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어느 교회에서 생긴 일
[일반] 어느 교회에서 생긴 일
이름 : 이근호(IP:220.230.122.170)
정석훈 목사님께서 부목사로서 석달 동안 몸 담고 있었던 인천의 어느 교회 내에서 있었던 일
약 석 달 간에 올린 설교, 이 설교를 듣고 교인들은 둘로 나누어 진다. 한 쪽은 처음엔 충격이요 나중엔 감사로 바뀌었다고, 다른 한 쪽은 너무나 혼란 스럽다고 말한다.
담임 목사는 위기를 느낀다.
석달도 되지 않아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집사가 갖 온 부목사 편에 서서 계속해서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는 말의 내용을 들어도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고..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간 순장들도 몇명이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처음엔 충격이요 나중엔 너무너무 자유롭고 감사하다는 말이다.
물론 몇사람이 그런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만 되어도 담임목사는 위기다.
자신이 20년동안 목회를 했는데, 자신이 전하는 목음과 거의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저들이 그런 말을 할까? 그래서 그는 나의 신학적 문제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하는 말이 은혜를 너무 강조하는 루터와 같다는 말이다.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한 루터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나의 주장은 오히려 은혜 안에 있음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목숨이다라고 저들에게 가르쳤고, 저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들은 혼란 스럽다고 말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이 하는 기도, 헌금, 봉사, 전도가 다 헛되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안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처음엔 도끼로 내려찍는 듯하고, 뒤통수를 얻은 맞는 듯 했다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은혜 속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남의 눈치보고 할수 없이 했던 사람들에게는 나의 설교가 십자가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는 복음이었다.
두번째 문제는 이것이란다.
내가 복을 너무 일방적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십자가 사랑 안에 있는자는 가난해도, 부유해도, 병들어도, 죽어도 복이라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주장은 가난한 것이 저주요, 병든 것이 저주라는 것이다.
담임목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건강해도, 부유해도 저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논리적 귀결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프고, 병들고 가난하고 땀 흘리는 것이 저주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은혜 밖에 있는 자들은 아무리 건강하고 부유해도 저주받은 삶의 모습임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물론 말로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편 73편을 인정치 않는 자다.
악인이 잘되고, 부자 되고, 죽으면서도 기력이 쇠하지 않는 모습이 곧 저주의 전형적인 모습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 인정치 않는고 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와 보니까 자식이 죽는 슬픔, 가난한 자의 고통을 알겠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저주요, 결코 복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할때 병들어도 예수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요한복음9장에 나오는 눈뜬 것이 오히려 저주입니다 라는 말을 싫은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나보고 이렇게 말했다.
정 목사가 암이 들어도 복이겠네. 그러면 그렇게 되어라.
내가 암이 걸릴지 교통사고 나서 죽을 지, 비행기 타다가 죽을 지 어떻게 자기가 알지.
담임목사는 열만 받으면 저주하는 경향이 있는 자다. 마치 자기가 예수님이 된듯이 말이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요. 암에 걸리면 너무너무 싫을 것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믿을 따름입니다.
세번째는 내가 목회윤리를 어겼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안수집사 집에 가서 이런 말을 했다.
왜 성도가 떠납니까? 목사가 떠나야지요.
이 사람은 담임목사에 대해 엄청 불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니 엄청나게 담임목사 욕을 하는 것이
다. 그래서 내가 맞습니다. 담임목사가 성도를 인정해 주어야지요.
그러면서 그는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왜 성도가 떠나느냐, 목사를 쫓아내면 되지.
내가 담임목사에게 말하니 담임목사의 말이 재미있다. 그 사람이 무엇이 대단하다고 내가 나가야 돼. 자기가 나가야지....
나의 의도는 교회를 나누어서 개척하겠다는 의도가 없었고, 오직 이 사람은 교회에 붙들어 두어 복음을 더 듣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설교를 한시간 가량 했다.
그런데 이 설교가 문제였다.
이 집사는 자신이 인정받고 싶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 자신의 생각이 완전 엉터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엄청나게 났는데, 이 말은 하지 않고 앞서 내가 한 말만 속 전했다.
담임 목사도 내가 악의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인 부교역자가 담임목사를 돕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도가 왜 나가요 목사가 나가야지.
그런데 성도들이 혼란스러우니 성도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목사가 나갔다.
이정도이면 담임목사의 논리가 어떤 논리인지 알 것이다.
한 가지만 부언하면, 복의 개념에서 그는 구약의 복이 율법을 지킴으로 신약시대에도 물질적, 건강적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갖다 대는 것이 김세윤교사의 책이었는데 제목이 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때 건강으로도, 물질로도 자녀로도 주실 수 있다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답했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수 없습니다.
물론 병상에 누워서도 전할 수 있지만, 이렇게 목사로 봉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주님은 어떤 삶을, 어떤 환경으로 이끄실지 누구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아플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고, 가난할 때도 있고 부유할 때도 있고, 굴곡진 인생을 살지 않습니까?
누가 이것을 예견할수 있습니까?
그러나 말씀은 이미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네번째로는 내가 십자가 십자가를 말하니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에서 십자가가 무엇이냐?
나는 자기 부인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니 하는 말이 자기 부인이 두번이냐, 아니다 이것은 사명을 말한다. 물론 고난을 말하는 것도 있다.
다른 집사에겐 철저하게 고난을 강조해 놓고 나에겐 사명이란다.
내가 보기엔 그말이 그말인데.
성도가 성령을 받게 되면 주님의 증인이 되는데, 자기 부인없이 어떻게 주님의 증인이 되는가?
주님의 증인이 곧 우리의 사명이지 않는가?
그러니 아니란다.
내 보고 말 장난 하지 말란다.
어떻게 십자가가 자기 부인이냐, 사명이지란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더 했다. 주님의 십자가 속에 우리의 십자가가 들어갑니다.
담임목사의 사명이란 내가 행하고 이루어야 되는 일을 강조하는 것이다.
내가 내가..
은혜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이것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설교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교회에 봉사많이 하고 헌금많이하고, 기도 많이하고, 전도 많이 한 사람들이 열을 받은 것이다.
결국 나는 교회를 둘로 쪼갠다는 죄목으로...
이 말은 처음 고발한 자들의 말이다.
아직도 기존교회안에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갈망하는 자들이 많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에서 충족을 받지 못하니 엉뚱한 곳에 가서 성경을 배우는 것도 목격한다.
또한 이들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은데를 느끼면서 갈등하고 있다.
석달이 수년 아니 수십년이 흘러간것 같다.
옆에 있던 집사님은 삼십년 같았다고 말한다.
자신의 50년 신앙생활을 부인한다는 것은...
이근호
07-06-16 19:39
말로만 복음이 귀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복음이 귀한 줄을 정 목사님은 절감했을 것입니다. 살려고 하는 자들이 다니는 교회는 모두 지옥이 입을 벌리고 사람들을 쓸어담는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생명을 잃어버린다"(요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