구심과 회의가 들 정도로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질문 - 칼빈의 유형교회란 어떤 의미인가요?

답변 - 교회라는 유형체를 지속시키기 위한 정치적 배려라는 것이다.

질문 -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론으로 모이는 이유도 다 같은 논리인가요?

답변 - 오늘날 그렇게 모이는 것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인데, 즉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민중들이 납득할만한 교리가 무엇인가를 연구해서, 많은 교리들 가운데서 뽑아내면 된다는 것이다. 민중들이 외롭다고 하면 공동체 운동을 하면 되고, 뭔가 해탈하고 싶다고 하면 새생명 운동을 하면 되고, 자가 자유를 강조하려면 성령운동을 하면 되고, 그래도 교회가 있어야 된다고 하면 교회 직제나 교회 월력을 강조하면 되고 말이다. 물론 교회당 커턴 바꾸는 것도 잊지 말고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요구하면 성만찬을 자주 베풀면 되고 말이다. 또 예수님이 너무 신적이니 인간적인 것이 없냐고 하면 마리아를 주장하면 되고, 안 믿고 죽은 친척을 살리고 싶다면 연옥설 주장하면 되고, 이와 비슷한 것이 개신교에도 있는데 중보기도라고 말이다. 이것이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도 여러 번 계속해서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쟈크 엘룰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주장했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쟈크 엘룰의 책 '뒤틀려진 기독교사'는 한시간만 하면 다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미리 교회사를 공부해서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알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짜 10분 쉬고, 초창기에 어떤 이단들이 있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

정석훈 목사님의 교회사 정리를 참고로 재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글을 정리하면서 쟈크엘룰의 '튀틀려진 교회사'를 다시 읽고 있는데, 아마 그 책을 거의 책이 처음 나온 87년엔가 구입했지 싶은데, 지금 보면서 느낌은, "책은 읽는다고 읽는 것이 아니구나"를 새삼 느낍니다. 목회의 꿈에 부풀어있던 시대에 그런 책이 무슨 느낌으로 와 닿았겠습니까? 자기 환경에 항상 사로잡혀 무엇을 해도 하는 것이 인간이니 말입니다. 아마 자크엘룰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우리가 도대체 그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1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5,817 우리교회 아 8: 8-14 (빨리 달리라) 아가 최고관리자 07-10-07
5,816 우리교회 아 8: 8-14 (빨리 달리라) 아가 최고관리자 07-10-07
5,815 설교 요한계시록19장 7-10절 제목: 혼 인 잔 치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7-10-07
5,814 우리교회 계 19: 7-10 (혼인잔치)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7-10-07
5,813 자유게시판 퍼온 글(오스카쿨만의 시간관) 다니엘 최고관리자 07-10-07
5,812 자유게시판 20061208-(2) 서울강의녹취 : 갈라디아서 제 12강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7-10-06
5,811 강의 울산 10월 5일 강의 창세기 최고관리자 07-10-06
열람 ➜ 자유게시판 2005 교회사 2강 - A 이사야 최고관리자 07-10-05
5,809 자유게시판 전광훈 목사, "이명박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운다" 에스겔 최고관리자 07-10-05
5,808 묻고답하기 "때"를 결정하시는 분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7-10-05
5,807 자유게시판 광주강의(07. 9. 21) 2번 녹취록 유다서 최고관리자 07-10-05
5,806 자유게시판 죄인됨- 인간의 상식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 최고관리자 07-10-04
5,805 우리교회 [일반] 이단의 출발 [일반] 최고관리자 07-10-04
5,804 자유게시판 이단의 출발점 [신학] 최고관리자 07-10-04
5,803 묻고답하기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신학] 최고관리자 07-10-04
5,802 우리교회 [주보] 10월 7일 주보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7-10-03
5,801 우리교회 사 41: 8-13 (놀라지 말라) 이사야 최고관리자 07-10-03
5,800 강의 부산 10월 2일 조지래드13-그리스도인의삶, 성령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7-10-03
5,799 자유게시판 20061208-(1) 서울강의녹취 : 갈라디아서 제 11강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7-10-02
5,798 강의 대구 10월 1일 지옥의 하나님 75p 가짜 이스라엘 [신학] 최고관리자 07-10-01
5,797 자유게시판 내일부터 서버이전 작업을 합니다. 전도서 최고관리자 07-10-01
5,796 우리교회 [공지] 내일부터 서버이전 작업을 합니다. 전도서 최고관리자 07-10-01
5,795 묻고답하기 숨겨진 것은 반드시 숨긴 자에 의해서만 드러난다. - 최고관리자 07-10-01
5,794 자유게시판 "글 쓰는 권한"과 "글실어주는 권한" - 최고관리자 07-09-30
5,793 우리교회 아 8: 5- 7 (사랑이라는 죽음) 아가 최고관리자 07-09-3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