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자랑(원제:두가지 운명-한윤범목사 이번주일설교)
아들자랑(원제:두가지 운명-한윤범목사 이번주일설교)
이름 : 송재원(IP:218.152.99.72)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5,36)
아무리 자식이 잘나고 훌륭하더라도 자식 자랑은 꼴사나워 보여 팔불출이라고 놀립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마구마구 자랑해대는 것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러면 우린 그걸 보고 하나님을 팔불출이라고 놀릴 수 있겠습니까? 또는 ‘뭐, 이런 하나님이 다 있어. 자기 아들 자랑만 하고 말이야. 기분 나빠 못 보겠네.’ 하면서 성경을 덮어버리겠습니까?
세례 요한 당시 예수님이 유명해지자 요한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좇고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6)와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몇 구절 지나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32)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명해야 됩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깁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몰려들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 행함을 목격한다고 그를 믿는 표가 되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의 증거를 받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주님의 세례를 받고자 그에게로 몰려가는 것과의 차이를 우리로서는 분리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 몫이 아니고 주의 몫이란 말이죠. 진짜 신자라면 바로 이 점을 인정합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3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10)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역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자는 자신의 진리를 주장하거나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다만 주의 진리를 인정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인정함이 가능하려면 내게서 나오는 믿음으로는 안 됩니다. 외부에서 주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것을 요한복음에 나오는 대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에게만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알게 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알게 하여야 안다는 것은 그 주체가 인간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와 같은 분명한 사실에 대항하여 자신은 알고 있으며 또한 행할 수 있다고 나선다면 그 열심이 자기를 삼켜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아들을 내세우느냐 하면, 그에게 모든 걸 맡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보이지 않은 게 없습니다. 이제 모든 일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아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원칙이 성경 전체를 지배합니다. 이제는 세상 모든 것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한 몸에 지니신 예수님에 의해 인도되어집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에게 기대하지만 아무리 그를 쫓아다녀도 믿지 않으면 그 기대는 자기 욕심 채우기일 뿐이죠.
인간의 속내를 까발리는 데가 십자가입니다. 자기 믿음으로 예수를 좇으면 주께서 십자가를 들이댈 때 주님 곁에 남아있는 자가 없습니다. 다 도망쳐버립니다. 땅에 속해 땅의 일에 묻혀 사는 우리는 모든 권세가 주께 있음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예수가 모든 것을 가졌고 힘이 만빵이라면 십자가와 같은 그런 허무개그는 웃기지도 않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지요. 따라서 십자가는 통과용으로 제격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것으로 그만 그 역할을 끝내버렸으면 하지요.
예수를 믿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땅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분을 만난 사건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나로선 어쩔 수 없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주께서 열어젖혀 보여주신 것이란 말이죠.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꼭 그래야 했지만 인간은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그분이 오시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살과 피만 받으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죽기 싫어합니다. 혹 죽더라도 좋은 데 가고 싶어서 늘 궁금해 합니다. 자기가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부족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면서 말이죠. 부자 청년도 그랬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19:16) 참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사려 깊은 질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아섬으로써 자기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고뇌하는 영혼이 마귀에 붙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은커녕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의 운명뿐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게임이라면 50%의 확률이라도 있겠지만, 그 선택권은 우리에겐 없고, 100% 우리의 행위 여부와 관계없이 주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성경의 진리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에게 그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십자가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6:53) 이로써 하나님의 아들 자랑은 화려한 결실을 맺습니다. 면죄부로 삼아 지나쳐버리고 싶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 손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송재원(IP:218.♡.99.72)
07-04-15 21:37
마귀의 작업과 예수님이 벌리시는 작업 사이에 끼어있는 것이 나의 운명인가보다..
이미아(IP:211.♡.174.47)
07-04-16 09:56
이 세상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준비되어져 있습니다. 저도 앞으로의 미래, 노후에 대한 염려가 가끔씩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 앞에 설 때면 사람을 의지하게 되고 지금의 처지를 한풀이 하듯이 내뱉고 맙니다.
그러나 다시금 성령께서 두 언약을 들이미시므로 내가 속한 언약을 분명하게 바라보게 하셔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은 돈으로 살아갈지 몰라도 돈이 없어도 살수 있는 능력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그 사랑임을 알게 하십니다.
십자가 앞에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자신이 남든지 십자가의 예수님이 남든지 언제나 이 싸움을 하며 사는것이 우리의 운명일 뿐입니다.
23살이라는 젊음과 가수라는 직업과 그 앳된(?) 얼굴이 모든 것을 불태우시는 십자가의 능력에 불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주께서 하신다는 사실과 언제나 관계를 맺으며 어떠한 고백들이 나오더라도 주님이 하셨음을 자랑하는 청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송재원(IP:218.♡.99.77)
07-04-16 12:48
"자신이 남든지 십자가의 예수님이 남든지 언제나 이 싸움을 하며 사는것이 우리의 운명일 뿐입니다."
알고보니 아직까지 내가 아는 십자가는 나를 살리기위한 몸부림일뿐이였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을 불태우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제 삶에도 찾아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