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32: 1- 4 (의로 통치할 왕)
사 32: 1- 4 (의로 통치할 왕)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71)
본문: 이사야 32장 1- 4절
제목: 의로 통치할 왕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이사야-2005/085강-사32장,1-4,(의로,통치할,왕)-isa070425.hwp
이근호
07-04-25 21:09
공의로 통치하는 왕
2007년 4워 25일 본문 말씀: 이사야 32:1-4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사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사 32: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사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도 더불어 성도에게 제공됩니다. 만약에 믿음이 병행되지 않은 채 말씀을 대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진실된 말씀 자체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부만 믿는다고 우기지만 실은 그것조차 곡해해서 믿는 것밖에 안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이란 믿음의 능력을 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서 배척받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장차 의로 통치할 왕이 이 세상에 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기존의 인간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의로움’에 대한 곡해와 오해로 인해 배척받는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완성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심으로서 그 완성형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왕으로 자기 백성 위에 군림하여 전 세계를 통치한다는 것이 평소에 사람들이 고대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오시는 정도가 아니라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어떤 이유에서라도 자신이 구원의 대상이 되리라는 인식이 얼마나 큰 착오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들은 살아있는 한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을 포기할 줄 모릅니다. 따라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도 다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기 존엄성’입니다. ‘자기 고귀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기까지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주시고 구원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설마 하나님께서 죄인이 되시는 것까지 미처 생각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이 되셨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어떤 인간들이라도 구원될 자격이나 입장에 있지 못함을 분명히 하시는 겁니다. 즉 하늘에서 사람이 되시는 그 강렬한 속도로서 거침없이 우리 내부까지 쳐들어와 버리면서 “나는 너희들과 같이 죄인되었노라”라고 선언해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우기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되심’의 그 일관된 작업이 임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그 능력이 받지 못해서 여전히 자기 가치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오늘 본문 같은 것을 해석한다면, 백이면 백, 자기 위주로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할 게 뻔합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지상에게 겪게 되는 아픔이나 괴로움이나 슬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랑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 잊을 리가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이 생각하는 공의의 하나님이나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개념들이 모두 자기 처지의 힘든 상황을 회복시켜주시는 그런 개념으로 굳혀버립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지상에서 이상적인 세상을 꿈꿉니다. 즉 평소에 자신의 소신이나 포부가 마음껏 활개치는 그런 세상에 협조하는 그런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좋으신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십니다. 참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전달하고 알려주기 위해서 완벽한 지옥을 만들어놓으시고 그 지옥갈 죄인들을 기어이 잡아들여서 거기에 집어넣으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을 펼쳐지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공의를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공평’으로 일을 처리하십니다.
시편 99 : 4에 보면,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야곱 중에서 공과 의를 행하시나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모든 인간을 하나님은 공평하게 보시는 겁니다. 공평한 죄인으로서 말입니다. 이 작업을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을 이 땅에 내려보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거룩한 법 앞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인간들은 자기 위주로 매사를 생각하는 낮 꿈을 꾸며서 살아온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운전면회 시험장에 1000명이 응시했는데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불합격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다 공평함이 확인된 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죄인되심은 인간들의 재력이나 학력이나 능력이나 지혜의 분량을 깡그리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죄인임을 통보해주시는 일입니다. 바닷가의 파도가 사람을 판단해서 덮치고 아니덮치고가 있을 수 없듯이, 하나님도 사람 차별두지 않고 모든 인간을 천국 입장에 불합격자로 판정짓고 말았습니다.
이는 참으로 공평한 하나님의 조치이며 공의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사람들의 개인적 자질에 개입될 여지를 완전히 봉쇄하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이 공평함을 자신의 처지로 이해되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에 스트레스를 가할 그 어떤 비교 상대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합격성이 ‘하나님의 죄인되심’으로 확정된 바 그 사실 위에 일관된 ‘하나님의 사람되심’의 능력이 작렬합니다. 거침없이 말입니다. 에베소서 1:17-19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령님께서는, 허망하게 자기 위주로 살림이나 차리고자 하는 우리 죄인의 눈을 발히사 실상을 알려줍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아 채릴 수 없는 현실이란 바로 ‘하나님의 사람되심’입니다. 이로서 인간들이 평소에 내세운 주장들은 몽땅 ‘자기 위주’의 관점에서 왜곡되게 생각해놓은 허상과 망상같은 것임이 폭로됩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공의’라든지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해왔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메시야가 직접 왕이 되어 이 세상을 자기 위주로 통치해주시는 날고 고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참 현실이 그들 눈 앞에 전개되지, 정말로 인간들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한 죄악상을 그 분에게 퍼부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요구한 현실이 아닌 다른 현실을 예수님께서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참으로 성령 계시를 받지 못한 자들은 아직도 자기 위주의 꿈을 꾸면서 꿈 속에서 평생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아무 것도 상호간에 비교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