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원하는 자들이다
이름 : 이미아(IP:211.175.174.47)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살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사람은 이미 죽은 자이다.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살아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얼마나 설쳐대는지 모른다.
죽은 자가 자신을 살려 보겠다고 메스를 대고 수술을 하는 섬찍함이다.
이것을 주님은 저주라고 하셨다.
주님은 이 저주 때문에 대신 죽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대신"이라는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자신이 대신해서 그 무엇을 했다면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스스로가 공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면서도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에는 단 돈 몇 푼 어치도 쳐 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심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십자가의 사랑만을 원한다고 고백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입만 열면 주여 라고 외쳐대는가
우리는 얼마나 주님만이 전부라고 통곡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원하는 자들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사칭해서 구원은 기본이고 세상에서 잘됨을 바라는 것이다.
십자가에 자신의 저주의 실체는 담겨 있지 않고
십자가에서 저주 받으신 예수님의 아픔만을 아파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저주 받으신 것이 누구 때문인데....
자신은 쏙 빼놓고 십자가의 저주를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생각대로만 모든 것이 움직여지고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저주의 실체인데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신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사는 자인가를, 신된 나를 깨부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내심이 분명 못마땅하다.
어쩌면 이 꼼수를 감추어 두고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십자가가 뭔지 모르면서도 말할 수도 있다.
환상과 현실이 다른 것처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생각이다.
모든 일의 끝의 결국은 자기만 남는다.
자기를 위해서 그 사람을 꼭 만나야 하겠고 자기를 위해서 그 일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고
자기를 위해서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자기를 포기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겠는가
자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도 진리이고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도 진리이다.
이 단순한 진리 앞에 인간은 갇혀 있음에도 갇혀 있음을 볼 수 없는 것이 저주 받은 증거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 하리요
인간이 저주 받은 신이라는 것을 폭로시킬 방법이 없어서 주님은 죽으셨다.
주님의 죽으심은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이 없다는 것을 까발리시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의 용서가 거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십자가의 영을 받은 사람외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용서받은 사랑이다.
이 진리 때문에
인간이 그 무엇을 해도 소유할 수 없고 그 어떤 안간힘을 써도 쟁취할 수 없는
이 진리 때문에 인간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이근호(IP:210.♡.238.153)
07-03-23 13:52
그렇습니다. '대신'보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힘을 원하고 세력을 원하고, 자기만의 절대적인 영역만을 원하는 인간, 이런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대신 죽으심'으로 획득한 자신만의 세계만을 고수하십니다. 나머지는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