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신분 2003년 8월 31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28-33
Re..마 10:28-33 (전도자의 신분)
이름 : 이근호(IP:)
전도자의 신분
2003년 8월 31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28-33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직하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흔히들 하나님을 축복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들어와 있는 인간 세계에서 '저주의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하나님을 뒤로 돌리고 우선 저주의 하나님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여기에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된 이미지를 접수해야 합니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처럼 되신 것이 결코 도중에 인간들의 범죄로 인한 마음 변신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 적이 있습니다.
적을 그냥 봐주고 넘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적을 응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왜 하나님께서 '몸과 영혼을 지옥에서 철저하게 멸하시는 하나님'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신명기 27장으로 잠시 이동해 보겠습니다.
신명기란, 애굽이라는 나라와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살게 될 약속 땅, 그 사이에 끼인 광야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말한 내용들입니다. 즉 그 말씀의 내용들은 앞으로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점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들은 교회 올 때는 그저 편하게 왔다가 편하게 가고 싶어합니다. 무슨 숙제같은 것을 받게 되면 마음에 부담이 될 것이 뻔하다고 여깁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구원만 달랑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딴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구원된 자에게는 필히 하나님의 본성을 그 속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그 본성이 바로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저주의 하나님 상'입니다. 하나님을 단순히 자신 구원용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시려고 하려는 겁니다.
신명기 27:4-21에 보면,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찌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명백히 기록할찌니라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찌니라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찌니라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축복산이라고 알려진 그리심산과, 저주산이라고 알려진 에발산을 만나게된다는 겁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두 패로 나뉘어서 한쪽이 그리심산, 다른 한쪽은 에발산에 세워라는 겁니다.
이 두패가 나뉘어서 뭘 할 것입니까? 다른 한쪽은 축복을 선포하고 다른 한쪽은 저주를 선포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은 우렁차게 아멘이라고 화답하라는 겁니다. 이로서 이스라엘 사람들 머리 속에는 저주도 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를 지울 길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 28절을 다시 봐야 합니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 이미지는 임시변통으로 지옥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에 작정하신 바가 있어 만들어진 세계가 바로 지옥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잘 드러내게 위해 합당하게 만드신 것이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하려고 덤벼드는 것입니까? 그것은, 현재 인간을 스스로 힘으로 극복하는 못하는 그 세력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처음부터 저주받은 세력인 것을 인간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도 저주의 힘에 묶인채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지옥 자식으로 태어나며 살게 됩니다.
따라서 그냥 그대로 살면 너나 할 것이없이 모두 지옥행입니다. 하나님은 저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점을 우리가 놓치면 아니됩니다. 인간의 저주적 속성은, 저주의 하나님을 가볍게 다루는데서 얼마든지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라즈니쉬라는 정신적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내세우는 진리란 다름아인 '웃음'이라는 겁니다. 즉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냥 웃어버리라는 겁니다. 죽음이 찾아와서 그냥 웃고 넘겨버리라는 겁니다. 심각하고 고민하고 생각해 봤자 결국 남는 진리는, 이 세상 모두가 기껏 한 순간의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라라는 겁니다.
또 어떤 승려는 말하기를,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현재만 생각하면서 급하게 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정이 행복이 늘 채워진다는 겁니다. 스스로 행복해 지려는 사람은 참으로 이 말씀이 진리처럼 받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생각들이 긍정적 사고 방식의 극치입니다. 이 세상에서 결국 남은 것은 결국 우리 인간 뿐이라는 겁니다. 인간이 곧 신이며 인간은 이렇듯 자신을 절대신으로 간주해야만이 행복과 마음이 평안이 온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이 신이면서 또 무슨 신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가 하고 그들은 측은해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므로서 비로소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우선 있고 난 다음에 신이든, 예수든, 부처든 있는 것이지 자기가 만약에 없어지고 난 다음에 신이 무슨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느냐고 합니다.
라즈니쉬라는 사람은 말합니다. 목사나 신부들이, 자신은 신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남들에게는 신을 강요하고 신의 존재를 부축이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은 자기 사람들로 만들려는 술책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진정한 인간 해방은 바로 신마저도 해방하는 것 외에 없다는 겁니다. 자신이 곧 신이기에 그것을 모든 진리의 궁극적 해답으로 봅니다.
여러분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참으로 눈이 탁 트이는 진리의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저주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시는 지를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왜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그 때부터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곧 신이다"는 의식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해도 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그대로 신이 있다면 그 신의 임무는, 바로 '나'라는 신을 도와주고 격려해서 더욱더 나 자신을 훌륭한 신으로 만드는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세상이 이런 악마판으로 돌아가기에 하나님은 단호하게 '저주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예가 29절에 나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사람에게는 스스로 신으로 저차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율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점에 대해서 시비걸고 나서십니다. 세상에 어느 장사치가 물건을 사고 팔 때에 하나님 허락없이는 매매가 안된다고 여기는 자가 누가 있습니까! 물건 사고 파는 것, 하나님 허락없이도 작은 신인 자기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이 상식조차도 하나님보시기에는 인간에게는 저주의 요소 안에서 움직인다고 보고 계신 것입니다. 정말이지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 불가능한 겁니다. 이 점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예수님은 32-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여기에 보면 우리는 네가지 요소가 서로 어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시오, 또 세상 사람들이요, 또 개인 자신이요, 또 한 요소는 예수님이십니다. 만약 축복받고 저주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지키기로 성사된다면 여기에는, 네가지 요소가 아니라 세 가지 요소만 있으면 됩니다. 즉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시인하면 하나님도 너를 시인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는 세상사람, 자기 자신, 그리고 하나님 이 세 가지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은 지옥을 만드신 근본적인 취지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제대로 말씀 못지키면 그 때사 비로소 지옥보내겠다는 식으로 지옥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지옥을 만드신 것입니까?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죄에서 태어났기에 그 죄로 인해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겁니다. 죄의 댓가는 오직 지옥 뿐입니다. 죄인인 주제에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저주하시는 하나님의 상에 비쳐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지옥으로 떠내려가 사람이 천국으로 방향이 바뀐다면 이는 순전히 네 번째 요소인 예수님 덕분입니다. 예수님이 개입하므로 비로소 인간 세상에 천국가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1-32절에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에게만 천국 간다는 원칙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체 천국을 가게 해달라고 손 내밀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아니면 누구도 지옥에서 돌아설 자가 없습니다. 모든 공로는 순전히 예수님의 몫입니다. 이래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지 않으렵니까?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즉 여러 가지 사랑중에 하나가 십자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즉 오직 '십자가라는 사랑만이 우리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 분의 우리의 십자가와 저주를 대신 처리하신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더 이상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만 생각해도 충분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주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로 연결해서 생각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딴 마음 먹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