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8장 7-10절 제목: 가슴을 치며
계 18: 7-10 (가슴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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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7-09-02 13:09
가슴을 치며
2007년 9월 2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8:7-10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자들이 왜 하나님께 매를 맞고 벌을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이들의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치 표창을 가지고 천장을 향해 던지면서 여지없이 천장에 꽂히듯이 이 세상에서 지은 죄는 그냥 포물선 그리면서 지평선 너머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하늘에 꽂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만드실 때 그런 구조를 갖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나 악마의 죄가 그냥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그런 구조가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 구조가 아닙니다. 몽땅 하늘에 사무치게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죄에 준해서 자동적으로 하늘에 물이나 불이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옛날 화장실 위에 달린 구식 물탱크에서 물이 마구 쏟아지듯이 말입니다. 물은 무조건 낮은 곳으로 진행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도 죄가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부여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죄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죄라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로 그 개입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진해서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싫어한다고 우깁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 선수가 공을 잘차고 공을 잘 쳐서 홈런을 만드는 것을 왜 사람들은 좋아할까요? 과연 공을 잘 차는 것이 선한 일입니까? 홈런치는 것이 선한 일입니까?그렇지 않지요. 자기가 사놓은 땅값이 오르는 것이 선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땅 값이 오르는 것을 좋아합니까?
그것은 사람은 선한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는 겁니다. 즉 세상만사가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여지는 것을 더 원하고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 생의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러시아 시인 퓨쉬킨이 지은 ‘삶’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삶이 너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있고 오늘은 우울한 것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그 날이 그리워지리라.”
라는 내용의 시입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려고 미래에 마음을 두고 살지만 그 미래라고 여겼던 그 시점이 되면 또다시 이 시를 외워할 것입니다. 즉 자아만 덩그러니 남는 세월이란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하나님의 개입의 그 의미를 모르기에 죄악된 세월일 뿐입니다. 자아가 깨어져야 복음이 나옵니다. 자아가 깨어지는 순간이란 자신이 세운 목표나 목적이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천지창조 때 하나님은 현재 눈에 보이는 자연 세계를 물 밑에 가두어두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차하면 윗 동네 물이 쏟아져 전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이 우주 질서는 불로 휩싸여져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약속의 날이 오게 되면 그 휩싸여진 불에 의해서 가치없이 날아가 버리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물과 불 안에 자연세계를 가두어두신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창조에는 스스로 쓰레기를 치워버리는 장치도 함께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우주의 창조 원리를 모르는 쓰레기는 언제든지 물과 불로서 처리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창조하신 원리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을 위한 창조가 아니었더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골로새서 1:16에 보면,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정에서는 태어나는 신생아는 태어나면서 탯줄이 끊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영원토록 우주의 주인되시는 주님과 탯줄이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좋던 싫든 예수님이 행하신 십자가 사건의 한 대목을 담당해야만 합니다.
즉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중심으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주는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마저 죄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저주해 버린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류는 다 전멸당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입니다.
그 십자가의 긴긴 그림자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성경은 ‘음행의 세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음행’이란 ‘잘못된 엮임’을 말합니다. 피조물이라면 하나님과 엮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엮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음행에는 ‘전염’과 ‘중독’의 원리로 움직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이웃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전수합니다. 이웃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됩니다. 단순히 공간적으로 붙어지는데 이웃 뿐만아니라 오늘날에는 TV라는 메스컴이 이웃을 대신해서 쳐들어옵니다.
드라마에 출현하는 배우들의 모양새가 요즘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창출합니다. 스스로 자시느이 품위유지를 위해서 사람들은 그 어떤 희생을 치를 작정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음행’인 것입니다. 잘못된 엮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실로암에서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떼죽음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서 그들의 죄로 인한 하늘의 징벌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류가 다 전멸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의 흔적이라고 말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저와 같이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종교나 문화를 가지고 논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본성대로 나오는 죄를 향해 저주하실 뿐입니다.
십자가에서는 긴 자비의 그림자도 나옵니다. 마치 수평선 너무 아무 말없이 떠올라 우리 가슴을 따갑게 비추는 햇살처럼, 십자가의 자비도 이런 빛으로 와서 쪼이십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창조 원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보혈의 피의 햇살이 비쳐서 이제는 우리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목표로 인하여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