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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사 28 : 1- 3/교만과 겸손강의이사야

교만과 겸손 (사 28:1)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사 28:2)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의 창일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사 28:3)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구약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우리는 쉽게 그저 과거사의 일부로만 돌려버리기 십상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보게 되지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지 간에 지금은 오늘날의 일만 우리 자신들이 부딪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는 항상 남의 이야기로 흩어져 버립니다. 왜 이런 마음을 인간들이 갖게 될까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실제로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뿐이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자신이 활발하게 일한 덕택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한 가지 예를 들면, 창세기 37:2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은 형제들 중에서 유독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된 꿈을 꾼 사람입니다. 처음 꿈은 요셉의 곡식 단을 형제들이 단이 절을 하는 꿈이고, 또 다른 꿈은, 해와 달과 11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요셉에게 악한 감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자기네들을 만나려오자, 요셉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만 죽이면 그가 받았다는 계시도 사라지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요셉의 형제들의 사고방식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타인이 하나님의 뜻을 품게 되었다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뜻도 사라지리라 고 여깁니다. 이런 의식을 본인에게 적용시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을 직접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서 안 이루어질 것처럼 여깁니다. 바로 이런 오산으로 인해 구약 말씀을 마치 이미 지나가버린 별 소용없는 옛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요 모형이라고 말입니다. ‘그림자’라는 말은, 본격적인 내막은 신약에 와서 드러나 보이기에 그런 관계 속에서 구약은 없어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즉 구약은 잊어도 상관없는 옛 이야기가 아니라 그 구약에 적용했던 그 하나님의 원리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시기가 바로 오늘날 이 시대입니다. 따라서 구약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에브라임이 교만하다고 해서 가차없이 징벌을 내리게 됩니다. 마치 화려한 꽃이 순식간에 실망스러울 정도로 지듯이 말입니다. 요셉의 형들의 안목이라면, 이런 이야기도 그저 남의 이야기가 됩니다. 즉 “북쪽 이스라엘 나라인 에브라임이 잘 산다고 교만 떨다가 하나님에게 졸지에 당했구먼. 따라서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 남겨진 하나님의 뜻도 함께 날아가 버렸겠구먼”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소 뼈를 푹 고아 곰탕 국물을 우러나게 하듯이 하나님은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실패한 자가 담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 우러나는 것을 귀중하게 됩니다. 즉 실패하는 자는 실패를 해야지만 비로소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외부에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란 그 어떤 인간의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드러날데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 교만이며, 무엇이 진정 교만스러움이 아닌지 그 온전한 뜻이 마태복음 17장에서 일어난 예가 그 해답이 될 것입니다. 인간들이 단순히 늘 자신을 자학하듯이 다루어서 낮춘다고 해서 그것을 교만 아닌 겸손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가장한 교만일 수가 있습니다. 변화산 정상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올라 갔습니다. 갑자기 보통 사람 모습으로 사셨던 예수님께서 용모가 바뀌었습니다. 얼굴은 해의 광채처럼 빛났고, 졸지에 난데없이 1400여 년 전의 사람인 모세와 900 여년 전의 사람인 엘리야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했습니다. 이 현장에서는 감히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이룬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변화산 등산을 제자들이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 주님의 뜻에 의해서 세 사람만 선택받아 올라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넋아 나갈 지경입니다. 정신없이 말을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그동안의 행동과 처신 같은 것은 고려할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단지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작정으로 발언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제가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이요 절대로 교만이 아닌 태도입니다. 즉 교만이 아닌 겸손은 인간이 스스로 윤리와 도덕적 수양을 닦아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실제성 앞에 몸 둘 바를 모르는 그 관계로서 완성되는 겁니다. 주님의 현존은 성도로 하여금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사람들의 육적 성향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몰이해하는 예 중의 하나가, 하나님 말씀을 본인이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가만두지 않고 못살게 군다는 겁니다. 자신을 귀찮게 하고, 학대하고 나무라고 심판하고, 정죄하므로서 근사하게 낮아진 자신을 하의 자기 작품으로 하나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미는 겁니다. 이것은 전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교만이 아닌 겸손이란 주님 앞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감격입니다. 예전이 미처 몰랐던 예수님의 실제성으로 인해 혼이 나갈 지경에서 느끼는 피조물로서의 충격이 곧 겸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육체적 현존으로 마감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겸손의 최종 완성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15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자신의 등장으로 최종 겸손함을 성도에게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 속에서 끌어당겨서 그 죽음 속에 함께 동참케 하므로서 최종 겸손을 자아내게 하십니다. 이처럼 교만이란 단순히 잘난척 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말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 갖는 것, 그 모두가 다 교만입니다. 자신을 자아의 힘으로 길들이고, 훌륭하게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이런 교만으로 인해 나타난 꽃은 아무리 화려해도 하나님의 저주에 시들게 마련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의지나 이성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유지 됨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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