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0:12-17 (최종 지혜자)
사 40:12-17 (최종 지혜자)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41)
본문: 이사야 40장 12-17절
제목: 최종 지혜자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이사야-2005/104강-사40장,12-17,(최종,지혜자)-isa070905.hwp
이근호
07-09-05 21:09
최종 지혜자
2007년 9월 5일 본문 말씀: 이사야 40:12-17
(사 40: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사 40: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사 40:14)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사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사 40:16)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사 40: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대단하심을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인간들은 오늘 본문에서 나온 질문의 답변에 정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해서 이 대자연 속에 사는 자는 이 자연의 지혜를 알아야만 복을 받습니다. 인간이기에 몰라도 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만드신 대 자연의 지혜를 모르고 있다면 그 대가를 치러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변명하기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나도 위대하니 인간들은 그 지혜에 대해서 몰라서 상관없지 않는가 합니다. 즉 인간들은 너무 보잘것 없고, 연약해서 대자연의 지혜를 몰라도 하나님께서 충분히 이해해주리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하나님 일 따로, 자기 일 따로 두겠다는 심보에서 비롯된 겁니다.
원대하고 위대한 지혜는 하나님이나 알아서 잘 챙기시고, 우리 인간들은 우리 인간의 격에 맡는 지혜만 소지하면 그만이다는 의식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지혜는 우리 인간도 같이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피조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바다를 재고, 뼘으로 하늘을 재고, 저울로 산들을 재는 이러한 시도가 인간들이 안해도 무방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혜없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이사야를 통해서 전달하시는 것은, 다른 민족은 몰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민족만큼은 하나님께서 알고 있는 지혜를 공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대단하시고, 위대하시고, 놀라운 지혜를 지니고 있음을 그저 찬양한다고 해서 하나님 백성의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정도는 불신자들도 감을 잡습니다. “신은 참 대단하다. 이런 큰 일도 하시다니”라고 얼마든지 감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도 감탄할만한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조치하시겠다고 나서십니다.
즉 자연세계를 모든 지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백성에게는 반드시 제공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자연세계의 지혜를 모르는 것이 벌을 받는 이유가 되는 겁니까? 욥기 40:8에 보면,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상스럽게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싶어하고 의롭다는 판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즉 그동안 자신이 나름대로 안다고 우기는 모든 것이 어디로 쏠리는가 하면, 자신의 정당성과 자신의 의로움을 챙기는 것에 소모됩니다.
즉 내가 이만큼 알고 있으니 나는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되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그러한 ‘자기 정당성 확립’이 도리어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간주하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세계의 지혜를 가지고 들이대십니다.
즉 자연세계의 모든 이치는 더 이상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정당성이나 의로움을 우기만할 지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이상스럽게 인간들은 이유도 없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잘난 인간으로 간주하고 들어간다는 겁니다. 실은 인간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채 살아온다는 것은 필히 이 세상 안에서 죄들을 퍼질러 놓은 행동을 해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지가 곧 죄로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지혜가 없으면서도 자신이 살만한 권리가 있다고 우기는 그 배경에는 필히 하나님의 지혜를 배격하는 본성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죽음이 바로 그런 겁니다. 모두들 살고 싶어하지만 그 누구도 예외없이 다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인간들은 안 죽으려고 사는 것 자체가 지혜를 배반하는 본성을 발휘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백성되게 하는 그 근거가 우리 인간이나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에게조차 없다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백성됨은 오직 장차 오실 메시야 되시는 ‘인자’에게 있습니다. 인자란 사람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 지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들로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자기 백성 만들기 사명을 수행하는 분으로서의 인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람들이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하심 따라 주변에 발생되는 겁니다.
인자로서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란, 이 대자연의 참 지혜로서 일하심인데 그것은 곧 자기 백성을 위하여 죄인으로서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의 저주를 받는 일이고, 거기서 들려서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고, 그 벗어난 상태에서 자기 백성들을 그곳까지 끌어당기시는 일을 말합니다.
이 십자가 복음은 곧 창세전부터 인간들에게 감추어졌던 비밀이요 지혜입니다. 대자연의 회복과 자기 백성의 구원도 모두 예수님만이 행할 수 있는 감추어진 지혜의 완성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 발생이란 인자로서 자신의 공로의 결과로만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아무에게도 붙들고 의논하지 않는 지혜입니다. 순전히 하나님 홀로 창안한 아이디어요,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홀로 다 수행해내시게 됩니다. 로마서 11:33-36에 보면,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이 집어넣어주신 하나님의 십자가 지혜가 더 소중함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