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후의 삶
구원 이후의 삶
이름 : 신직수(IP:121.183.135.70)
고3 때 레위기 13장 읽다 "거룩에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을 경험하고 침신에 갔는데,
교회 신학상 거룩을 이루려 나름대로 노력하다
동기 형님에게 고등부를 인수받으면서 약 4년간 최선을 다했지만
그 최선이 모두 시뻘건 사기만 쳤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고등부 때 인간적으로 많이 사랑했던, 현재 25세 청년이 엊그제 심장마비로 죽게되었는데
거기서 그 때 그 형님 목사를 만났는데, 머하냐 사역은 하냐 등 묻다가 신학적 대화까지
벌이게 되었는데,
공덕교회 담임목사도 그렇고 그 형님도 그렇고 구원 전은 다 비스무리한데
구원 후엔 살았으니 성경에게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았으니 열심히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한다는
열심히 전도, 기도, 예배, 전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 형님의 주 내용이었습니다.
뻔한 내용 나올것을 예상해 대화하지 않으려 했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삭 무시하는 내용으로 일관하며 십자가와 그로 인해 성도의 특징을 말하다,
형님이 "너만 신자냐, 너만 자녀냐 " 라고 다그치기에 대답을 안하다.
"내 말엔 이미 그런 질문의 답변이 다 들어있고 그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냥 내 안에 있는 내 믿음을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덧붙여
"신자의 내용은 인간 자신 보다는 인간 몸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자신 때문에 신자입니다.
그러니 인간 자신은 신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라고 대강 대강 말했는데, 머 대충 생각나는 대로 썼네요.
질문은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의 저 신학은 어느 철학자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며
어떤 철학의 흐름을 탔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목사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항상 십자가 마을 님들을 뵙고 싶은 맘입니다.
대전에서...신직수 올림...
이근호(IP:117.♡.144.217)
07-09-08 00:37
십자가 사건과 마주침이 없이 그냥 스쳐지나간 버린 자의 눈 앞에는 '자아의 절대신성'의 자리만 보이는 법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사건 안에 합류되어 삼킴을 당한 자는,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보입니다. '자아의 절대성'은 인류의 모든 신화와 종교와 철학의 근본입니다. 어느 철학 할 것이 모든 철학과 종교와 신학이 '자아의 절대성'에서부터 출발해서 '자아의 절대성'을 구체화하는 것을 목표를 삼고 달려갑니다. 그래서 우상입니다. 날이갈수록 십자가가 더 크게 보이지 않으면 모두 우상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멀리하면 할수록 우상적인 여호와를 섬기듯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여호와와의 동행이란 자기 죽음의 연속이었습니다. 철학이고 신학이고 종교고 신화고 뭐고 간에 그들에게는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의 위력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신직수(IP:121.♡.135.70)
07-09-09 16:50
참나.. 여기다..써 버렸네요..질문 및 답변에다가 써야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