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거래
이름 : 신직수(IP:59.27.66.136)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 거래다. 거래가 되어야만 관계성이 성립된다. 부모와 자식관의 관계도 그렇고 부부관의 관계도 그렇고 친구관의 관계도 그렇다. 또 스승과 제자,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도 거래로 일관한다. 어떻게 보면 진실한 사랑인 것 같고 강력한 의리인것 같고 잘 보살펴 주는 것 같이 보여도 인간사, 세상사에서 하나님의 단어를 들먹이고 싶은 것이 인간들의 종교성이다.
인간들이 거래로 일관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동과 노력의 댓가를 바라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성도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죽어서 뭔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 아픈 세상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이렇치 않을 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 십자가의 저주가 인간들의 행위를 휩싸고 있는데..
십자가 사랑엔 언약만 있지 거래는 없다. 계약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이다. 계약은 인간이 깰수 있는 것이지만 언약은 인간이 깰 수 없는 창조주의 진행방식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택자는 갚을 길이 없다. 그래서 은혜와 긍휼이다. 그러데 성도는 일한 것이 단 한개도 없는데 하나님은 다 갚으셨다고 하시니 이 사랑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다 하나님께서 이루셔 놓고는... 이것이 십자가 사랑이다. 인간들의 거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성도는 외면으로는 거래의 삶을 산다. 그러나 내면으로는 오직 믿음으로 산다. 성령께서 십자가의 완성을 다 적용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속히 이루어질 그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세상은 저주와 죽은 시체로 꽉 차 있다. 예수님의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엔 죽은 종교, 죽은 거래, 죽은 행위, 죽은 사랑만 존재한다. 거래를 넘어 살인, 사기, 절도, 강도, 강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무슨 선이 있겠는가? 최고 살인과 강도는 종교 지도자들의 협박성 거래이다. 이 거래엔 강도와 살인과 사기만 있지 사랑은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래서 목사들을 보면 기가 찬다. 어떻게 저런 개그를 할 수 있는가 상상이 안 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개그가 아닌가 기독교 지도자들을 특별히 생각하는 것이 웃긴다. 모든 종교가 똑 같고 모든 인간들이 따져보면 같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웃기는 자기 행위, 이것을 하나님의 행위로 여기면서 하나님과 거래하고 상급의 차별을 논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기독교 목사들이 아닌가? 철저한 개혁주의자라고 자부하는 충남 공주 내가 다니고 있는 담임목사이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마귀에게서 나와 십자가의 저주를 받고 있는 중인데, 이 저주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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