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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07. 3. 23) 24-2 녹취록자유게시판-

광주 강의(07. 3. 23) 24-2 녹취록

이름 : 서경수(IP:122.36.190.11)

광주 강의(07. 3. 23) 24-2

둘째시간입니다.

요한1서 5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 계명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계명이라고 할 때 우리의 선입관은 뭐냐? 우리가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반드시 그것을 양보 없이 지킨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

쉽게 얘기하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숙제를 낼 때 ‘이것은 숙제다. 꼭 우리가 해야 한다.’ 이렇게만 생각합니다. 이것을 생각해야 돼요. 숙제를 낸 선생님은 자기가 낸 숙제를 잊어본 적이 없다.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선생님이 낸 숙제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빈틈없이 반드시 숙제 검사 하신다.’ 이것을 먼저 염두에 둬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면 복 주고 안 하면 그냥 대충 넘어가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된단 말이지요.

사람들은 계명이 무겁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어머니 됨이 무겁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언제 무거우냐 하면 어머니를 어머니 대우하려고 할 때 무겁지요. 시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며느리가 참 무겁습니다. 직장에 가서도 마음에 짐이에요.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해야 며느리답다는 평을 들을지,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그래서 시어머니 아프다는 소리 듣고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요. 잘 해주면 당연한 것이고 못하면 욕을 먹기에. 그러니까 마음이 무겁잖아요.

그런데 어머니의 어머니 됨은 무거운 것이 아니에요. 그냥 어머니로 있을 뿐이에요. 어머니가 아버지 되지는 않잖아요? 내가 한 말이지만 내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다.

여러분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인 것이 무겁든가요? 전혀 안 무겁지요. 싫은데 TV에 나오면 끄면 되잖아요. 안 무겁지요? 그런데 대통령 참모들은 무겁지요. 왜? 자기가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 국민들의 비난이 오지 않도록 하려니까 그 계명이 무척 무겁지요. “어디를 가도 그런 말씀은 좀 하지 마세요. 손학규가 탈당을 하든 말든 그에 대해 간섭하지 마세요. 그런 말 하면 국민들이 욕합니다.” 이렇게 대통령을 지키려고 하니까 무겁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참모들에게는 무겁지요? 그런데 우리는 안 무거워요.

하나님이 계명을 주실 때는 하나님 본인이 지키겠다고 준 계명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무거워하는가 하면 자기가 지킨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거예요. 그래서 ‘계명’소리만 나오면 듣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교인들은 목사의 입에서 ‘계명’소리만 나오면, ‘그래 해 줄게. 얼마면 되겠어? 십일조 해 줄게. 더러워서 정말.’ 이렇게 돼요. 안 하면 또 저주받는다는 소리 나오니까.

하나님의 계명은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지옥 갈 사람과 천국 갈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해를 해서 ‘계명을 다 안 지키면 지옥 가고, 어느 정도 지키면(나쁜 짓보다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면) 천국에 안 가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젊어서 착한 일 많이 한 사람은 늙어서 나쁜 짓 좀 해도 괜찮고, 젊어서 나쁜 짓 많이 했으면 늙어서 바빠요. 왜? 빨리 보충을 해야 하니까. 학생들 시험 치는데 과학과 사회에서 점수 낮게 나오면 수학과 영어 이런 과목에서 보충을 해야 평균 점수가 올라가잖아요?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들이 무겁게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자기 것을 가지고 구원 받고자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명에 대해서는 자기 것이 뭐가 되느냐 하면, 자기의 의로움 또는 자기의 거룩이 되기에, 이것이 자기 나쁜 짓 보다 조금이라도 많으면 그 때는 합격 수준에 올라가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 선악과를 따 먹고 나온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계명이 뭐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무겁다’고 느끼는 자체가 계명에 대해서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겁니다. 계명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계명을 다 이루신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에 붙어있는 가지만 돼도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어요. 독자적으로 열매 맺겠다고 나서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거예요. 붙어 있기만 하면 연결된 파이프에 의해서 주께서 내 속에서 의의 열매, 사랑의 열매가 듬뿍 맺히게 하십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놀라운 고백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다니.’ 하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대신 죽으신 그 피의 열매가 듬뿍 맺힙니다.

이렇게 열매가 맺히는데, 내가 따로 독립해서 내 힘으로 계명을 지켜 천당 가겠다고 하니까 계명 하나 하나가 너무 힘들어서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1년차 교인은 성경 말씀을 1% 지키고, 2년차 쯤 되면 양심이 있지 5% 정도 지키고, 적어도 10년차 쯤 되는 집사나 장로님쯤 되면 50%는 지켜야 되고, 목사님쯤 되면 인간이라 100%는 못 지키지만 적어도 70%는 지켜야 목사답지. 그렇게 생각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목사에게 이용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용 당하는가 하면, 목사가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들은 왜 하루에 성경 몇 장 못 읽습니까? 왜 기도 몇 시간 못합니까?” 라고 나무랄 때, 교인 중에는 교수도 있고 지식층이 있지만 그 앞에 끽소리를 못하는 거예요. 왜? 자기 일이 바빠 죽을 지경인데 언제 성경 읽고 기도할 시간이 있습니까?

그런데 목사들은 이런 약점을 잡아서 기죽이기에 들어가지요. 목사는 매일 하는 일이 그것이니까 되는데, 교인들은 바빠서 못합니다. 설사 시간을 내서 성경을 본다고 합시다. 잠시 펴서 보면 눈이 감기고 그래도 억지로 버티면 무슨 말씀인지도 모르고 그냥 읽게 됩니다. 그냥 차분하게 성경을 읽으면 내용도 눈에 들어오고 하겠지만, 이것이 숙제다 되면, 피곤에 지친 상태에서 몽롱하게 억지로 읽으면 아무것도 안 들어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교회 계급화, 서열화입니다. 이것이 무거운 것은 영적 서열화라는 겁니다. 영적으로 수준 높은 사람과 수준 낮은 사람을 나누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이것은 천주교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손이 발더러 쓸데없다고 누가 함부로 이야기합니까? 귀가 눈보다 더 낫다고, 손이 발보다 더 소용 있다고 누가 교회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느냔 말이지요. 키 적다고 지옥 갑니까? 사업한다고 지옥 갑니까? 천국가고 지옥가고 하는 것은 계명을 몇 % 더 지키고, 덜 지켰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 이루심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1서 5장 4절에 나옵니다. 계명이 왜 안 무거운가 하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란 것은 ‘나를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내 주특기를 안 믿는 다는 말이에요. 내 행한 것을 믿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나의 행한 것을 믿으면 행함(믿음 아닌)이 되지요. 믿는다는 말은 고목나무가 넘어져 퍽 쓰러지듯이 믿을만한 사람한테 기대는 거예요.

믿음에 대해서 시편에 보면 너무너무 잘 되어 있는데, 믿는 자의 모습에 대해서 시편에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 뭐냐 하면, 젖을 먹고 배부른 아이가 너무 기분이 흐뭇해서 엄마 품에서 잠자고 있는 광경. 캥거루 주머니 안에 있는 새끼 캥거루. 새끼 캥거루는 우리고 어미 캥거루는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고.

눈을 좀 떠세요. 눈을 떠서 좀 보세요. 우리가 지금 그런 형편에 있다는 것을.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 가나 세상에 가나 요구하는 것이 뭡니까? ‘당신 것 내 놓아라. 기도 몇 시간 했어? 성경 몇 장 읽었는데?’ 이런 식입니다.

우리교회 처음 나온 사람은 오후 예배 기도시간에 겁도 없이 기도 막 합니다. 목사가 시키니까. 그런데 1, 2년 나오면 요령에 생겨서 기도를 안 하려고 해요. 왜 그러냐 하면, 오후 예배에 기도를 하게 되면, ‘복음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이 기도 수준이 그 정도냐?’ 하고 씹어요. 기도하라고 세워놓고 앞, 뒤에서 막 씹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기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최종훈(예배 부장) 집사님은 강제로 다 기도순서에 넣어요. 그래서 저는 또 위로한답시고 ‘한 번만 하시면 1년 반 뒤에 다시 돌아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하는데 --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나보다 기도 잘 하시는 분이 계시고, 나보다 성경 다 이루신 분이 계시고, 그러니까 나는 그분만 믿지. 내가 그분만 붙드는 이유가 뭔데? 내 힘으로 안 되니까 붙들잖아.’ 라는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이 어려운데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주세요.

‘세상을 이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세상은 누구한테 지게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한테 지게 되어 있어요.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은 멸망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쟁기를 잡고 뒤돌아본다는 말은 어디를 본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 이 세상을 돌아보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패배당하도록 되어 있는 그 팀에 왜 합류하느냐는 말이거든요.

그러면 세상이 어떻게 하나님께 당하는지 그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좀 지루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같이 한 번 견뎌봅시다.

신명기 28장 봅시다. 흔히 목사들이 심방 가서 많이 설교하는 대목이지요?

15절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런데 신명기 32장 끝에 보면 결국 그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아요. 그 대목이 상당히 어려운 대목인데, 왜 어려운가 하면 모세가 자기 백성에게 축복을 한 것이 아니고 저주를 한 것이 과연 진심이냐 하는 그 문제가 신학적으로 어려운 문제에요.

어쨌든 간에, 너희들은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결국 여호와를 버릴 것이라고 예언조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말씀을 듣지도 않아요. 온전히 유월절을 지킨 적도 없었고, 십일조를 온전히 한 적도 없어요. 1/10을 냈다고 십일조가 아니거든요. 의와 인과 신을 합해야 되는데, 그렇게 낸 적이 없어요. 어떤 인간도 그렇게 못합니다. 돈만 낸다고 십일조가 아니에요. 의와 인과 신을 담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요.

돈만 내면 십일조가 된다면 통장에서 자동 이체시키면 되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니까요. 의와 인과 신을 담지 아니하면 십일조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돈 거두려고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그런 수법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십일조를 못합니다. 물론 안식일도 못 지킵니다.

지금 세상은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자 그러면 어느 정도 이기지 못하는가? 신명기 28장 38절을 봅시다.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심을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포장마차로 장사를 시작했더니만 깡패들이 와서 다 부쉈다는 말 아닙니까.

그 다음에 53절 봅시다. “네가 대적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히 쳐서 곤란케 함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 얼마나 비참합니까? 적이 쳐들어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57절을 보면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으리니” 이것은 궁핍, 가난, 배고픔 이런 것이지요.

60절을 보세요. “애굽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들어붓게 하실 것이며” 그러니까 이것은 머리, 어깨, 무릎, 발 모든 곳이 안 아픈 데가 없어요. general hospital,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안 아픈 구석이 없어요.

61절에 “또 이 율법 책에 기록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너의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

67절을 봅시다. 얼마나 저주가 힘들었든지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이 모든 저주, 고통을 한꺼번에 다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신약 성경에 오면 문둥이, 소경, 절뚝발이, 거지 이런 사람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지요. 이 사람들이 저주받는 것은 소위 잘 먹고, 떼깔 좋고, 잘 살고 이것이 인간의 모델로 부적합해요. 문둥병자, 절뚝발이, 소경 이런 저주 받은 자가 진짜 인간상에 가장 가까워요. 왜? 어떤 인간도 말씀 못 지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저주받은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가없이 그냥 용서하잖아요. 중풍병자에 올 때 이야기했지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병든 자에게 라야 의사가 필요하다. 자기는 의사로 왔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가 너희를 정죄하더냐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한다”고 했지요.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무상으로 이 저주가 없게 함으로 세상 자체를 이겨버려요. 세상의 모든 그 사람에 대한 평가나 비난, 사람들의 수군거림,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안목 이런 것에 대해서 더 이상 구애받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요.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지요.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짊어지셨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병 고치는 도사가 아니라, 어느 의사가 환자 병을 자신이 짊어집니까? “내 간이 병들고 당신 간이 낳아라!” 이런 의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 병을 가져와버려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은 뭘 의미합니까? 사실은 누가 십자가 져야 돼요? 우리가 저주 받아야 되지요. 그러니까 십자가 바라보면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십자가 이후에 오는 모든 저주가 풀렸다는 것도 한꺼번에 받지요. 우리의 모든 저주가. 그렇다면 나사로가 죽을 때 거지로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겠지요.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아도 잠시 후면 아브라함 품에 안길 것이기에 별 개의치 않습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아파트를 몇 평 가져야 이깁니까? 돈을 얼마나 가져야 이기는 거예요? 수천억을 가지고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현대그룹 정몽헌. 집에 밥 먹을 것이 없어서 죽었습니까? 처자식이 없어서 죽었어요? 남의 시선 때문에 그랬어요. 남의 안목, 수군거림.

남들의 시선에 못 이긴다는 말은 결국 그 사람은 남 따라 가는 거예요. ‘내 것, 내 것’ 하지만 실상을 깨보면 내 것은 하나도 없어요. 남들이 쓰레기라고 가져다 놓은 것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자기 인생은 없고 남 인생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우리 아가씨들! 쌍꺼풀 수술 같은 것 하지 마세요.” 내가 분명히 장담하는데 앞으로 쌍꺼풀 없는 것을 선호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 때가 되면 쌍꺼풀 없앤다고 난릴 거예요. 돈 들여서 쌍꺼풀 푼다고 야단 칠 거예요. S라인 좋아하지 마세요. 나중에는 드럼통 몸매가 유행할 거예요. 그 때가 되면 몸 불린다고 난리를 칠 거예요. 왜? 유행이란 것은 늘 변하는 것이니까.

이것이 전부, 남들처럼 된다는 것은 결국 남들에게 농락당하는 거잖아요. 자기 행복은 없고, 나만의 행복이란 없고 남의 행복을 모방하고 흉내 내기 바쁘다는 거지요.

세상은 사람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어요.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그래요. ‘저 사람은 헌금 얼마 냈다. 당신 이 정도 내서 되겠나?’ 이런 식으로.

요즘 우리 장로님이 제2 동부교회 설교하러 가셔서 집사님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시는데, 처음 기도할 때는 좀 길게 하다가 두 번 돌아오고 하니까 이제 밑천이 있어야지? 그래서 요즘은 10초 안에 끝나고 그래요. 매뉴얼이 없으니까. 다른 교회 가면 매뉴얼이 있잖아요. 당회장부터 주일학교 학생들까지 줄줄이 기도하면 그것만 해도 10분 넘어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기도시간이 무진장 짧아요.

기도를 짧게 한다고 남들이 수군거리든 말든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고, 내 속에 계신 분이 세상을 이겼다는 그런 믿음이 있어야 돼요.

요한복음 16장을 봅시다.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뺨 맞고 저주스럽게 죽어 이겼다는 거예요. 부활했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도 벌써 이겨 왔었어요.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서?” 하고 놀릴 때에도 “내 나라는 세상나라가 아니라 따로 있다.”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너를 비난한다 할지라도 내 양은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너를 미워한다 할지라도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조명, 강의 처음에 했지요. 다시 한 번 그려볼까요.

세상은 지금 깜깜하잖아요. 무대에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가수에게 빛이 비치지요. 조명. 이 조명이 비치는 공간,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동작을 해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이미 이겼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너를 대신해서 죽었다는데, 세상 사람들은 대신 죽은 사람이 없잖아요. 삼촌입니까, 아버지입니까, 남편이 대신 죽었습니까?

이 세상에 대신 죽은 분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아버지 믿고, 엄마 믿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나도 벌써 우리 딸 시집가라고 발로 차는데, 귀찮아 죽겠어요. 나이가 22살 인데, 나는 그 나이에 독립했다니까. 나이가 20세 되면 스스로 자기가 갈 길을 가야지. 지금 무슨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왔지?

이 말은 뭐냐 하면, 사람을 믿으면 안 돼요. 의지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 대신 피를 흘리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사람들은 용돈 몇 푼주고 그것으로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으스대지만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고 용돈 몇 푼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주셨습니다. 피를 받쳤습니다. 이게 실제 상황입니다.

이것은 정교하게 종교 교리로 꾸민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십자가의 피가 있는 사람은 주께서 떠나지 않고 자신의 양으로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셨어요. 나는 목자고 너는 양이니까.

의지하는 이것이 계명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계명이에요. 안 무겁지요?

술 한 잔 먹고 힘이 없어서 ‘아이고 못 일어나겠다.’ 하고 엎어져 품에 안겼는데 이게 뭐 힘듭니까? ‘내가 하면 하리라.’ 이것이 힘들지, 자립심 없이 엎어지고 넘어지는데 그것이 뭐가 힘듭니까? 그냥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엎어지면 돼지. ‘주여, 미안합니다.’ 하고 엎어지면 되는 거예요. ‘나는 주님만 의지합니다. 행한 것도 없이 의롭다하시는 그 은혜를 저는 믿습니다.’

문둥병자나 거지 나사로가 십일조를 얼마 했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전도를 몇 명 했겠어요? 그래서 지옥 갔습니까? “오늘 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것을 가지고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마리아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 임신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거지 나사로가 아닙니다. 부자가 되었든 가난한 자가 되었든 상관없이, 부자가 돈 다 교회 바친다고 구원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집 세 채 갖고 통장 10개 가져도 괜찮아요. 예수 피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집을 세 채 팔아서 교회 바쳐야 구원 받는다면 그 다음에 집 갖는 것이 걱정돼요. 또 한 채를 바쳐야 하는가 싶어서.

사람이 IQ가 얼마나 되어야 구원 받습니까? 이런 것 없어요. 왜냐? 신명기 28장에 보면, 모든 사람은 말씀대로 안 하면 저주 받아야 해요. 이것이 계명입니다. 그러나 이 계명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숙제입니다. 우리가 지키든 안 지키든 간에 이 계명대로 밀어붙이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계명대로 한다면 우리는 저주 받아야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모든 계명을 다 이루신 분이, 모든 사람이 다 저주 받아야 하는데 그 중 몇 몇 사람, 자기 택한 백성에게는 자기가 다 이루신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기 피로써 용서해 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무 한 것도 없이 구원 받습니다. 이것을 ‘대신’ 죽음이라고 합니다.

왜 내가 해야 됩니까? 꼭 내가 나서야 합니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마귀가 놀리는 거예요. ‘너 십일조 할 때 갑근세 빼고 했어, 안 빼고 했어?’ 이렇게 나온다고. 십일조 계산이 월급에서는 쉬워요. 그런데 집 팔았을 때는 복잡합니다. 보통 집값이 얼마입니까? 2억, 3억 되잖아요. 이것을 십일조 내려면 2천, 3천 만원 내야 하는데. 세금을 떼고 십일조를 내야 하나, 안 떼고 십일조를 내야 하나.

이것은 대신 죽으심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자기 의를 축적해서 그것으로 상급 더 따 내려고, 남보다 더 많은 축복, 행운을 얻겠다고, 그래서 남한테 그 이긴 것으로 세상을 이겨보겠다는 그러한 오기, 자존심, 내 것이라는 그 의식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스스로를 두려움에 빠지게 해요. 초조와 불안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 잘 다니다가 나중에 이혼해서 교회 안 나오고 그러잖아요. 뭘 잊었습니까? 대신 죽으심.

이런 것 상상이 안 되지만 이런 교회 있다고 생각하면 신나요. ‘한 교회 다니던 남녀가 서로 좋아해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5년 정도 살다가 이혼을 했다. 그리고도 웃으면서 당당하게 교회 나온다.’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어떤 딸이 엄마, 아빠와 싸웠다. 가출 선언 했는데 그 딸이 대신 죽으심을 잊지 않고 그 교회 계속 나온다. 얼마나 아름다우냐 말이지요. ‘아버지 오랜만입니다.’ 인사하고 헤어지고 다음 주일에 또 만나고.

이것이 안 된다는 말은 결국,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지고 자기가 영웅 되고자 하는 그 욕심으로 이용하려고 했지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에게 넘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계명이 무거운 거예요. 너무 무거우니까 성경 말씀을 덮어버리고 설교 시간에 억지로 잠을 자요. 처음에는 자는 것이 어려운데 습관이 되면 교회 오자마자 잠들어요. 찬양할 때면 깨고.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 세례 받으면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성경 공부였습니다. 예배가 아니라 말씀을 사모해요. 왜? ‘어떻게 해서 아무것도 아닌 더러운 내게 공짜로 예수님의 영생이 왔는가?’ 하는 것이 성경 말씀에 가득 들어있기 때문에 성경을 펼칠 때마다 향기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성경이 계명이 되어버리면 듣기 싫은 거예요. ‘이것도 지켜야 하고, 이것도 지켜야 되는구나.’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이제 그만 해라! 많이 먹었다. 나도 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은 펼칠 때마다 향기로운 주님 보혈의 피가 촉촉이 젖어들어요. 그래서 ‘대신 죽으심으로 용서 받았구나. 나는 하지도 못하고 해도 소용없는 일을 주께서 대신 하셔서 그 효과를 내가 보는구나.’ 이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겁니다. 이 사랑의 계명이 무겁습니까? 안 무겁지요? 듣기만 하고 믿기만 하는데 뭐가 무거워요.

조용한 것을 보니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하고 --

진도 나갑시다. 요한1서 4장 4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마귀의 자녀가 있어요. 이들과는 달리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반드시 주님의 대신 죽으심만을 의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장 7절을 봅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피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피 안에 우리가 평생 지를 죄까지 다 대신 졌기 때문에 우리가 50대에 지은 죄도, 60대, 70대에 지은 죄도 다 씻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했잖아요. 고린도전서에.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만 자랑해야지요. 사람끼리 경쟁 붙이는 데는 교회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것을 더욱 고수하게 만들어요. 비교와 경쟁은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두려움을 발생시킵니다.

옛날에 박찬호가 공을 잘 던졌다. 그런데 지금은 방출 위기에 있어요. 한 때 박주영이 3골 넣었다. 다음에 그렇게 못하고 1골 넣으면 ‘박주영이도 이제 한 물 갔네.’ 이렇게 돼요. 사람이 스스로 자기에게 속아 넘어가면 안 돼요.

하나님께로 난 사람은 주께서 의지하도록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의지 못해요.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누구의 숙제입니까? 우리 숙제가 아니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믿어진다는 겁니다. 이상하게. 내가 안 해도 주께서 해 주신다는 것이 믿어진다는 것이 성령 세례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시련 가운데서도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령 세례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한 번도 아버지를 의심한 적이 없어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 뜻이 내 안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나설 필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대신 죽으심’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나의 것’이 없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진작 죽어야 되는데 아직 살아 있다는 자체가 감사, 감격할 일이지요.

남편 일찍 죽은 여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거예요. ‘그렇게 싸우고 해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우리 어머니도 그런 이야기 하거든요. 살아 있을 때는 ‘이 원수야, 죽어라, 죽어라!’ 하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겁니다. 이게 며칠 가느냐? 없어 봤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있으면 또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고 해요.

세상을 이긴다는 것이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십자가 사건이 터졌어요. 그 사건이 오늘날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겁니다.

이 말이 5절에 나오는데, 이것 하고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나오잖아요.

제발 나를 믿지 마라. 나의 것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나를 믿지 말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진짜 이길만한 분인지,

질문자: 이 목사 당신 말대로 예수를 믿으면 나중에 부도수표 나는 것 아닌가?

이목사: 아니다. 예수님은 진짜 이겼다.

질문자: 증거 대봐라.

이목사: 증거가 세 가지다. 물과 피와 성령.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정말 용서받고 천국 갑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맞습니다. 증거 대보세요. 세 가지다. 그 증거는요, 우리한테 증거를 찾지 않아요. 증거는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만이 증거가 돼요. 유명한 부흥사, 큰 교회 목사, 기도 많이 하는 권사 이런 증거는 받지 마세요.

로마서 10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직접 봐야 믿겠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지옥까지 갔다고 하니까 지옥까지 내려가서 예수님 활동하는 것 보고 믿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데,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 따라서 위에 올라갈 필요도 없고, 예수님 따라 지옥에 내려갈 필요도 없고, 지금 내가 전하는 십자가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합니다.

이 증거가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라.

6절에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이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았잖아요.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뜻은 물과 피와 성령은 순서대로입니다. 물로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죄인들만 모이는 곳이 있었어요. 요단강. 세례요한 때 죄인들만 가지요? 세례요한이 이야기하니까 자신이 죄가 있잖아요. 그러니 어딜 갑니까? 요단강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아야지요. 왜? 장차 누군가는 모르지만 메시아가 오기 때문에.

세례요한은 지금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고, 왕이 오시기 전에 앞서서 ‘물렀거라!’ 하는 왕의 사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왕을 모실 수 없어요. 회개하고 있어야 왕을 모실 수 있어요. 회개도 않고 왕이 오시면 왕한테 맞습니다. 미리 알아서 기어야 합니다. ‘주님 아니면 저는 용서 못 받을 인간입니다.’ 하고 미리 자기 죄를 알고 회개해야 돼요. 이것을 세례요한이 했다고. 높아진 골자기마다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세례요한이 했습니다.

그 장소에, 그곳은 죄인들만 가는 장소인데 예수님이 오셨어요.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말렸지요. ‘아이쿠 예수님! 제가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왜 저한테 세례 받으려고 하십니까?’ 이게 뭐냐? 내가 죄 없는 채로 와버리면 나만(예수님만) 혼자 구원 받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합류해버리면 장차 합류된 상태에서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되면 그 피는 누구의 피입니까? 예수님에게 합류했던 사람에게만 그 효력이 있는 속죄의 피예요.

침례교는 이것을 몰라요. 침례교에서는 주장하기를, ‘십자가 지시는 것은 예수님이 하고 믿는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로 믿는다.’ 이게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 장차 올 성령 세례는 앞에 있는 피, 물세례 다 포함해서 성령 세례거든요. 이것이 마태복음에 보면 나와요.

성령 세례가 왔다는 말은, 누가 예수님이 합류시킨 대상자냐 찾아와서 그 사람에게만 성령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누가 예수님의 피의 효력을 받을 사람이냐를 알리기 위해서 성령 세례가 와요.

MBC 개그에 보면 “누가 게냐?” 하는 것이 나와요. “누가 피의 효력을 받을 사람이냐?” 하는 것은 ‘주여, 주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 세례 받은 사람 바로 너가 처음부터 예수님의 물세례 받을 때 용서받기 위해서 너의 죄 속에 합류된, 예수님께서 네 죄 속에 들어왔던 그 대상자가 너다.

세례요한이 “아이쿠 예수님, 제가 세례 받아야 하는데 왜 제게 오십니다.” 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해야 의를 이룬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죄인들 속에 합류함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예수님은 죄인 되어버렸어요. 죄도 안 지었는데 죄인 됩니다.

그 때부터 예수님은 고난과 억압을 당하고 심어지 자신이 짊어진 그 죄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그런데 버릴 것까지 아버지를 믿었어요. 믿으니까 주께서 부활하셨는데, 물과 그 다음에 피는 그냥 짊어졌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피를 흘려야 돼요. 왜냐하면, 이것이 레위기 제사법이거든요. 화목제물이 되어서 피를 흘려야 구약성경 모든 것을 다 이루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지요.

다 이루면 뭣합니까? 실제로 효과를 줘야지요.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줘서 십자가 복음을 믿게 하지요. 그래서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고 했지요.

십자가 성령을 통해서 너희에게 내가 줄 것은 바로, 죄에서 깨끗하게 하심(요한1서 1: 7), 그 피와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해서 성령이 오실 때 그 피는 새 언약의 피. 예수님 죽으실 때까지 그 살과 피를 너희들에게 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세상을 이긴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어떻게 피를 흘릴까? 내가 욕조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까요? 내가 스스로 몸을 벌벌 떨면서 성령 받을까요? 주께서 우리가 안 해도 다 해 놓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이게 2,000년 전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가 따로 있어요. 그 사람에게만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는 공부를 한 겁니다. 두란노서원 같은데.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펼칠 때마다 ‘이래서 용서 받았구나.’ 하고 깨닫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뭘 했겠습니까? 우리는 늘 나만 알고 남한테 안 지려는 오기와 자존심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고, 남에게 지는 것을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그런 이기심밖에 없는 저희들입니다. 참 저주를 받아도 마땅한 저희들이지만 주께서 용서했다는 뜻으로 피를 믿게 해 주시고, 그 피로 말미암아 다 죄가 없어진 것까지 믿게 해 주시니, 이 믿음의 선물은 우리 것이 아니고 성령의 사랑이 이미 왔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되게 해 주신 줄 믿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저희들이 보배로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7. 4. 13. 16:58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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