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강의(07. 3. 23) 24-3 녹취록
광주 강의(07. 3. 23) 24-3 녹취록
이름 : 서경수(IP:122.36.190.11)
광주 강의(07. 3. 23) 24-3
세 번째 시간입니다.
세 번째 시간은 안 하려고 했는데 합니다. 이것까지도 이야기합니다. 대식씨가 헷갈리면 안 되기 때문에.
7절 봅시다.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아까 제가 설명한 것 이제 아시겠지요? 물과 피로 임하는 것은 예수님이고, 그걸 증거하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령’을 증거하지 않아요. 이것 유념해야 돼요. 성령님은 성령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나 잘랐다고 증거하는 성령님은 없어요. 왜 성령님은 자기를 증거하지 않는가 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건지는데 성령님은 자신의 육체와 피를 흘린 적이 없어요.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온 것은 성자 예수님이지 성령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을 자기 백성에게 증거하는 일을 하지만 새삼스럽게 성령님께서 피를 흘리고 이러지는 않아요.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잘 들으세요. 문선명이라든지 마호메트라든지 예수님 이외의 또 다른 메시아가 올 필요가 있다, 없다?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으면 그 뒤에 그분 말고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메시아가 더 이상 없이 그것으로 종결되었다는 겁니다. 완전히 종결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았는데 교인들은 성령님이 오심을 생각 안하고 어떤 인간이 중간에 개입해서 예수님과 자기 사이에 다리를 좀 놓아 달라는 거지요. 당신 말 들을 테니까, 당신 말 들어서 내가 예수님께 건너갈 수 있도록 좀 개입해 달라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나온 것이 문선명이지요. 그리고 천주교 신부들이고 오늘날 목사들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초석이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동대구역 근처에 할렐루야 기도원 비슷한 게 있어요. 거기에 ‘능력 있는 생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만 마시면 능력이 샘솟는 거예요. 그런데 그 비싼 건물을 사들이고 하는 것이 자기 돈으로 했겠어요? 많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럼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왜 그런 막대한 헌금을 했겠어요? 그 사람들은 성령 세례를 받아 본 적은 없고, 말 들어보니까 천국은 가야겠고 그래서 능력 있는 주의 종이 시키는 대로 해서 억지로라도 가도록 하는 방법은 돈이 아깝지 않아요. 돈 몇 백, 몇 천 만원이 아깝지 않아요.
순복음교회 같은 경우를 보면 방언하는 방법을 목사로부터 배우려고 합니다. 방언만 하면 성령세례 받은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복음을 방언이라고 해요.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리고 “방언을 말하며” 이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 방언은 예수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가 계시고 방언인데, 사람들은 이상한 말을 방언이라고 생각해요. 이상한 말은 다른 종교에도 다 있습니다.
예수님과 인간 사이에 성령님이 와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1서 2장 27절에 보면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여기에서 기름 부음을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지요.
‘너희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여기에 목사들이 환장합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그러면 자기는 존재 가치가 없잖아요.
처음 강의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교회 내에 영적인 서열화가 성립이 되어 있는데, 제일 높은 곳에 목사가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권위가 있어야 교회 질서가 생긴다고 하면서 강압적으로 나오니까 사람들은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는 줄도 모르고 목사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야 편하니까.
이렇게 되면 목사, 집사가 계급이 됩니다. 하나의 감투가 된다고. 집사란 말의 뜻은 사찰이란 말입니다. 섬기는 자, 봉사하는 사람. 어떤 사람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 이미 한 번 겪어봤기 때문에 뭐가 복음인지, 복음 아닌지 분별이 안 되는 사람에게 이것을 구분해 주는 사람. 이것이 집사, 교사들입니다.
‘얼마나 완벽하냐?’가 아니라 ‘부족해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
진짜 교회에서 초신자들은 ‘얼레리 꼴레리. 저 인간 술 먹었다.’고 할 때 집사나 장로, 목사님들은 ‘술 먹어도 구원 받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돼요. 구원과는 상관없지만 건강에 안 좋으니까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타이르고 권하면 됩니다.
이렇게 권한다고 해서 높은 사람이 아닙니다.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경험을 가졌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은 많이 안다는 것입니다.
초신자 위에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초신자 위에 목사 있고, 예수님이 있는 게 아닙니다.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교회)의 머리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우리고 줄기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된지 모르겠네요.
아, 성령 이야기했지요.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는 사람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러면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뭐냐? 목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 일 할 때 자기는 공부해서 가르칠 때 그것을 참고로 듣는 거예요. ‘아, 성경 해석 내가 한 것보다 저 생각이 주님 복음을 증거하는데 합당하다. 나도 다른 이들에게 복음 전할 때 목사님처럼 저렇게 하면 좋겠다.’ 그냥 참고로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사가 필요 없는 게 아니지요. 일반 교인들이 늘 공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직장이 바쁘니까. 그런데 남 일할 때 목사는 공부를 해서 신구약을 연결하고 성경 구석구석에서 십자가를 제시하면 교인들은 같이 성경을 보면서 ‘아, 성경을 이렇게 푸는 것이 더 십자가 복음을 뚜렷하게 하네. 내 생각보다는 이게 더 맞겠네.’ 이렇게 성령께서는 깨닫게 하시고--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목사가 설교를 잘 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역사하신 거예요.
이번에 나올 [로마서 강해]에 그런 내용이 있는데, 제가 이런 말 했어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복음을 알고 난 뒤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 ‘충성 안 해도 구원 받는데 뭣 하러 충성해.’ 이런 논리가 성립 돼요. 그러면 논리적으로 하면 ‘죽도록 놀아라. 그래도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이렇게 되지요.
성령 받지 않은 목사들은 죽도록 충성합니다. 왜?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런데 복음을 아는 사람은 반대로 ‘죽도록 충성 안 해도 구원 받는다’는 겁니다. 둘 다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을 놓치고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답은 하나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되 살기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방법은 없는가?’ 이 말입니다. 제 말은.
죽도록 봉사하기 위해서 하는 방법은 없겠는가? 사람이 죽도록 놀아도 구원 받는다는 것은 뭔가? 결국 ‘예수님을 위한 나’여야 하는데, ‘내 구원을 위한 예수님’으로 머리를 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지요. 그러면 나는 죽도록 놀겠습니다.” 흔히 목사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어요. 내가 공부해도 알아주지도 않고, 나의 가치를 무시하니까 좋다 나도 입 다문다.
이게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겁니까. 봉사하라고 주께서 공부시키고 했는데 봉사는 안 하고 자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머슴은 머슴답게, 우편 배달부는 배달부답게 땀 흘리며 배달하세요.
복음에 빚진 자라는 말은 고객이 누구냐? 하나님이 고객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켰어요. ‘어, 누구 집에 복음 전해!’ 그러면 택배 사원이 손님 말 듣고 받는 사람이 거부하든 말든 간에 충성을 다해 전하고 듣던 안 듣던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야지요.
에스겔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약 그것을 전했는데 안 믿으면 너에게 책임을 안 묻지만 남들이 욕한다고 해서 그것은 안 전했으면 그 책임을 네게 묻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아는 사람일수록, 광주 화평교회 교인들을 보면 너무 무모해요.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팍팍 띄워준다.
이런 음식이나 과일 이런 것을 십일조 계산 안 하고 다 하잖아요. 섬김이잖아요. 멀리서 모이고 이것이 다 섬김 아닙니까. 우리교회 교인들도 보면 멀리서 오는 사람은 포항, 영천 등지에서 모이는데 이런 분들은 평균 1시간 반 걸립니다. 우리 대식씨도 1시간 반 걸려서 오고. 교회 근처에 사는 사람은 3가정 밖에 안 돼요.
이렇게 주말에 차 밀리고 하지만 멀리서 달려오고 하는데, 이것이 다 섬김입니다. 이들이 불평합니까? 좀 가까웠으면. 걸어서 5분 만에 갔으면 좋겠다. 가까이 가 보세요. 그 다음부터는 교회 근성으로 오지요. 멀리서 오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기름 값 생각하고 차비 계산하고 해서 헌금 하면서 ‘하나님 알지요. 기름 값은 뺍니다.’ 이렇게 통박을 굴리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자기 위한 구원이 됩니다. 이것은 섬김의 자세, 복음에 빚진 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소리 했다고 해서 멀리서 오지는 마시고, 너무 무리하게 하지는 마시고. 성령께서는 절대로 성령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께 밀어붙입니다. ‘성령 받았다.’고 까불지 말고, ‘예수 믿는다.’ 이렇게 해야 돼요.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고 믿는 그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마치겠습니다.
(2007. 4. 16. 10:40 녹취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