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8:18-22/하나님의 공적
하나님의 공적 2007년 1월 24일 본문 말씀: 이사야 28:18-22 (사 28:18)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음부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사 28:19) 『그것이 유행할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유행하고 주야로 유행한즉 그 전하는 도를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사 28: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 (사 28: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 공을 이루시리니 그 공이 기이할 것임이라』 (사 28:22) 『그러므로 너희는 경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우심할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서 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씀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 마저도 알아채기에 분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연히 인간들이 그 뜻을 아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먼저 우리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는 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벌거벗은 존재입니다. 처음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화려한 이력과 경력으로 자신을 칭칭 감아도 하나님은 그런 쓰레기들에 대해서 값을 쳐주지 않고 벌거벗은 존재로 보고 계십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의 공식을 세운다면 이러합니다. “하나님은 본래의 원칙을 가지고 인간을 다루신다”고 말입니다. . 아담의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든 치마도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벗김의 대상일 뿐입니다. 인간이 이런 처지에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입혀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일은 이 ‘가죽옷 입혀주기’ 내용과 연속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어떤 사태가 벌어지면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만든 대처방안을 내놓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부터 벌거벗은 존재인고로 내놓아 봤자 아무 것도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내놓아도 죄를 내놓는 것 밖에 안됩니다. 인간들의 대처방안의 한계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즉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예를 하나님이 제시하신 것입니다. 키는 큰데 침대를 짧으면 참으로 난처할 것입니다. 다리가 나오는 이불을 덮고 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만족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대처방안이 다 이런 식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취지는 어디 있습니까? 바로 인간들의 대처방안으로서는 도저히 예상치도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는 놀라움으로 자신의 공로만을 내세우시는데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마태복음 9장에서는, 한 중풍병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기 위해 대범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지붕을 뚫고 들어와서 주님 앞에 자신의 병든 몸을 내보이도록 했습니다. 이 때 중풍병자 본인이 기대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지극지극한 중풍병이 깜쪽같이 낫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뚫는 자신의 과격한 행위가 자신의 병을 낫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과격한 중풍병자의 태도와 예수님 자신이 원래 하시고자 하는 일과 대비되도록 조치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인간도 사전에 기대한 바 없는 결과를 제공하는 겁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반발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죄 사함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한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 그만한 권한이 있음을 병고침으로서 드러내셨습니다. 당연히 중풍병자의 지붕 뚫는 행위는, 중풍병자 본인에게 있어 자기 병을 낫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여기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 사람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능력을 받고 보니, 주님께서 중풍병자 자신을 예수님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데 철저하게 이용했다는 점을 알게 된 겁니다. 이처럼 죄사함은 오직 예수님의 고유 권한 행세로만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그 어떤 대처방안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벌거벗은 존재입니다. 벌거벗은 존재가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낼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단독으로 다 지켜낼 분은 따로 보내셔서 그 분을 말씀 지키시는 전담자로 일을 다 이루게 하셔서 그 분의 자기 권한 행세로, 그저 의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기이하고 신기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오직 모든 공로와 공적이 하나님에게만 돌아가기 위한 조치인 것입니다. 인간들의 대처방안은 무용지물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은 이 성경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모든 사태들은, 그 일들을 통해 인간들이 벌거벗은 존재임을 확인시켜주십니다. 그 두 가지 예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는 바알브라심 산 전쟁이요, 다른 하나는 기드온 전쟁의 일입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일으키신 일로 보았습니다. 신앙인은 바로 이런 점에서 차이나는 겁니다. 즉 블레셋 군대는 결코 다윗 자신의 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적일 뿐입니다. 그 군대가 하나님의 적이라면 그 적을 쳐부수는 전담도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단지 다윗은 하나님의 그 다음 지시를 따르는 것 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산에 불을 질러서 그 블레셋 군대를 격퇴시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결코 멸망당하는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죄를 더 지은 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서 우리 편 되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얼마든지 블레셋 군대들처럼 멸망당해도 할 말없는 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벌거벗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두 번째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이번에 다윗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뽕나무 윗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올 때, 블레셋 군대를 쳐부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결코, 침착하게 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요, 단결력이 대단해서 승리한 것도 아니요, 믿음으로 승리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블레셋과 그것을 쳐부수는 다윗의 군대는, 이 세상 일어나는 모든 사태가 하나님의 공로만으로 자기 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조치로서 작정된 채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기이하고 신기한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매일같이 당하는 사태들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은 그저 벌거벗은 존재며 죄만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나름대로 대처방안을 내놓는다는 그것은 하나님의 공로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말씀이 아예 없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