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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7 십자가 마을 수련회 욥기 11강 1번 녹취자유게시판욥기

07 십자가 마을 수련회 욥기 11강 1번 녹취

이름 : 최형중(IP:58.226.139.89)

십자가 마을 수련회 욥기 11강 녹취

이근호 목사 강의

1, 2분 남았는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욥기를 전체 보면서 욥기 주석가들이 당황스러워하는 대목이 뭔가하면 욥기가 1장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1장 끝나고 마지막 41장 거기서 이래 했으면 좋겠다. 합니다. 뭐냐하면 1장에서 끝에 욥이 하는 말이 주신 자도 하나님요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시다. 믿음 참 데낄 아닙니까? 믿음 참 좋거든요. 그래서 주신 자도 하나님요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시다는 이야기에다가 42장으로 날라 가가지고 그런데 하나님께 그렇게 인내를 보여줬더니만 42장에 배나 축복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목사들이나 주석가들이 욥 가지고 한마디 하면서 욥에 대해서 알았다 이게 되겠는데, 중간에 2장부터 41장까지 뻥~ 무용지물이예요. 소용이 없어요. 그 줄거리가.

1장 끝에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시다. 이거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걸로 드라마 끝났으면 좋겠는데, 마지막 42장 그랬더니만 하나님께서 아이고 너 착하구나 복줄게 해서 잃었던 것을 곱빼기로 되갚아 주는 것이 있다면 이게 오늘날 목사들이 욥기 가지고 거론하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말이죠.

욥처럼 믿음가지면 곱빼기 받습니다. 딱 맞잖아요. 근데 중간에 2장부터 41장까지 그건 왜 있는건데요. 차라리 그게 없었으면 오늘 날 인간들에게 아주 쉽게 욥이 다가올건데, 왜 쓸데없이 2장에서 41장까지 복잡한 논쟁이 왜 있냐 이 말이죠. 그게 뭐냐하면 딴 것이 아니라 그렇게 욥이 1장 끝에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한 그 속에는 뭐가 있냐하면, 십자가가 없어요. 십자가가. 그 어떤 낮선 고난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냥 내 잘났다. 내 잘난 내 믿음 가지고 내가 복 받는다.

1장 끝내고 41장 붕 띄어버리면 남는 것이 뭐냐, 역시 나는 잘 났어. 내 믿음 데끼리야. 이 하나님도 인정해 줬어. 그게 되어버리는거에요. 그게 문제라는거예요. 내가 하나님 믿어 나 하나님 앞에 인정 받으면 그만이지. 그러면 됬지. 교회가서 예수님 믿는 보람이 어디있는데, 내가 예수 믿어 내가 잘되면 그게 끝 아니냐? 하나님 복 주겠다. 더 이상 뭘 바래? 1장 끝내고 붕 날라 가지고 42장 골인하면 남는 것은 그것 밖에, 그게 전부라고 본 거예요.

그것은 뭐냐하면, 결국은 뭐냐하면, 고난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권, 내가 주도권, 내, 내가 주도권 쥐는 거예요. 내가. 이 놈은, 내가 문제라, 내가, 내가, 주체가 와해가 안 되고 있어요. 내가 안 깨지는거에요. 내가. 고난이 주도권,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가 주도권이 아니라 내가 주도권이예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자기가 믿음 생활 좋으니까 남 앞에 나설때 나를 증거해요. 나를.

지난 시간에 끝에 11장 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욥이 뭐라합니까? 나 부족하다. 나 죄 많다, 분명히 이야기했죠. 분명히 이야기해 놓고 나중에 본문에 보게되면 욥기 끝에 가서는 뭐냐 하나님 이렇게 나옵니까? 벌써 욥기 12장 13장부터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이 나로 왜 이렇게 죄인으로 몰아넣습니까? 내가 ?적인 죄인은 안다고 하잖아. 내가 압니다. 알면 됬지. 왜 자꾸 궁지에 몰아 넣습니까? 친구들아, 너희들까지 나를 이렇게 학대하느냐?

주체가 깨지지 않았습니다. 2장에서 41장 내용을 빼 버리면 욥기가 일반 유교나 불교 경전 되어 버립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니란 말이죠. 역시 사람은 인내하고 볼 일이야. 그렇게 끝나버려요. 주체는 고스란히 남아있고, 이게 깨져야, 주체가 깨지지 않은거예요. ? 챙기면 됬지. 뭘 더 바래. 이래 된다는 말이죠.

그 주체는 어떻게 깨지는가 지난 지난 시간에 말했습니다. 고정된 시선, 고정된 시선이 있습니다. 이건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은 엘 샤다이 하나님, 온전한 하나님, 온전한 하나님이기에 온전한 하나님, 완전히 질서잡히고 완전히 완결된 안정된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신이 이미 자아가 안정되어 있어요. 변화가 없어요.

안정된 상태에서 여기에는 확고한 자기 자아상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자아가 구축되어 있으니까 이건 고정된 시선이예요. 이 고정된 시선은 뭐냐 관람자가 되고, 또 뭐가 됬습니까? 관찰자가 된다고 제가 이야기했죠. 욥도 이랬던 사람이예요.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거둔신 자도 하나님이시다.

자기 부인이 있다가 에라 욕하고 죽어라.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얼마나 고정적, 안정되어 있어요. 신앙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게 아니겠어요. 욥 참 대단해. 여기서 계속 넘어가고, 마지막 42장 보자. 어 복 받네. 야, 나도 욥처럼 안정된 신앙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42장 복 받구나. 중간에 2장부터 41장 다 ??해버리고 욥 다 띴다. 그 다음 시편 넘어가자.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고정된 시선 똑같은 ?가 있는데 여기에 뭐가 들어 온다고 했습니까? 낮선 고난이 등장하면서 무엇이 생겼어요? 균열이 생겼죠. 균열이, 누구하고, 욥의 3친구하고 욥하고 균열이 생겼지요. 욥의 친구가 13장-20장까지 계속 들이 댑니다. 니가 통 뼈냐? 이 말이죠. 통뼈냐? 니가 아는 만큼 내가 모르냐? 욥이 하는 말이 니가 아는 만큼 내가 모르냐? 욥 친구가 하는 말이 니가 아는 만큼 내가 모르냐? 둘 다 하는 말이 니만 주체냐? 나도 주체다. 니만 잘 났냐? 나도 잘 났다. 나도 젠틀맨이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고정된 시선을 관찰자, 감시자, 관람자로 와가지고 니가 통뼈냐? 니가 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을 니가 왜 아는데, 낮선 고난이거든. 낮선 고난 같은 소리하네. 니가 죄 지어놓고 무슨 변명하느냐? 이건 변명이 아니라 솔직하다. 솔직하긴 뭐가 솔직해 니가 찾지 못한 죄가 있으니까 그렇지, 하나님 제발 ??? 좀 보내주세요. 도저히 답답해서, 의사소통이 안 됩니다.

이것을 지난 시간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욥은 지금 누구와 상대합니다. 욥은 지금 낮선 고난 때문에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하고, 하나님하고 대화를 하는데, 누가 받는 걸 흐트려됩니까? 니만 인간이가? 니만 신앙이가? 나도 신앙이다. 바지 붙들고 있는 놈, 욥의 친구들, 좀 놓아줘. 지금 나는 너희들과 상대할 상황이 아니다. 욥의 친구들이 나중에 15, 16장 계속 나옵니다.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이 욥아 니가 건방지구나 니가 아는 만큼 나도 안다. 니만 하나님 아냐? 나도 하나님 신자 아이가! 계속 말합니다. 그 뒤에, 격렬한 감정 싸움으로 몰아 넣습니다. 13장에 보면,

욥 13장 15절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자꾸 하나님과 상대하는거예요. 애들아 친구들아 지금 너희들과 상대할 잽이 아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 한다. 이렇게 하니까 15장 데만 사람 엘리바스 하는 말이 3절에 보면 “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여기서 유조라 함은 유조차, 기름 넣는 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도움이 안 되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너에게 전혀 도움, 조력이 안 되는, 조력이 없는 그런 이야기만 하느냐? 니가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니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욥의 친구가 멱살 쥐고, 니만 신앙이냐? 이 말이에요. 니만 잘 났느냐? 욥이 말하기를 그게 바로 움직임 속에서 움직임을 파악하지 말고, 나도 너희들처럼 고정된 시선을 안정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낮선 고난이 오니까 나도 왜 이런지 이유 모른단 이 말이죠. 너희들은 이유 아나? 니는 죄 지어서 그렇잖아. 이건 그것과 관계 없다니까. 고정된 주체, 안정된 주체를 가지고 관찰자, 관람자로 나의 발목을 잡고 자꾸 흔들려 되면서 니 통뼈나고 따졌는데, 지금 욥은 결국은 자기도 한 고집하거든요. 욥도 한 고집 한다고. 한 고집한 것을 주님께서 고난을 퍼 부으니까 그 주체를 와해시켜서 결국은 욥은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런지 몰라.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로 들어갑니까? 낮선 고난이 있는 메시야의 고난으로 위치 이동을 시키는 것이 욥기 2장부터 41장까지의 주제입니다. 과정입니다. 이것을 빼 버리면 남는 것은 뭐냐 하면, 남의 신앙이다. 그것밖에... 둘다...

고난이 주도권을 쥐어야지 십자가를 믿는 내가 주도권을 쥐면 안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정답이 뭡니까? 예수님이 고난 받아서 그 앞에 죄인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삶을 증거해요. 나를 증거해요. 자기의 과거의 신앙 이력을 증거합니다. 자기 실력을 증거해요.

히브리서 5장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 이 욥이, 제가 첫 시간에 이야기했어요. 욥은 예언서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감정을 따지지 말고, 예언된 대로 이루어지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언책이고, 그 욥 안에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욥이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욥의 고난은 우리 이야기와 관련 없는 것도 아니고, 주님과 무관한 것도 아니고 다 장차 오실 메시야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첫 시간에 신신당부를 했어요.

욥을 1장만 띠고 42장 띠가지고 그거 두 장만 덮고 달랑 버리지 마세요. 중간에 과정이 우리들의 주체 분열, 우리 주체 나 중심이 와해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5:7-8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딱 나오잖아요. 육체를 가진 것이 예수님만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가졌다 이 말이죠. 욥도 가지고, 육체로 계실 때에, 육체는 천사가 아닙니다. 날라 다니는 것이 아니에요. 천사에게 총 쏴도 소용없습니다. 탈레반이 천사보고 겁주면 천사가 웃습니다. 이 것이 미쳤냐? 천사도 못 알아보고, 니가 죽는다고 내가 죽나? 이 바보야. 그런 것은 육체를 가진 자에게 협박해라. 육체도 없는 나에게 왜 협박하냐? 이 말이죠.

근데 우리는 육체를 가졌거든요. 예수님도 육체를 가지니까 그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능히 구워하실 이에게, 보세요. 이거 얼마나 재밌는 겁니까?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능히 알고 있으면서도 뭐라고 했어요? 육체 때문에 가진 육체 때문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왜? 자기 육체는 욥이 욥이 이미 체험한 것이 그대로 전달된 이전된 육체다 이 말이죠.

우리가 ?? 속도 높여가지고 천당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를 가졌으면 육체 값을 해야되요. 육체 값을 욥이 먼저 경험합니다. 욥의 경험이 없으면, 2장부터 41장까지의 경험이 없으면 우리 주체는 하나님, 예수님 하지만 사실은 내가 잘 나서 내가 예수 믿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되요. 그런데 2장부터 41장까지 내용을 보면 육체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박살나야 되는구나. 작살나야 되는구나, 작살.

그 주석가들이 본문을 몰라요. 본문을 몰라가지고 주석하는 것을 보면 성경 읽기 수준이예요. 자, 13장 내용 봅시다. 그 다음에 14장 봅시다. 15장 봅시다. 쓸데 없는 쓸데 없는 주석들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욥이 2장부터 41장까지 욥 자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추적하지 모르고, 여러분 욥의 친구들의 말도 맞습니다. 주석책에 나와요.

자, 그러면 마지막에 41장에 하나님께서 욥아, 니 친구들이 왔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줘라.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다. 라는 말을 안 했더라면 빼 먹고, 그것이 없다고 치고, 3장부터 40장까지 욥의 충고를 다 모아놓고 보면 그렇게 어리석어 보여요. 야, 참 한국 교회 목사 이상으로 진짜 참 상담 잘하구나. 세상에 욥의 친구들이 이렇게 훌륭한 신학자고 목회자고 위로 잘 하기를, 야, 나는 욥도 은혜되지만 욥의 친구들이 더 은혜스럽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네가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러면 .... 세상의 어느 부흥사가 어느 목사가 이렇게 친근하게 복음적 이야기를 하느냐? 이건 복음이 아닙니다. 뭡니까? 주체가 안 깨어져서 그럽니다. 주체가 안 깨지면.

욥위 뒷말을 모른다치고 욥의 친구들 이야기 다 모아 놓고, 이 쪽의 욥의 이야기를 보면, 제 3자가 보면 둘 다 똑같은 소리하고 있네. 둘 다 맞는거예요. 자 판단합니다. 양손 들고, 무승부, 무승부.

41장에 하나님께서 욥의 손을 들기 전에는 무승부에요. 왜? 둘 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부족하다, 죄인이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욥의 친구들도 그런 소리하고, 욥도 그런 소리 하니까 ... 어떤 문제점을 찾아 낼 수가 없어요. 문제점을, 복음적이다. 너무나 하나님의 주권밖에 몰라요. 완전 칼빈주의라. 칼빈주의. 신학을 주체가 살아있는 이상, 십자가 뒤집어 쓰고, 칼빈주의를 배워도 주체가 안 깨어지면 그건 이단입니다. 이단되요. 자기 자아를 믿은거예요. 자기 자아라고, 자기 번트내기 해서 밀은거에요.

주체라는 것은 고정되어버리면 객체가 ?되고, 그러면 객체와 주체 사이에는 대결, 경쟁 관계가 성립됩니다. 이것은 모든 철학에서 이야기 한 거예요. 주체라는 것은 객체 없이는 주체 없고, 주체 없이는 객체 없다고 헤겔이 이야기한 겁니다. 그 무슨 말인가 하면 이미 객체와 주체가 결합되어 있으면, 아무리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도 그 사람 이해 못합니다. 왜? 이미 주체와 함께 있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냐면 이게 깨져야, 주체가 깨져야 객체 속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혼자 죽은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다. 이미 주체 주도권이 우리는 탈락되고 그리스도가 주도권이... 그래서 푹 쑤셔가지고 당신이 믿는 것이 뭐요? 예수님 십자가입니다. 끝납니다. 당신은? 나도 죄인이지. 설교한다며? 강의를 잘 하데. 그 강의 잘 하는 것은 죄인으로 강의한 겁니다. 사람들이 감동 받는데? 감동 받는 것은 성령의 몫이지, 내 몫은 아닙니다.

내가 살아오는 것도 고맙고, 그래서 내가 그것을 성도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의도적으로 운신의 폭을 좁혀줘요. 운신의 폭을 넗혀버리면 정명석이 됩니다. 대순진리회 되요. 왜? 나에게 오라. 나에게 챙길 것이 많으니까 나에게 오라. 주체가 넓어져요. 강렬해지고, 그 강렬한 주체가 약한 주체를 종으로 삼고, 팬 클럽이에요. 팬 클럽,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주님은, 예수님은 ???... 완전 성령님께 맡깁니다.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도 성령의 몫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아났다고 고후 13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진짜 좋은 것은 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져서, 나중에는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 더 이상 계속해서 가치가 없다가 마침까지 가치 없습니다. 쓰시는 관계 속에서 가치있지. 나 자신에서 자체적인 능력은 없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고요. 도와 줄 것이 많으니까 저에게 오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이 없어요. 그것은 노림수가 있었어요. 지난 시간에 뭐라했습니까? 사람이 주체가 되면 뭐가 생긴다. 방향성있죠? 방향성을 뭘 가지고 있다? 방향성은 목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벡타에서 물리의 벡타에서 아무리 벡타를 해도 벡타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아무리 양방향이 바뀌어도 결국 마지막에 최종 꼬리와 마지막 방향을 ?? 이것이 최적의 가장 ?? 직선 거리로 달리게 되어 있어요. 물리학 선생님 계시잖아요. 맞지요? 맞다해야되요.

태양광선이 지 마음대로 날라가는 것이 아니라 최적 거리로 가는데, 그것을 관찰할 때는 최적 거리를 모르니까 관찰을 해 보니까 마지막 꼬리와 꼬리를 이어보니까 그것이 45도 각도로 완전히 ??되요. 참 신기하단 말이죠.

그러면 우리의 모든 꼬리는 방향 벡타는 뭡니까? 남을 구제하고, 탈레반 가고, 했지만 모든 벡타의 꼬리를 뽑아보면 누가 누구에게? 내가 나에게 화살이 꼽히는 거에요. 그건 왜냐? 그건 주님께서 육체가 아담의 육체를 지은 한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것입니다.

나는 나 밖에 몰라요. 그리고 그 육체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든, 하나님 믿든, 내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믿은 거예요.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만들고, 성령이 나를 용납하지 않고, 니는 니 죽음은 내 안에 역사하고 예수님의 생명, 나 말고, 제 3자인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 때문에 능력 때문에 내가 구원받습니다. 그렇게 될 때, 다른 사람이 푹 쑤시면서 당신이 알고 있는 주체가 뭡니까? 나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지.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자기 부인이 거기서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나올 수밖에 없죠. 그냥 자기 부인이 나오면 불교되니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의미에서 자기 부인이 됩니다.

욥기... 그래서 제가 욥에서 1장만 알고, 주신자도, 거두신 자도,...그것만 알고, 마지막 42장만 떼서 다니지 말라는 말이죠. 그렇게 되면 그 중간에 십자가 고난의 위치도 자아를 붕괴시키면서 우리가 움직일수가 없어요. 그래서 뭐라했습니까? 저는 다시 한 번 쓰겠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썼는데, 별 반응이 없어요. 뭐냐하면, ‘매일 같이 나는 늘 가짜다.’ 가짜가 가짜인 것을 모르게 되면 진짜처럼 환상을 유발합니다. 십자가 마을 사람들은 다 가짭니다. 십자가 마을 다 가짜라는 말은 다 더하기해 보면 십자가 마을 자체가 가짭니다. 허굽니다. 그래서 십자가 마을 사람들은 항상 십자가 마을을 날려 버릴 폭발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근데, 십자가 마을에 뭐 있다하면, 가짜가 무슨 행세를 합니까? 마치 진짜처럼 행세할 수 있어요. 이것은 남들에게 십자가 마을이 십자가를 독점하는 오해하게 할 수 있어요. 그것은 십자가 마을 집단적 주체가 붕괴되지 않았어요. 끝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네.

이건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을 우발성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우발성이어야 하지, 우리에게는 이래야 되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가짜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가짜가 아니면 그것은 관찰자가 되고, 고정된 주체가 되고, 그 사람은 예수님, 안정된 예수님 대신 안정된 자아를 대신해서 증거하게 됩니다. 나를 통하면 예수님을 믿는다. 나를 통할 수 있으면 구원간다. 예수님이 저리로 가야 하는데, 나에게 와서 예수님 가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한국 교회는 이것을 유행시키기 위해서 뭐냐? 중보기도가 등장하는 겁니다. 중보기도는 예수님만 할 수 있는데, 나를 통해서도 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가짜이지만 나는 진짜라는거예요. 그게 욥에서 2장부터, 3장부터 42장 다 부숴올라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게.

부부가 처음에 결혼식을 할 때 감동적입니다. 축가 부르고,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병들 때나 사랑하겠느뇨? 예! 여자는 좀 ... 예. 다 가짭니다. 찢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에요. ... 너 가정에서 친정에서 이렇게 배웠냐? 하면서 갈라섭니다.

가정이라는 것은 허상이에요. 서로 좋아할 때만 잠시 머물다가 찢어지면 그만. 남에서 점하나 빼면 님... 아니... 님에서 점하나 붙이면 남이 되잖아요. 유명한 가수가 부른 노래 있잖아요.

육신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육신 자체가 어떤 것이 들어 있기에 예수님은 잔소리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병이어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 피로 구원받게 하느냐 이 말이죠. 우리 육신에 무슨 문제점이 있기에. 우리 육체의 행함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자기 육신을 대속물로 줘야 우리 육신이 구원받는다는 그 내막을 밝히기 위해 우리 육신 해부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 해부가 3장에서 41장까지입니다.

1장 21절에서 이미 욥은 마귀를 이겼습니다. 주신 자도 하니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 이겼어요. 이겼으면 욥이 메시야입니까? 욥을 믿으면 구원얻으리라 이렇게 되야 해요.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이름이 없으니 욥의 이름으로 구원받으리라 이렇게 되야해요. 욥은 장차오실 메시야의 하나의 허접 투성이의 그런게 되기 때문에 욥 자체도 깨져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도체 칩을 우리가 찾아내야 합니다.

그 안에 미리 들어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도체. 그런데, 욥과 ?에 있는 그리스도와의 갈등을 생각해, 그 갈등이 오늘 날 우리들이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갈등이라고 믿어야 해요. 그것 때문에 욥은 복음으로써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

욥기 13장 23절 봅시다. “나의 불법과 지가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24절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 제가 뭘 잘못했는데, 하나님은 저를 원수로 여기십니까? 이 말이거든요. 아직도 욥의 주체는 아주 강렬합니다. 하나님을 하나의 객체로 보고, 우리 좋은 관계 했잖아요. 좋은 관계 맺었잖아요. 주께서 내 기도응답대로 복 줬잖아요. 내 기도 응답대로 아이들 죄 없이 살았잖아요. 그런데 아무 죄 없는 자를 징벌하는 세상에 그 따위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이죠. 지금. 죄 있는 자를 죽여야지. 죄 없는, 의인 죽여서 뭐 할겁니까? 의인이 죽어야 죄인인 우리가 살아요. 욥은 아직 몰라요. 그걸. 욥은 그걸 모른다고요. 욥은 지금 ?온 예수 그리스도예요. 본인은 인정하지 않죠. 사람이 예수님 되기를 누가 좋아합니까? 평범한 보통 사람 되기를 바라죠. 이제부터 이근호를 예수님으로 인정합니다. 저는 부담되죠.

이창섭 목사님 예수님 한 번 해 볼랍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으로 나사렛 예수님으로 족합니다. 다른 사람은 하지 마세요. 괜히 예수님, 예수님 혼자 하라고 하시고, 그 분은 지뢰 철거 전담반입니다. 어설픈 아마츄어가 나서면 안되요. 그것은 그래서 우리는 믿기만 합니다. 까라면 까고 ... 그것만 하면 되지. 쓸데 없이 자기를 믿음의 중심에 놓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데만 사람 이 사람은 관찰자, 관람자, 비평자란 이 말이죠. 욥기 15장 6-7절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라고 완벽한 엘 샤다이 하나님, 완벽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완전한 틀을 가지고 욥의 부족함을 들이댈려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다. 물론 거기에는 복음도 없고, 낮선 고난도 이해 못하지요.

그러니까 15장에서 그렇게 하니까 16장에서 욥이 대답하되 욥이 아주 격렬해집니다. 16: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 4절에 “나도 말을 지어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머리를 흔든다는 말은 뭐냐하면, 우리가 손가락 흔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안돼 안돼. 이런 뜻이에요. 우리는 손가락 흔들지만은 거기에는 크게 흔들었어요. 머리를 흔들었어요. 안 돼. 넌 끝났어. 이런 뜻입니다.

7절에 “이제 주께서 나를 곤고케 하시고 나의 무리를 패괴케 하셨나이다” 패괴라는 뜻은 멸망이라는 뜻입니다. 8절-10절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양이 일어나서 내면하여 나의 죄를 증거하시나이다.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뽀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이것은 시편 3편 1절을 봅시다. 시편 3편 1절에 보면,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보세요. 다윗 언약에도, 다윗도 똑같은 경험을 해요. 욥과 같은 똑같은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다윗이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됬습니까? 하나님의 이유에서 대통령이 되었놓고, 엉뚱하게 대통령이 되었다고 그렇게 적들이 덤벼들어서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선택하고 지목했던 그 하나님을 공격하는 식으로 하더란 말이죠.

이것이 그대로 공관복음까지 이어지죠. 하늘에서 예수님이 아들로 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왜 우리 허락도 안 맞고 전도하느냐? 해가지고 그렇게 구박이 심했다 이 말이죠. 그러한 상황은 욥이나 시편이나 예수님이나 동일하게 동일하게 오늘 날 우리까지 적용됩니다.

예수 믿자고 하는데 니 잘났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할 말이 있어야지. 누가 내가 잘났데? 하면 봐라 저 겸손한 거 티를 내는 것 봐라. 그러면 말을 어떻게 하란 말이고? 어떻게 하란 말이고? 우리는 죄인이고 예수님의 의로 구원받습니다. 하니까 저 봐 겸손의 ?을 찌르는거 봐. 그럼 뭐 어쩔란 말입니까?

여기 16장 13절 “그 살로 나를 사방으로 쏘아 인정없이(인정머리 없이) 내 허리를 뚫고 내 쓸개로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그래야, 전에 친구였잖아요. 1번 타자, 2번 타자, 3번, 4번 타자 그 친구가 이젠 나를 공격하는 하나의 적들로 변했습니다. 이젠 그 책임은 하나님 니가 지이소. 이 말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지야지. 죄가 의도적으로 배반하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황당하게 당하기만 하니까 그 책임을 하나님이 지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엘샤다이 온전한 하나님의 법칙에 준해서 맞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옵니다. 아직 여호와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에... 틈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는 거예요. 욥이.

욥기 17장 1절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 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구나” 이 말은 뭐냐하면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 좀 알고 죽읍시다. 하나님이 나를 죽이는 이유 좀 알고 죽읍시다. 그 이유는 예수님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요. 왜? 대신 죽어야 하니까. 안 죽어도 되는데 대신 죽는다 이 말이죠.

이러한 욥의 고난은 오늘 날 성도에게 적용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로마서 7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누가 이것을 건져내라 그리고 그 뒤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하노라. 육체의 법칙이 아니라 내 육체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이 나를 구원했으니 그 이유가 성령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의 육신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성령의 법이 적용하는거예요. 우리가 구원될 수 있는 근거를 우리에게서 찾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근거를 찾지 않아요. 이것만 알아가도 괜찮은 거예요. 내 신앙을 내가 관리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죠. 우리가 구원받는 근거는 내 속에서 찾을 생각 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성령께서 나를 비켜 지나가는 거예요. 헌금 십일조해도 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어디 가노 보니까 십자가에 가 가지고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씻어서 구원 받는 겁니다. 어느 인간이 의와 신과 인을 다하여 십일조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의와 인과 사랑을 보태서 십일조하는 것이 어디있어요?

십일조는 돈 10%하는 것이 십일조 아닙니다. 의와 인과 신이 담겨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왜, 우리는 육체이기 때문에. 주님을 몰라서? 아니에요. 주님을 알아요. 말씀을 압니다. ?은 가라 있는 것 없는 것 족한 줄로 알라. 압니다. 알지만 또 다른 법이 뭡니까? 어기고 싶어서 환장하는 것,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또 다른 육체의 법이, 누가 이깁니까? 나의 더러운 주체가 주님이 주시는 그것을 이기죠. 내 옆에서 더러운 것이 이겨요. 그래서 우리는 공허한 삶이죠. 내 힘으로 구원받으려고 시도해 봐라. 그것이 안 되는 겁니다.

루터도 안 되었어요. 그래서 루터도 십자가만 외치는 겁니다. 심지어 루터는 심한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만 들어있다고 심한 말을 해 버렸어요. 다른 사람은 못 알아 들었어요. 하나님이 저 바깥에 있다고 하니까 바깥에 없어. 어딨어? 십자가 안에 있다. 그러면 바깥에 뭐냐? 그것은 물질 체계에요.

저 하늘 것도 영이에요. 영은 없어요. 영은 십자가 안에서만 나오고 영은 십자가만, 바깥에 우리를 계시하기 때문에 십자가 안이 아니에요. 그건 영의 세계가 아니단 말이죠. 그럼 저 세계는 주체가 만들어 낸 환상의 엘 샤다이, 신의 세계다.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우상이 되죠.

17장 14절에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 내가 실제는 소망이, 내가 실제는 죽는 것 밖에 없구나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빌닷이 또 쓸데 없는 자존심을 또 건드리죠. 18장 5절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다 욥을 겨냥한 겁니다. 친구로 와가지고 완전 작살을 내요.

욥 18장 15-16절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아래서는 그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 가지가 찍힐 것이며” 그렇게 하니까 욥이 19장에서 하는 말이, 19장 20절에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 뿐이로구나” 과장이 좀 심했죠. 과장이 심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지만. 그저 남은 것은 잇거풀 밖에 없죠. 그거라도 남아야 계속 말을 해야 되니까, 마치 예수님 십자가 지신 그 몰골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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