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어느 이쁜 글
[일반] 어느 이쁜 글
이름 : 이근호(IP:220.230.122.170)
제목: 어느날의 풍경과 심판날의 풍경 글 쓴 이 :오용익 목사
화평교회 오용익 목사
성서교회식구들을 떠나 보내고 그들이 며칠을 묵었던 예배당에 들어가 보았다. 두고간 슬리퍼가 몇컬레, 브랜드가 잘 파악되지 않는 운동화 한 켤레 - 이게 너무 유명한거라 내가 모르나, 아니면 사이비인가, 그것이 잘 파악되지 않는 운동화 - 도 놓여져 있다. 티셔츠도 몇벌. 이정도면 횡재다. 피식 웃음이 절로 났다. 그 다음에는 껄걸 미친놈처럼 웃었다.
의자줄을 다시 맞추며 걸레질도 한번 더했다. 의자줄은 다시 맞추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굳이 걸레질까지 다시 한 것은 이유가 따로 있다. 구석 구석 밀어 대면서 지난 며칠의 자취를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중학생 여자애들이 교회로 다시 몰려왔다. 지들끼리 누가 멋있다는 둥 찧고 까불고 야단이다.
"그 사진맨오빠, 정말 매력적이야. 아냐, 땡삼이 오빠야. 그래도 터프한 군인아저씨가 최고인 것 같애. 사모님 아니죠-- 그 익제오빠가 제일 멋지죠???"
유치한(정말 웃기고 있네!) 행동인데 밉지는 않다. 그럴만한 나이다. 아니 그래야 정상이다. 그렇게 멋있는 친구들을 보고서 반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거지. 다음날 주일에는 설교를 그렇게 했다. 화평교회 친구들아, 왜 분당만 쳐다 보느냐---(행 1:11)
청년부가 마무리 청소까지 참 잘해주고 돌아갔다.
"쓰레기는 어디서 태우나요? 저 뒤에 가져가서 태우면 되죠?"
"아니요. 쓰레기 태우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낮에 하면 재가 날려서 좋지 않으니 밤에 해야 합니다. 이따가 제가 한꺼번에 태우겠습니다"
쓰레기를 내가 태우겠다고 한것도 이유가 있다. 낮에 태우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청년부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한것도 아니다. 쓰레기를 태우면서 혼자 생각에 잠기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 언젠가 한번은 아내가 무심코 함께 버린 휴대용가스통을 태우다 폭발하는 바람에 간이 콩알만해 진적도 있지만.
무슨 일을 하든 마지막에 하는 일은 청소다. 어떻게 시작하든지 마지막은 모든 것을 원래대로 정리하고 쓰레기를 모두어서 버리는 일로 끝난다. 반드시 버리는 일로 끝나기 때문에 버리면 안되는 것들, 함께 태우면 안되는 것들을 챙기는 일이 버리는 일에 선행한다.
교회는 '인간의 이름'이 걸린 생존의 투쟁이나 벌이다가 지쳐 쓰러지고 절망하는 이 세상의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죽은자와 산자를 가르시는 엄위하신 '주의 이름'의 역사앞에 엎드려 그 이름을 경배하는 그리스도의 군병이다. 예수 십자가로 빚어낸 생명이다. 더 나아가 예수의 손에 붙들려 죽은자와 산자를 가르는 거룩한 싸움에 참여된 의의 병기이다(롬 6:13).
오실 그이가 맞느냐고 예수님께 여쭈었던 세례요한의 질문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결여때문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몰고온 종말에 대한 혼란 때문이었다(마 11:3). 하나님품에 계시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상 심판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 되었지만 그러나 쭉정이 태운다고 알곡까지 태울수는 없는일. 알곡을 거두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진행되는 지금이 곧 종말이다. 주님께서 그 일을 하고 계신다(마 11:5). 빈틈없이. 착오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