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례가 어떻게 피의 의미로 연결되는지요?
불세례가 어떻게 피의 의미로 연결되는지요?
이름 : 관리자(IP:124.59.87.70)
(눅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요일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요일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 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49,50)
1 .불세례가 어떻게 피의 의미로 전환(? 딱히 다른표현이 적절하지 못해서) 되는지? (그 과정? 이랄까 쉽게 알려주세요)
불세례가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면
십자가 사건 자체는 반드시 엉터리 세례개념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참세례의 의미를 막고 있다고 볼수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기존 세례 개념은 반드시 십자가라는 걸림돌을 제거한 상태의 세례 개념을 부각 시킬것이고
십자가는 바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반드시 십자가 개념을 집어 넣는 세례개념만을 드러낼텐데요?
2 . 왜 불 곧 피가 개입 되어야만 하는가요?
불세례가 구지 개입 되지 않아도 물세례 성령 세례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관규(IP:211.♡.202.28)
07-09-16 06:51
제 소견에는요
나의 받을 세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라고 하신 주님의 의도가 다음과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오심은 이미, 세상을 정죄하고, 다른 의를 주시러 오셨다고 압니다.
세상이 주님을 부인하고,거절하고,핍박하여서 현재 심판아래 있지요. 세례요한은 그래서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꽂혀있다고 한 것이 아닌가요? 주님의 오심의 자체가 이미 심판성의 현재화이며, 미래에 도래할 심판을 약속하지요. 주님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하심은 십자가의 죽음을 말함이 아닌가요? 모든 자기백성을 위해 죽으시고, 모든 자기백성을 위해 다시 사십니다. 세례란 옛것이 도말됨이요,새것이 옴입니다.
불세례가 십자가사건이 아니구요. 불세례와 주님이 받으실 세례는 구분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요?
주님이 세례요한에게 받으신 물세례(침례)는 새로운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분깃점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물밥티조는 앞으로는 택함된 누구에게나 임 할 성령님의 임함인 성령밥티조를 기약합니다.
이래서 주님이 물에서 밥티조되심으로 올라올 새 성령이 비둘기로 상징적으로,,,오심이 아닌가요?
이것은,,,바로 누구나 성령밥티조를 받게 될 것을 또한 암시합니다.
불세례는 세상에 대한, 주님의 사역의 처절함을 보여줍니다. 제가 이미 올린 세례로 표현되는 이 두가지의 분류,,즉
성령세례와 불세례에서....불세례라함은 거절하는 자들에게 이미 임한 심판성이요, 장차 임힐 심판의 구체화에 대한 예언적인 주님의 선포라고 봅니다.
물과,성령과 피의 세가지는 하나라고 하심은
물은 물밥티조를 말함이요(씻는 의식을 통한 갱생),성령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처음으로 임하는 영원한 인침이며. 피는 바로 십자가의 죄사함을 위한 피가 되지요
그래서 사도요한은 세가지를 하나로 보는 겁니다.
택함을 받는 자들이 거치며, 적용을 받는 세가지의 하나됨입니다.
다시 언급한다면,,,왜? 주님이 받으실 세례가 있다고 했나요?
그것은 주님의 죽으심과,부활하심이,,,,,성도들이 받을 진정한 세례(옛것이 죽고, 새것에 덧잎음)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고 싶군요
1번에 대한 답은,,,, 글쎄요 불을 던지러 왔다와, 주님이 받을 세례를 연결시킬 필요가 있나요?
2번에 대한 답은,,,, 불세례를, 물,성령세례에 첨가할 필요가 있을까요? 의미가 다른데요
이근호(IP:117.♡.144.217)
07-09-16 08:08
'불세례는 세상에 대한, 주님의 사역의 처절함을 보여줍니다'라는 표현이 삶 자체에서 우러나는 표현이라서 너무 흡족합니다. 신학을 생각할 때 이처럼 삶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주님 사역의 처절함'이 우리에게 덮쳐오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곧 주님과의 '연합'이요'하나'라는 표현도 무난합니다만 삶과 연결된 표현이 아니라 상식화된 신학적 개념 나부랭이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과 불과 성령은, 주님이 당하신 처절함의 표현이요 ''세례'란 그러한 처절함에 우리 성도를 동참시키기 위함인데 물과 불과 성령은 곧 십자가 사건으로 대변됩니다. 십자가 복음을 달성하기 위함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만 내린 조치입니다.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행한 요단강의 물세례도 예수님을 겨냥하기 위한 예언입니다. 따라서 불의 심판이나 물속에서의 사망이나 성령의 강림 이 모두가, 구원이란 오직 십자가에서만 나온다는 것(예수님의 사역 완성에서만 나온다는 것=새언약 완성에서만 나온다는)을 말해주는 표시입니다. 우리의 행함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행함과 상관없이 꼭 그렇게 실시될 것입니다.
박윤진(IP:58.♡.52.135)
07-09-16 20:21
육신을 설명할 때, 물과 피로 설명하는데 물은 구약의 율법에 갇혀있는 죽음에 종속된 인간의 한계성을 의미합니다. 피가 불(죄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공격)에 의해 터져나오지 않는다면 그저 물에 그치고 맙니다. 홍해를 건넜지만 그 홍해의 세례는 율법 아래에 갇혀있는 육신의 한계로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리 위에서 넘실 거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피는 이러한 물의 한계를 분명히 해야만 가능합니다. 한계를 분명히 해야지 초월의 의미 또한 분명해 집니다. 물의 한계를 불이 공격하게 되면 피가 쏟아져 나옵니다.
불은 구약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거룩이 죄악된 세상 속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는 이 세상을 ‘소멸’시키는 불로 형상화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세상이 죄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즉 죄의 소멸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죄없으신 분이 죄의 모습으로 오심으로 인해 거룩과 죄 사이의 긴장관계,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전쟁관계의 피해자로서의 하나님으로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여자의 후손은 불처럼 임하시는 하나님의 저주는 저주대로 받으면서 버림받고 그로 인해 터져나오는 자신의 피로서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곧 언약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것만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피가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피가 바로 인간이 죄인임이 들통하는 결정적 증거인 동시에 그 죄인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세례 외에 다른 세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종교적 형식화를 통한 자기 긍정의 노림수가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말고 또 다른 물증을 요구하는 것이지요.불과 피는 모두 우리의 죄를 소멸하시는 예수님의 역사 속에서만 구체적으로 그 의미가 드러나고, 그 불의 공격성과 그 불로 인한 피의 터져나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만 분명해짐을 물과 피와 성령이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십자가 사건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도하시면서 그 소멸의 불속으로 피를 쏟도록 이끌고, 십자가 사건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령이 주도되시면서 오직 그 살과 피를 증거하는 쪽으로 성도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결국, 성도는 성령에 의해 끌려들어오는 연합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세례를 받게 됩니다.
김대식(IP:124.♡.87.70)
07-09-17 06:35
와우 !!, 이런 답변을 듣다니 놀랍습니다. 매번 사랑의 빚만 늘어나는 것 같네요.
음 ! 그래서 상한심령만 원하시는 군요.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마치 사도바울이 고집 스럽게 십자가만 알기로 했다는 그 지독한 사랑만 바라보겠다는 그 모습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