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강의(07. 6. 22) 세 번째 시간
광주 강의(07. 6. 22) 세 번째 시간
이름 : 서경수(IP:122.36.190.11)
되새기고 싶은 말씀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되셔서 우리를 건졌다. 그래서 기쁨이 넘친다면 앞에 지나간 레위인, 장로, 강도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건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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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강의(07. 6. 22) 27-3
기도는 했습니다만 세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이 디오드레베라는 인간이 이미 교회를 접수 했지요. 조직의 매서운 맛을 봤습니다. 이미 교회 전체를 접수하고 난 후에 무슨 작전을 펼쳤는가 하면, 사도요한이 전한 편지 ‘진리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훈령을 내려서 절대로 사도요한에게 속한 인사를 교회에 들이지말라고 배척을 하고 거부한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파워게임입니다. 힘 게임에서 이미 누가 선점을 했는가 하면 으뜸되고자 하는 디오드레베가 승리했단 말입니다. 승리했다는 말은 결국 추종세력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추종세력이 동조를 즐거이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게 지금 논리 싸움이 아니고, 가이오와 디오드레베가 만나서 ‘우리 진리가 뭔지 논쟁해서 진리를 추구하자’는 논리 싸움이 아니고, 파워 싸움이죠. 논리 싸움이 아니고 정치 싸움이죠. 그러니까 ‘네 추종세력이 많나, 내 추종세력이 많나?’로 결판이 나는 그런 꼴이 된 것이란 말이지요.
자, 여기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증거’라는 용어를 가지고 나옵니다. 이번 세 번째 시간에는 ‘증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증거’란 말이 무슨 뜻을 갖고 있느냐 하면, ‘내실이 있었습니다.’ 라는 것을 말하지 않지요. ‘증거’란 말의 원어는 ‘목격자’를 가리킵니다.
법정에서
판사: ‘새벽 4시에 그 차가 뺑소니 치는 것을 봤어요?’
목격자: ‘예 봤습니다.’
이러면 되지, ‘그 차 제가 안 탔는데요. 그 때 저는 구멍가게에 사탕 사러 갔는데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할 필요 없다니까요.
판사: ‘어허, 그런 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그 때 뺑소니 할 때 당신이 저 차가 사람 치는 것을 봤습니까?’
목격자: ‘예 봤습니다. 그런데 저 공부 잘하거든요.’
공부 잘하는지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당신 본 것을 증거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할게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이미 교회를 접수를 했어요. 교회 모든 중직들을 정치적으로 점령을 해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사도요한이 제일 처음 뭐라고 합니까? ‘다시 교회를 빼자. 노회 재판 걸자.’ 이게 아니고, ‘우리 힘을 다시 모으세.’ 이것도 아니고 그 자체가 무엇을 증거한다? ‘악한 자들은(추종세력) 진리를 좇지 않는 증거가 봐라 나타났잖아.’ 라는 것으로 족하단 말이지요. ‘이 장로 가이오야. 그것으로 됐다.’ 이 말입니다. 그냥 나온나 됐다.
너나 나나 증거하면 그만이지 파워게임에서 뭔가 하나 소유, 특정 교회를 소유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우리가 염려할 것은 우리 영혼이 잘 되는 것. 진리 안에 교제하는 것. 이게 더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가이오 이 사람이 교회에서 추방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확실하게 아는 것은 10절 끝에 보면 사도요한의 속한 사람은 확실하게 추방당했어요. 그 교회에서.
그러니까 요한 3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겁니다. ‘아니 참 이상하다. 하나님 참 이상해.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사도인데 하나님은 뭘 하시나? 도대체. 살아 계시다면 교회가 이런 악당들에 의해서 접수된 것을 바라만 보고 계시면 무능한 하나님 밖에 더 되나? 진짜 하나님 살아 계시면 교회마다 전부 진리만 넘치고 복음만 넘치도록 그렇게 일하시지 왜 사도요한 쪽에 속한 사람이 쫓겨나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시는가?’
그러나 사도요한은 쫓겨나더라도 ‘넌 뭘 증거했나?’ 이걸 묻는 거예요.
사람이 그리스도가 없으면 평소에는 만날 ‘그리스도, 그리스도 복음’ 하다가 막상 쫓겨나면 ‘에라, 모르겠다. 어느 놈이든 걸리기만 해라. 누구는 자존심 없나. 이 교회에서 내 편 몇 명이나 되는 줄 아나? 본데를 보여 줘야겠구먼.’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장로님 가시는 교회가 대구에 있는데, 그 교회가 돈 문제 때문에 복음적인 목사를 안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장로님이나 복음을 아는 주위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냥 돈 포기하고 교회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새로 시작하게 되면 그 교회 사람들은 손해다 싶지만 막상 복음을 듣게 되면 돈 보다,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을 얻게 되면 돈 몇 푼 날린 것 하나도 안 아까워요. ‘아하, 자칫하면 큰 일 날 뻔 했구나. 돈이 올무가 될 뻔 했네!’ 이렇게 느낄 것인데, 아직도 이 사람들은 복음을 모르고 돈이 복음이라. 다시 말해서 그 교회에서 으뜸되고자 하는 싸움에서 졌다는 것이 화가 나는 거예요. 아직도 으뜸이 남아있어요.
으뜸이 남아있으면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게 됩니다.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내 으뜸 됨을 앞장세우기 때문에 문제가 커져요. 똑 같은 놈 돼요.
요한 3서 이 말씀이, 교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사도요한이 보기에는 남들 보기에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몽땅 이단 되더라도 그것도 괜찮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증거기 때문에. 뭘 증거한다? 11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 라는 것이 갈라지는 기준이 어떤 때 갈라집니까? 으뜸이 되고자 하는 놈이 교회를 장악할 때 이 말씀이 비로소 진가가 발휘되지요.
‘저놈 내 용서 안합니다.’ 이러면 ‘내 둬라. 너는 진리 사랑해야지.’ ‘진리고 뭐고 나는 저자는 싫습니다. 내 쫓고야 말겠습니다.’ ‘저놈이 나쁜 게 문제가 아니고 네가 평소에 전혀 진리에 대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제 들통 났다. 내가 보니 너는 악한 자에 속했다는 것이 증거되었다.’
이름도 참 이상한데, 디오드레베같은 놈이 등장해서 ‘너도 똑같은 인간이란 것을 들통 내는 그런 언약 사건을 일으켰다. 너도 똑같은 인간이야. 너는 하나님 뵙는 것이 안 좋으냐? 네가 평소에는 하나님 뵙고 어쩌고 했지만 막상 일 터지고 나니까 하나님 뵙는 것 별로 안 좋아하고 교회 자리 빼앗기는 것이 성질나고 자존심 상해서 그것 쟁취하려고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다.’ 사적인 복수심으로 보복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든단 말이지요.
그런데 진짜 하나님을 뵈옵는 사람은 그 때고 지금이고 언제나 뵙고자 한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비록 그들이 교회에서 쫓겨나더라도 이런 일을 통해서 주님 뵙는 것이 더 좋아져야 된단 말입니다. 그게 뭐냐? 진리에 속했다는 증거가 이런 악한 일을 통해서 일어나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성경 여러 군데 많이 나와요. 어떤 계기가 없을 때는 자기가 진리에 속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일이 하나 터지고 나니까 전부다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가고, 베드로 같은 경우에는 예수님을 세 번씩 이나 부인하고 자기 목숨 살리는 일에 급급했잖아요. 그러니까 성령께서 오셔야 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피와 물과 성령에 대해서 증거해서,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가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가오니까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뭐가 필요합니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남한테 졌다. 패배 당했다. 어차피 걸레인 걸. 걸레가 무슨 깨끗함을 주장합니까? 그럴 필요 없잖아요. 당했다는 것이 억울하겠지만 당한 인간을 주께서 건졌다는 생각을 왜 못하느냔 말이지요.
강도 만난 인간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갔다. 억울해 하지 말고 누구 한 사람이 건졌다. 사마리아 사람이 건졌다. 이 기쁨이 보통 기쁨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마저 그냥 지나갔으면 그는 죽은 인간이지요.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되셔서 우리를 건졌다. 그래서 기쁨이 넘친다면 앞에 지나간 레위인, 장로, 강도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건이 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사도요한이 요구하는 영적 수준이란 것이 엄청난 것이지요. 기껏 와서 한다는 것이 ‘그래 악한 놈들은 하나님을 뵈옵지 못한다.’ 그게 위로랍시고 하는 이야기입니까. 어떤 집사가 예수 믿고 가게를 운영하는데 가게가 홀랑 불에 타고 빚을 한 2억 졌다. 어떤 분이 와서 기껏 하는 말이 ‘하나님을 뵈올 겁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그 소리 듣고 그 다음부터 감사헌금 천만원 하겠어요? 다른 교회 가니까 기도하면 원상회복된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당기지, ‘하나님을 뵈올 겁니다.’ 이 소리가 당기겠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당해봐야 안다고,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로 하여금 본인만이 아는 당함. 깨짐의 체험을 매일같이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수요일 이런 기도 제목으로 같이 기도했는데, 뭐냐 하면, 무슨 기쁨이 있어야 되는가 하면 ‘만사가 내 뜻대로 안 되는 데서 오는 기쁨.’
사람들 정신병, 우울증 이거 고치는 방법 쉽습니다. 매일 ‘나는 망해야 돼. 망해야 돼.’ 열 번만 해 보세요. 정신병 그 자리에서 다 사라집니다. 정신병 걸리려면 어떻게 하면 걸리는지 알아요? ‘하면 된다. 하면 된다.’ 열 번만 해 보세요. 정신병 걸리지. 그런데 ‘나는 망해야 돼. 나는 망해야 돼.’ 열 번만 하면 정신병이 다 사라져요. 아직 왜 안 망하지? 나는 망해야 되는데? 참 감사하다. 이러면 정신병 없어집니다. 굉장히 간단해요.
아침에 Q.T하면서 써세요. ‘주여 망하게 하옵소서.’ 망하는 게 소원이다. 왜 망해야 하는가? 원래 망할 자이기에 망해야 돼.
사람이 안 망하려고 하니까 이게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의 영과 안 맞아요. 안 망하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고생이라. 사울이 아무리 설치고 해도 예수님은 ‘아이고 이 인간아 너만 고생이다. 왜? 턱이 있는 줄 몰랐나? 너는 턱을 보고도 돌진하는 어리석은 놈이야.’
세상만사는 내 뜻대로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턱입니다. 마귀가 꽉 장악하고 있어요. 약속의 땅은 다 이방 민족이 장악하고 있다고. 손톱도 안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이 마음이 좋아서 ‘신앙생활 하세요. 마음껏 하세요.’ 이런 인간 없어요. 어느 직장에도 그런 것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직장에 들어가면 날마다 망하기를 외쳐야 됩니다. ‘하면 망한다. 하면 망한다.’ 열 번 외치고 신앙생활 해 보세요. 범사가 잘 되지. 안 되는 일이 없지요.
사람이 잘 되려고 자꾸 의식하니까 나쁜 일을 예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돼. 그 일 터지면 나는 감당 못해. 하나님, 제발 그런 일 안 일어나게 해 주세요.’ 이러면 마귀의 밥입니다. 오늘 또 한 놈 걸려들었네. 이걸 어떻게 요리할까. 정신병에다 우울증에다 수면제 먹고 온갖 것으로 힘들게 합니다.
하루 열 번입니다. ‘망해야 돼. 망해야 돼. 오늘도 망해야 돼.’ 열 번씩만 외쳐보세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몸까지 강건할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2007. 7. 9. 09:43 녹취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