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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07. 9. 21) 2번 녹취록자유게시판유다서

광주강의(07. 9. 21) 2번 녹취록

이름 : 서경수(IP:116.37.101.23)

광주 강의(07. 9. 21) 29-2

오늘은 많이 참석 안 해서 진도 나가기가 곤란한데, 가인의 취지는 언제 가인이 되느냐 하면, 멸망당했다는 표가 날 때 진짜 가인다운 거예요. 아벨 때려죽일 때, 아벨을 때려 죽을 때 가장 가인다운 겁니다. 이렇게 미움 받을 짓을 스스로 해요.

이것을 유다서에서는 정욕대로, 본능대로 하는 것으로 말하지만, 창세기 4장에서는 ‘죄가 엎드려 있다 가인에게 달려드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 창세기 3장의 표현이 참 현대적이에요. 죄가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다스리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죄를 다스린다고 생각하는데, 죄가 웃습니다. “네가 나를 다스려? 내가 너를 안다. 너는 아무리 나를 다스리려고 해도 못 다스려.” 알고 덤빕니다.

도박, 술, 바람피우는 것 이런 것은 나쁜 줄 알면서도 절제가 안 됩니다. 절제가 안 되는 것은 ‘나를 잡아먹으세요.’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본능대로, 정욕에 따라 사는 사람은 ‘내 인생은 내가 관리 합니다.’ 라고 하지만, 성경은 “글쎄, 그런 소리 한다는 자체가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스스로의 힘으로 정욕을 이기느냔 말이지요. “너는 멸망 받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사람들까지 교회에 온다는 거예요. 오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일부러 넣어 놓지요. 그래서 참된 신자와 관계를 맺게 해서 신자로 하여금 “아, 저런 식으로 가는 것이 멸망이구나!”를 깨닫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하면서도 저쪽으로 가는 것이 진짜 지옥 가는 사람들의 특징이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것을 2주 전인가 설교를 했는데, “하나님의 진로라는 것은 불신자를 통해서 알 수 없고 이스라엘 내부에서 알게 됩니다.” 라고 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 성경 한 번 찾아 봅시다. 시편 106편 12절부터 누가 한 번 읽어보세요.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저희가 진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매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으며”

그 다음 시편 109편 4절에 보면,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8절을 보세요. “그 연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 자녀가 유리 구걸하며 그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3절에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저희 이름이 도말되게 하소서.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 저희 기념을 땅에서 끊으소서.”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충분하게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지옥불로 보내며, 유황불로 보내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바깥에서는 알 수 없고 이스라엘 내부에서 안다고 했지요.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집단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아 놓고도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지요.

이게 누구 이야기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이야기입니다. 위 말씀은 시편이지만 이 시편은 누구를 증거한다?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하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 대적하는 바리새인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받아놓고 오히려 사랑하는 분을 대적하고 미워하니 “주여 저들을 박살나게 하소서. 저들의 마누라는 과부되게 하시고, 자녀들은 졸지에 죽게 하시고, 사업은 말아먹게 하시고” 이렇게 쭉 나오지요. 시편에 보면 ‘저주 시’라고 해서 이런 내용들이 쭉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저주를 할 때는 그냥 저주하는 것이 아니고, 악인과 선인에게 은혜를 주셨어요.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받아놓고도 그 은혜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 없고 자기 잘 된 것만 챙길 때, 그것이 바로 교회 와서 저주받는 본때를 보여주는 모델이 되는 겁니다. 교묘하게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들을 교회에 불러놓고 조지는 겁니다. 불러놓고 멸망시킵니다.

그래서 진짜 아브라함 자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울고 있고? 지옥 불에서 울고 있고, 세리와 창기는 하늘나라에 가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배반해 버리고, “주여 저는 개입니다.” 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고.

그러니까 주님이 주신 사랑이 그대로 있어야 돼요. 그래서 유다서 1장 3절에 보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왜냐하면, 교회에 그런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에, 단번에 주신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라는 말입니다.

가인은 했습니다. 가인은 어떨 때 가인답다고 했습니까? 아벨을 쳐 죽일 때 가장 가인다워요.

그 다음에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11절)

민수기 23장 20절에 보면,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허물을 보지 않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지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끝까지 지켜야지.

발람이 축복을 했어요. 발람이 축복을 했지만 사실은 누가 시켜서 한 겁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을 통해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했단 말이지요. 그러면 이 축복은 여호와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이 축복을 취소하든지 아니면 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방법은 뭐냐? 이걸 발람이 연구한 거예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외부에서 아무리 저주를 해도 이스라엘 내부에서 다 축복으로 바뀌니까. 이것은 백날 해도 이스라엘은 안 망한단 말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방법은 뭐냐는 것이지요. 그 방법을 연구해야 돼요. 그 방법은 뭐냐? 이 발람이 마귀인 모양이라. 영적인 세계를 알아요. 아까 공식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떨 때 내린다? 은혜를 받고도 자기 본능과 욕구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차단시킬 때 내부적인 분열이 일어나지요.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때 떨어진다고 했습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받은 자에게 진노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놓고, 은혜 받아놓고 ‘아이고 뭐 은혜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고 자기 욕구, 본능대로 할 때 그 때 깨지잖아요. 그죠? 그래서 발람은 외부에서 저주로 공격하기 보다는 내부자체가 스스로 붕괴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게 민수기 25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하니라.”(1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에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여자가 들어와서’라고 할 때에, 바알브올의 종교가 여기에 침투합니다. 침투하니까 이제 여기 이스라엘 하나님은 그냥 일방적인 용서지요. 뭘 할 것도 없이 용서 받지요. 그런데 바알브올 이방종교는 뭐냐 하면,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하나님은 용서하고 우리는 죄인으로 그냥 있고 “주여 죄인입니다. 용서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런 관계이지만, 이방종교는 뭘 자극합니까? ‘너 이거 할 줄 알잖아, 너 이거 재미있어 하잖아, 너 이거 혹하잖아, 이거 너 평소에 얼마나 하고 싶어 하던 건데’ 어디 충실하라고 합니까? “네 본능에 충실하라”는 거잖아요. “네 욕망을 왜 자꾸 눌러버려. 욕망을 파내야지”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럼 그 욕망이 뭐냐? 그 이방종교의 큰 욕망이 있었죠. 신을 위한 성적인 파탄을 예를 드는 겁니다. 바알브올 이거 요즘으로 말하면 바람피우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게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겁니다. ‘신은 네 열정과 네 욕망과 네 본능조차도 신께서 바치기를 원한다.’ 이 말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게 아니라 부흥회 아닙니까?

“주여,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용서하소서.”

“십자가로 구원 받아라.” 이것 아니고.

“너 뭐 할 줄 아는데? 너 지금 나한테 어떤 재주를 피우고 싶은데? 네 본능대로 한 번 해 봐라.” 이 말입니다. 그러면 뭐가 차단됩니까? “나 죄인이야. 죄인인데 십자가 피로 구원 받았어.” 이런 시스템이 깨지죠? 나는 쭈그리고 앉아야 돼. “할 말이 있어야지. 죄인인데.” 이것이 아니지요? 개성이 살아요.

제가 군대 가서 처음 교회 다닐 때, 오해가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피아노 반주하는 아가씨(혹은 아줌마)는 믿음이 제일 좋은 줄 알았어요. 그 이유가 첫 번째, 성가대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반주하는 사람은 믿음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그 이유가 첫 번째, 반주자는 다른 사람들은 다 앞을 보는데 반주자는 항상 옆으로 앉아서 자기 모습을 보이잖아요. 우리는 다 죄인인데 반주자는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앉는 것이 ‘얼마나 믿음이 좋으면 그러냐?’ 두 번째, 반주자는 반 강제로 목사님 설교를 다 들으니까 들을 때마다 얼마나 은혜와 감동이 되고, 얼마나 성령 충만할까? 세 번째, 이것이 제일 중요해요. 교회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교회에서 반주한다는 말은 주님이 창세전부터 뜻이 있어서 반주를 시켰으니까 얼마나 귀한, 아무나 함부로 그 자리에 못 앉고 그렇게 하느냐? 그렇게 생각해서 반주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소원이 없겠다. 왜? 반주하는 사람은 천사도 흠모하고 주님이 알아주는 반주자 아닙니까. 그러면 반주자 뒤에 뭐가 따라다니겠습니까? 신의 축복이 따라 다니면, 나는 돈 별로 안 벌어도 그쪽에서 돈 다 벌 테니까 먹고 사는데 지장 없지 않겠나.

저의 일방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릴 때 교회 안 다니다가 나이 들어서 교회 다녔기 때문에 교회 앞에서 설치는 사람들이 다 주님의 천사 같은 사람인줄 알았어요.

‘목사’라는 말이 어디서 나와요. ‘목사님’이지. ‘주의 사자’고, ‘목사님’이고, 목사님이 시키는 것이 신의 법이고, 목사님이 집에 심방 오면 축복이 집에 충만한 것 같았고, 목사님은 성경 말씀을 다 지키는 줄 알았고.

지금 내가 목사 되었으니 이런 소리 하지, 목사 안 됐으면 언제 이런 소리 해 보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을 알고부터 앞에서 설치는 놈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보여요. 이것이 인간들의 개성과 본능을 자꾸 개발하는 거예요. 그냥 죄인으로 수그려 앉아서 십자가 피만 바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뭔가 재주껏 해서 돈 있는 놈은 돈 내고, 노래 잘하는 놈은 노래 부르고, 피아노 치는 자는 피아노 치고, 율동 하는 사람은 율동하고,

제가 청년시절에 교회 봉사하면서 모든 교사수련회(여름, 겨울) 다 쫓아 다녔습니다. 교사수련회 한다고 하면 주로 많이 하는 것이 뭐냐 하면, 율동을 많이 해요.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 다 했어요. 율동하는 그 순간에 내가 죄인이란 생각이 없었어요. 나는 지금 훌륭한 일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것을 배워서 교회에서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마하슬루의 자기 시련의 욕구요, 그것이 내 깊은 본능이란 사실을 몰았어요. 머리 숙여 ‘나는 죄인 맞습니다.’ 이런 것에서 벗어난 거죠. “주여,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이게 아니에요. “주여, 나에게 능력을 주옵소서.” 이것이 바로 이방종교입니다.

제가 유다서를 가지고 이런 설교를 하면 이상하게 보지요. 왜냐하면, ‘아니 여기는 이스라엘에 이방종교가 들어왔잖아요.’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아예 이방종교화 되어버렸어요. 여기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나오면 그 사람은 쫓겨납니다. 지금 교회가 그 정도로까지 사단이 장악하고 있어요.

재주 없고, 돈 없고, 인기 없고, 특기 없으면 그 사람은 성령 안 받은 사람으로 취급해요. 이 발람은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욕구를 자극해서 받은 은혜에는 관심이 없고, 이제는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나 튀냐?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 인간이냐? 이것 드러내기 위한 악마의 유혹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많이 배출된 자는 누구냐? 바로 신학교를 5:1, 6:1, 7:1까지 만든 신학교 지원자들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목사가 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전부 다 발람의 종교, 이방의 바알브올의 종교의 제사장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처음 듣는 소리’라고 합니다.

사람의 본능과 욕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됩니다.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 보면 육적인 것만 본능이 아니고 정신적인 것도 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육적인 색욕만 욕구가 아니라 정신적인 자아실현 이런 것도 하나의 욕구와 본능에서 발산됩니다. 육적인 것은 젊은 시절에 끝납니다. 늙으면 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정신적인 것으로 갑니다.

공무원들이 횡령하는 것 보면 그 사람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돈에 욕심을 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도.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이런 사람들이 정치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정신적인 욕구와 본능에 충실해서 나선 것입니다.

그 뒤에 나오네. 고라. 이 사람이 어디 바람을 피운 사람이에요? 뭐 하는 사람입니까? 방금 이야기했잖아요. 정치적인 사람이에요.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가 나옵니다. 이 고라가 성적인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지요? 고라는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1절 이후에 보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250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여러분 이게 뭐가 잘못 된 것입니까? 이게 왜 저주 받을 짓이고, 지옥 갈 일입니까? 뭐가 잘 못된 거예요? 이게 바로 짐승 같이 본능에 충실한 거예요. 자기 욕심대로 행동한 거예요. 탐이 나는 거예요. 뭐가 탐이 나느냐 하면, 높은 자리가 탐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서 올랐습니까?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했잖아요.

하나님이 선택했으면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그 자체를 은혜로 받아야 돼요.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 안 하고 모세와 아론을 선택했구나. 그것도 은혜지 뭐.’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 믿으라.”고 할 때 제일 기분 나쁜 게 뭐예요? ‘아니, 예수님만 인간이고 우리는 인간 아닌가?’ 이런 생각 때문에 기분 나빠요.

심지어는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어요. ‘예수님 당신도 잘났지만 나도 잘났다.’ 이런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쭈그려야 돼요. “주여, 저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러면 될 텐데, 뭐냐 하면, ‘예수님이 착하지만 나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많아요. 이현래 같은 사람. 이것이 제가 보기에는 욕망이에요. 본능이고. 이현래가 하는 소리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따라서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말씀 있는 우리도 말씀과 결합해서 우리도 예수가 된다.” 우리가 신이 되는 거예요. 여기에 뭐가 빠졌습니까? ‘예수 믿기’라는 것이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를 왜 믿는데?

이것은 이호식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예수를 왜 믿습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보고 예수 믿으라고 예수님 주신 것이 아니고, 네가 바로 예수인줄 알라고 예수를 주었다.” 이렇게 말해요. 꼭 불교에서 하는 이야기 같잖아요. ‘부처를 믿지 말고 네가 바로 부처다.’ 이 말입니다.

불교가 이런 소리 하는 것이 왜 그렇습니까? ‘고라’지요. 불교에서 뭐라고 합니까? “예수 너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게 뭡니까?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모독하는 고라의 욕구와 본능하고 똑 같잖아요. 이게.

이것을 제가 여러 번 이야기해도, 심하게 이야기해야 좀 알아듣는데 평소에 이야기하면 안 들어요. “우리도 인간인데, 우리도 말씀알고 복음도 아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쭈그리고 앉아서 ‘주여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면서 스스로 비하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가” 하면서 상당히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젊을 때는 간음하고 살인해야 죄인인줄 알아요. 나이가 들어보면 죄 아닌 게 없어요. 어떤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서 창고를 넓혔다. 이것이 무슨 죄입니까? 그리고 부자가 하는 말이 “내 영혼아 걱정하지 마라. 이제는 넉넉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죕니까?

펀드 하지 말까요? 생명보험 들지 말까요? “아프면 주고, 더 아프면 더 주고. 뭘 더 바래.” 어떤 탤런트가 그렇게 선전 안 하든가요. AIG 보험 선전할 때.

이런 보험 드는 것이나, 농사 잘 돼서 창고 넓혀서 하는 말이 “영혼아, 걱정하지 마라. 우리 평생 먹을 것 있다.” 이게 뭐가 나쁜데요?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하나님께 부요치 못하니 어리석인 인간이다.”

한 번 적어 볼게요. “하나님께 부요하다.”라는 말이 뭐예요? 하나님께 부요한 것 반대말이 뭡니까? 펀드에 부요했지요. 재산에 부요했잖아요. 그 반대가 뭐예요? 하나님께 부요하죠. 하나님께 부요하다는 말은 뭡니까? 내가 사는 것은 누구 덕분이다? 창세전이 이미 하나님이 계획하신 덕분에 내가 산다는 것 아닙니까. 이게 하나님의 계획에 부요하잖아요.

그런데 어리석은 부자는 뭘 챙깁니까? 내 인생은 누가 챙긴다? 내가 챙기는 거예요. 자기가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창고에 곡식이 많은 거예요. 그러면 그 곡식으로 누가 살아요? 내가 사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합니까? 그것은 “네가 제물에는 부요하지만 하나님께는 전혀 부요하지 않다.”(눅12:21)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나이가 많아 늙었다. 그러면 돈에 대해서 욕심이 없습니까? 옛날에는 돈 버는 것이 당연히 해야 될 일이지 죄라고 여기지를 않지요. 그러나 세월을 살면 살수록, 만약 여러분들이 90세, 95세 쯤 되었다고 합시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껍데기 밖에 없는 이 몸으로 있을 때에 그동안 돈만 생각하고 평생을 보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0대 젊은 청년들에게 “너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나?” 물으면, 당연히 안 부요하지요. 공부에 부요하고, 좋은 신랑(신부) 만나기에 부요하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목사님 그게 무슨 죕니까?” 하면서 죄인 줄 몰라요. 그것이 자기 본능에서 나온 것인 줄 모른다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고 뒤돌아보면, 결국 하나님 만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아요. 왜? 우리는 용서 받으니까. 단지 그것은 알아요. 아무 한 것이 없고, 마지막 죽을 날이 되어서 “주여! 오늘 밤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해 주세요.” 주님의 십자가 용서로 그냥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죄라는 것은 살면 살수록 더 많아지고 넓어지는데, 아까 이현래, 이호식 이런 사람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예수를 왜 믿냐? 바보들아!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네가 예수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쭈그리고 앉아서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피만 믿습니다.” 그런 짓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가 크면 독립을 시키는 것처럼 발로 찬다는 것입니다. “나가! 이제 너 혼자 살아.” 하고. 그런데 다 커서도 집에 와서 “엄마, 좀 살려주세요.” 이러면 엄마가 얼마나 귀찮겠느냐? 이런 주장을 해요.

다시 이야기할게요.

예수님은 두 종류의 사람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쪽은 신자고 다른 한쪽은 불신자입니다. 불신자는 독립해요. 신자는 죽더라도 독립을 못해요. 왜? 창세전에 이미 사랑 받고, 구원 받기로 작정되었기 때문에 독립을 안 합니다. 못합니다. 할 수가 없어요. 성령께서 가만 두지를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 하나님의 부요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 지옥 갈 사람들이 들어와요. 그 사람들은 자기의 본능에 충실해요. 그 본능이 뭐냐? 선악과 따 먹었지요. 선악과 따 먹을 때 노림수가 있었잖아요. 뭡니까? 나도 신이 된다. 신이 되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예수가 오고, 부처가 오고, 성령이 와도 결국은 다 ‘내가 신이다.’ 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뿐이지, 새삼스럽게 예수를 믿고 이런 짓하지 말라는 거예요. 애들처럼 찡찡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독립을 해야지.

이것이 뭐냐? ‘고라’입니다. 이것이 고라 자손이에요. 그러니까 이 가인과 발람과 고라의 예를 가만히 보면, ‘인간 욕망의 깊이가 이렇게 깊구나.’를 알게 됩니다.

발람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봅시다. 민수기 25장을 보겠습니다. 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24,000명입니다. 고라의 일로 죽은 사람은 몇 명입니까? 민수기 16장 49절을 봅시다. 여기는 몇 명 죽었습니까? 14,700명.

하나님이 이정도 잘못했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다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주특기에요. 하나님은 죄를 끄집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한 조목조목들을 다 끄집어낸 것입니다.

유다서를 계속 봅시다.

11절에 ‘가인의 길, 발람의 어그러진 길,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이미 이 사람들은 유황불 안 와도 저주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다서는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고, 네 본능이나 욕구를 달성하는 핑계거리고 삼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내 욕망을 이루는 핑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은혜 받고 내 욕망대로 산다. 그래서 내 욕망은 정당한 것이다.’ 라고 하지 말라 이 말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리는 어떤 욕망이 와도 그것은 그냥 죄에요. 처음부터 우리는 상한 심령이고, 태어날 때부터 죄고, 죽을 때까지 죄고. 우리가 욕망에 따라 하는 것은 다 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서 떠나면 안 돼요. 피로서 다 이루었다고 하면 끝난 것입니다. “피로 값 주고 샀으니” 또는 “그 피로 화목제물이 되었으니 죄인을 피로서 의롭다 하리라.” 이것을 누가 믿었느냐? 이 지혜를.

그 다음 12절에 보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지요. 곧 바짝 마른다는 것입니다. 13절에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이것은 욕망이 우리 속에서 터져 나올 때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 보려면 술집에 가면 되지요. 술집에 1차 끝나고 새벽 1시에 2차 가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개판이죠. 저는 안 가봐서 잘 모릅니다만, 영화나 이런 것을 보면 나오잖아요. 새벽 1시쯤 돼서 나이트클럽에 가면 제 마음대로지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것.

그 다음에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 떠도는 별이라고 하니까 바로 금요일, 토요일 밤거리에 떠도는 별들 안 많습니까. 젊은 아이들, 사기꾼들. 떠도는 별. 마음에 안정이 없어요. 오늘은 어디 가서 자극 받을까? 오늘도 하룻밤 어디서 즐길까? 매일 생각하는 것이 욕망과 본능에 충실해요. ‘내 인생 내가 즐기는 거야!’ 꼭 니체 같지요.

그냥 집에서 쭈그려 앉으란 말이지요. 죄인인줄 알고. 왜 자꾸 내 인생 내가 책임진다고 합니까? 자기가 왜 나오냔 말이지요. 그래봐야 결국 욕망의 소리가 마귀의 소리인데.

노아가 방주 만들 때, 노아는 이웃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모양이라. 방주 크게 만들어 놓았으면 크기가 민망스러우니까 한 두 사람이라도 왔으면 좋겠는데, 방주는 크게 만들어 놓고, 마치 뭐와 같은가 하면, 주인이 모텔 지어놓고 자기 식구들만, 아들 1호실, 딸 2호실 자기 식구들만 있고 손님은 한 사람도 없어. 이 얼마나 멀쑥합니까? 꼭 이런 식이에요. 참 부끄럽기 짝이 없지요.

우리교회 개척해 놓고 진주랑 우리 세 식구만 달랑 나온다면 기가 막힐 것 아닙니까.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화평교회도 마찬가집니다만.

그런데 보세요. 노아나 에녹 이런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아담의 7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만세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14-15절)

주께서 하신 말을 거부하는 사람, 주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강퍅한 사람, 노아가 방주를 만들면서 한 말을 거부한 사람들이죠. 하여튼 주님의 약속에 대해서, 에녹이 뭐 했습니까? 에녹은 “주께서 오셔서 심판한다.” 이거 이야기 했다고요. 이 말을 사람들이 귀담아 듣지를 않았어요. 심판이고 뭐고 우리는 우리 욕망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다서는 불신자를 욕하는 책이에요. 왜 네 마음대로 사느냔 말이지요.

16절에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로마서 7장 24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할 때,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나오지요. 이제는 성령의 법이 오는데 주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를 정했다. 즉 저주를 대신 받은 거예요. 그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안 믿기 때문에 정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거예요. 더러운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거예요. 불신자들이 심판 받는 이유는 벌을 자초해요. 왜? 몸에다 설탕 발라 놓으니까 벌이 따라 오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몸에다 꿀을 발라 놓으니까 벌이 달려드는 거지요. 꿀이 없으면 벌이 안 달려드는데 몸에다 매일같이 꿀을 잔뜩 발라 놓으니까 하나님의 저주가 항상 따라오는 거예요. 자기의 욕구와 본능대로만 살아가니까 만날 죄가 따라오는 거예요. 주님의 용서가 따라올 자리에 죄가 따라 오는 겁니다.

‘교회 갈까, 말까? 바쁜데 갈까, 말까?’ 이게 뭐냐 하면, 자기 본능과 욕구대로 만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의 질문에 이런 답변을 했습니다. “꼭 교회에 가야 주의 뜻입니까?” “주님께 교회 갈까, 말까를 물어나 보세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안 물어보고 교회 온 것도 정욕대로 온 것이고(혹시 벌 받을까 싶어서), 안 물어보고 안 온 것도 정욕대로 한 것이고.

우리는 평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주여, 시킨 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제가 군에 있을 때 교회 가려고 철조망을 넘으려고 하다가 못 넘어서 교회 못 간 일이 있습니다. 나도 한 고집 했어요. 기어이 주일 지킨다고 했지만 철조망이 너무 높았어요. 그 날 우리부대 같으면 갔는데 남의 부대여서 철조망이 너무 높아서 못 갔어요. 얼마나 가슴 치며 후회하며 “주여, 아시지요? 이 마음.” 결국 교회 못 갔어요. 3년 동안 교회 한 번 빠졌어요. 그 때 아마 내 욕망대로 한 모양이라.

18절에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기롱’이 뭡니까? 놀리는 것이지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한다고 하니까 “하이고, 뭐 예수 믿으면 용서받는다고. 우끼고 있네. 나도 그 소리 많이 들었다. 많이 들었다. 그만 해라!”

오늘날 교회가 그렇습니다. 처음 올 때 복음 때문에 기뻐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그때부터는 안 기뻐해요. 다시 본능과 욕구대로 돌아가서 이제는 말씀 전해도 말씀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이런 사람은 19절에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성령이 없기 때문에 욕구와 욕망대로 자극을 받고 그것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20절부터 끝까지는 뭐냐?

21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뭘 기다리라? 긍휼이죠. 다른 말로 하면, 불쌍히 여겨주심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김을 기다리는 것이 신자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하란 말이지요. “주여, 저는 이런 인간인데 뭘 주시렵니까?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이렇게 자꾸 하나님을 생각을 해야 돼요.

우리가 의인 될 생각하지 마세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내 죄가 이렇게 크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뿐이지, 우리는 주님 아니면 구원 될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주님에 대해서 더욱 더 깊이 생각하고,

22절에 “의심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고” 주님은 이미 용서해서 오셔.

또 어떤 사람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돼요.

23절에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 ‘야, 너 옷 너무 더럽다. 네 욕망대로 살아라.’ 이러지 말고, ‘예수 믿자.’ 라고 해야 되고.

24절에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주님을 바라보는데 무슨 흠이 있겠어요. 주님 사랑을 바라보는데.

25절에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만세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제 한 번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14절에, 아담의 7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예언했습니다.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합니다.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 오신 것도 바로 약속입니다. 이렇게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 내에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사람들을 현혹해서 “본능에 충실해. 욕망대로 사는 거야.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는 거야.” 라고, 주님께 물어보는 것도 없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도 없고,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도 없고, ‘이제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욕망대로 사니 그것이 바로 발람의 길이요, 가인의 길이요, 고라의 길입니다.

육체적인 색욕도 있지만 고라 같은 경우는 정치적인 욕망, 내가 최고가 되려는 그런 마음. 이것이 다 내 욕망이 나를 자극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더라도 항상 성도는 성령에 의해서 ‘그것이 바로 죄다.’ 라는 것을 알고 기뻐합니다. 죄만 알면 가정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 겸손하니까. 주님에 대해 부요해 지니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자기 자존심에 부요하지 말고 하나님 약속에 부요해서, 창세전부터 사랑받기로 작정된 자들이기에 무슨 짓을 해도 사랑이 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놓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마치겠습니다.

(2007. 10. 5. 09:03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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