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사역 2003년 8월 10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7-15
Re..마 10: 7-15 (전도사역)
이름 : 이근호(IP:)
전도 사역
2003년 8월 10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7-15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0: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전도자의 행색은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몰골입니다. 만약 이런 행색을 하고 전도했다가는, 상대방이 이렇게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이 전하는 그 예수를 나도 믿다가는 당신 꼴이 될 것 같아서 겁납니다"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초라한 행색이 도리어 전도에 방해되지는 않을까요? 바로 이점을 예수님은 놓치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이 원하는 전도에는, 전도하는 방식까지 복음의 내용에 포함되도록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자비를 진정 기쁜 소식으로 받아드릴 사람은, 자신이 초라하게 되어도 마땅하다는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원하는 기쁜 소식이란,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잘난 자신이 되는데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을 제거해 가면서 이루어지는 전도가 예수님이 실시하시는 전도입니다.
아담이 알았던 복음이 무엇일까요? 아담은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 즉 생명으로 짓습니다. 현재 그는 죽어가는 입장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누구냐를 제대로 알기에 아내 이름을 생명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아내에게 복음, 즉 하나님의 약속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내가 누구냐?"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바쁜 세상 살이의 일정 때문에 자꾸만 미루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에 대한 마귀는 안 가르쳐 줍니다. '그냥 그대로 살어'라고 덮어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너는 피조물이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런 피조물을 위하여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겁니다. 내가 누구냐 하는 점에 관심이 없고 그냥 마귀가 시키는대로 '그냥 그대로 살래'하는 식이 되어버리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도 의미가 없으며,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소식도 그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노리는 바가 이런 점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즈음 교인들의 문제점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걸었는데 우리는 영생을 위해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5:14-1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바로 이렇게 된 자가 고린도후서 5:17에 나오는 '새로운 피조물'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이 새로운 피조물 안에는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식의 전도를 하게 됩니다. 사람은 우선 사람이 되어야 거기에 준해서 행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처럼 아내 이름을 '생명'이라고 지어가면서까지 복음을 사모하는 자는 능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전도자의 모습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8:33-3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바로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이 이 정도까지입니다. 만약 악한 환경이나 마귀나 이 관계를 흐트려 버리지는 않을까요? 아닙니다. 그 뒤에 보면, 환란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어떠한 악한 세력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끊을 수 없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이점은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36절,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소식도 고맙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소식도 다 고마운데 단지, 우리 자신들이 도살할 양처럼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심적 부담이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도를 이런 환경 속으로 데려가시는 겁니까? 로마서 9:25-27에 보면,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즉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자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남게 된 자만 구원하시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초라한 전도자들이 행세로 전도하게 됩니다. 즉 자신이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제거시키는 식의 전도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서 인간이 보자 더 잘난 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소식이 절대로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동방박사들만 좋아할 타입의 복음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의 그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곧 돈을 포기한다고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수영 경기를 관람했다고해서 곧 수영 선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람회를 다녀왔다해서 화가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과 실제로 뛰는 사람은 따로입니다. 병원에 다녀왔다고해서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분명히 이방인과 이스라엘 집을 구분했습니다. 이렇게 구분하는 기준은 예수님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일반 보험회사에서는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보험에 가입시키면 그만입니다. 일단 보험금을 낼 능력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찾아가서 가입자가 되라고 설득합니다.
다단계 판매전략을 갖고 있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자기 회사 수입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도 가리지 않습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색인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설득하므로서 조금이라도 자기 회사가 성장하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그런 회사가 아닙니다. 천국에는 인간들의 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천국 건설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맹세와 언약대로 실천에 옮겨서 완성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발 다음과 같은 혼돈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 성장을 위한 이 전도는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돈을 주고 물품을 제공하면서 까지 전도대회를 성공리에 마치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들어갑니다. 심령이 가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감사하는사람입니다.
인간 세상은 예수님이 원하는 마음과 정반대되는 마음으로 물결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는 조직체나 집단 힘 키우기식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이러한 추잡고 더러운 사고방식을 없애기 위하여 전도에 나서는 겁니다.
교회가 부도나서 문닫는 일이 있더라도 구원될 수 있는 심령이 가난한 마음에 지장될 필요까지는 없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 목회한다고 하나님께서 수고했다고 천국에 넣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극히 몇 사람 앞에서 설교한다고 천국 못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크면 최고다!"라는 힘을 신봉하는 의식 이 문제입니다.
인간 세계는 이런 사고방식으로 서서히 침몰하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즉 힘을 가진 아담이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생명을 쥔 자가 필요한 것이지, 또 힘 자랑하는 자들은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찾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찾아도 찾아도 주어지지 않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긍휼도 아니요, 사랑도 아니요 자비도 아니요, 은혜도 아닙니다. 오직 '힘' 뿐입니다. 조직의 힘, 건강의 힘, 권력의 힘, 명예의 힘, 돈의 힘, 가문의 힘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잃어 버린 양을 철저히 구분하는 식의 전도입니다.
이방인들의 특징은 하나님과의 은혜의 끈이 연결되어 있지 않는 자들이라는데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이스라엘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셔서 맺어놓으신 은혜와 긍휼과 용서와 자비의 관계의 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를 통해서 이 참 이스라엘의 등장을 마무리 하시려고 하는 겁니다. 기존 교회에서 벌리는 전도와 혼동하지 마세요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정죄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 사고방식 자체로부터의 '건짐'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에게 하는 지시사항은 그 때 그 시절의 경제상황과 사회상을 염두에 둔 내용입니다. 오늘날 같은, "골프장에 갈 때는, 남들 다 두는 캐디를 너는 두지 말고 가거라"하는 식일 것입니다. 즉 남들이 최후 목적으로 삼는 힘과 그 힘에 대한 즐거움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천국의 사고방식을 알려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든지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오직 천국의 복음에 기뻐서 살아가게 되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상관없이 전도할 수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엮어 주십니다. 이 자신만만함이 곧 전도인이 갖추게 되는 자질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저희들은 이미 전도자로 세워주심을 감사합니다. 그저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도가 되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