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13: 19 (죽을 영혼과 살 영혼)
겔 13: 19 (죽을 영혼과 살 영혼)
이름 : 우리교회(IP:122.47.53.68)
본문: 에스겔 13장 19절
제목: 죽을 영혼과 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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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07-05-06 19:27
죽을 영혼과 살 영혼 (야외 예배 설교)
2007년 5월 6일 본문 말씀: 에스겔 13:19
(겔 13:19)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지게 됩니다. 참된 선지자란 참된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알려주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란 하나님을 일을 다르게 전달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선지자와 거짓된 선지자를 구분지으시는 것은 이미 이 땅이 전혀 하나님의 뜻을 받을 마음가짐이 없다는 말도 됩니다. 즉 하나님의 진실된 뜻마저 배격하는 풍조로 흘려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서 아무리 하나님께서 참된 선지자들을 보내어도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따라서 참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거짓된 선지자들이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의사를 전하는지도 병행하게 됩니다. 유난히도 에스겔 선지자 시절에 악한 선지자들의 활동이 왕성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에스겔 선지자들의 말을 들어봄으로서 평소에 우리가 어떤 선지자들을 더 좋아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된 선지자가 어떤 자인가 하는 것보다 먼저 거짓 선지자들이 어떤 자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거짓 선지자들의 문제점은, 죽을 영혼을 안 죽이고 살린다는데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은 똑같이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죽은 영혼’ 따로 있고 ‘살아야 영혼’ 따로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평소에 인간들이 상식적인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안목입니다.
누가 이처럼 파격적인 안목을 그대로 이 세상에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참으로 하나님의 개입으로 선지자가 된 참된 선지자들 뿐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의견인 죽을 영혼은 반드시 죽이고, 살 영혼만이 반드시 살리는 일을 이 양보없이 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구분을 역겨야 하고 그 대신 여전히 인간을 중립적 입장에 두려고 합니다. 즉 애초부터 죽을 영혼은 아마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단지 자기 결단만 있다면 얼마든지 죽을 영혼도 살 영혼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죽도록 되어 있는 영혼을 자기네들이 나서서 살려내겠다는 겁니다.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을 것입니다. 여기서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의 시도로 인해 도리어 살아야 될 영혼마저 죽어야 될 영혼으로 취급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개입을 실제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개입보다 자신들의 개입이 구원에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결정지어 놓으면 인간들이 할 일이 없어진다고 걱정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개입으로 움직이는 참 선지자를 배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 자기 만의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의 구미에 있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자체에 대해서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판단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은 자신이 살려보려고 부지런히 애쓰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신이 공들여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이러한 노력을 초를 치듯이 ‘무엇을 해도 너는 죽을 영혼’이라고 판정내리면 허탈해지는 것이 당연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거짓 선지자들은 이점을 알고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받고자 합니다. 에스겔 13:2-3에 보면,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도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자는 반드시 화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전적으로 인간의 솔직한 심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계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솔직한 본성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 앞에서 죄라고 부정하는 겁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사전에 정해놓으신 ‘죽을 영혼’과 ‘살아야 될 영혼’ 사이의 구분을 존중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개입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개입되면 선지자는 자기 편한대로 살 처지가 못됩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들은 본인 자체가 참된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인가를 점검받는 그 대상으로 등장되고 있습니다.
어느 선지자나 목사나 성도치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선지자 아니라고 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 말 자체가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 앞에 서야 합니다. 그 기준이 하나님과 세상을 놓고서 그 둘 사이에 머뭇머뭇하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8:21에 보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선택권리를 아예 박탈해가는 겁니다. 우리에게 우리 운명권을 결정할 능력을 부정해버리는 겁니다. 단지 하나님이 제시한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냐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의 불꽃은 꺼져야 합니다. 자아가 살겠다고 버티는 것은 비복음적인 발상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해버리면, 우리의 자아는 그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재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시킨대로 사는 겁니다. 늘 자아는 부정당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살 영혼이란 자신이 자신을 간수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 앞에서 자아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믿기가 취미나 오락이 아니라 아예 나라는 것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의 일하심이요 필수적 조치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