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사회 53"을 읽고
'예수 사회 53'을 읽고
이름 : 조 규 현(IP:221.167.192.36)
‘예수 사회 53’을 읽고...
확실하게 선을 긋고 구분지었으면 좋겠다. 복음과 비복음의 차이를 분명히 하자.
그럴사한 언술로 사람을 현혹하지 말자. ‘예수 사회 53’에 실린 몇 분의 글은 확실히 복음이 아니다.
소위 기독교 신자들이 신앙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자기의 성깔대로 살 것이 아니라 믿음의 합당한 외적 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는 예수를 닮아가야 진정한 신자라고도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의 의미는 성도의 삶이 그리스도처럼 살고 행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틀린 주장들이다. 복음을 말하면서 신자의 외적 행위 즉 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무지(無知)의 소치이다. 인간이 그리스도처럼 살고 행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필요가 없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성화(聖化, sanctification)를 동일 선상에 두고 칭의를 입은 자는 반드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면 신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십자가를 모독하는 사탄의 짓이다.
종교 철학적으로 보면 종교는 죽음의 문제이지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석가 역시 생노병사(生老病死)가 본질이었지 자비(慈悲)가 아니었다. 예수님에게 본질적인 것은 인간의 죄이지 산상보훈이 아니다. 산상보훈을 통하여 인간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육에 속한 자들은 산상보훈을 인간의 윤리의 기준으로 삼아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바울은 시편 14:1을 인용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규정하고 있으며,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라 말 하며(롬3:20),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의’(롬3:21-22)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성화의 삶을 살아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으나 죄의 법에 사로잡혀 있 는 자신의 실존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25)”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해방시키시는 은혜를 감사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롬7:27-8:2).
따라서 바울이 그의 서신 속에서 강조한 윤리적 삶과 권면은 십자가의 사랑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삶을 부탁했을 따름이다.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만 강조했을 뿐이다.
‘매일 밥을 먹어야 산다’는 말과 ‘매일 밥을 먹어도 죽는다’는 말은 둘 다 맞는 말이면서도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과 ‘성화의 삶을 살아도 죽는다’는 말은 맞는 말이면서도 큰 차이가 있다. 성화의 삶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우리를 살리는 십자가일 뿐이다. 복음과 기독교 윤리는 다른 것이다.
가령 요1서 4:10-11의 말씀을 생각해 보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4:10은 십자가의 의미를 담고 있고, 4:11은 성화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마땅 하도다’에 강조점을 두고 신자의 외적 삶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유를 생각해 보자. 어느 대기업체 사장의 아들이 있다. 이 아들에게는 사장의 아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아니라 사장의 아들 됨에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성도는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의 윤리적 행위와 삶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의 삶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삶만 있을 따름이다.(갈2:20)
고관규(IP:218.♡.107.177)
07-09-30 04:05
아주 교묘합니다.그런 비복음들의 행태를 오죽하면 발견키기 어려워서 바울은 미래를 예언하면서 그들을
"광명의 천사"라고까지 하엿습니다. 그만큼 사단은 노략질ㅡ을 비복음으로 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말씀을 변개시킨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의 변개자며, 십자가를 무용지물로 만들게하는 첨단무기를 계속 생산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죠, 사단의 목적은 비복음을 통한 기성교회의 대형화이며, 교회의 문화회관화이며,
윤리행함운동본부로 교회를 승격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지금도,,,,게속 불화살(에베소서)을 쏘아대고 있죠.
성도를 무너트리는 불화살의 공격이고, 성경의 언약복음을 불태워 버리고저 쏘아대고 있습니다.
샌더스의 제자들이며, 니고데모의 현대판 군상들입니다.
아주 사악한 무리들입니다.
칭의안에 있는 자들은? 모든 인생의 여정에 있는 실패로 인하여 칭의를 박탈당하지 않게 됩니다.
성화라는 말로 성도의 성도됨을, 성도의 상을 빼앗으려는 자들(에베.골로)이 바로 이단이며, 유황불못에 던지울 운명에 처한 자들입니다.
바로,,다른 복음으로 저주 ㅡ받을 자들입니다.
....
예수사회를 안보고 있지만, 예수사회에 저런 내용이 들어 오도록 허용이 되나요? 요즘엔?
박기삼(IP:61.♡.216.129)
07-09-30 09:26
예수사회가 자꾸 문제가 되는데
발행인으로서 한마디 합니다.
예수사회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적으로 발행인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발행인의 현재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예수사회가 복음이 아니라고 말씀하면 저는 유구무언일 뿐입니다.
저에게는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없을 뿐더라
저가 하루 동안 내밷는 말 속에는
오히려 예수사회가 내밷는 말과는 상대도 할 수 없을 만큼
주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십자가마을에서 보시기에 예수사회가 비복음이라고 생각되시면
먼저 매인교회를 십자가마을 추천사이트에서 삭제해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사회가 비복음이라서
누구 말대로 모두 불에 태워버리고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일랑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인간의 감정이 대립되니까 말입니다.
저는 십자가마을과 그런 감정 대립이 되기를 원치 않으니까요?
그러나 저에게 죄인이라고 욕하거나 비복음이라고 욕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고관규(IP:218.♡.107.182)
07-09-30 15:49
예수사회에 게재된 내용들을 모르고,또 안 읽고 댓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무슨 내용이 실려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올린 댓글은 원초적인 복음의 관점에서 드린 댓글이었으니, 박기삼 사장님께서 제글에 대하여 오해가 없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바울이 정의한 다른 ㅡ복음,비ㅡ복음의 내용이 주님의 관심밖 ㅡ에 있다는 점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대장간이 그간 추구한 복음의 맥이 예수사회에도 그대로ㅡ적용되리라 봅니다.
불태운다라는 말은, 예수사회가 불사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언약복음을 태우려고(태워지지도 않지만)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복음은ㅡㅡ 모든 인간감정과,연민과,연애사랑과,우정과.... 이런 것들을 초월하며,부인하고. 얽매이지 않으며
대적하게 됩니다.
박기삼(IP:61.♡.216.129)
07-09-30 16:08
저가 쓴 글은 고관규님의 글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실제적으로 저의 글이 비복음이라고 해서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