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즐거움
포기하는 즐거움
이름 : 이미아(IP:210.206.197.211)
내가 그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고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자고
언제나 함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소유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이 나그네와 같은 세상을 여행하는 여정길 위에서 만난 그냥 스쳐지나가는 운명일 뿐이다.
주님의 일방적인 십자가의 출현으로 이미 확정된 운명안에서 얽혀지게 한 것일 뿐이다.
그 안에서 그 사람을 통해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확정된 운명이 무엇인가만을 깨닫고 나아가면 될 뿐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으므로해서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자임을 깨닫게 하고
소유할 수 없는, 내가 너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될 수 없는 그 관계......
그 사람의 생각까지도 정복하고자 하나 정복할 수 없는 그 관계를 통해서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는 ,
그 욕심의 끝이 하나님마저도 내가 소유하고자 했던 저주받을 자임을 깨닫고 나아가면 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이든지 소유할려고 한다.
무조건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내 것이 안되면 그것 때문에 밤 잠을 설치고 우울하고 괴롭고 미칠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우리가 이 안에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밖에는 없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셨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싶어도 안되는데요. 주님이 그렇게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라는 포기 밖에는 없다.
시장 바닥에서 억지를 부려가며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자식을 막무가내로 붙잡아 끌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엄마의 손의 힘을그 자식이 아무리 고집불통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징징대고 울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결코 손목을 놓지 않고,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세차게, 손목이 으스러지도록 꽉 붙잡는 그 손에 끌려갈수 밖에는 없다.
자기 마음대로 장난감을 사지 못하고 집까지 끌려 온 그 억울함이 시위에 들어간다. 저녁밥도 먹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밤새 지쳐서 잠이 들 때까지 울어 퍼대지만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고 난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그 전날 울어 퍼댄 탓에 눈은 퉁퉁 부어 올라 있고 고집 피운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미운 엄마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그만 하고 아침 먹으라는 엄마의 소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고양이 세수를 하고 후다닥 집을 뛰쳐 나와 학교에 가버린다. 학교가 일찌감치 끝났지만 집에 들어 가기가 싫다. 이리 저리 방황해 보지만 어느 한 곳 마음 둘 만한 곳이 없다. 춥고 배고프고 집이 그립다.
그러나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다가 이내 꼴보기 싫은 얼굴로 나타난다.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힌 엄마. 그 엄마를 용서하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문득 사달라고 하는 대로 다 사주는 친구의 엄마가 생각이 났다. 그 친구의 엄마는 그 친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준다. 그러나 그 친구의 엄마는 잘못한 일에 대해서 매를 들어 때릴 줄 모르는 친엄마가 아니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을 수 있었지만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가졌어도 가진 자처럼 기쁨을 소유할 수 없었던 그 친구의 슬픔이 떠오른다. 어둑어둑한 골목길 사이로 저녁 그림자가 길게 누워있다.
어쩔 수 없이 향한 발걸음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되고 말았다. 집 앞에서 넋 나간 얼굴로 서성이고 계신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눈물이 흘렀다. 그 품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장난감 그까짓것 가지고 바꿀 수 있으랴. 자존심마저도 무너뜨려 흐물흐물하게 하는 것은 엄마의 품이었다. 이것 저것 사달란다고 다 사주지만 진짜 엄마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무엇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 일방적인 사랑이 바로 엄마의 사랑이다. 그냥 한 번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 사랑 안에서 마음껏 포기를 하라.
이사를 많이 다녀본 사람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삿짐 정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를......
하루 종일 해도 다 할 수 없어서 파김치가 된 몸이 쉴 수 있을 정도로만 대충 해놓고 그냥 쓰러져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쓰러져서 자는 잠은 얼마나 달콤한가.
비록 내일 눈을 뜨면 묶은 채로 널부러져 있는 짐들이 눈뜬 나를 맞이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일이나 정리해야 할 이삿짐을 다 정리하려고 한다면 여지없이 몸살이 날 것은 뻔한 이치이다.
포기하고 지친 몸이 쉬도록 곯아 떨어지자.
인위적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고 기진맥진하여 저절로 되어진 그 포기.
그리고 나서 곯아 떨어져버려 잠이 들었다면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때 그러나 어느 한 순간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자로 만든 어떤 분이 계신다면
그 분은 참 사랑을 가지고 다가오신 주님이시다.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세상이 내 맘대로 되어질 때 행복해 한다.
세상이 내 맘대로 안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기를 대신하여 있는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세상이 내 맘대로 되어질 때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기를 대신하여 있음을 깨닫는다.
신직수(IP:59.♡.66.25)
07-05-13 21:18
맞습니다. 십자가로 인해 내 것 있을 리 없습니다. 자기 포기는 십자가의 현실이며, 십자가에게서 나온 것이지요. 같은 말씀이겠지만, 내 맘대로 되도 행복, 내 맘대로 안 되도 행복이라 생각되어집니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