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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성경을 보자하니...흰것은 종이요, 까만것은 글자라....묻고답하기히브리서

성경을 보자하니...흰것은 종이요, 까만것은 글자라....

이름 : 이성근(IP:218.50.48.213)

이근호 목사님,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보았을때 목사님같이 해석을 할수 없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와 강의를 듣고서 아 그렇구나 라고 하지 않나요?

제 첫 신앙생활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게 기억하질 못하지만, 대략 이러했습니다.

그러니까 강해서나 기독교방송을 통해 또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 이전에

물론 줏어 들은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제가 만들어 낸건지 아님 다른 분들의 해석을 통해 안것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에서 무턱대고 너 죄인이야 예수님만이 너희 죄를 사할수 있다라는 게 그냥 믿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다니는 친구를 통해 성경에 대한 기독교 하나님이 실제 살아계신다..라는게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성경을 읽고서 예수에 대한것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것 ...사람이시지만 그분이 구세주라는사실 ..솔직히 너 예수 안믿으면 지옥간다...라는게 무서워서 믿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여하간 성경을 보지만은 그 구구절절 어려운 성경구절은 보아도 어렵고 뭔말이지? 할 정도로 난해한 것들이 많아서 그것에 대한 궁금중으로 기독교서점에 가서 찰스 스펄전목사님의 칼빈5대교리에 대한 설교, 로이드존스목사님의 에베소서강해. 아더핑크의 히브리서등등등 그 두꺼운 서적들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_-; 지금 머리속에는 그분들이 뭔말한지도 기억이 안나고 그당시에는 어떻게든 제게는 어려운 성경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 . 성경읽기. 강해집등을 통해서 아. 기독교 이단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어서 안식교나 여호화의 증인등의 서적도 좀 읽어본 경험은 있습니다만...여하튼간에 그러한 수많은 정보를 보고 들음으로 혹시나 내가 지식적인 신앙만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때가 있고, 지금의 내 꼬라지를 보면 과연 내가 예수안에 있는 자인가 의심될정도로 .....몹시 나쁜놈인데 이게 성령을 받은자의 모습인가 하며 속상할때가 많습니다.

사도바울이나 기타 여러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저들의 모습은 저러한데 난 왜이러지...왜 저런 모습이 안나올까하고 울컥 정말 분통이 터지도록 답답할때가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전한다고 핍박과 환난에도 열심히 증거하는 삶을 보이는데 지금의 제 모습은 .....그냥 박터지게 머리 싸움하며 세상풍조에 휩쓸려 먹고 살기위해 이리 뛰고 저리뛰는 그냥 바쁜 직장인의 모습 외에 내가 뭔 성령의 삶을 보이고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왜 살아지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아...죄송합니다 -_- ; 뭔가 핀트가 빗나간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군요...죄송

음.. 머리가 백지인 상태에서 성경을 읽었을때의 들어오는 믿음에 대한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꼬셨다 그리고 그 죄로 말미암아 이세상이 이런 꼴이 되었다

아브라함 야곱 이삭... 그리고 모세를 통해 출애굽 그리고 다윗. 솔로몬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남

죽음심 부활 ...심판정도 였으리라 기억합니다.

예언서같은것은 보아도 뭔말인지도 모르고...읽어도 음 좀 무섭다등등의 느낌...-_- 무슨 심판의 관한 내용인가 보다라고 그냥 짐작만 할뿐.... 그리고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의 예배중에 설교를 통해 율법이 뭐고 그렇고 하는 구나 하며 알정도....

그런 막연함 속에서 ....예정론에 대한 설교 또는 강해집을 듣고서인지 아님 그전에 야곱과 에서에 관한 하나님의 선택. 다윗의 고백중에 내가 형질이 이루기전에 나를 아셨나이다라는 그런 성경구절을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예정에 관해 충격을 먹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이것이 정말인가 사실인가 ....혼란이었고...

사실 여러종파의 설교....해석이 다 일치하지 않고 칼빈은 이러한데 알미니안은 이렇고 감리교는 이런데 침례교는 이렇고 장로교는 이렇다..등의 혼란은 컷습니다. 이거 누구말이 옳은거야.? 도대체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왜이리 설교가 달라 ...라는 식으로 의문을 갖게 되었거든요....

현재는 어떻게 여기 십자가마을까지 찾아오게 된건지는 모르지만, 그 예수님의 죽으심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는 조금 아주 조금 아니 정말 뭐라할까요? .....이것을 알게된것이 제가 이제껏 들어왔던 신앙정보들을 총 정리해서 종합해서 따지고 들었더니 그나마 이것이 옳더라 라고 성령께서가 아니라 제 두뇌속에서 결정된것은 아닐까라고 의심이 들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맨처음 성경을 보았을 때에 성경해석을 제가 목사님같이 해석을 했더라면...아 이거 정말 하나님께서 하신일이야 라고 ..생각되어질수도 있는데......위에서 언급한대로 여러 짬뽕같은 성경해석을 듣고서 ...그러니까 제 성경해석이 아니라 타인(목사님들)의 해석을 내가 평가해서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판단하는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걸까요? 제가 바랬던 삶은 정말 그 초대교회때에 그 살벌한 로마에 굴복하지 않고 사자밥이 되고 또는 화형되고 그래도 찬양하며 죽어갔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 그 보좌에 앉은신 예수님을 보고서 죽은 스데반 집사님같은 모습이었는데...

뭐...세상살이에 지쳐서 ...하....이게 뭔 삶이야...나이가 들어갈수록 똑같은 패턴속에서 머리터져라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주를 위해가 아니라 그냥 가족들을 위해 사는 제 모습이 과연 그리스도인인가? 하며 절망할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교회봉사도 많이 했는데 이젠 피곤하다고 주말에는 잠만 퍼질러 자느라 교회도 많이 빼먹고 그냥 귀찮기도 하고...

목사님 솔직히 말해 이 세상살이가 지쳐서인지 아니 솔직히 지쳐서 보다는 그냥 이 살벌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예수님의 천국을 소망할때가 있습니다.... 이거 제가 제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자식을 생각하니 뭐 열심히 살아야지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이게 뭐가 다르냐?라며 제 자신에게 반문합니다. 그냥 사는게 지쳐서 아니 더 살아봐야 그게 그거인데 주인되신 예수님께 가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때도 있습니다

목사님... 과연 현재 믿는자들의 모습은 어떻게 예수님이 만들어가시는겁니까? 그냥 다 때려치고 교회에서 생활하는것도 아닌것 같고, 직장생활한다고 여기에 매진하는것도 웃기고...이러자니 저렇고 저러자니 이렇고 ...선을 행함보다...주 예수앞에 부끄러움밖에 보이질 않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목사님께서 해석하시길...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께 아닙니다...예수님껍니다....여러분은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가실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몰고가시는 인생은 아니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건가요? 예수님의 백성들은 각각 다른 여러 환경과 설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뭘느끼는걸까요?

그리고 제가 지식적으로 판별해서 머리에 넣은 십자가 신앙관인지 아님 성령께서 넣은 신앙관인지 알수 있나요?이제까지 오만가지의 설교를 들은 제가 머리가 좋아서 이게 맞아 음..여기가 정말 맞어라고 한것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헷갈립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건지 아님 지식으로 아는건지 말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뭐 중구 난방으로 썼습니다만...꼭 좀 답좀 주세요..

p.s: 예정론이 뭐 그게 뭐 다똑같지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나를 택했다의 그 차이점을 요번 설교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중심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생각을 해보니 차이가 컸었음을 알았습니다

이근호(IP:117.♡.129.159)

07-08-11 07:02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단어입니다. 그냥 하나님에 의해서 살려질 개인일 뿐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나를 매일 같이 인도하시느냐'하는 점을 자신의 삶 속에서 느끼면 되는 겁니다. 자신의 관점을 지워버리고 늘 하나님 관점을 보게 되면 우리는 한시라도 예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혹시 관심 두더라도 미워하지 않을 때가 없음을 압니다. 그 지점이 우리의 실체가 드러나는 시점입니다. 아무리 예정론을 거론하고 예수님의 죄용서함을 거론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자기 빼놓고 모든 것을 다 귀찮아 하는 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이기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의 그 어느 대목이든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 죄악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 '성경 해석'입니다.

고관규(IP:59.♡.148.167)

07-08-11 07:49

여러 말씀을 하니 보는 나도 골치가 아픕니다. 휜것이 종이요, 까만 것이 글자라는 것만을 여기서...피력할만큼 무식,,한 분이 아님을 벌써 눈치를 채게 되는군요, 아더핑크ㅡ를 말하며, 스펄젼과 로이드죤스를 말함을 보니 말입니다.꼭 지금부터 10년전이 훨,,넘엇을 때의 저의 모습늘 보는군요.
뭐를 하고, 안하고로서 나의 구원과,그리스도인됨의 정체성과,존재의 근거를 알려고 하는 자체 ㅡ가 부적당합니다. 성경의 위인들과 나를 다르게 보는 것처럼, 나를 ㅡ절망케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수는 있습니다만, 절망과, 결심은 다르지요. 결심케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우리가,,,체험한다면 이것이 은혜라고 봐요

그리스도인의 내적 ㅡ실존의 경험은, 무서운 현실로 나타나며, 우리앞에 놓여지는 매일의 숙제가 됩니다.
보고 계시는 주님은 숨어계신 분으로 알게 되며, 때로는 무감각하게 우리가 느낄 수 밖에 없는 분으로 보게도 되지만, 아는 바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밀고 계시기도 하고, 우리를 지켜 보시기도 하면서
아파하시면서, 우리를 ㅡ,끝까지 코치로서, 보혜사로서 끌어 당기시면서, 그 나라까지 가게 하십니다.

우리를 보고 계시는,
그래서
삶가운데에 내동댕이,,쳐버리신 주님의 의도를 알게 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성근(IP:218.♡.48.213)

07-08-11 09:14

목사님, 고관규님 ..요즘 저희 교회에 나가야 할 이유가 뭔가 생각합니다. 그전에는 열심히 예배드리는게 좋아서라고 했지만. 지금 강단에서 펼쳐지는 소리는 말그대로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이 나오되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하자? 솔직히 말해 여기 십자가마을같이 예수님이 어떤분이시고 그분이 행하신다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 행하신다라고만 하셔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듣고 있으려니 솔직히 제가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제가 교만한것인가요? 저희 목사님이 말씀하시듯 머리만 커진 신앙은 필요없고 정말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냐?라고 언급하시기도 합니다.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도통 제가 행동으로 실천을 못하겠습니다. 몇달 교회를 드문드문 빠지고 간간히 예배에 참석할때.. 그때 들려오는 설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을 해야 복받는 사람이냐..라는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자 간간히 예화에...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구원받은자로서 열심히 열심히..기도도 예배도 봉사도...이런 설교말씀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지금 애들과 와이프도 같이 출석하는데.. 다른데 한번 가볼까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찾아 다닐만큼의 제 열심이 식은것인지? 왜 주님께서는 여기 설교와 말씀을 듣게 하시는건지? 그 많은 설교를 제가 mp3플레이어에 넣고 외근나갈때마다 움직일때 출퇴근할때마다 듣고 있는데.. 말씀을 들을때마 좋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저희 담임교회 목사님 설교가 들리겠습니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교회일에 무관심해졌을까? 십일조가 예수님의 모형적인 부분임을 알고 있음에도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 내고 있고, " 그래 내가 그것조차 안하면 다른 헌금조차 안할것 아닌가?"라면서 지나갑니다. 제 삶에 대해 해석할수가 없습니다. 모든것은 작정하시는 분의 소유라고 생각하면...이것도 과정인가?라고 안위할때가 있는데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습니다. 직장생활에 허망함이나 인생의 허망함... 저에 대한 허망함을 너무 빨리 깨달은게 아닌가 할때도 있습니다. 교회를 나가긴 다시 나가야하는데...앉아서 설교를 듣고 있자면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지 구원받은 성도로서 충실해야지 하면서 , 제 다른 부분에서는 "그래도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다스려갑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이끌고 가실거며 오직 그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써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도는 ...강단에서 말씀하셔야지 않나 하며 속으로 비평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만약 저희 목사님께서 혹시나 이글을 보신다면 아주 괘씸히 여기실것 같은데...-_-;
이것도 주님이 이끌어가는 방식중의 하나인가요? ......진짜 답답해주겠습니다., 저런 설교가 정말 복음인가하고 말입니다..

이근호(IP:117.♡.129.159)

07-08-11 18:50

주님께서 괘심히 여기지 않으시면 됩니다. 십자가 지지도 않는 인간이 괘심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신경쓸 사항이 아닙니다. 그 인간이 우리 성도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윤진(IP:121.♡.11.112)

07-08-11 23:11

이근호 목사님,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보았을때 목사님같이 해석을 할수 없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와 강의를 듣고서 아 그렇구나 라고 하지 않나요?
---> 이근호 목사님의 해석이 정답은 아닙니다. 이근호 목사님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작업을 자신의 수많은 강의와 설교와 저서에서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해석 또한 매일 가짜이며, 이단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만 증거되길 바랍니다. 이근호 목사의 견해에 동조하고 그의 논리에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는 행위가 구원의 표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전히 나를 설득시키는 그 무엇에 끌리고 있는 자기종속성의 또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이근호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다들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라는 감탄이 혹시 손가락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닌지요?

인간은 누구나 구원을 열망합니다. 그 열망의 배출구로서 기능하는 것이 종교이고 모든 종교는 인간구원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교리라는 것이며 그 교리를 설명하는데 탁월한 사람들이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을 총칭해 신학자라고 한다면, 결국 신학자들은 구원이라는 열망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는데 탁월한 사람들이고 귀하는 그들의 욕구를 책과 방송과 설교와 개인들의 입을 통해 접수하고 자신과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여전히 어떤 손가락들에게 시선이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고, 그 손가락을 정답을 삼고, 열심히 연습해서 자신이 결정한 정답들과 유사한 자신의 손가락을 갖고자 노력했던 것이지요. 추측컨대 지금은 이근호 목사라는 손가락을 정답으로 삼고 연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비취고 있는 ‘달’에는 관심이 없는 채 말입니다.

여전히 정답을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그 정답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도 모두 본인의 몫이니 만큼 귀하는 아주 귀중한 사실을 아래 눌려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나는 나를 포기할 생각이 없음’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렇게 나에게 집중하다 보니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수많은 정보를 보고 들음으로 혹시나 내가 지식적인 신앙만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때가 있고, 지금의 내 꼬라지를 보면 과연 내가 예수안에 있는 자인가 의심될정도로 .....몹시 나쁜놈인데 이게 성령을 받은자의 모습인가 하며 속상할때가 많습니다.”

사도바울이나 기타 여러 신앙의 선배들 또한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그들 또한 달을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귀하는 여전히 자신의 손가락이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점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모습은 저러한데 난 왜이러지...왜 저런 모습이 안나올까하고 울컥 정말 분통이 터지도록 답답할때가 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전한다고 핍박과 환난에도 열심히 증거하는 삶을 보이는데 지금의 제 모습은 .....그냥 박터지게 머리 싸움하며 세상풍조에 휩쓸려 먹고 살기위해 이리 뛰고 저리뛰는 그냥 바쁜 직장인의 모습 외에 내가 뭔 성령의 삶을 보이고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왜 살아지지 않을까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귀하가 정말 궁금해 하고 계신 것은 “현재 이근호 라는 사람의 의견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나는 구원받은 사람 맞습니까?” 입니다.

겉으로는 “제가 지식적으로 판별해서 머리에 넣은 십자가 신앙관인지 아님 성령께서 넣은 신앙관인지 알수 있나요?” 혹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건지 아님 지식으로 아는건지”가 궁금한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성령이던 그 누구던 깨닫고 있는 ‘나’에게서는 한발짝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귀하를 꾸짖을 생각이 없습니다. 귀하의 모습은 아주 정확한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렇게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환각상태에서 인생을 살고 또한 마감하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을 빛내기 위한 엑스트라로는 누구든 대환영입니다. 이왕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수, 하나님, 십자가, 성령 등은 같은 종교 동호인이라면 손쉽게 케스팅할 수 있는 조연들이지요.

나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에게서 더 이상 어떤 희망을 구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했다는 살해방법에 너무 관심두지 마시고, 노상방료를 하고 있던, 과음으로 꺼억거리면서 구토를 하고 있건, 휘영청 밝히 떠올라 귀하를 비치고 계신 ‘달’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구원을 꿈꾸는 어떤 살인자가 귀하의 넋두리에 넋두리를 조금 보탰습니다.

이성근(IP:218.♡.48.213)

07-08-11 23:28

저는 주연배우가 아닙니다...주연을 꿈꾸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그냥 나이 먹은 갓난 아이일따름입니다...걷지도 못하고 혼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아이가 뭘 바라보겠습니까? 오직 어미에게 의지 할것 밖에 없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고관규(IP:61.♡.162.37)

07-08-12 04:32

이성근님.... 같은 소위ㅡ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집사로서 동질을 느끼며, 위로를 전합니다.
.....
복음안에 있는 자들의 특징중에 결정적인 하나는?
복음이 없는 곳을 뛰쳐....나와야 한다는 것이며,
복음이 없는 곳을 토해 버릴 정도로 구역감을 느끼게 되다는 것이죠
누가 강제로 토하게 할 수는 옵습니다. 본인이 토해 버리게 됩니다. 토할 때에는 아무도,,안 보는 곳에서
토하게 됩니다. 먼저 온갖 구역질을 해대고 난 후에, 진저리를 친 후에. 새로운 비위를 경험하게 되죠
어떤 설교자라고 하는 자가,,, 이상한 복음을 전 할 ?때에는 벌써 내안에서 충돌이 일어남을 알게 됩니다.
이 ㅡ충돌은 아주,,,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오며ㅡ 본인만이 아는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 이 ㅡ비복음에 대한 충격스러운 파장이...나의 영혼을 흔들기에 주저할 수가 없게 됩니다.
박차고 뛰쳐,,나오게 됩니다.
다른 복음에 취한 자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경험이 됩니다.

이성근(IP:218.♡.48.213)

07-08-13 01:19

고관규 집사님 .. 박차고 뛰어나온 상태이신가요? 그냥 궁금해서 글을 드립니다.

이미아(IP:124.♡.26.54)

07-08-13 11:27

진정한 목회자라면 박윤진 성도님께서 - 이근호 목사님에 대해서 - 말씀하신대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작업을 자신의 수많은 강의와 설교와 저서에서 확인하고 있었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해석은 가짜이며, 이단임을 인정하고 오로지 매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 증거되길 바란다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장)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덮쳐 왔을 떄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공로만을 내세우고 있듯이 말입니다. 사랑에 포로된 자는 오로지 사랑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사랑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능력과 사랑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효과와 사랑이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구원만이 나타날 뿐이듯이 말입니다.

인간은 추호도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자가 아무리 바보요, 천치일지라도 자기라는 한계 안에서는 잘났다고 고함치듯이 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신 죽으신 십자가가 밝히 보여지는 것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은 자는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 정도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편 1-3)

"이근호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습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다들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라는 감탄이 혹시 손가락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닌지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게 하심도 주님이시요. 달로 존재하셔서 달을 보게 하심도 주님이십니다.
달을 이미 보게 하셨기에 손가락으로 가리키심을 통해서 아 그렇구나 라는 감탄사와 고개를 끄덕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3:15)고 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함,,,,,그것은 매일 같이 성령의 이끄심 안에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성령의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속까지 끌려 들어가 맛보는 죽이심과 생명입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가 자기의 것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 것입니까?

"이근호 목사의 견해에 동조하고 그의 논리에 따라 고개를 끄덕인다는 행위가 구원의 표시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전히 나를 설득시키는 그 무엇에 끌리고 있는 자기종속성의 또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이 의미는 그럴듯하게 보이고 오히려 대단한 논리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다른 표현으로 생각해 보면 소망에 관한 이유가 자기에게 없음을 증명하는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성령께서 주셨다면 우리의 진정한 종속성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고백이 성령께서 저에게 주신 소망에 관한 이유입니다.

이성근(IP:121.♡.143.145)

07-08-13 17:18

고집사님 어디계시다가 어디로 박차고 나오셨나요?,....다시 궁금해서 질문을..
그리고 이미아님 감사합니다. 여기분들 글을 보면 달변인들만 계시는것 같습니다.

권범식(IP:211.♡.96.242)

07-08-14 01:36

안녕하세요...이성근님...
이미 이근호 목사님께서 짧지만 확실하게 답변 하신거 같습니다.
사실 저도 막 복음을 접하게 됬을때는 이성근님과 똑같은 현상을 겪었습니다. 아니...지금도 사실은 계속 같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도 전전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교회들의 주장은 믿어라, 그리고 믿었으면 지켜라...이렇게 끝이납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만은 아니다...라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장담하건데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모르면서도 계속 읽으면서 알게된 것은 왜 이런 교회들이 이렇게밖에 갈 수가 없는 가에 대해서 알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것은 나도 또한 그런 교회들과 똑같은 짓을 하는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이 때의 충격은 이성님의 지금의 고민과 대동소이 할 거 같습니다.)
이성근님이나 저나 다른 분들도...심지어 소위 세상교회들도 똑같습니다...
단지 성도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다 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긍휼만을 구할 뿐이요...세상 교회라는 사람들은 기들은 이제 구원받았으니 다른 사람들보단 그래도 좀 덜 죄인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한 다는 것이 차이점 이라면 차이점 입니다.
그럼 많은 고민 해보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고관규(IP:211.♡.158.45)

07-08-14 09:31

어디서 어디로 나온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비복음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박윤진(IP:58.♡.49.76)

07-08-14 23:12

이미아님께 드립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근호 목사님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조차 복음의 장애가 될 뿐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성령은 그가 어떤 인간이던 스스로 죄인의 괴수임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항상 죄인을 공격하시면서 자신을 스스로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공격을 보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그 사람과 동일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 죄인맞구나, 예수 십자가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저는 어떤 특정인의 논리와 설득력 앞에서 고개를 그저 끄덕임을 구원의 표시로 삼는다는 것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개 끄덕이기에 숨어서 구원의 안도를 느끼고 있는 자기 구원의 열망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특정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와 그 무엇이 복음이라면 그는 또 어떻게 복음에게 공격당하고 있는가를 함께 수렴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어떤 분의 강의와 설교에 매료되어 있는 나의 존재 뿌리까지 뒤흔들고 있는 힘을 알게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바로 이근호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글은 그런 취지 였습니다.

이미아(IP:121.♡.82.156)

07-08-15 13:59

저는 어떤 분의 강의와 설교에 매료되어 있지 않기에 고개나 끄덕이며 있고 숨어서 구원의 안도감이나 느끼고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나의 존재 뿌리까지 뒤흔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서로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존재케 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눈치채며 나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특정인의 논리와 설득력이라 할지라도 죄인의 괴수임을 발견케 하시고 십자가의 용서를 밀고 오신다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여야 하며 그것을 내것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요?
주님께서는 이근호 목사님 뿐만 아니라 내가 소속된 교회의 김명현 목사님을 통해서나 그 외 다른 목사님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또 성도된 자들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누누히 들어왔던 것처럼 우리는 도화지요(예수님 당신 마음대로 그리는 그림), 인화지요(예수님의 코스대로 가게 하시는), 호박이요(호박속을 긁어 내고 호박 죽을 끓이듯 나의 것이라는 속을 다 파내고 예수님 것으로 채우시는)......토기장이의 마음대로 만들어져야만 하는 진흙덩이들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9:21-23).

무엇이 두려울까요?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8-19).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어떤 말씀을 들어도 어떤 특정인의 논리와 설득력에 매료될지라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결단코 당신의 영광을 인간에게 빼앗기지 않으실테니까요.
오히려 한없이 매료되고 싶은 욕망마저 듭니다. 어떤 특정인들만이 전할 수 있는 복음에만.......
어차피 우리는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는 매료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우리와 우리의 관계, 나와 나와의 관계.....어떤 관계이든지 원수로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13:8)는 말씀처럼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면 빚진 자임을 인정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갈4:15-16).

빼어 주고 싶습니다. 비록 그렇게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어느 새 사그라들어 훅하고 불면 날아갈 허무한 재로 변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찰라적인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진정, 그것은 사랑의 증거물이 아니니까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4).

사랑의 증거물은 예수님만이 가지고 계시며 주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라는 증표로서..........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며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65:2-3).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사65:17-19).

저의 글도 이런 취지였습니다.

박윤진(IP:58.♡.49.76)

07-08-15 15:41

글의 전체적인 문맥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이미아님과 제 생각 중 틀린 부분만 발췌하여 제 생각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인간의 견해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확실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엔 없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미아님 의견)
저는 어떤 분의 강의와 설교에 매료되어 있지 않기에 고개나 끄덕이며 있고 숨어서 구원의 안도감이나 느끼고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나의 존재 뿌리까지 뒤흔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à 저는 무슨 일을 하던지 나를 위한다는 방향성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구원의 안도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새어나오곤 합니다. 그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찰나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주님의 일하심이 침투하면 지진처럼 나의 존재 뿌리까지 뒤흔드는 것입니다. ‘아 나는 또 내 행위를 반석으로 삼아 또 집을 지으려 했구나. 이것을 십자가는 뿌리채 흔드는 구나.’ 이런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계신 분들 역시 이런 지진을 자주 만나고 계심을 저는 그 분의 글과 강의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저런 고백이 나오기까지 그동안 도대체 몇 번이나 꼬꾸라 졌을까 놀라고, 지금 놀라고 있는 나 또한 얼마나 꼬꾸라 질까 두렵습니다. 사실 싫습니다.

(이미아님 의견)
서로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존재케 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눈치채며 나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특정인의 논리와 설득력이라 할지라도 죄인의 괴수임을 발견케 하시고 십자가의 용서를 밀고 오신다면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여야 하며 그것을 내것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à 죄인의 괴수임을 발견케 하시는 것과 십자가의 용서를 밀고 오신다는 것에 당연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거부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일이 당연하지 않기에 내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나마 내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까지 내 것이 아니었음이 들통나곤 하지요. 성령님의 역사는 내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람같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바람이 부는 영역에 놓여있음이 지진처럼 다가올 뿐입니다.

(이미아님 의견)
무엇이 두려울까요?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à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순간마다, 어떤 사건사고를 만날 때마다 두렵습니다. 내 것을 잃을까봐 두렵습니다. 죽을까봐 두렵습니다. 저는 죽기 두려워 평생 죄의 종노릇하는 자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죽이셨습니다. 날마다 죽음에 넘기시며 그 안에 생명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살아있으면서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수없이 속아왔습니다.
사랑이 죽어주셔야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죄의 종이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으신 사랑의 종이 되었음을 날마다 확인받는 입장이 성도입니다.
그러니까 ‘나 십자가 사랑 때문에 이제 두려움 없는 사람되었음’이 아니라, 나는 날마다 두려움에 빠져살고 있는데 이런 나를 십자가 사랑이 덮쳤다, 그 십자가안에서는 내가 이미 죽었으므로 두려움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이미아님 의견)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어떤 말씀을 들어도 어떤 특정인의 논리와 설득력에 매료될지라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결단코 당신의 영광을 인간에게 빼앗기지 않으실테니까요.
--à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결단코 당신의 영광을 나에게 빼앗기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로채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 중에 하나가 어떤 특정인의 논리와 설득력에 매료 혹은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반드시 두렵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를 죽인 자로 인정하게 하신다는 것이지 지금 살아있는 내가 결코 두렵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주님은 결코 빼앗기지 않으시면서 그런 나를 죽은 자로, 전리품으로 삼아버리십니다. 이것이 도화지, 인화지, 호박, 진흙의 비유입니다.

(이미아님 의견)
오히려 한없이 매료되고 싶은 욕망마저 듭니다. 어떤 특정인들만이 전할 수 있는 복음에만.......
어차피 우리는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는 매료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지 않습니까?
--à 한없이 매료되고 싶은 것은 욕망맞습니다. 그 욕망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면 우리는 전혀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는 매료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분이 우리 외부에 따로 계십니다. 그 분에 의해 우리는 또 한번 박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는 매료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 아니라, 평생 주님께 그런 가르침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미아(IP:121.♡.82.156)

07-08-15 22:00

태평양 한 가운데 고장난 배로 떠있는 자들에게 복음은 그냥 복음이고 그냥 복음일 뿐이고 그냥 복음일 수 밖에 없구나를 사무치게 한다. "복음은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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