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아프카니스탄 사태의 근본 문제점은?
[일반] 아프카니스탄 사태의 근본 문제점은?
이름 : 이근호(IP:117.55.139.166)
사람은 옆 사람들로부터 전염당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흉내내면서 그들과 무의식 가운데 동화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남이 가진 명품을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은연 중에 품고 살아갑니다.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이웃이 옆에 이사온 후로부터 자신의 소박한 행복이 깨어지는 불행을 겪게 됩니다. 타인을 경계하면서 한편으로 그 이웃에 기웃거리면서 모방하는 삶이 인간입니다.
이번 아프카니스탄 사태의 근본 문제는, 한국 교회가 옆의 교회, 큰 교회, 번창하는 교회들을 모방하는 모방 행동 양식에서 비롯된 겁니다. 즉 성경에서 말씀하는 전도가 무엇이며 순교가 문제인지 알지 못하고, 다른 교회들이 어떻게 해서 존재 의의를 드러내는지 그것을 기웃거리면서 그 교회가 선교하는 식으로 모방해 온 것이 이런 사태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 자신이 속해 있는 교단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성경에 비추어보아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무조건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묵인되어 온 소위 선교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데서 문제가 발생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선교사 본인 자신이 왜 날 때부터 이단인가를 스스로 점검하지 않고 지내온 것에 근본 탓이 있습니다. 전도란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 땅에다 전도해야 하는 겁니다. 통째로 한국 교회 전체가 이단으로 빠져 있는 현실을 직감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 교인들이나 당회장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들이 이단들이라고 외쳐야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죽음의 질도 여러 가지입니다. 히말리야 산 정복하다가 눈 사태 만나 죽은 둥산가, 수 십층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일 하다가 열사병에 걸려 죽은 인부, 당료병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하여 실험실에서 과로하다가 죽은 제약 회사 연구원, 치매 걸린 교인에게 심방가기 위해 오트바이 타고 가다 논 두렁 빠져 죽은 목사, 야구장에서 선수들 코치 하다가 파울 볼에 맞아 죽은 프로 야구팀 코치, 파견된 병영에서 보초 서다가 자살 폭탄 테러에 죽은 제대 말년 병장 등등 숱한 사연들이 담긴 죽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타인의 욕망에 흉내내다 자기 욕망의 희생물들입니다. 즉 본인이 본인을 죽인 겁니다. 타인의 욕망을 따라 하다가 자신이 자신을 죽인 겁니다. 자신의 욕망이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겁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참된 죽음이란 성령에 의해서 죽는 죽음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방이나 흉내의 대상이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 충만해서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눈 앞에서 자기를 부르는 예수님의 광채난 얼굴을 보면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보다 먼저 죽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빨리 만나 보고 싶어 환장한 분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 분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원했습니다. 결코 다른 사도들을 흉내내고 따라잡기 위해 모방한 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을 그렇게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십자가 복음에 그 분은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이것이 그 분이 알고 계시는 전도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복음의 자리에 '교회 부흥'이나 '선교 해서 인정받는 교회 되기', '교회 개혁하기'가 나온다면 이것은 바로 참 전도를 막기 위해 애쓰는 안티 선교단체들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참 전도자들은, 자신의 업적이나 성과보다는 날마다 자기 부인하기에 급급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살고자 하는 욕심이 타인의 욕망과 접속되면서 마치 근사한 '주의 종'이 벌리는 '주의 일' 수행자로 자처하기 일 수 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십자가 복음, 즉 예수님의 공로로만 증거하다 죽는 재미로 살아야 참된 성령께서 친히 벌리는 전도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