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과 12개의 기념 돌
함께 하시는 여호와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이 말은 죽음을 염두해 두고 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담력 훈련이나, 극기 훈련으로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 불가능을 이스라엘이 아닌 비천하고 연약하고 강함과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천한자로 취급 받던 개같은 이방 여인 기생 라합에게서 그 담대함이 나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 담대함이 인간 쪽에서 만들거나 생성한 것이 아닌 복된 소식이 들려왔기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이 바로 함께하시는 여호와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수 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자 오늘 배울 여호수아서가 증거하는 기쁜 소식은 바로 요단강의 돌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함께 하심"을 강조하십니다. (수 3:7) 『그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부터 너를 크게 높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내가 모세와 함께 한 것처럼 너와 함께 하는 것을 알도록 하겠다.』즉, 이스라엘이 증거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기쁜 소식은 딱 하나입니다. "함께 하심"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했듯이, 여호수아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만 합니까? 이미 여호수아에게 당신은 마음을 굳게 강하게 잡수세요 라고 백성의 고백을 받고도 말이지요. 그것으로 만족치 않고 왜 구지 알려주겠다고 먼저 하나님 쪽에서 강조를 하시는가 라는 겁니까? 원하노라(수 1:17)라는 입장에 머물지 않고 직접 일하심으로 알려주시고자 한다는 겁니다.그것은 인간 쪽에서의 보답이나 응답을 요구 하시는게 아니라, 아에 기대 안하십니다. 주님이 주실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라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겁니다. 그것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내가 정성을 바쳐, 최선의 노력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나의 신실함이 아니라, 인간은 믿고파 하는 것만 믿기에, 믿을만한 것만 믿기에, 그런 땅에서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낸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쪽에서 신실하시고 낮아지심으로 말미암아 알게되는 전혀 낫설은 이 땅에서 보도 듣도 못한 소식만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베풀어준 사건, 하늘에서 기뻐한 소식. 그것이 바로 오늘 요단강에서 돌을 취한 사건입니다. 땅에서 일으킨 일이 아닌 하늘에서 일으킨 기쁜 일요단강은 예수님이 물세례 받으시던 곳이기도 하고, 성령세례를 받으시던 곳이기도 합니다.(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하늘에서 알려주는 이 기쁜 소식, 하늘에서 들려오는 기쁜 음성입니다.그 하늘에서 베푸는 사건은 이러했습니다. 요단강 건너기전 근처에서 삼일을 유하다가(수 3장) 삼일이 지난 후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도하합니다. 먼저 1킬로 정도 앞서간 제사장들이 발을 요단강 물에 잠그자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물이 끊어져 아래는 물이 마르게 되고, 위로는 물벽이 생겨서 위쪽 지형에는 물이 범람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깊은 요단강은 끊어짐을 당합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중앙에 있게 됨으로 마른 바닥을 이스라엘이 뒤 따름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다 건넌 뒤에 여호수아가 각 지파의 수대로 대표를 뽑아서 제사장들이 멘 언약궤 앞에서 12 돌을 쌓고, 또 물에 젖었던 바닥의 돌을 취하여 어께에 메고 오게 합니다. 그 12 돌을 진 친 곳에 두어서 기념하게 합니다. 그리고 난 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맨 뒤에 건너게 합니다.(수 4:5)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요단강 한복판,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지파의 수대로 각자 돌을 하나씩 메고 오십시오.』(수 4:6) 『이 돌을 볼 때마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먼 훗날 여러분의 자손들이 `이 돌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으면』(수 4:7) 『여러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여호와의 법궤가 요단강을 건널 때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멈추었단다. 그래서 이 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놀라운 기적을 영원히 상기시켜 주는 기념비와도 같은 것이란다.'』(수 4:8) 『그래서 그들은 여호수아가 지시한 대로 요단강 한가운데로 가서 각자 돌 한 개씩 어깨에 메고 나와 그들이 진 칠 곳에 쌓아 두었다.』(수 4:9) 『그리고 여호수아는 요단강 한복판,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 있던 바로 그 곳에도 열 두 개의 돌을 세웠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있다.』(수 4:10) 『법궤를 멘 제사장들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지시한 일, 곧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이 다 끝날 때까지 강 한가운데 서 있었고 백성들은 서둘러 강을 건넜다.』(수 4:11) 『그리고 백성들이 완전히 강을 건넌 후에 법궤를 멘 제사장들은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에서 걸어나왔다.』(현대인의 성경)(수 4: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자 그럼 이 사건이 왜 기쁜 소식이냐는 겁니다. 이 깊은 요단강은 어느 누구도 건널수 없는 강입니다. 즉 죽음의 길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 속에서 살아남는 자 없습니다. 물 속에서 다 잠겨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이미 죽어있는 인생입니다. 노아의 홍수 속에 다 잠겨버린 세상입니다. 심판 아래에 저주 아래에 놓인 세상이요 인생입니다. 그러하기에 어떤 누구도 죽음을 회피 못하는 죽음의 저주 아래에 놓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놀아운 일이 생겼습니다. 언약궤가 이 죽음의 물 속에 잠기자, 약속의 상자가 이 깊은 저주에 들어오니까 놀랍게도 죽음의 권세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길이 틔여진 겁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생으로 옮기워진 그 놀아운 역사가 바로 하늘에서 베푼 기쁜 소식입니다.그 언약궤 속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만나가 담긴 항아리, 깨어진 십계명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출 16:33-34/ 신 10:5/ 민 17:4/ 히 9:4)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주하여 원망한 증표입니다. 그렇게 10번 이상이나 하나님을 시험하였던(민 14:22) 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언약궤 뚜껑(시은좌)으로 덮어서 그 위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원망하여 저주받아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양의 피 뿌림을 통해 용서가 되는 죄사함을 받는 그 기쁜 소식이 죽음에서 생명의 길로 옮기워진 그 하늘에서 베푼 구원의 길이 바로 요단강 사건이라는 겁니다.(시 25: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이것을 기념하고자 돌같이 그 깊은 물 속에 잠겨 죽어야 할 죄인이 언약궤의 낮아지심 때문에, 돌과 같이 버림받은 운명, 무가치한 운명, 잃어버림 양과 같은 처지를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찾아 오셔서 우리와 같은 운명에 함께 해주심 때문에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대신 감당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는, 죄 용서함을 받는 그 놀라운 소식이 바로 하늘에서 베푼 사건이요 요단강 사건이요 기쁜 소식이다는 겁니다. (롬 4: 1-8)(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그 낮아지심이 아니면 함께 해주심이 아니면, 어떤 누가 죽음을 건너는 요단강을 건너는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갈 수 있습니까? 그 낮아진 예수님의 마음만이(빌 2: 5-11) 우리가 기념해야할 기쁜 소식이요 그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바로 저와 여러분인 겁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에 우리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주님 ! 인생의 유익이 뭡니까? 그것은 단 한가지 ! 주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주님이 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시고, 이제는 주를 위하여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그 고귀한 그 이름에 나의 허물 많은 생명도 드릴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