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님에게 드리는 질문
박윤진님에게 드리는 질문
이름 : 김헌식(IP:69.63.200.142)
성도의 칼럼난에 있는 이목사님의 질문(어둠) 과 박성도님의 답 (빛) 감사함으로 잘읽어 보았습니다. 역시 빛이 비추어야 어둠이 어둠임이 드러남을 봅니다. 이근호목사님의 질문의 내용만 보면 그럴듯해 보였는데 박윤진성도님의 답글이 비추니 그것이 엉터리임이 드러나는 군요.
그런데 박성도님이 답하신 내용중에서 한가지가 궁금합니다.
"귀하의 견해처럼 십자가가 죽이는 면과 살리는 면으로 해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죽이는 면과 살리는 면으로 애써 분리하는 것은 "나 여기 잘 살고 있음"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살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가 처음에는 나를 죽이지만 결국 나는 부활하여 화려하게 살아 남게될거야!'라는 야심을 십자가에 투영하는 것입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십자가일 뿐입니다. 예수 안은 예수 안이지, 아담의 훈련장이 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평안은 어떤 인간에게 허락하신 개별적 현상이 아니라, 아담은 알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혐오스럽고 피하고 싶은 평안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세상이 알 수도 평안을 귀하를 중심으로 판단해 버린 긍정 혹은 부정적 안목으로 무시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예수가 주신 평안이 아니라, 귀하가 간절히 바라고 바라는 애굽의 꿈일 뿐입니다" (박성도님의 답글중)
이 부분에서,
"십자가의 살리는 면" 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품고있는 것, 바라는 것, 생각되어지는 것) 이것마져도 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예를들어 골로새서 3장1-4절을 읽으면 저는 자연스럽게 부활의 소망이랄까...를 가지게되고 평안해지거든요...... 이 또한 제자신의 구원욕망에서 나오는 것인지.........
박윤진(IP:58.♡.253.159)
07-05-05 17:21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십자가의 역사에 인간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십자가를 보면서 죽음을 이겨내는 심리적 안정을 찾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미 철저하게 완성된 구원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자라면 여전히 자신의 눈에는 피하고 싶은 저주로 십자가 사건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주님의 복음 때문에 힘들지만 나중에 부활할 것이니 조금만 참자.그러면 그것에 합당한 영광이 있겠지"라고 하는 것의 중심에는 복음이나 부활이나 영광의 개념이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파생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구원을 완성하셨고 나를 품으셨는데, 그것조차 나는 내 생계나 명예나 돈 때문에 '힘들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죄인 맞구나. 내가 부활을 이야기 하는 것도 언약의 완성에서 오는 영광 때문에 기뻐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서 오는, 그러니까 영생하고픈 욕망이 실현되었다는 착각때문에 안도하고 평안이라고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김헌식 님께서 인용해 주신 골로새서 3장 1-4절 말씀에서 제가 기쁘게 생각하는 부분은 '너희가 죽었고'라는 부분(3절 상반절)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죽음이 확실하다면, 그 이하의 말씀들은 결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성취하는 것에서 나는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는 기쁨말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 알아서 손수 그 말씀들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나는 죽은 체로 결코 손 댈 수 없는 것들을(지금 내가 그것을 통해 평안을 느끼던 불안을 느끼던지와는 무관하게....죽음이라는 완벽한 단절에서 오는 평안이라고 할까요?) 죽음을 이기신 예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 바로 평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말씀 중에서
'너희'라는 것은 개별적인 성도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서 철저하게 매몰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너희이기 때문에 지금 아담이 상상하는'개별성이 보장된' 자아의 연장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김헌식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안에서 매몰되었기 때문에 기쁘고 그래서 님의 생명을 감추신 분이 또한 알아서 처리하시리라는 포기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면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연히 지금 그리스도와 분리된 개별성이 보장된 나의 연장선상에서 부활때문에 평안해 하신다면, 그것은 수많은 이단들이 꿈꿔왔던 평안과 젼혀 다를 바 없습니다.
박윤진(IP:58.♡.253.159)
07-05-05 17:25
참, 답변에 정신이 팔려 먼저 드려야 할 말씀을 이제야 하네요... 이근호 목사님께서 하신 질문은 제가 쓴 글에 대해 이단들이 해 왔던 비난을 종합적으로 대신 하신 것이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계시지요? 목사님께서 그동안 들어오셨던 이야기들과 읽으셨던 책들에서 정리하여 질문하심으로써 이곳에서 교제하고 계신 모든 분들이 양쪽의 의견이 어떻게 다른 지를 모두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김헌식(IP:69.♡.200.142)
07-05-08 09:29
답글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평안) 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표현해 주시고 계시는데, 아마 인간의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보다 더 온전히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계시리라 봅니다.
제 자신에 대해 말씀드리면 저는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행위는 물론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까지 인간의 모든 행위 그 자체를 부정합니다 (최소한 저라는 존재가 인식을 하는 한에는 말입니다). 아니 부정하고픈 마음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자신이 주님나라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기쁨이랄까 평안을 느끼고 있더란 말입니다. 여기서 이러한 기쁨 (평안)이 과연 무엇이고 그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종종 생각해 봅니다.
인간이란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에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욕망도 일어나지 않으며 또 그것에서 기쁨이나 평안을 느끼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자신이 완전히 배제된채 타자(他者) 로만으로 인해 관심이나 평안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리본다면 주님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나 주님만으로 인해 기쁘다 평안하다는 것 깊숙이에도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식" 이라는 것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마져 부정당하여야 할 인간의 자기보존의 욕망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착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 자신의 생각에도 문제가 있다 봅니다. 성경에는 분명 주님에 의한 소망, 기쁨, 평안등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제 자신이 이렇게 혼란스러움에 있습니다.
제 자신의 궁금증을 다시 정리하면, 과연 성도는 자신이 완전히 배제된채 (구원이라는 생각까지) 타자인 주님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성도가 느끼는 기쁨이란 기쁨을 느끼다 부정당하고 또 기쁨을 느끼다가는 또 그것마져도 부정당하는 상태의 지속속에 놓여있는 것인지 입니다.
박윤진님 뿐만 아니라 모든분들의 조언도 듣고 싶습니다 ( 주님에게만 관심이 있지않고 또 성도라는 인간의 상태 (존재) 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나무라지만 마시고요 )
박윤진(IP:210.♡.130.142)
07-05-08 09:48
하나님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까지 지셨는데, 왜 자꾸 김헌식님은 자신에게 관심이 가시나요? 어떻게 인간의 상태에 정신이 팔려있는 인간을 나무라지 않을 수 있나요?
김헌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던지 주님은 주님의 일을 잘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기쁨입니다.
(김헌식님의 의견)
인간이란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에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욕망도 일어나지 않으며 또 그것에서 기쁨이나 평안을 느끼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자신이 완전히 배제된채 타자(他者) 로만으로 인해 관심이나 평안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리본다면 주님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나 주님만으로 인해 기쁘다 평안하다는 것 깊숙이에도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식" 이라는 것이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마져 부정당하여야 할 인간의 자기보존의 욕망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착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 저도 동의합니다.
(김헌식님의 의견)
그런데 이런 제 자신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봅니다. 성경에는 분명 주님에 의한 소망, 기쁨, 평안등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 내 생각은 착각이고 자기보존의 욕망이 맞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분명 주님에 의한 소망, 기쁨, 평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소유물이 아닙니다. 나는 욕망덩어리고 착각할 수 밖에 없으나, 주님의 일하심이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소망,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기쁨, 주님의 일하심의 결과로서의 평안을 손수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정말 문제는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김헌식님의 존재자체입니다. 인간이 살아있어서 주님의 다 이루심과는 별개로 문제와 혼란을 염려하는 것 자체가 진짜 문제입니다.
(김헌식님의 의견)
제 자신이 이렇게 혼란스러움에 있습니다.
--------> 평생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참 신자라면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평생 괴롭히실 것입니다. 그 혼란스러움 자체가 당연하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것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성도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의미 둔 곳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김헌식님의 의견)
제 자신의 궁금증을 다시 정리하면, 과연 1. 성도는 자신이 완전히 배제된채 (구원이라는 생각까지) 타자인 주님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2.성도가 느끼는 기쁨이란 기쁨을 느끼다 부정당하고 또 기쁨을 느끼다가는 또 그것마져도 부정당하는 상태의 지속속에 놓여있는 것인지 입니다.
-----------> 2번입니다만, 첨언하면 그 부정당하는 상태가 혼란스럽지 않고 소망, 기쁨, 평안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부정당하는 것과 아무 상관없이 십자가는 여전히 계속 튼튼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당할 수 밖에 없는 나이기에 계속 부정된다면 부정해주시는 분이 여전히 살아계시다는 증거아닐까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셔서 나를 계속 죽이고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요 기적이며, 소망입니까!
김헌식(IP:24.♡.233.55)
07-05-08 12:08
그러니까 "기쁨" 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와있는 다른 개념들 즉 믿음이나 사랑이나 성령의 열매나 하는 것들 모두도 주님의 것 (그리스도의 세계의 상태) 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간이 믿는자이든 안믿는자이든간에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욕망이요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
박윤진(IP:210.♡.130.142)
07-05-08 13:26
예.그렇습니다. 믿음은 성도에게 성도가 살아있는 그 자체가 죄이며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욕망의 산물인 것을 살면 살수록 더욱 인정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남을 성도의 눈으로 파악한다면 사도바울이 고백한 "죄인 중의 괴수"가 되겠지요.
김헌식(IP:69.♡.200.142)
07-05-09 05:58
"내게 있는것은 주님이 주신것이다" 는 자기긍정의식과 소유의식을 제가 가지고 있음이 드러나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