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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두려움 없는 사랑(늘푸른 교회 이장우 목사님 설교)자유게시판히브리서

두려움 없는 사랑(늘푸른 교회 이장우 목사님 설교)

이름 : 이미아(IP:124.61.26.54)

요한일서 4:13-21 두려움 없는 사랑 2007. 8. 22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 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16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 거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시 공간 안에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이런 문제를 우리의 지식이나 이론으로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영적으로만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영적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13절에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20절을 봅니다. “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렇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고 또 증거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임을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심으로 사도들의 증거를 알게 되고 또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왜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함께 가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증거와 상관없이 내가 상상하는 바를 믿는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증거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기억도 나게 하시고 그 뜻을 알게도 하시며 믿게도 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나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17절에서 사랑이 온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그 온전한 사랑에 우리를 넣어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사랑 안에 넣어주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게 됨으로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심으로 알고 믿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주님께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내셨고 그 사랑 안에 우리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17절 뒷부분은 봅니다.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까? 온전한 사랑 때문에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이 되셨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그 안에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을 당하여도 주님의 온전한 사랑에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까봐서 두렵습니다.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더 궁극적으로는 죽음도 두렵고, 죽음 이후의 심판도 두려운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이 최초로 나타나는 곳은 역시 에덴동산에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의 환경은 해로운 곤충이나 사나운 짐승이나 독초들의 위협조차 전혀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은 범죄 후에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이 두려움을 히브리서에서 봅니다.

히브리서 2:5-18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께서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복종하게 하십니다.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지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만물이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만물이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만 이미 묵시세계에서는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성령이 임한 자만이 믿게 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만물이 원인이 되시는 주님께서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주님을 고난으로 온전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 고난은 자녀들이 혈육에 속하였기에 같은 모양으로 오셔서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일생동안 죽음의 종노릇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죽으면 안 돼! 나는 실패하면 안 돼! 우리 남편은 성공해야 돼! 이미 남편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면 우리 자식만은 성공해야 돼! 이것이 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동안 종노릇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을 예수님이 대신 고난 받으시므로 구원하시고 충성된 대 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고난 받으시고 시험을 당하셨기에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나의 의도 아닙니다. 나의 재산이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나의 이력서가 나를 안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 피 안에서, 그 저주 받으심 아래서 다시는 심판과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기에 어떤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제일 두려웠던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죄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제일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스스로 이길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력하는 만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마음속으로도 짓는 죄도 같은 죄라는 설교를 듣고 자랐으니 날마다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온갖 고민과 타협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니 십자가의 대속의 능력을 너무 몰랐던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16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이미 9-10절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만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을 불러도 그저 내 지옥 안가고 천국 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 앞에서 자기 사랑은 부인되어 지는 것입니다.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이었구나! 이런 죄로 인하여 주님께서 대신 죽으시는 길 외에는 다른 사랑의 길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 까지 몽땅 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사랑입니다.

18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 안에서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온전하게 구원하시는 것은 자기 아들의 피의 공로를 헛되게 하시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아들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랑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사랑하시니 자기 아들의 피를 보고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더 이상 두려움이 없습니다. 때로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그 사랑을 알지 못하여 그럴 수는 있을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 밤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서도 두려워한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의 옆 동네에서 곡소리가 들려올 때에 비록 어린 양의 피를 발랐지만 자기 집에도 죽음의 천사가 들어오지 않을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죽음의 천사가 물러갔을 때에 그들이 무엇을 믿었을까요? 어린 양의 피의 효력을 알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 자기 아들의 피로 인한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좇습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8절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예하지 못한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첫 번째 목록이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다음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지옥에 가는 자들을 흉악한 자들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 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 다 불과 유황 불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죄들은 우리도 다 행하는 죄들입니다. 마음의 동기를 행위와 같이 보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흉악합니까? 남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인데 얼마나 많이 살인하였습니까? 그럴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다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자들은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온갖 두려움에 시달려 왔습니다. 밤중에 화장실 가는 것도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두려움이 여러 가지로 바뀌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을까 두렵고, 시험에 떨어질까 두렵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두렵고, 이유 없이 두려움이 몰려오고, 그래서 종교를 가져 보기도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 그 십자가의 피 안에서만 더 이상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안에서는 자신이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자리입니다. 자기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리입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왜 예수님이 죽으셨는지를 아는 자리에서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사는 일에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 안에 나타난 사랑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을 알아가는 길은 19-21절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됩니다. 연못 한 가운데 돌멩이를 던지만 그 물결이 끝까지 밀려갑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온 사랑이 우리를 밀치면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또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주님의 온전한 사랑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같은 고백을 하는 형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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