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1: 8-13 (놀라지 말라)
사 41: 8-13 (놀라지 말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이사야 41장 8-13절
제목: 놀라지 말라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이사야-2005/108강-사41장,8-13,(놀라지,말라)-isa071003.hwp
이근호
07-10-03 21:29
놀라지 말라
2007년 10월 3일 본문 말씀: 이사야 41:8-13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사 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사 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사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누구의 호칭을 부를 때는 그 당사자의 이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 즉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인물은 이미 500년 전의 인물입니다. 이미 죽은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죽은 분의 이름을 계속 불러댑니다. 예를 들면, 매국노라고 유명한 이완용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지지금 하나님께서 구름 사이에는 말씀하시기를, “이완용아, 내 사랑하는 이완용아,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하신다면 이완용 후손들이 얼마나 기가 살겠습니까!
가슴 뿌듯할 것입니다. 이는 필시 이미 돌아가신 선조 이완용 그 본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들을 애타게 부르시는 것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야곱아, 이스라엘아 부르시는 것은 그 야곱의 후손되는 자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보는 자들은 한결같이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는 것처럼 오해하게 마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잊고서는,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든지 아니면, 외롭게 목회한다든지, 아니면 치명적인 병을 걸려서 신앙의 회의가 찾아 왔을 때, 모두들 자신을 위로하여 북돋우어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로지 이스라엘에게만 불러내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자는 하나님께서 불러내시지도 않습니다. 이 말은 곧 자신에게 어려움이 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로 간주해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지 어려움이 처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는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완용만 부르는데 이완수라든지, 이완철이라든지 김완용이라든지 이철용은 호출에 해당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자에게는 구원이고 축복이고 아예 없음을 뜻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신을 향하여 위로와 도움을 구한다할지라도 단지 그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도움에서 배제됩니다.
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다 구원하시지 않고 이스라엘만 고집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있는 문제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천국의 일꾼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처신을 하고 있는지 나와 있습니다. 날개가 모두 세 짝으로 되어 있는한 짝으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다른 한 쪽으로 발을 가리우고, 다른 한 짝으로 날개짓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일꾼도 이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그 거룩을 엄숙하게 찬양하고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라면 더욱 완전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거룩에 찬양을 돌리고 그것도 영원토록 돌려드려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인간치고 이렇게 해 낼 수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도 없고 천국에서 살 수도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리는 인간이 당연히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마련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피조물이라고 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과 거룩을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간들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님께 거룩을 돌려드리도록 일하시는 겁니까?
여기에 이스라엘만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즉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기준으로 택함 받은 분입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복을 받고,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무슨 권리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그것은 후손에 달렸습니다. 어떤 후손이냐 에 의해서 결정 난 역할입니다. 혈육적으로는 아브라함에게 숱한 후손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후손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피조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온전한 후손을 나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여럿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명뿐입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후손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겁니다. 왜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느냐 하면,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홀로 다 이루어내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몽땅 다 벗겨내시고 그 빈 자리에 자신의 의로움을 가득 채우시는 일을 성사시키신 분입니다.
따라서 그 후손을 가진 모든 이브라함 족속들은 그 후손의 공로로 의인이 되어서 온전히 하늘 나라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인간들의 혈육에만 맡겨 놓았다면 그 어느 인간도 온전히 자신의 행함을 부인할 수 없는 채로 그대로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즉 온전히 모든 거룩과 영광을 하나님에게로 돌려야 될 자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인간들은 결코 자신의 행한 것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자기 의로움을 부정할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들은 자아를 의식하는데 있어 자신의 행함을 밑천으로 삼아 구축하게 됩니다. 행여 못한 일이라고 간주되는 일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잊으려고 애를 쓰게 되고, 반대로 행여 자신이 잘한 일이라고 간주되면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날이 갈수록 그 의미가 부풀러지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아를 대표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자신의 의로움을 언제고 놓치지 않는 법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천국에 가게 되면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과 거룩을 돌려드리기 보다는 자신의 의로움에 그 속에다 삽입시키게 마련입니다. 이래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에 합당한 자세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 나의 장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민수기 23:21에 보면,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이스라엘과 함께 있어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거기에다 독생자의 의로움을 삽입시켜 의인되게 하시는 방식으로 동행하십니다. 이런 의로움과 거룩 앞에 감히 어느 민족이 그 앞 길을 막아서겠습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무서한 하나님의 진노 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