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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구 5월 7일 강의강의창세기

대구 5월 7일 강의

이름 : 우리교회(IP:122.47.53.68)

우리교회(IP:220.♡.176.141)

08-02-27 18:09

daegu070507

07 대구강의 5 - 지옥의 하나님 19 07,05,0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아담의 책임론과 자격론 !!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을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렇게 해서 그때부터 '죄' 라는 문제가 등장하면, 그때부터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책임론이 아니라 자격론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죄인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격론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죄인이 되고 난 뒤에, 책임론으로 아담을 본 것과 자격론으로 본 것과는 심판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책임론으로 보게 되면, "너는 왜 나쁜 짓을 했지?" 라고 해서 지옥으로 보내버리는데, 왜 아담과 동일한 과오를 반복하느냐고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을 주었는데도 왜 말씀대로 지키지 않느냐고 하면서, 죄인에 대해서 "너는 의를 이루어야 될 책임 있어" 라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되어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마지막에 지옥으로 가는 것도 죄인에게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임론이 아니라 자격론이 되어버리면, 즉 인간은 율법을 지킬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고 나와버리면, 나중에 천국과 지옥은 무슨 기준이 되느냐 하면, 원래는 천국에 갈 자격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데, 그런데 지옥에 갈 자격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는 것도 말이 된다는 것이다. 즉 신분이 천국에 갈 신분으로 확정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이고, 지옥에 갈 신분이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 사장님, 그러면 책임은 누가?

현재 한국교회의 150년 역사가 여기에 대해서 전부 무슨 주장인고 하니, 모두가 책임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임론으로 하면 어떤 어려운 점이 생기는고 하니까, 예를 들어서, 공장에서 만든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물론 사장이 그것을 담당한 직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그 책임을 누가 감당해야하는고 하니, 그들을 채용하고 만들도록 지시를 한 사장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닌가?

◈ 하나님, 그건 오리발 ??

그런데 문제는 성경말씀에는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담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말이다. 물론 예수님은 그 죄 값을 대신해서 졌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죄가 자기 때문에 생겼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론이 아닌 자격론으로 접근하게 되면 책임론은 날아가 버리는데, 즉 창조주가 피조물을 상대로 해서 새삼스럽게 무슨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는 이미 저질러진 모든 잘못을 자기 것으로 다시 회수를 해서, 다시금 재창조에 나선다는 것이다.

◈ 고려청자는 조심해야 하느니라 !!

예를 들어서, 집에 고려청자가 있었는데 아이가 그만 장난을 치다가 깨트려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하겠는가? "너는 싯가 1억원 짜리 물건을 깨트렸으니 앞으로 10년 동안 저녁은 없다" 라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실 너는 이 집에서 살 자격이 없다. 하지만 너의 그런 잘못까지도 내가 회수를 하겠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영원히 고려청자를 깬 아이로 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에 자식으로 둘 거냐, 아니면 추방시킬 것이냐?" 라고 하는 것은, 일단 모든 권리를 부모가 가졌기 때문에, 부모가 일방적으로 "비록 니가 청자를 깨도 너는 내 자식이다" 라고, 그렇게 자격을 부여하기만 하면, 비록 그 아이가 청자를 깨었지만 그 아이는 부모와 함께 계속해서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 도대체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러니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고 안 하는 그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고 하니, 이미 부모에게 넘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그 아이가 부모 앞에서 자기 책임론을 거론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같이 살자고 용서했는데 다시 책임론을 말하는 것은, 즉 "저도 잘 할 수 있는데,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라는 것은, 여전히 자기 가치를 포기하지 못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한다" 라는, 그 자격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자기 소관이라고, 즉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서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을 복음으로 공격할 때, 철학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그쪽에서 수정해버리면 그만이니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내가 나로서 작용하기 위해서, 내가 나에게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하면서, 그런 충분한 권리와 위상은 "내가 나에게 어떻게 행하고 어떤 인간이 되느냐?" 라는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은, 책임론과 관련이 되면서 그렇게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자격을 부여하면 된다는 것이다.

◈ 철학은 '양심'으로부터 출발 !!

그러니 근본적으로 철학적 사고방식의 출발점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것보다는 일단 양심적인 것부터 출발하는데, 거기에 덧붙여 신의 개념을 상징해놓으면, 즉 "이렇게 내가 내 양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하물며 신도 나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데, 그 성경에 지옥이 있으니 "맞아. 내가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지" 라고, 그렇게 일단은 자기 양심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추가적으로 성경을 내용을 대하면서 해석할 공산이 엄청 크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위주의 성경해석이고 말이다.

◈ 언약 - '창 3:15'에 근거해서 새로운 자격부여 !!

거기에 반해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언약중심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우리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놈아, 왜 그랬나?" 라고 말이다. 그것이 아니고, 이제는 새로운 자격을 부여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약속에 의해서 우리에게 자격이 일방적으로 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은혜를 줄 자에게는 은혜를 주고, 긍휼을 베풀 자에게는 긍휼을 베푼다" 라고 하면서 다가오는 분이 '여호와' 라는 것이다. 즉 언약의 하나님 말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물론 그 다음에 약간 복잡한 현상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렇게 성경을 보았을 때, 성경해석 자체를 두고서 예수님의 입장과 자기 입장이 자꾸만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의외로 간단한데,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개입' 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개입 말이다.

◈ '하나님의 개입'에 대해서 !!

저는 신학책과 철학책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책들을 쓴 저자들이 하나님의 개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씩 화가 날 때도 있는데, 어떤 분들은 질문을 해도 이 하나님의 개입을 상정하지 않고 그냥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빼놓고 "내가 어떻게 일하면 됩니까?" 라고, 왜 그렇게 독자적으로 자기 혼자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느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창세기 1장도 제대로 모른다는 의미인데, 창세기 1장과 2장의 핵심이 무엇인고 하니까, 이렇게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 주위에 하나님이 계셔서, 마치 인조인간을 줄줄이 제조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뭔가를 끊임없이 부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창세기 3장까지도 말이다. 비록 인간이 죄를 지었더라도 찾아오시느냐는 것이다.

◈ 인간은 작게, 하나님은 크게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하나님의 개입을 이렇게 아주 커다랗게 그려놓고, 인간을 아주 자그마하게 그려보자는 것이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 창세기 1장과 2장과 3장을 모두 보자는 말이다. 이것이 뭐가 어려우냐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인간을 크게 그려놓으면, 하나님의 개입하는 것이 마치 층이 엷어져서 나중에 천장에 달라붙듯이, 마침내 그렇게 개입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작게, 하나님은 크게" 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 싫은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해버리면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그림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자기는 커다랗게 그리게 되고, 창세기 1,2,3장은 그만 천장에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창세기 1,2,3장은 봐도 되고 안 봐도 되고 말이다. '내'가 중요하지 성경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 라는 것인데, 그리고 아모스이지 싶은데, 거기에 보면,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니라 말씀이 없어서 갈하다" 라고 나오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씀이 있어도, 자기가 성경을 큐티나 하고 정기적으로 보면 된다고 여겨버리는 것이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을 두껍게 여겨서, 그 하나님의 개입이 너무 크게 압력으로 작용해서 '내'가 거의 찌그러지듯이 작아질 때, 그래서 하나의 점이 되었을 때, '나'는 그런 점의 입장에 있을 때, 돼지비개(?)보다 더 두꺼운 하나님의 개입이 압박을 가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작은 점에 불과한 보이는 자기 자신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개입이 만들어놓은 하나님의 작품, 즉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창세기 1,2,3장을 보아도 이러한 관점에서 보게 되면, 자기 자신보다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훨씬 더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 박윤진님과 하나님의 개입 !!

십자가 마을에 보면 박윤진님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그분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대할 때에, "인간은 하나의 점이고, 하나님의 개입은 너무나 두껍다" 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게 되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다 되는데, 참으로 잘 쓴 글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를 행해서 날마다 개혁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자기 스스로의 자생적인 능력에 기대를 걸고, 하나님의 개입은 껍데기가 되어서 천장에 그냥 붙어버리면, 상대방을 향해서 자학증세가 심하다고 나올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기쁨을 모두다 훼손시킨다고 하면서, 인생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똑같은 글을 보더라도 이렇게 다르다는 말이다.

이렇게 자기를 작게 보고 하나님의 개입을 크게 보는, 여기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개입은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인데, 자기에게 예상밖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를 크게 본다면,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이런 일이 생깁니까?" 라고 따지면서 나올 것이고, 자기를 작게 여기면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게 하셨을까?" 라고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이니 말이다.

◈ 성도의 기도 - 저를 쪼그라들게 해주세요 !!

이렇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그것을 하나님께 당연히 물어본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성도의 '기도' 라고 하고 말이다. 똑같은 기도하고 해도 자기를 키워달라는 기도가 있는 반면에, 자기는 지금보다 더 작아져야 한다고 하나님의 개입을 존중(?)해주는 입장에서, 더 자기를 압박하고 더 짜부라뜨리고, 자기의 '자아' 라는 불꽃을 더 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일한 기도를 해도 그 결과가 다른데, 그렇게 되면 감사와 고마움이 넘쳐서, "제가 하나님의 개입을 착각해서 마치 제가 가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를 더욱 작아지게 하는 쪽으로 열매가 나온다는 것이다.

제가 왜 이렇게 강의초반에 책임론과 자격론을 하는고 하니, 성경을 이렇게 똑같이 대해도 죄인들은 책임론 쪽으로 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은 인간으로 하여금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물론 이렇게 책임을 묻지 않다는 것은 천국에 보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구원파의 수장인 박옥수가 주장하는 것이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구원을 받고 안 받고는 우리 인간들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 하나님의 개임을 염두에 두고 다윗언약을 !!

오늘 우리가 다윗언약을 할 것인데, 이 하나님의 개입을 염두에 두고, 여기서 열왕기상 11장을 보자. 그 내용이 솔로몬 이야기인데, 제가 지금 솔로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다윗과 솔로몬 사이의 관계 때문인데, 바로 이 다윗언약 때문에 그들 사이에 그런 괴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곧바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을 솔로몬으로 간주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이삭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식이 맞는데, 하지만 이삭이 자라면서 무엇을 크게 외치는고 하니, "제 아버지는 아브라함이 아니었습니다" 라는 것을 소리치는 방향으로 이삭과 야곱의 인생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은 조금 있다가 설명하고, 지금은 여기서는 열왕기상 11장 9절을 보자.

(왕상 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 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개판인가?

여기에 보면,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이상한 일인가? 사실 이것이 당연한 것인데, 왕들이 하는 짓이 다 그러한데, 그러나 다윗언약을 고려한다면 이것이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윗의 자식인 솔로몬이 곧바로 여호와를 떠나서 엉터리가 될 것 같으면 다윗언약을 왜 주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 다윗언약이 별로 효과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천대에 이르러 자손이 복을 받고 어쩌고 하더니만, 이렇게 다윗 이후의 솔로몬 당대에 와서 엉망이 되어버린다면, 이렇게 다윗이 자기 자식도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무슨 다윗언약이 구원의 효력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만 그런가요?

◈ 다시 생각하는 아브라함 언약 !!

여기에서 아브라함 언약을 다시 살펴보면, 이것은 제가 울산에서 한 강의인데, 여기에 아브람이 있고 또 아브라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아브람에게서는 사실 아무런 언약도 나오지 않는데, 그런데 이러한 아브람에게 언약을 이루는 여호와께서 찾아온다는 것이다.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 직접 말이다. 이것이 출애굽기 3장과 6장에 나오고 말이다.

(출 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출 6: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출 6:4)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출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다시 말해서, 아브람에게는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는데,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찾아옴으로 말미암아서 아브라함 언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찾아오신 분이 여호와이고, 이것이 곧 조금 전에 말한 하나님의 개입인데, 그러니 이 언약을 찾아오신 분이 이룬다는 것이다.

◈ 여호와 이름이 언약을 !!

아브라함의 자손이 4대만이 죄가 번성해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10족속과 싸워서 이긴다고 하는, 그 모든 성취성을 누가 이룬다는 것인가? 아브람도 아니고, 아브라함도 아니고, 바로 여호와 이름이 이루는데, 그것이 위에 말한 출애굽기에 나오고 말이다.

◈ 그렇다면 왜 아브람은 안 되는가?

그렇다면 "왜 아브람은 안 되는가?" 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아브람은 아무런 언약도 이룰 수가 없는가?" 라는 것이 아브라함 언약이 포함이 되어주어야만, 이 아브라함 언약에서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여호와의 이름의 공로와 업적만이 고스란히 발현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아브라함 언약을 아브람이 이룬다고 한다면, 처음에 아브라함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찾아온 여호와의 이름이 그 앞에서 발현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브람은 되지 않는가? 아브람은 왜 아무런 언약도 이룰 수가 없느냐는 것이다.

지금 언약에 의해서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뀌는데, 이 아브라함은 '만민의 어버이' 라는 뜻인데, 이렇게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뀌는데, 이렇게 아브라함으로 바뀌려고 하면 반드시 자식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도 하늘의 뭇별처럼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람은 자기 아내인 사래와 더불어서 자식이 있는가, 없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도 없는데 나중에 뭇별처럼 많다면 그 자식은 누구의 자식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여호와의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호와의 이름의 만들어낸 자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 그냥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사절단이 찾아오는데, 천사들이 3명이나 왔다는 것이다.

◈ 천사 1명은 어데로 갔나?

이 부분에 대해서 울산에서 집중적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렇게 창세기 18장에서 이삭을 찾아올 때는 천사가 3명이었는데, 그런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롯의 경우에는 천사가 2명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왜 1명이 빠지느냐는 말이다.

◈ 폰라드의 궁색한 변명 - 자료가 달라서 ??

유명한 구약학자인 폰라드는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렇게 다른 이유는 각각 자료가 달라서인데, 즉 천사가 2명 짜리 자료가 있고, 3명 짜리 자료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집을 하기를 앞에는 2명으로 하고 뒤에는 3명으로 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습관에 의하면, 2명과 3명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 헷깔릴 때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양쪽을 모두 다 기록해서 하나님께 맡기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짬뽕(?)이 되었는데, 그런데 이런 폰라드의 주장에 이의를 단 신학자가 없다는 것이다.

천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왜 3명에서 2명이 되었지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발견했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제물이 동원되는데, 그 제물이 바로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 그리고 3년 된 수양과, 또 제물이 아닌데 제물로 넣어주는 것이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인데, 이것들은 제물이 아니기에 몇 년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쪼개지도 않고 말이다.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창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이렇게 제물로서 쪼개지는 것은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레위기에 보면 국가단위나 대제사장이 할 때는, 즉 전체적인 제사의 제물에는 암소가 들어가고, 제사장이나 고위 관직자의 제사에 암염소가 해당되고, 그리고 수양은 일반 가정들의 제사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 그러면 제물들은 왜 3년인가?

그렇다면 각 제물들의 앞에 붙어있는 3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위기나 민수기에 의하면, 암소와 암염소는 높은 직급에 해당되는 것인데, 이렇게 제물에 가치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보다 많은 사람의 죄를 더 많이 함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포괄적으로 말이다.

쉽게 말해서, 암소가 속죄하는 범위가 암염소나 수양보다 더 높은 단계의 고급(?) 제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3년이라는 숫자를 앞에 둠으로 말미암아서 제물의 가치를 더욱 높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3과 암염소가 결합이 되어서 부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암소' 라는 격에 부합이 되려면, 다른 제물들과는 차등적으로 저 아래에 단계에 있는 제물보다 높은 단계에 있는 숫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지만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이 제물의 가치는 이렇게 서로 격차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숫자는 '3'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 동일한 숫자는 동일한 원천임을 !!

그러니 이렇게 숫자가 동일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물의 가치에 대해서는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 그렇게 제물 자체로서 '대제사장, 고위 관직자, 일반백성'의 순서라는 것이다. 아무튼 제물들은 그렇게 평가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암소가 되었던 암염소가 되었던 수양이 되었던 간에, 이 제물들은 공통적으로 동일한 원천자에게서 나왔다는 표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어째 납득이 안 됩니까? (영 의심스럽다는 표정들인데, ㅋㅋ)

이 제물이 구체화되는 것이 바로 이삭인데, 왜 그런고 하니, 아브라함 언약에 있어서 무엇이 있어야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되는고 하니, 자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엄청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에게 "니가 믿는가?" 라고 하면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제물을 주시는데, 이 제물의 구체화가 무엇으로 이어지는고 하니까, '아삭 만들기'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각각의 제물들을 지워보면,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말이다. 그러면 '3,3,3'이 남게 되는데, 이 제물을 지우고 이 자리에 이삭을 집어넣자는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의 체결을 위해서 말이다.

◈ 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의 자리에 이삭인가?

그러면 아마도 "목사님, 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지우고 이삭을 넣습니까?" 라고 질문할 것인데, 아브라함이 누구를 제물로 바치는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데, 그러면 이삭의 기능, 즉 이삭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왔는데, 이 말은 이삭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브라함 언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내려준 아브라함의 자손이 어떤 기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됩니까?

◈ 약속의 자손 - 희생과 죄사함 !!

이삭이 존재해서 매일같이 골프나 치고 놀러 다니면 안 되는데, 일주일에 한번은 몰라도 말이다. 실제 언약의 주인공은 여호와의 이름인데, 장차 오실 여호와의 이름이 이 땅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예수님이 주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매일 골프를 쳤는가? 물론 약주는 가끔 마셨지만 말이다. 그분의 할 일은 희생이고, 그 희생에 근거해서 죄사함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고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손으로 주면, "나는 약속이다" 라고 하면서 그냥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 그에게는 희생과 죄사함이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마시라"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앞당겨져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이삭도 역시나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창세기 22장이 보여진다는 말이다.

◈ 아브라함이 타임머신을 ??

이삭이 아버지에게 "저, 불쏘시개는 있는데 제물은 왜 없지요?" 라고 하니,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응, 제물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 라고 하는데, 왜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의 존재의미를 알았다는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부자지간에 정이나 나누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미 자기 아들의 손을 잡고 지게에 불쏘시개를 올려놓을 때는 말이다.

그때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알았다는 것인데, 즉 희생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장차 메시야가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제물로 상징되는 인간제물을 주셨다는 것을 이미 알았는데, 그 제물이 누구인고 하니,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아들임을 알고 길을 떠난다는 것이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이 제물이 아니었다고 하면, 이삭은 집에다 두고 떠났을 것이란 말이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니까, 기적적으로 하늘에서 제물이 떨어지던지 해서 주실 줄 알고, 물론 결론적으로 수풀에서 수양이 나왔지만 말이다. 아마 그렇게 준비하실 줄 알고 제사를 드리려고 모리아산으로 갔을 것이란 말이다.

◈ 역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

그러니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아브라함은 수풀에서 수양이 나온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제물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 아들 이삭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쏘시개만 준비해서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이삭에게 한다는 것은, 이미 아브라함의 머리 속에는 하나님의 언약자손이 해야할 일을, 즉 장차 오실 메시야가 해야할 일을 놀랍게도 앞당겨서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말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인데, 믿음이란 주께서 하시는 일을 일고 믿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되니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의 계층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인데, 이삭과 대비시키는 동일하게 다 지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이삭이 암소가 되고, 암염소가 되고, 수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제물들을 지워버리고 이삭을 집어넣으면, 이렇게 되면 이삭을 준비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말이다.

◈ 숫자 3의 개념 - 신적인 조치로서 내려진 제물 !!

그렇다면 이삭의 태어남을 알려줄 때 천사가 몇 명이 왔는가? 3명이 왔는데, 그러니까 이삭이 올 때 숫자 '3' 이라는 개념은 신적인 조치로서 내려진 제물의 의미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알아서 준비한 제물이 아니고 신적인 조치라는 말이다.

◈ 폰라드씨, 왜 3명이고 2명입니까?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가 몇 명 왔는고 하니 2명이 왔는데, 그런데 만약에 여기에도 천사가 3명이 왔다면 이삭의 출생고지에도 그들이 와서 관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줄 때도 3명이 왔기에, 그 3명의 천사들의 임무는 이삭과 심판, 이렇게 공이 양쪽을 모두 적용이 된다고 보겠지만, 그런데 이삭의 출생을 알려줄 때는 왜 천사가 3명이 와서 음식을 얻어먹고 했느냐는 것이다. 이것을 폰라드도 몰랐고 말이다.

그런데 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이야기할 때는 롯에게 천사가 2명이 왔느냐는 것이다. 그 2명이 그 지역 깡패들에게 그만 혼이 나고 말이다. 이 이유는 3명의 천사는 어디에 관련이 되어있는고 하니 이삭의 출생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런데 심판은 3명이 아니라 2명이라는 것이다. 그 3명 중에서 2명이 다시 왔는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이 '3' 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려주셨다는 것인데, 인간의 정성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3이란 숫자는 하나님께서 지정한 제물이고, 그 말은 이 제물의 완성은 하나님 소관이고, 하나님 쪽에서 성취한다는 것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3' 이라는 말이다.

◈ 3,3,3 - 하나님이 책임지고 완성한다

만약에 이 제물 앞에 붙는 숫자가 '3,4,5' 라고 되면 제물의 등급과 관련이 되지만, 이 등급과 상관없이 '3,3,3' 이란 것은, 그 제물의 취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완성한다는 의미라는 말이다. 저는 그렇게 보는데, 여러분은 어떠하신지?

이렇게 이삭의 출생고지를 알려주는 천사와,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주는 천사의 숫자가 서로 다르더라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천사가 2명이 와서 깡패들에게 휩싸이게 되자 롯이 무마시키고 하는데, 그때 그 천사하고 이삭과 관련된 천사가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 다윗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을 모델로 !!

오늘 해야될 강의내용이 다윗왕 중심의 전쟁인데, 그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아브라함 언약에서, 지금 꼭 사기치는 분위기인데,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아브라함 언약에서 이렇게 정리가 되면, 다윗언약을 설명함에 있어서 이 아브라함 언약을 모델로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철저하게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는데, 이것은 하늘에서 개입하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고,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기는 하는데 구체적인 인물인 이삭을 통해서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또 이것만으로 부족하고, 이삭이라는 인물이 무슨 인물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장차 오실 예수님이 하실 일인 희생과 죄사함인데, 여기서 희생을 빼고 죄사함만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냥 낚시대로서 구원하면 되고 말이다. "어이, 김씨 올라오고, 박씨도 올라오고, 이씨는 내려가고", 그렇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 낚시대로는 못가요 !!

그렇게 하늘에서 낚시대로 해도 구원이 가능하다면, 굳이 무엇 때문에 번거럽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런 크나큰 고통을 받으면서 달려서 죽어야만 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오로지 희생에 근거해서 죄사함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희생이라는 것은 아브람도 못하는데,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이니 당연히 하나님이 하시고 말이다. 아무튼 아브람은 희생을 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제가 강의초반에 말한 것인데, 책임론이 아니고 자격론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희생은 아무나 하나 !!

제가 만약에 여기서 순교를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왜 제가 베드로처럼 "제가 죽기까지 주를 따르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왜 구원받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이근호가 주를 위해서 죽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 라고 하면, 그것이 왜 말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근호' 라는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희생할 자격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 자격자는 오직 여호와, 즉 하나님의 이름만이 희생할 자격이 있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희생을 해도 그것은 자기 죄 값으로 당연히 하는 고생이지 희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그 어떤 고생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의미 있는 희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왜 중요한고 하니,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지옥에 가도 할 말이 없고, 천국에 가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자기 공로로 간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천국은 오직 그분의 희생 덕분으로 가는데, 물론 사람들이 자기가 알아서 희생하면 되지 않느냐고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지만, 그러나 희생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희생할 자도 언약에 의해서 새롭게 조성된 분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만이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이 이루어지고 말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도대체 뱀하고 누가 싸우는가?

여기에 보면 뱀의 후손과 싸워야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이 뱀이 '아나콘다' 인가? 인간이 찾아가서 싸우게 말이다. 남자의 후손 가운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우리는 아예 마귀와 싸울 자격조차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것이 바로 악마의 생각이고 말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 의하면, 뱀의 후손과 싸울 사람은 이 세상에는 전혀 없는데, 여기에서 '없다' 라는 것은, 그 어떤 인간의 고난과 고생도 뱀의 후손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아예 안 되니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악마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무는데, 우리가 아무리 여자의 후손이 되어보려고 악마의 입에다 발꿈치를 넣어도, 오히려 악마가 냄새난다고 저리 치우라고 한다는 것이다. 약속은 약속대로만 이루어져야 하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동정이나 감정이 들어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아브라함 언약 - 오직 예수님만이 여자의 후손 !!

이렇게 발꿈치를 물려야 하고, 그 물은 놈을 쳐야 하고 말이다. 이것은 단독적으로 예수님만이 하실 일이지, 제 3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내용을 언약이라는 구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 언약이라는 것이다.

◈ 그러면 모세언약은?

그 다음에 나오는 모세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의 부록편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말이다. 모세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구약성경 자체에서는 이런 것이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심지어 마태복음에선 뭐라고 하는고 하니,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은 우리 식의 해석이고, 원래는 "다윗의 자손과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라고 해서, 아무튼 여기서 모세가 쏙 빠지고 없다는 것이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Mat 1:1) The book of the genealogy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RSV)

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복음서인데, 그런데 마태는 이런 유대인들을 바보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바싹 독이 오를 수밖에는 없는데, 유대인들은 모세율법만 의지하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 모세율법에는 '하라'와 '하지 말라' 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이단으로 몰린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이 모세율법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실상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부각시키고 말이다. 38년 된 병자의 경우에도, 평소처럼 집에 그냥 보내면 되는데,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그곳으로 자리와 담요를 들고 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안식일에 말이다.

(요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 5: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 5: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요 5:12)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요 5: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것은 바로 일종의 시위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 예수는 너희들의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노라" 라고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 예수는 의도적으로 모세율법을 무시하려고 이 땅에 왔노라" 라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게 되면, 모세율법은 요한의 때까지인데, 그 다음에는 율법의 영광이 아니라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즉 독생자 자체가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자기만 꼬불치고 있는, 그런 독생자의 영광 말이다. 그래서 그 독생자라는 캡슐을 터트리면 향기가 '팍' 퍼지고 말이다. 요즘 아카시아 향기가 죽이는데, 향기는 가만히 있어도 그냥 날아온다는 것이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러한 독생자의 영광은, 외부에서 망치로 깬다고 해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깨어질 때 나오는 것인데, 바로 깨어지는 그 사건을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무슨 사건으로 보는고 하니, "내가 죽어야 한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인데, 이것을 사도바울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십자가의 능력이고 말이다.

◈ 존재하지 않는 이가 스스로 구원을 !!

그렇다면 오늘 강의할 다윗언약을 생각해볼 때, 이 아브라함 언약자체에서 뱀의 후손을 이길 사람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즉 "존재하지 않는 이가 존재하는 인간을 배제하고서 스스로 구원을 이룬다" 라는 것이다. (이런 명언을 노트에 좀 기록해도 되는데...)

그렇다면 아브라함이든 다윗이든 모세든 엘리야든 이사야든 간에, 전부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구원되지 못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사야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 다윗 - 나도 구원 안 돼 !!

그러니 다윗이 해야할 일도 역시 "나도 구원이 안 된다" 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다윗의 아들 솔론몬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 자식 봐라. 좀 가졌고 부유하니까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떠났다" 라는 것이다.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말이다.

(왕상 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다윗언약이라는 것이 다윗과 한 것이니, 그래서 그 효과가 아들인 솔로몬에게 그대로 미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우리에게, 놀랍게도 다윗언약의 완성은 차일로 미룰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것이다. 다음 번 기회로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기회가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도대체 그 다음에 등장하는 진짜 다윗자손이 누구냐는 것이다.

◈ 믿음이란, 자기 말고 다른 누구에게 미루는 것 !!

놀랍게도 다윗이 이런 사실을 아는데, 자기가 다윗언약을 이루지 못하고 차기로 미루는데,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솔로몬인데, 그런데 이 솔로몬은 마음을 돌이켜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기 때문에,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다" 라고 하면서 또 자기도 다음 기회로 미루는데, 바로 그렇게 미루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다윗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솔로몬으로도 안 되는데, 그러나 솔로몬이 구원받는 이유는 자기 다음에 오시는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뭔가 이루어지고, 그 반면에 솔로몬은 자기 믿음이나 자기 소망으로는, 자기의 율법지킴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입장에서, 그러한 입장에서 장차 오실 분만을 바라볼 때, 바로 그때의 그 믿음과 소망으로 구원의 반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 아브라함의 엽기적인 행각과 믿음 !!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아브라함 본인이 알았는데, 자기가 무엇을 바침으로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삭을 이루어내신 하나님의 희생과 죄 용서를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죽지 않아도 될 놈을 죽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묶어놓고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폼만 잡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미친놈인데, 자기 아들을 산 제물로 바치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브라함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자기 아들을 죽여야 하는 것을 두고 야고보서 2장에서는, 그것을 믿음에 해당되는 행함이라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할 때, 바로 그 예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한 것을 두고 말한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인용은 처음인 듯, ㅋㅋ)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다윗왕 중심의 전쟁'에 대해서 !!

그렇다면 오늘 살펴볼 교재 65페이지에 나오는 '다윗왕 중심의 전쟁' 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다윗왕과 똑같은 믿음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를 끄집어내기 위한, 그러한 인간들의 역사를 배경으로 출발시키는 것이 다윗왕 중심의, 즉 언약 중심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구약역사의 전개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다윗왕 중심의 전쟁'을 이야기할 텐데, 그것을 하기 이전에 기억을 상기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보면, 이렇게 하나님의 개입이 너무나도 커서 다윗이든 솔로몬이든 아주 작게 보이는, 그야말로 그들은 '점'에 불과하다고 하는 안목을 가지고서 우리 교재를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가 잘 되지 싶은데 말이다.

이제 교재 65페이지를 보자.

** [다윗 왕 중심의 전쟁] - 시편을 보게 되면 다윗은 이유 없이 배척을 당한다.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이렇게 시편에서 다윗이 이유 없이 배척을 당하는데, 그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다윗왕은 당연히 배척을 당해야 되는데, 그런데 다윗왕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인가? "다윗, 니가 뭔데" 라고 나오고 말이다.

* 다 윗 :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 하나님 : 니가 뭔데?
* 다 윗 : 하나님은 저의 왕이 맞지요?
* 하나님 : 그래 맞다.
* 다 윗 : 왕인데 왜 저를 버리지요?
* 하나님 : 버림을 당해서, 장차 올 제대로 된 왕의 모양새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 다 윗 :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 하나님 : 니가 그렇게 도망을 다니고 고난받는 과정 속에서 장차 올 왕의 모습이 드러난다. 알겠니?
* 다 윗 : 몰라요잉.
* 하나님 : 어허, 그만 뚝 !!

그 다윗 이후에 솔로몬이나 르호보암이나 여로보암 전부가 다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까, 이 다윗처럼 쫓겨다니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는 것이다. 쫓겨다니지 않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권력을 자기에게로 집중시키는 것인데, 그렇게 권력을 집중시킬 때 묘하게도 거기에 합법적으로 동원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즉 모세율법이라는 말이다. 법이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말씀을 보기는 보되, 자기를 작게 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즉 자기가 점점 더 작아지는 데서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데서 더욱 더 크게 키우기 위한 용도로서, 그렇게 성경말씀을 보고, 설교를 듣고 교회를 다니고, 그리고 온갖 충성과 봉사를 다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아브라함처럼 자기 아들을 제물로 드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제 아들입니다. 좀 키워주세요" 라고 나오지 말이다.

◈ 주님도 제 아들이 너무 좋지요?

믿음이 좋다고 하는 여집사님이 자기 아들을 신학교로 보내서, 정말로 이런 순수한 믿음이라면, 자기 아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복음을 외치다가, 그야말로 목사 안수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것을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할 텐데, 그런데 자기 아들을 사무엘처럼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하면서 큰 교회에 다니면서 로비를 한다면, 결국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이 크게 되기를 믿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작태들이 다윗 이후의 왕들 가운데서 계속해서 우리 눈앞에 툭툭 던져지더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열왕기상하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 싶은데, 이러한 방법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이 어디 있나요? 있으면 좀 가르쳐주시고 말이다.

여기서 교재 66페이지를 보자.

** 이미 하나님은 사울왕을 버렸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서도 계속 이스라엘의 왕으로 군림하려고 한다. 이스라엘은 결국 사울 패와 다윗 패로 깨어지고, 다윗 패는 계속 쫓겨다니는 신세가 된다.

◈ 누가 진짜 버림을 받았는가?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울왕은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고, 다윗은 버림을 받지 않은 왕이기 때문에 마치 적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신세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지금 어디에 속하는가? 지금 버림을 받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울 쪽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가 한 사람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인하여 이스라엘은 이동중인데, 어디로 이동하는고 하니, 바로 사울에서 다윗 쪽으로 말이다.

그러니 버림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보다도, 다윗과 함께 있다면 버림을 받는 것도 옳은 주의 뜻이라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함께 하는데 거기서 편성된 지파가 무엇인고 하니, 베냐민과 유다지파이고 나머지 10지파는 전부가 다 사울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하는데, 여기에서 먼저 열왕기상의 말씀을 살펴보겠는데, 11장 13절을 보자.

(왕상 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 유다지파, 니만 잘났나?

사실은 여기 나오는 한 지파도 다 날아가야 하는데, 이 한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인데, 이 유다지파가 10지파에 편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베냐민 지파는 원래 흡수 통합했으니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진짜 알짜배기 지파만 남고 나머지 지파들은 처음부터 사울 쪽으로, 그리고 여로보암 쪽으로, 그렇게 전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쪽으로 다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설령 유다지파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진작 저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란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다윗이고 나발이고 자기 마음가는 대로 모두 휩쓸리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 조치를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 열왕기상 11장도 하나님께서 예언한 것인데,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빼도 박도 못하는 그들의 운명이라는 말이다. 거기에 대해서 솔로몬이 안타깝게 여기고 서럽다고 한다면 그것은 착각이고 말이다. "아하, 나는 그렇게 쓰임을 받게 되어있구나" 라고 마음을 먹어야 하지 말이다. 자기 본전을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이 과정이 바로 택함 받은 자가 당하는 고난이다. 이방민족이 다윗을 공약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고 자처하는 그들로부터 배척을 받는다. 이 고난 당하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그동안 이스라엘이 얼마나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척해 왔던가가 증명된다.

◈ 내가 아닌 그분의 고난을 통해서 !!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적을 단순히 국가별로 구별을 해서, "바깥에 있는 나라는 적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편이다" 라고 하는 도식이 아니라, 그 구분이 점점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정보가 말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 편이 아니구나" 라는 것이 더욱 깊이 알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들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기존의 있는 교회를 전해버리면 교회에 동조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편이 되어버리지만, 그러나 복음을 전하게 되면 교회를 사수하겠다고 목숨 건 사람들은 복음의 적이라는 것이, 이 복음을 전해야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복음이 바로 고난인데, 복음은 희생당한 자의 그 희생 때문에 산다는 것이고 말이다.

◈ 교회를 지키는 고난도 고난인가?

물론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도 고생이 많은데, 제2 ##교회의 교인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말이다. 그 도둑놈에게 돈을 다 강탈당하고 말이다. 잠도 제대로 못 이루지 싶은데, 그러니 그 얼마나 고난을 많이 받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이 그런 고난을 받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고난을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복음을 안다면, "내가 복음을 위해서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을 보니, 역시 고난이 있어야 소망이 있구나" 라고 나오면 되는데,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가 지금은 고난을 받지만 천 배나 갚아줄 줄로 믿습니다" 라고 나온다면, 그것은 주님을 상대로 해서 흥정하고 장사한 것이지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들이 더 큰 사기꾼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당한 대로 복수를 한다는 말이다.

이상하게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요시(?), 두고보자. 내가 몇 배나 더해서 갚아주겠노라"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복음에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말이다. 심지어 설교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자기는 복음을 열심히 전했는데 교인들이 반응이 없으면 교인들에게 분풀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의 종도 몰라보고 한번 당해봐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자들은 자기의 고난으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는 자들이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심판이다. 다윗은 정식으로 왕이 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왕 됨을 거절하고서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신다. 그 증거로서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건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은 이방나라를 심판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이방나라가 있는 것은 사실 이스라엘이 곧 이방나라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이 다윗언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냥 저주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다윗만이 진짜 하나님이 택한 인간이라는 것을 아무도 일지 못하는데, 그것은 다윗이 고난을 받는 가운데 알게 된다는 것이다.

◈ 다윗은 자기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

아까도 말했지만, 보이지 않는 분에 의해서, 즉 아브람이 아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이루어내시듯이, 이 다윗언약을 이루시는 분은 다윗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윗이 안다는 것이다. 언제 알았는고 하니까, 자기가 밧세바와 통간해서 낳은 아이가 죽을 때 비로소 아는데, 즉 그 아이가 죽는 것을 통해서 자기가 이미 죽었음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입을 닦고 산다는 것이다. "나는 책임을 질 놈도 못되는구나. 책임마저도 주께서 지시는구나" 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주께서는 우리에게 책임을 지고 못 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자는 따로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 다윗언약은 남편의 외도방지가 목적 ??

이 다윗언약을 설명하면서 백이면 백 명이 다 실수(?)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다윗이 밧세바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식들이 제대로 풀리지 않더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무지무지하게 위험한 설교가 되어버리고, 그것을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해버리면, 젊은 시절에 바람을 핀 놈들은 이제 자기 인생은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는 그런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서, "그러니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십일조를 열심히 하시고, 교회에 충성 봉사하시면 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다윗이 나올 때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다윗의 잘못이라고 여기고, 그리고 "역시 하나님은 죄는 용서하지만 그 죄 값은 반드시 치르게 하시는구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뒤통수를 마구 때려버리면, 교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서 타임머신을 타고 자기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기에 바쁘지, 다윗은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 내가 20살 때 뭐하고, 30살에 뭐 했더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일년 전쯤에 바람 피운 것이 생각나서 돈으로 때우고 말이다. 그게 무슨 감사헌금인가? 뇌물이지 말이다. 그것을 보면서 목사는 흐뭇해하는데, 자지가 합당하게 설교해서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 이삭의 꼬라지를 보라 !!

우리가 이삭을 보면, 이삭은 분명히 제물인데, 그런데 이삭의 살아온 꼬라지를 보라는 것이다. 자기 아들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생쇼를 다한다는 것이다. 별미를 만들라고 하고 말이다. 자기는 하나님에 의해서 약속에 의해 태어났는데, 그러니 제물이 되어서 숭고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 인간 꼴이 자기 큰아들에게 물려주려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교회세습과 같이 말이다. 제가 넘 흥분했나?

하지만 교인들은 하나님의 개입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인간이 어떻게 하면 저주를 피할 수 있는가?" 라는 것만 자꾸 이야기해달라는 것이다. 방법론을 말이다. 우리 집안에 저주가 풀리는 방법을 성경적으로 이야기해달라는 것이다.

◈ 죄인이 죄인을 낳고 !!

압살롬이 그렇게 개탕짓(?)을 하는 것은, 이 압살롬이 누구 자식인고 하니, 다윗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다윗이 그것을 아는데, 자기는 모친의 죄중에 태어났으니, 자기 자식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죄인에게서 죄인이 태어나니 말이다. 그것이 뭐가 어려우냐는 것이다. 다윗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 자식도 다 그럴 것이란 말은 안 된다는 것이다.

다윗이 마지막에 인구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요압이 말리는데, 이 요압은 사울 편에 선 자로서 왔다갔다하는 간신배라는 것이다. 나중에 솔로몬에게 맞아죽고 말이다. 하나님은 이 간신배를 통해서 말리는데, "왕이여,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왜 숫자를 셉니까?" 라고 말이다. "숫자를 세지 않아도 하나님이 천 배나 더 갚아줄 줄 믿습니다" 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아니, 다윗에게도 악신이 !!

성경은 그때 다윗이 왜 그렇게 했는고 하니, 사탄이 역사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먼저 사울도 악신이 임했는데, 다윗도 이렇게 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데, 왜냐하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기에 말이다. 은혜를 줄 자에게 은혜를 주기 때문에, 그렇게 악신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처리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나중에 회개를 하게 되는데, 희생을 통한 죄사함을 여부스 사람인 아리우나 타작마당에서 제물을 통해서, 화목제를 드림으로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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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