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4장14-20절 제목: 낫과 포도주 틀 듣기:22.231.1.74/~woorich
계 14:14-20 (낫과 포도주 틀)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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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7-06-10 13:22
낫과 포도주틀
2007년 6월 10일 본문 말씀: 14:14-20
(계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계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계 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계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계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계 14: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계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믿음이냐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들이내어 밀어야 파악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이 아닌 것은 성경 말씀을 거부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이라면 성경 말씀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이란, “믿습니다!”를 되풀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로 결정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내용을 듣고 즐거이 받아들여지면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 대해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면 엉뚱한 것을 믿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믿음이냐 아니냐는 성경 말씀 앞에서만 이야기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면 먼저 우리 인간들이 나름대로 수시로 자신과 세상을 판단하고 심판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볼 때, 자신에게 미흡하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한 용도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남자아이에게 “너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니?”라고 물으니 걔가 말하기를, “돈 많고 집안 일 잘 하는 여자하고 싶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자신은 안 팎으로 놀겠다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 내리는 심판이나 판단은 자기 편한 것이 진리라는 식으로 결정짓고 살아갑니다. 자, 이런 안목이라면 과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심판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천사들의 심판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외부의 지시를 인정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자신이 결정짓습니다. 즉 절대로 자아를 비켜가거나 자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판단을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의 심판은 외부의 지시에 따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에서 나온, ’제단에서 나온‘’이라는 표현이 그런 겁니다.
사실 하나님의 죄용서라는 것도 우리와 사전에 의논해서 내린 조치가 아닙니다. 밤에 내놓은 쓰레기가 아침이 나가서면 감쪽같이 없어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누가 새벽에 치워버린 겁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도 몽땅 가져가시는 분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 처리에 있어 우리의 행동이 의미 개입되는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일방적으로 가져가 버리십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믿습니다.
이와같이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나의 심판 의도와 결부되었다고 여기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평소에 행사하는 판단이나 심판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심판해 버리십니다. 우리 편하라고, 우리 좋아라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불신앙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 평소 생활과 엮어 놓아버리면 이것은 스스로 집 나간 일곱 귀신을 다시 불러드리는 식이 됩니다. 남편이 바람피우고, 자식이 사고치고 다니고, 펀드가 부도나고, 시부모가 치매걸리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행동이 잘못한데서 온 하늘의 심판이라고 간주하는 식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은 더욱더 자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잊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바가 됩니다. 즉 하나님이 말씀 감행이 자기 보다 덜 중요한 것이 되는 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전혀 우리들의 이런 자기 위주를 비켜 갑니다.
미가 6:1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이런 뜻입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나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는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농사짓는다는 겁니다. 곡식 씨를 뿌리는 것은 알곡을 거두기 위함에요. 포도농사를 하는 것이 포도주를 얻기 위함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벌리시는 심판은 일종의 하나님께서 필히 벌리시는 ‘하나님의 농사’입니다. 포도주를 얻을 생각이 없다면 애초부터 포도 농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도 반드시 포도주를 얻고야 말겠다는 겁니다. 포도주를 얻으려면 포도주틀이 필요합니다. 그 포도주를 틀을 설치했다는 말은 곧 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농사에 필요한 텃밭이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인간들의 개인적 심판 성향하고 차이납니까! 포도주틀에다 포도를 집어넣고 인정사정없이 야무지게 짓밟고 또 짓밟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자기 중심의 왜곡된 심판관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나온 현상입니다. 하나님은 구차없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 자체가 곧 하나님의 일이십니다. 심판이 없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자신이 하시는 일을 즐기고 계십니다. 농사꾼이 결실기에 타작하고 포도주틀에서 포도를 으깨는 일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입니까! 마땅히 해야될 일을 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신나심에 같은 신나는 심정으로 즐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나심에 훼방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를 위한 자아의 삶을 포기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이 없고 오기로 무장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죄를 용서하실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화목제물 안에서 쏟아넣었기에 결과로 나온 열매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믿음으로 거저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 죄로 돌리지 않으신 겁니다. 순전히 그 한 가운데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효력입니다.
이러서 십자가란 우리 자아를 폭파시키는 폭탄 같은 기능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앞으로 무슨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리던 상관없이 오직 십자가 피의 능력로만 구원됩니다. 자아를 고려할 근거가 사라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농사 계획이 우리의 자아의 소망을 너머서서 ‘포도주 맛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포도주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의 틀에서만 나온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낫들고 설치시는 누구도 막지 못할 분이시고, 그런 태도로 나오시는 이유는 모두 빈틈없이 추수를 마감하기 위한 본래의 계획은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온 우주에 하나님의 진노의 피가 묻게 됩니다. 깊은 산중에서, 오래된 사찰 기둥에도, 하나님의 진노의 피가 묻히는 그 날이 옵니다. 이 현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믿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피 앞에서 자신이 자아를 잊게 하옵소서. 그래서 아픈 상처나 기억가 앉을 자리조차 없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