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마을 목사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십자가 마을 목사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이름 : 이미아(IP:211.175.174.47)
최근 오용익 목사님이 대구 우리교회 오후 설교시간에 전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마리아 여자(요한복음 4장) - 미친 년 - 처럼 살고 싶다'고.
자신의 행적이 부끄러워 남들 다 잠자는 한낮에 땡볕을 무릅쓰고 물 길러 올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용서받은 그 감격 때문에,
자신을 잊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미쳐 날뛰는 행복한 여인.
내 수고, 내 부끄러움, 내 자랑 이 모두를 다 잊을만큼
십자가의 사랑은 크고 놀라운데
목사인 나는
왜 이 사랑만 고백하고 외치지 못하는지 답답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진실로 천한 것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시62:9)
천하든 귀하든 인생 별 의미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수고와 땀, 자랑과 영광 이런 것들도 한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지요.
성도에게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흘리신 대속의 피 뿐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이 고민은 위장된 고민이 아니다.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이 끝나도..."등신"처럼 살아가고 계시는 것이다. 등신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오직 예수뿐! 어느 목사가 이런 고민을 할 것인가. 이 목사님의 심정은 해산의 고통의 심정이다. 성도들은 어떤 목사가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삐지지 말고....성도들은 성도들 나름대로 알아 주기를 바라고 목사들은 목사들 나름대로 대접 받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않는가. 그러나 인간들의 교회에서는 이것이 용납될 지 몰라도 주님의 피로 산 교회에서는 이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십자가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있다면 내 영혼을 살리는 그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고구려 시대나 현대 시대나 죄는 똑같다. 성도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푹 빠져서 악마의 실체. 적의 실체를 생각지 않는다. 정말 좋은것이 좋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평생 살아갈 자들처럼 이 세상이라는 한계에 갇혀서 바늘구멍만한 숨통도 없이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죽으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이러한 성도들의 안일함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의 외로움을 알 수 가 없는 것이다. 이 고독 속에서 등신처럼 왜 그렇게 사냐는 악마의 음성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덮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때문이지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목사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십자가 복음을 알게 된 성도가 있다면 주님께서 이러한 십자가 복음만을 증거하고자 하는 목사를 사용하신 은혜 때문이다. 영혼 사기꾼들이 판을 치고 있는 이 현실에서 십자가의 사랑만을 외치지 못해서 답답함을 느끼는 목사를 만난다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십자가 마을을 누가 관심있게 보겠는가. 불신자들이 아니라 신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증거하는 피맺힌 절규를 들어 보라! 이 눈치 저 눈치나 보면서 자기들의 밥줄에만 연연하는 목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피에 미친 년인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미친 년인지------정말 이렇게 복음적인 욕이 있는 줄은 몰랐다. 사마리아여자가 처음에는 자기에게 미친 년이었지만 메시야를 만나고 난 후로는 메시야에게 미친 년이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