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무기.용..
뱀.이무기.용..
이름 : 고관규(IP:61.35.48.207)
성경을 해석할 때에 지나친 영해도 아니지만. 영해를 무시도 못하는 것 같아요
복음안에서, 십자가로 해석하면 최상이나,,,복음을 말하는 해석도 시중에는 그럴 듯 한 해석이 많지만
지나친 영해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뭔가 부족함을 보기도 합니다(제 소견에는 그러더군요)
계시록의 용,옛뱀,,사탄에서 왜? 용이라는 표현이 나오나요? 뱀..옛뱀은 에덴동산에 등장한 것으로 익히 알지만
용은 무슨 의미인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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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조용헌씨 칼럼을 요약해서 올립니다. 주제는 디워의 영화를 말하면서 평하는 글인데
참고로 보시고, 디워를 말함이 아니라,,,,윗글처럼 용이 계시록에서 그림 언어로 말해진 것이 궁급해서요?
(조용헌칼럼요약) ㅡ주역의 시작은 건괘이다. 잠룡은 물용이라... 물속에 잠겨 있는 어린 용은 아직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잠룡은 아직은 뱀의 단계이다.용은 첨부터는 용이 아니라, 뱀의 단계부터 시작한다.뱀이 성장하면 이무기가 되고,이무기가 다시 원숙해지면 용이 된다고 본다.그러니까 뱀은 아직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상태이다.
건괘의 두번재는 현룡재전이니,,이견대인이라,,, 물속에 있던 용이 약간 자라서 고개를 내밀고, 물 밖을 나와 땅에 출현한다는 뜻이다. 이는 뱀이 어는 정도 성정하여 이무기로 변하는 과정을 카리킨다. 사람에 비유하면 세상에 처음 나와 보는 단계이다
다음은 혹약재연이면 무구니라...이다. 혹시 점프를 하더러도 연못에 있으면 다치지 아니한다., 이다. 어느 정도 자란 이무기가 하늘로 비상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날아오르는 연습을 할 때에 맨땅에서 하지 말고, 연못에서 하면 잘못되더러도 물로 떨어지니까 부상을 입지 않는다는 충고이다.
다음은 비룡재천 이견대인이라... 나는 용이 하늘에 잇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 비룡재천은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어 하늘을 맘대로 날아다니는 단계이다 최고의 경지이다.
다음은 항룡유회이다. 높이 오르는 용은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주역건괘는 뱀 ㅡ이무기 ㅡ용의 변화과정을 암시하고 잇다. "디워"는 흑약재연의 단계인가?(요약 끝)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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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IP:117.♡.129.159)
07-08-25 02:44
인간의 힘으로 자연 속에 담겨 있는 신비성을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여 자연 안에서 군림하는 동물이 용으로서 이 용에 대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다스려주기를 바라는 인간들의 종교적 요청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위협을 이런 신화적 용어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고관규(IP:218.♡.107.181)
07-08-26 02:00
인간세상에서의 용ㅡ이 차지하고 있는 큰 무서움과, 신화적인 전율은 무시할 수는 없읍니다.
용이 하늘로 비상하는 신화적인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인간들에게는 전설이야기를 빌어서 전설을 만들고, 전설로,,,순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세대들입니다.
그럼
왜? 계시록의 언어에서 용이 나왔는가를 물어봅니다.
구약의 묵시서인 다니엘과 에스겔이 계시록의 원형이라면, 혹시,,,,구약에서 용의 근거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요. 만일 구약에서 근거를 못찾는다면 도대체,.,,용이라는 짐승을 왜? 계시록에서 말해졌는가 이겁니다.
성경의 내용에는 우연ㅡ적인 언어사용이 없을걸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궁금해요 용이라는 짐승이 우연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을겁니다. 분명 의도가 있을거라고 봐요
용이 사탄이라면. 옜날의 군왕들의 도포에 용이 그려져있고, 용을 신성시했던 고대의 각 나라들에서
나라와 국가의 왕들은 ,..세상나라의 임금들이 아닌가요? 그러기에 용을 그리고, 옷에 세기고 하는 것들이
결정적으로, 흑백적으로는 마귀..라는 것이 아닌가요? 그럼 세상을 장악하고, 한국을 장악했던 사단의 역사를 꾀고, 호리는 ㅡ술책으로 본다면
지나친 영해일까요?
용이 심히 분을 내어 여자의 후손을 잡으러 내려갔다..(계시록 ㅡ 의역)
왜 뱀이라고 안하고
용이라고 했나요? 그냥 그림언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아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위협을 이런 신화적 용어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신 목사님의 해석은 계시록의 저자 요한에 대한 역사비평적인 ㅡ 성경해석학을 의지하신건가요?
"인간들의 종교적 요청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라고 하신 목사님의 해석 또한...
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의 의도로 보시고 하시는 말씀인지요?
루돌프불트만이 본 "비신화화"로 보신건 아닌지요?
저는 용을 계시록에서 말 한 이유를 크게 보려고 하고 있어요. 모르지만요
요한이 본 계시의 의도와.
고관규(IP:218.♡.107.181)
07-08-26 02:04
좀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불트만이 신약의 기적을 비신화화 ㅡ시킨 것처럼, 그처럼,,,절대적으로 목사님의 해석학을 보지는 않기를 원하지만. 용의 해석에서는 이점에서는 꼭..비신화화 ! 시키시는 것 같네요
이근호(IP:117.♡.129.159)
07-08-26 07:27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신화적 바탕을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고집사님께서 '신화/비신화'를 구분하셨는데, 현대의 그 어떤 어느- 심지어 과학 방정식-도 신화에 해당됩니다. 신화적 용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상징입니다. 실제와 동치가 되고 일치가 되는 언어는 인간의 힘으로 구현할 수가 없습니다. 용이란 곧 '옛 뱀'입니다. 에덴동산의 뱀은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모든 면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전설로만 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 상황입니다. 이방인들이 용이나 이무기를 형상화하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설명할 수 있는 주도적 세력이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표출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갇혀 있는 꼴'입니다. 이 사단을 벗겨나는 것은 예수님의 몫입니다. '옛 뱀'을 써야 할 자리에 왜 '용'이라는 용어가 들어가야 하느냐 하는 것을 따질 권한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계시책은 우리 구미에 맞추는 책이 아닙니다. 우리 의견을 물어보는 책도 아닙니다. 그 대목에서 단지 인간들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짓눌러 지내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용이라는 개념에 해당되는 어떤 대상물을 따로 상정해서 붙잡아 둘 재주가 우리 인간에게 없습니다. 용이 우리보다 더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고관규(IP:218.♡.107.181)
07-08-26 14:12
목사님의 말씀이 바로,,,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엇지만
자꾸...용이 캥겼거든요
따질 권한이 없다는 말씀에... 우리 구미에 맞추는 책이 아니라는 말씀에....
좀 생각좀 더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